분노의 포도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5
존 스타인벡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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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발표된 미국 문학 작품들은 제목은 익숙한 것들이 많아도 실제로 책으로 읽은 것은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20세기라면 영화 산업이 한창 발달하며 인기 가도를 달릴 때이고 미국은 수익 창출에 유리한 영화 산업이 특히 발달한 나라이기 때문에 인기 있는 작품들은 바로 영화로 만들어져서 책 보다 영화로 더 접근하기 쉽기 때문이었던 것도 이유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된다.

존 스타인벡의 대표 작품중 하나인 <분노의 포도>는 출판한 바로 그해 (1939) 내셔날 북어워드, 다음해 (1940) 퓰리처상을 받음으로써 일찍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1942년 존 포드 감독에 의해 헨리 폰다를 주연으로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대중에게 더욱 유명해졌으며 1962년 존 스타인벡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지정될때에도 이 소설의 작품성이 언급되었고 지금도 미국 고등학교에서 대학입학을 위한 필독서 리스트에 빠지지 않는 작품 중 하나이다.

산업 자본 주의 바람으로 일부 계층은 막대한 부를 이루기 시작하지만 대부분의 중산층 사람들은 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살던 미국 1920, 3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중부 오클라호마주 한 마을에서 할아버지 세대, 아버지 세대, 그리고 그의 여섯 자녀, 큰 아버지 이렇게 대 식구가 한 집에서 목화 농사를 짓고 살고 있는 조드 가족의 사는 모습은 이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다가 1930년대 경제 대공황이 밀어닥쳤고 가뭄과 한파, 모래 폭풍의 자연 재해로 농민들은 경제적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자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은행으로부터 농사 자금을 대출받아 버텨보지만 가뭄은 계속되고 농사는 흉작으로 이어진다. 결국 은행에 담보로 맡겼던 토지는 빼앗기고 사람이 짓던 농사는 트랙터가 대신함으로써 임금을 덜 들이고 수확을 거두는 농사 방법이 확산되어 간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농민들은 일자리가 많다는 서부 캘리포니아로 이주를 감행한다. 그동안 수십년 살아오던 터전을 버리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로 온 가족이 떠나는 극단의 모험이었다.

한 가족이 땅을 떠났다. 아버지가 은행에서 돈을 빌렸는데, 이제 그 은행이 땅을 원한다. 토지 회사, 혹은 토지를 소유한 은행은 트랙터를 원한다. 그들은 땅 위에서 평범한 가족들이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트랙터가 나쁜 것인가? (...)

우리는 한때 우리 것이었던 이 땅을 사랑한 것처럼 트랙터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트랙터는 두 가지 일을 한다. 땅을 갈아엎는 일과 우리를 땅에서 쫓아내는 일. 이 트랙터는 탱크와 거의 다르지 않다. 둘 다 사람들을 위협하고 상처를 입혀서 쫓아내 버린다. 우리는 이 점을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1권, 315쪽)

캘리포니아로 가기만 하면 오렌지 농장, 포도 농장에서 얼마든지 일을 하여 돈을 벌수 있고 그러면 배고픔은 해결할 수 있을거라는 희망 하나로 대가족이 겨우 마련한 트럭을 타고 굶주려 가며, 이주의 수단이지만 수시로 고장을 일으키는 낡은 트럭을 수리해가며,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일정, 즉, 왜 이주하게 되었고, 어떻게 이주해갔으며, 이주하여 정착은 어떻게 해갔는지가 이 소설의 큰 줄기이다.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말은 미국 자국 내에서 시작된 말이었던 것이다.

사회적으로 어려운 시기, 생존의 위기, 상실의 위기에 닥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주제 때문에 고발의 성격이 짙고 사회적인 목소리가 강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읽는 동안 작가의 목적과 의도가 꼭 거기에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무너지는 것보다는 어떡해든 다시 일어날 것 이라는 믿음을 주고 싶어한달까.

등 뒤의 공포로부터 도망치는 사람들. 그들에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지독하게 잔인한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믿음에 영원히 불이 켜질 만큼 아름다운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1권, 252쪽) 

"앞으로 어떻게 될지 너무 생각을 많이 하면 지치기만 할 뿐이지. 앞으로 우리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수많은 가능성이 있지만, 실제로 우리가 살게 되는 삶은 하나뿐이야. 만약 내가 그 가능성들을 다 생각해 본다면 견디기 어려울 거다. 넌 아직 어려서 앞날을 먼저 생각할 수 밖에 없겠지만, 난 그냥 지금 이 길만 생각해. 그리고 식구들이 언제쯤 돼지 뼈를 더 먹겠다고 할지, 그런 것만 생각해." (1권, 256쪽)

작품 속 등장 인물 중 가장 믿음과 확신을 주는 인물로 대표되는 것은 젊은 세대인 아들 톰 조드보다 오히려 그의 어머니였다. 위의 인용문은 앞일이 잘 될까 걱정하는 아들에게 하는 어머니의 말이다.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걱정과 계획이 아니라 당장 오늘 먹을 끼니라는 현실적인 생각이다. 끼니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차원이라고 과소평가하면 안되는 것은 작품의 결말에서 확실해진다.


힘들게 도착한 캘리포니아 땅. 듣던 대로 오렌지 농장, 포도 농장, 목화 농장은 있지만, 따야할 수확물의 양의 몇백배 되는 사람들이 동시에 일자리를 찾아 이주해오는 바람에 일당은 계속 내려가고 그러다보니 하루 종일 일을 해도 끼니나 겨우 면할 정도의 임금으로까지 내려간다. 사람들은 분노한다. 농장을 버리고 간 사람들 때문에 과일은 그냥 떨어져 썩어가고, 바로 옆에 통조림 공장이 세워져서 과일은 사람이 아닌 기계에 의해 통조림으로 만들어져 팔려간다. 썩어가는 과일 수확엔 그저 최저 임금을 주고 최소량만 수확할 뿐이다. 

굶주린 사람들의 눈 속에 점점 커져가는 분노가 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익어 간다. 수확기를 향해 점점 익어간다. (2권, 255쪽)

사람들은 분노한다. 그리고 분노의 결과는 여러 가지 길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어떤 방향을 선택하여 보여주고 있을까. 

작품 곳곳에서 희망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고 있다고 보였던 것은 결말에서 더 확실한 작가의 목소리로 맺음한다. 비를 피해 들어간 헛간에서 발견한 모르는 한 노인과 조드가의 딸 로져산과 어머니. 인간이 인간과 뭉칠 수 있는 힘, 혼자가 아니라 서로 기대며 일어설 수 있는 바탕은 다름 아닌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사랑에 있다는, 어떻게 보면 종교적인 메시지로도 보일 수 있는 결말이다. 

사용된 언어와 주제 때문에 일부 지역과 단체에서 금서로 지정되고 소각되기도 했었다는 작품.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레노아 루스벨트가 읽고서 광팬이 되었다는 작품.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천사백만권 이상 팔렸다는 작품.

개인적으로 결말 부분이 옥의 티 같아 별 네개를 주려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작이라는 생각에 별 다섯개를 주었다.

바로 이어서 작가의 다른 대표작, <에덴의 동쪽>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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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5-20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말 부분의 옥의 티....는 유럽 문명에선 ˝시몬과 페로˝라는 이름으로 일반화된 장면의 패러디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 생각하시면 조금 덜 끔찍하실 겁니다.
<에덴의 동쪽>도 영화보다 훨씬 재미있습니다!

hnine 2021-05-21 05:21   좋아요 0 | URL
옥의 티라 여겼던 이유는 저의 개인적인 소견으로, 앞의 내용에 비해 좀 감상적이고 억지스런 결말이지 않았나 싶었거든요.

<시몬과 페로> 그림 보고 왔습니다 ㅠㅠ
책을 읽으면서는 인간에 대한 여성의 근원적 모성 본능, 생명에 대한 애착 등으로 나름 해석하며 넘어갔는데 오히려 그림으로 시각화 된 것을 보니 ‘허걱!‘ 하게 되네요.
알려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존 스타인벡의 머리 속에서 나온 결말인줄로 알았을텐데, 덕분에 알고 넘어갈 수 있었어요. 감사드립니다~.
<분노의 포도>에서도 살짝 기독교적 메시지를 느꼈는데 <에덴의 동쪽>은 제목에서부터 그런 느낌이 팍 오는데 과연 내용은 어떤지 이제 50쪽 정도 읽었으니 더 읽어봐야겠어요.

scott 2021-05-20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작 승!
영화보다 원작!

개인적으로 찰리와 함께 한 여행 에세이를 가장 좋아 합니다 (ᐡ-ܫ•ᐡ)

hnine 2021-05-20 22:52   좋아요 0 | URL
찰리가 사람 친구가 아니었군요 ^^
책 소개글 읽어봤더니 저도 딱 좋아할 내용인데 절판.
중고라도 사서 읽으려고요.
scott님, <분노의 포도> 영화도 보셨나봐요. 정말 미국의 웬만한 문학 작품들은 영화화된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scott 2021-05-20 22:54   좋아요 0 | URL
영어 원서가 러프컷으로 출간되어서
소장용으로도 강추
문장도 깔끔합니다.


hnine 2021-05-20 23:04   좋아요 1 | URL
주문하고 왔어요~ ^^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stella.K 2021-05-21 1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단함다. 이 두꺼운 장편을!! 짝짝짝!
영화와 문학은 샴쌍둥이 같은 관계 아니겠습니까?^^

hnine 2021-05-22 13:26   좋아요 1 | URL
재미없고 지루한 책이라면 절대 못했을거예요.
그만큼 내용도 재미있고 책장 넘기게 하는 힘이 있더라고요. 작가는 이런 사람이 해야하는구나 생각이 들만큼 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은 단순히 노력에만 있을것 같지 않고 작가 자신의 타고난 재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영화로 보고 책으로 읽는건 좋은데 책 부터 읽고 영화를 보면 실망하기 마련이라고 하던데 아마 책 읽으면서 더 큰 상상력이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왑샷 가문 몰락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3
존 치버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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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왑샷 가문 연대기 (The Wapshot Chronicle)>의 후속작이다. 원제는 The Wapshot Scandal 

번역자도 고심하여 '몰락기'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선택하였겠으나 그러고나니 한 가문이 완전 풍지박산 하는 것 같은 뉘앙스를 주어 은근히 그런 내용을 기대하며 읽었다. 그런데 몰락기라기 보다는 한 가문이 겪어가는 흥망성쇠를 그렸다고, 더 넓은 의미로 보고 싶다. 가족중 누구도 큰 성공을 이룬 사람은 없으나 꼭 성공을 이루어야하나. 계획대로 흘러가는 인생이어야 하나.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삶만 가능한가.

아버지 리앤더의 죽음으로 끝난 왑샷 가문 연대기에 이어, 재정적 도움을 줄 수 없으니 고향 세인트보톨프스를 떠나 각자 생존을 위한 길을 가라는 사촌 고모격인 오노라의 명을 받고 리앤더의 두 아들 모지스와 코벌리가 집을 떠나 그들의 길을 개척해가는 과정이 왑샷 가문 몰락기의 중심 뼈대를 이룬다. 모지스와 코벌리는 결혼하여 그들의 가정을 꾸리지만 그들의 일과 가정 생활, 부부 생활은 험난한 과정을 겪는다. 큰아들 모지스는 부유한 후견인을 둔 여자 멜리사와 결혼하여 넓은 저택에 살게 되지만 멜리사는 자기보다 훨씬 어린 식료품 배달원과 눈이 맞아 혼외정사를 벌이고, 테이프기록원으로 일하게 된 남편 코벌리를 따라 척박한 군사도시 탤리퍼로 내키지 않는 이사를 하게 된 부인 벳시는 장소와 사람 모두에 적응을 못하여 힘들고 불만스런 생활을 억지로 버텨나간다. 성격이 정상은 아닌 것 같은 상사 캐머런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코벌리는 우연히 의도하지 않게 반미활동위원회에 연루된것이 아닌가 조사를 받기도 하는 등, 코벌리는 코벌리대로 계획대로 되는 일 없이 별 소득 없는 삶만 이어질 뿐. 모지스와 코벌리 모두 고향을 떠나 새로운 장소에 영 뿌리를 못 내리고 방황은 계속되지만 이런 중에서도 사회의 유혹에 무릎 꿇거나 도덕적 경계를 벗어나지 않으며 살아내려는 노력은 계속된다. 

삶이란 위험한 도덕적 여정이다. - 존 치버 -

아버지 리앤더는 아들들에게 도덕적이고 신앙의 가치를 강조하는 메모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삶이 어차피 위험한 도덕적 여정이라면, 생을 붙들고 사는 방법으로서 도덕적 경계를 벗어나지 말라는 것. 그것은 아버지 리앤더의 충고임과 동시에 작가인 존 치버의 목소리라고 해석하면 안될까? 작가 자신이 꼭 도덕적인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알콜중독, 평탄하지 못한 가정생활, 마약, 동성애) 그런 경험에서 얻은 작가의 통찰이랄까 그런 것을 작품 속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인생 말년에 금욕과 절제를 강조했던 톨스토이의 삶이 그러했듯이. 원제 Scandal이라는 단어와도 그렇게 연관지어 생각을 해보았다. 그렇게 책장을 덮고 나니 왑샷 가문의 '몰락기'가 아닌, 매우 다른 관점으로 이 책을 보게 된다. 


왑샷 가문 연대기를 내고 2년 후 이 소설 집필을 시작하여 5년 걸려 완성했다고 한다. 그는 왜 후속작을 쓰고 싶었을까. 왜 5년의 시간이 걸렸을까.

노벨상을 제외하고 미국에서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문학상을 다 받았다는 존 치버.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 가문의 몰락기가 아닌, 물질 주의와 인간성 상실로 가는 현대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흔들리는 인간상, 특히 젊은 세대의 분투와 방황을 그리고 싶었다고, 내 맘대로 해석해본다. 그들은 아직 몰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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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5-14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제목에 불만이 있었습니다.
아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hnine 2021-05-15 05:14   좋아요 0 | URL
Falstaff님 리뷰 읽어보고 왔어요.
존 치버가 더 오래 살아서, 이 책의 다음 후속작을 더 냈더라면 이 책 제목도 바뀌었겠죠? ^^
이 사람 단편을 아직 한편도 못읽은 사람으로서 곧 단편소설의 대가 책을 읽어봐야겠어요.
하나를 배우면 모르는게 열가지씩 생긴다더니, 책도 한권을 읽으면 이어서 읽고 싶은 책이 몇배로 늘어나니 참. ^^

scott 2021-05-14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왓샵 가문 스토리가 치버 자신의 집안에 대한 이야기라서 후속작을 오년 뒤에 출간 하게 된 이유도 이모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장 먼저 출간 한 왑샷도 어머니가 돌아가신후에 출간 했고 가족들은 치버가 정신 분열증 증세를 글쓰기로 억누르고 있다고 생각했데요.
치버는 평생 헤밍웨이의 문장력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정작 헤밍웨이는 치버의 단편 이야기를 아주 즐겨 읽었던 애독자였고 나보코프도 치버는 장편 보다 단편! 이라고 평가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카버의 단편이 치버보다 많이 읽혀지고 있지만
치버는 단편! ^ㅅ^

hnine 2021-05-15 05:24   좋아요 0 | URL
작품 해설을 찾아보니 그런 얘기가 써있더군요. 치버 가족 얘기가 많이 들어가있다고요. 특히 엄마인 새러 왑샷은 치버의 어머니가 가장 많이 반영된 인물이라네요. 그렇다면 치버 자신은 여기 나오는 인물중 어디에 가장 많이 반영되었을까 생각해보게되는데 모지스 아니면 코벌리이겠죠?
단편과 장편은 읽는 사람에게도 그렇지만 작가 입장에서도 참 다른 장르처럼 취급되나봅니다. 확실히 다른 기술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절제된 길이 속에 강한 임팩트와 여운을 남겨야 하는 단편도 매력있고, 전체적인 구성과 스토리를 치밀하게 엮어나가야 하는 장편도 매력있고요.

서니데이 2021-05-15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명한 작가의 책 같은데, 저는 이 책 처음 보는 것 같아요.
몰락기와 스캔들은 느낌이 조금 다른데, 잘 모르는 책일 때는 hnine님이 리뷰 첫부분에 쓰신 것처럼 제목을 보고 기대하는 것들이 없진 않은 것 같아요.
이번주 날씨가 더웠는데, 주말엔 비가 오고 있어요.
hnine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hnine 2021-05-15 22:49   좋아요 1 | URL
저도 존 치버의 작품은 이게 처음인데 여기서 끝낼 작가는 분명 아닌 것 같네요. 단편을 꼭 읽어봐야겠어요.
저는 비를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서 특히 주말에 비가 오니까 좀 처져있던 중이랍니다.

페크pek0501 2021-05-20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 님 따라서 읽고 싶은데 이 책은 4백 쪽이 넘네요. 4백 쪽이 넘는 건 안 사려고 맘 먹고 있었는데...ㅋ
너무 유명한 작가라 많이 들었음에도 저는 한 권도 읽지 못했네요.
해서 저도 검색해 보고 한 권 구매해 봐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hnine 2021-05-20 21:29   좋아요 1 | URL
두권 짜리니까 4백쪽 x 2 입니다 ^^
재미있는 책 부터 읽으시고 천천히 읽으세요~
분량이 많지 않아도 끝내는데 오래 걸리는 책이 있는가 하면, 이 책 처럼 의외로 빨리 읽히는 책이 있기도 하네요.
방금 읽은 분노의 포도 역시 비슷한 분량인데 더 빨리 읽히더라고요.
 
왑샷 가문 연대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2
존 치버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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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치버는 사실 장편 보다 단편 소설을 훨씬 많이 쓴 작가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 헨리가 그렇고 앨리슨 먼로, F. 스콧 피츠제럴드가 그러한데 존 치버는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한 후인 17세에 첫 단편 <퇴학>을 시작으로 생전에 157편의 단편 소설을 발표하였다. 

1912년 매사추세츠주 퀸시에서 부모의 원치 않는 둘째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파산과 자살 시도, 부모의 결혼 생활 파경, 학교에서 퇴학 등으로 순탄하지 않은 성장기를 거친 그는 고등학교 퇴학이 학력의 전부였지만 몇몇 작가들이 그러하듯이 그의 불우하고 좌절스런 삶의 경험은 그의 문학적 동기 부여로 작용했을 뿐 아니라 그의 문학의 소중한 자료 역할을 하였다. 

소설이란 예술이며, 예술은 혼돈에 대한 승리 - 존 치버 -

고등학교 재학시 공부에 관심도 없었지만 담배를 피다 적발된 것을 계기로 퇴학을 당했다. 17세때 그 경험을 <퇴학>이라는 단편으로 써서 잡지사에 보내 채택된 것은 그의 작가로서의 첫발로 성공의 사인이었고 좌절과 방황 끝에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950년대 그의 나이 40대에 이르기까지 단편 소설만 발표해오다가 장편 소설가로 인정받고 싶은 도전을 하게 되었는데 그 첫 변신이 이 소설 <왑샷 가문 연대기>였고 비평가들로부터는 긍정적 평가보다는 부정적 평가가 더 많았다. 그 이유는 이 소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기대하던 소설 형식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중 하나이다. 탄탄한 플롯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고 그저 에피소드의 나열로 읽히기 쉬운 내용이라는 것은 어쩌면 제목에서부터 시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 가문의 연대기라니까.

나는 플롯을 가지고 작품을 쓰지 않는다. 나는 직관, 이해력, 몽상, 개념으로 작품을 쓴다. - 존 치버 -

에피소드들의 나열일 뿐이라는 것은 비평가가 아니라도 읽어보면 알수 있지만 그것은 작가가 선택한 방식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존 치버 그가 그려내고 싶은 세계는 플롯에 짜여 촘촘하게 흘러가는 방식이 아니라 구비구비 흘러가는 물처럼 무계획 처럼 보이기도 하고 산만하게 보이기도 하는 방식 속에서 더 잘 표현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을지도.

발음이 입에 잘 안익다가 책을 다 읽을 때쯤 겨우 제대로 발음하게 된 <왑샷 가문 연대기> (자꾸 '왓샵'이라고 읽었다) 는 미국 동부 뉴잉글랜드 어촌 마을에서 터전을 잡고 살아온 왑샷 집안의 연대기를 다룬 내용이다. 성경의 한 구절처럼 누구는 누구를, 누구는 누구를 낳고 하는 식의 서술이 나오기도 하는데 중심 인물은 리앤더 왑샷, 그리고 그의 두 아들 모지스 왑샷과 코벌리 왑샷이다. 흥망성쇠, 그중 흥과 성이 망과 쇠로 이어지는 것은 아버지 리앤더 세대에서 시작된다. 아버지와 다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는 아들들 모지스와 코벌리는 고향 을 떠나 뉴욕, 하와이등을 다니며 자수성가를 꿈꾸지만 그들의 운명은 그들의 의도되로 되어갈지. 아버지인 리앤드 왑샷의 죽음으로 끝나는 이 작품이 나오고서 7년 후 발표된 <왑샷 가문 몰락기>에서 알 수 있을 것이다.

존 치버를 일컬어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고 한다는데 그 말은 어쩌면 이 소설보다는 그의 단편소설에서 더 확실히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고 장편소설에서는 그런 선입견이 오히려 작품을 제대로 보는데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산만한 에피소드의 이어짐으로 지적된 바 있는 작품에서 이야기꾼 작가의 능력을 찾을 기대를 하고 읽는 것은 실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번역된 문장이긴 하지만 그가 문장 표현에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음을 보여주는 곳이 읽아보니 꽤 여러 곳 있었다.


나지막이 뜬 태양을 가리며 구름이 지나가자 계곡이 어두워지고, 식구들은 순간적으로 크게 불편해진다. 마치 마음이라는 대륙이 어둠에 잠길까 봐 걱정하는 사람들처럼. 바람이 기운을 북돋워 주자 그들은 자신의 회복 능력을 새로이 인식한 사람들처럼 모두 기분이 좋아진다. (51쪽)


단지 태양이 구름에 살짝 가려졌다가 지나가는 장면일 뿐인데 정작 작가가 나타내고자 했던 것은 이 장면을 이용한 사람들의 분위기 묘사라는 걸 알수 있는 대목이다.

리앤더 왑샷이 평소에 자기가 죽으면 장례식에서 낭독해달라고 부탁한 문구도 인상적이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 나오는 프로스페로의 연설문이다.

이제 잔치는 끝났다. 내가 예언했듯이, 우리의 이 배우들은 모두 정령이었으며, 이제 공기 속으로 허공 속으로 녹아 들어갔다. 우리는 꿈과 같은 존재들이며, 우리의 하찮은 삶은 잠으로 완성된다. -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중 프로스페로의 대사 -

'이제 우리의 잔치는 끝났다 (Our rebels now are ended.)' 는 말의 유래를 알게 되기도 하는 구절이다.

이 문구는 리앤더 왑샷의 장례식에서 아들 코벌리에 의해 낭독된다.

이어서 발표된 <왑샷 가문 몰락기>는 제목이 결론을 이미 말해주고 있을지 모르지만 결론만 중요한게 아니니까, 경로와 과정이 더 의미있을 수 있는게 인생이니까, 이어서 읽어보기로 한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템페스트>는 잘 알지만 세익스피어의 <템페스트>는 읽어본 적 없다. 영화로 보든가 읽든가 해야겠다. 그리고 존 치버의 단편들도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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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05-08 1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놈의 플롯이 문제입니다.ㅋ 맞아요. 처음엔왓샵. 그러나 욉샤.발음이 의외로 어렵승다.ㅠ

hnine 2021-05-09 04:59   좋아요 1 | URL
학교에서 배웠잖아요? 소설의 3 요소 중 하나가 플롯이라고.
플롯을 무시할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저 정도 인정을 받은 작가의 경우엔 그만한 주관이 있어서 채택한 방식이라고 봐주면 되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어요.
저 책 뒤에 번역자의 해설이 나오는데 예전엔 안읽고 넘어갔던걸 요즘은 해설까지 다 읽을 때가 많아요. 해설 읽으면서 배우는게 많더라고요. 작가 연보로만 알 수 없었던 작가에 대한 사실도 좀 더 알수 있고요.
예전에 권여선 작가가 그러던데 단편과 장편은 완전 다른 장르라고 생각해도 좋다고요. 독자의 입장에서도 단편소설과 장편소설의 매력은 따로 있다고 느끼고 있어요. 이 작가의 단편을 꼭 읽어보고 싶어요.

바람돌이 2021-05-09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 고등학교에서 담배 피다 퇴학당했다는데서 깜놀입니다. 미국도 그럴때가 있어군요. ㅎㅎ
항상 좋은 책을 소개해주시는 hnine님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남은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hnine 2021-05-09 05:03   좋아요 1 | URL
담배 피운 것 만은 아닌 것 같고 ( 제 짐작에 ^^) 워낙 미운 털 박혀 있는 상황에서 학교 규율에 명시 되어 있는 위반 행위를 하다가 딱 걸린게 아닐까...^^
제가 생일때마다 생일선물로 민음사와 펭귄클래식 세계문학시리즈를 한 세트씩 선물로 요청해서 받기를 몇년 했더니 (남편에게 요청) 세계문학 책들이 꽤 되어서, 요즘 핫한 책들 보다 문학전집 속의 책들을 주로 읽게 되네요. 그래도 아직 못 읽은 책이 수두룩 하지만요.
바람돌이님도 주말 잘 보내시길. 여기는 바람이 장난이 아닙니다. 그냥 바람이면 좋은데 미세먼지를 잔뜩 담고 있는 바람이라니 ㅠㅠ

scott 2021-06-04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치 나인님
존 치버 단편집들 완독의 문턱에 들어가셔야 할것 같습니다.
이달의 당선작 !
추카~추카~~

hnine 2021-06-06 04:36   좋아요 0 | URL
그렇게 될 것 같아요. 제가 한 작가 작품 파헤쳐 읽는 것 좋아하기도 하고요.
scott님도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리고, 감사합니다~

초딩 2021-06-04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월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hnine 2021-06-06 04:3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초딩님은 이달의 리뷰와 이달의 페이퍼 더블 당선!! 축하합니다.
 
기쁨의 집 2 펭귄클래식 26
이디스 워튼 지음, 최인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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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row is better than laughter: for by the sadness of the countenance the heart is made better.

The heart of the wise is in the house of mourning; but the heart of fools is in the house of mirth.

It is better to than the rebuke of the wise, than for a man to hear the song of fools."

(Ecclesiastes 7:3-5 King James version)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애도하는 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열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지혜로운 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낫다."

(전도서 7장 3-5절)


이 책의 원제 The house of mirth 는 구약성경 전도서에서 유래한다. 펭귄클래식에서는 이 책의 제목을 <기쁨의 집>이라고 했고 현대문화센터에서 번역된 책은 <환락의 집>이라고 했는데 각각 mirth라는 단어를 다르게 번역한 것이다.


이전에 읽은 이디스 워튼의 <징구>라는 책은 네편의 단편이 실린 단편집이었던 반면 <기쁨의 집>은 1, 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두툼한 장편 소설로서 지금까지 가장 널리 읽히는 이디스 워튼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작품이다. 1905년 출간 되자마자 대중의 인기뿐 아니라 비평가들로부터도 찬사를 들어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는 이 소설은 릴리 바트라는 아름다운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때는 19세기 중반에서 후반, 서로 다른 여러 사회적 계층이 출현하기 시작하던 미국 뉴욕이 배경이다. 주로 옛 네덜란드 가문들과 영국계 미국인들이 상류 계층을 이루던 시대에서 점차 신흥 부자들이 주류를 이루는 시대로 전환해가던 시점이다. 주로 철도와 선박, 모피, 땅 투기, 주식, 금융업을 토대로 하여 형성된 뉴욕의 이런 신흥 재벌 가문들은 황금으로 이루어진 환락의 세계를 창조해냈고 실제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고 살아온 이디스 워튼은 자신의 작품 속에 이러한 사회 분위기, 사람들의 삶을 묘사하는 동시에 단지 감각적이고 세속적이기만 한 쾌락의 무상함에 대한 비판 역시 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사회 분위기의 묘사와 그에 대한 비판 의식, 둘 중 어디에 더 치중했는가는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지만 이 책의 해설에 인용된 작가의 말을 보면 작가의 의도는 확실히 알 수 있다. 

"경박한 사회는 오직 그 경박함에 의해 파괴당하는 대상을 통해서만 그 극적인 의미를 얻을 수 있다. 그 사회의 비극적 함의는 사람들과 이상을 천박하게 만드는 그 힘에 있는 것이다. 대답은 바로 나의 여주인공 릴리 바트에게 있었다." 

(서문 13, 14쪽)

이 인용문에서 보듯이 작가는 그 당시 미국 사회를 '경박한 사회'라고 지칭하면서 주인공 릴리 바트를 통해 그 경박함에 의해 파괴당하는 대상을 그리고자 했다고 했다. 

소설에 있어서 작품과 작가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이디스 워튼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징구>을 읽으며 알아본 바 있듯이 그녀의 삶 속 경험이 이 작품 속에도 많이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디스 워튼은 위로 두 남자 형제와 달리 어릴 때 '이야기 만들기'에 대한 관심과 재능을 어머니를 포함하여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못마땅하게 여겨지기만 했던 성장기를 거쳤고 혼기가 되자 부모의 권유대로 결혼을 했으나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고 지적인 동반자 (그것이 사람이든 활동이든)에 대한 갈망과 외로움은 커져가서 신경의학자로부토 집중적인 치료를 받기도 하였다. 결국 그녀는 그동안 내놓고 하지 못하던 글쓰기를 조심스럽게 시작하고 그것이 자신의 가장 믿을만한 피난처임을 발견하였다. 나중에 결혼 생활도 끝내고 뉴욕에서의 생활도 끝내며 유럽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며 글을 쓰다가 프랑스 파리에서 75세 나이로 생을 마쳤다.

두권 분량의 긴 내용이고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 여러 명의 인물들이 등장해서 복잡해질 수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읽는 동안 지루하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어릴 때부터 타고난 듯한 작가의 이야기 만들기 능력은 인정할 만 하다고 보여진다. 그녀의 작품이 영화나 TV드라마로 여러 편 만들어진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이 소설을 그 시대 상류층 묘사나 그들의 경박한 행태 묘사 쪽에 치중했느냐, 아니면 그에 대한 비판 의식을 보여주는데 치중했느냐, 이 둘 중 어느 쪽에 더 무게를 주느냐에 따라 이 소설의 개인적인 느낌은 달라질 것이다.

나의 소감을 밝히자면, 둘 다 인정하지만 작가의 의도만큼 작품 속에서 그 비판 의식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아쉬움, 경험과 의도의 협업에서 경험 쪽으로 좀 더 기울어지고 말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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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4-28 11: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작품이 이디스 워튼이 불행한 결혼에 마침표 찍고 경제적으로 독립 할수 있게 만든 작품이였죠

당시 미국 신흥 부유층들이 영국에 망해가는 귀족들한데 딸들을 시집보낼때
이책 한권씩 챙겨줬다고 합니다.ㅎㅎ
시대를 반영한 이디스 워튼의 자전적 스토리가 많이 담겨 있죠
개인적으로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 마지막 챕터 주인공 아처가 벤치에 앉아서 지난날 회고하는 모습은 깊이 새겨둘 명문장들,,,
영화보다 원작!

hnine 2021-04-29 05:18   좋아요 1 | URL
영국 사람들 지금도 열광하는 제인 오스틴 소설들을 개인적으로 아주 재미있어 하는 편이 아닌데, 이디스 워튼 소설도 비슷하지 않으려나 했답니다. 그래서 집에 이디스 워튼의 <기쁨의 집>, <순수의 시대>가 있는데도 안 읽고 있다가 이번에 읽었네요.
내친김에 <순수의 시대>도 연속해서 읽어볼까 하다가 결국 다른 작가의 책을 골라서 읽고 있는데, scott님 말씀 들으니 곧 읽긴 읽어야겠어요. ^^
 
올리버 트위스트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2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인규 옮김 / 민음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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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올리버 트위스트가 1,2 권으로 나뉠만한 분량의 책인줄 몰랐다. 

19세기 영국의 대표 작가중 한 사람 찰스 디킨스의 대표 소설중 하나인 올리버 트위스트는 주인공 소년의 이름에서 온 제목으로, 첫 장면은 구빈원에서 다 죽어가는 여자가 아기를 출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자는 출산이 임박한 몸으로 런던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고 급한대로 구빈원으로 옮겨져 힘들게 출산하고 곧 숨을 거둔다. 아기 올리버 트위스트의 인생은 이렇게 구빈원의 어둡고 누추한 방에서 부모의 따뜻한 손길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시작되고 거기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다 못해 배급받은 죽을 조금만 더 달라고 요청한 것이 발단이 되어 이전보다 더 열악한 대우를 받게 되고 결국 구빈원장은 장의사에게 올리버를 팔아넘겨버린다. 장의사의 구박과 모욕은 훨씬 더 참기 어려운 것이었다. 장의사 일만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올리버는 마침내 장의사 집에서 뛰쳐나와 런던으로 도망치게 되는데 그것이 올리버로 하여금 범죄 집단의 소굴로 들어가게 되는 출발점이었다. 장물아비 유태인 페이긴, 도둑놈 싸익스, 소매치기 쪼무래기 소년들, 창녀 낸시등과 관여하면서 올리버는 물건을 훔쳐오는 일을 강요받는다. 이들이 찜해놓은 어떤 집에 직접 숨어들어가 강도 짓을 해오도록 종용받던 올리버는 그 집 하인이 쏜 총에 총상을 입고 죽을 고비에 이르렀으나 전화위복으로 자비로운 메일리 부인과 로즈 아가씨의 보살핌을 받게 되어 구사일생 살아나고, 양심의 가책을 따른 창녀 낸시의 도움과 다른 선량한 신사와 보호자들의 도움으로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고 만나본적 없는 아버지의 유산까지 찾게 되어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의 매력이라면, 

1. 소설이 이야기를 강조한 문학 장르라고 볼때 소설로서의 매력은 더할 나위 없다. 두권 합쳐 팔백여 페이지의 분량이지만 지루하지 않게 읽어내려갈수 있다. 

2. 주제가 확실하다. 우리 나라 고전에 권선징악이라는 공통주제가 있어 읽는 동안 안정된 흐름을 탈 수 있는 것 처럼 이 소설은 악의 위협과 꼬임이 도처에 널려 있어서 약자로 하여금 너무나 쉽게 발을 들여놓게 하고 우여곡절을 겪게 하지만 결국 선의 위력은 그보다 더 결정적이고 힘이 있다는 결론으로 이끈다. 

내용의 주제의 명료성에 더해서 당시 영국 사회를 재조정해가던 구민법등 공리주의에 입각한 개정이 실제 사회에 어떤 모순을 낳았는가 하는 작가의 사회의식도 확실하다.

3. 앞의 두가지 매력은 자칫 식상하고 뻔한 전개에 독자의 호기심을 떨어뜨릴 수도 있었는데 작가는 적절한 수준의 복잡성을 플롯에 더하였고 결말 부분 올리버의 출생의 비밀을 알아가는 과정은 추리소설 느낌까지 들게 하여 그런 위험을 피해가고 있다. 또한 악의 세계와 실상을 관념적이 아니라 사실적,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본듯이 그리고 있어 독자들은 좀처럼 식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끝까지 읽어갈 수 있다. 

4. 찰스 디킨스 특유의 풍자와 해학, 비꼬는 식의 문장 표현이 독자의 관심을 끄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음식물이 배 속에서 쓰디쓴 독으로 바뀌고 피는 얼음처럼 차갑고 심장은 쇳덩어리인 어떤 살찐 철학자님께서 개조차 거들떠보지 않는 이 산해진미 요리를 올리버 트위스트가 허겁지겁 집어삼키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굶주림의 화신처럼 사납게 달려들어 음식쪼가리를 정신없이 뜯어먹는 올리버의 이 끔찍한 식욕을 그 철학자님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보다 더 보고 싶은 것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 철학자님이 이와 똑같은 종류위 식사를 올리버와 똑같이 맛있게 먹어 대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70쪽)


원외 구제의 대원칙은 바로 극빈자들에게 그들이 원치 않는 것만 정확히 골라서 주는 것이라오. 그러면 그들은 진저리가 나서 찾아오지 않는다오. (327쪽)


- 이 소설의 아쉬운 점이라면,

소설로서의 매력만큼 문학성이 돋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찰스 디킨스가 스물 다섯살, 막 전업작가로서의 생활을 시작한 초기 작품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야기의 전개에 어쩔 수 없이 우연이 많이 개입하고 특히 결말 부분에 가서 우연에 의해 해결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찰스 디킨스는 그의 작품 만큼이나 그의 생애와 작품관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많은 작가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 악과 빈곤의 세계를 그토록 사실적으로 그릴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라고 할 정도로 그는 열 세살때부터 학교를 그만두고 가족과 떨어져 구두약 공장에 나가 일을 해야했을 정도로 어려운 성장 과정을 거쳐온 사람이고 부모와이 관계도 원만하지 않았다. 나중에 젊은 여배우와의 구설수, 아내와 불화, 별거 등은 작가 개인사적 얘기라고 해두어도 말이다.

살아생전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으나 거부한 그는 59세 나이에 뇌출혈로 사망하였고 웨스터민스터 대성당에 안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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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4-06 15: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작품 읽을 예정인데요, 한 권짜리로 골랐습니다.
디킨스는 이제 그만 읽겠다, 작정을 했습니다만, 참 그게 안 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입니다.

hnine 2021-04-06 21:44   좋아요 1 | URL
올리버 트위스트로 검색하니까 어린이용까지 50권이 넘는 책이 나오네요.
저는 이제 디킨스 시작이라서 집에 있는 크리스마스 캐럴까지 내친김에 읽을까 하다가 결국 다른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머지 않아 읽게 되겠지요.
어릴 때 고생, 가난, 애정 결핍등이 찰스 디킨스의 경우엔 문학적 결과로 남겨졌으니 다행이지만 올리버 트위스트의 내용에 본인이 어려서 경험한 가난과 악의 세계가 적지 않게 반영되었다고 하니 개인사로 볼때 결과만 보고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저는 찰스 디킨스의 다른 책을 읽어본게 없고 이 책이 처음이지만 Falstaff님은 디킨스의 다른 책을 이미 읽으셨고 이 책을 읽으신다면 올리버 트위스트가 아마 이미 읽으신 작품들에 못미친다고 보실지도 모르겠어요.

stella.K 2021-04-06 19: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는 책으로 읽지 않고 영화로 봤는데
생각 보다 별로다 싶더군요. 특히 알고 봤더니 올리버가 귀족의 아들이었다는 게
좀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건 아마도 그동안 복잡한 플롯의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봐와서
그렇겠단 생각도 들더군요.
하지만 디킨스의 시절엔 워낙에 살기 팍팍했을테니 이런 이야기로
대리만족 내지는 위로를 받았을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왜 우리 자랄 때도 괜히 나도 어쩌면 어디서 주워 오지 않았을까 그런 상상하잖아요.
나만 그런가?ㅋㅋㅋ

hnine 2021-04-06 21:53   좋아요 2 | URL
맞아요 이거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저는 못봤지만 TV에서도 여러번 방영해준 것 같아요.
빈민구제법이라는게 있을 정도로 가난이 심각하던 시기였고 공리주의에 기반한 새로운 구제법이 등장한 후라서 찰스 디킨스는 가난이 뭔지 쥐뿔도 모르는 철학자들의 공리주의가 과연 얼마나 가난을 구제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는가를 풍자와 해학 정도가 아니라 더 신랄한 표현으로 맘껏 비꼬아주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독자들은 후련하기도 하고 재미를 느끼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랬고요.
stella님 지적하셨듯이 우연이 너무 많이 작용한다는 것과 선과 악, 귀족과 빈민의 대립 구조로 끌고 가기 위한 약간 억지스러움은 옥의 티였다고 생각이 드네요.

페크pek0501 2021-04-11 1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1,2를 읽었죠. 인물마다 캐릭터가 개성 있고 반전이 있어요. 페이지가 잘 넘어가는 소설인데
이게 이 작가의 강점 같아요. 올리버 트위스트는 읽지 못했지만 작가의 소설 작법을 알 것 같아요.
충실한 리뷰, 잘 읽고 갑니다.

hnine 2021-04-11 16:03   좋아요 1 | URL
전 오래전에 <위대한 유산>을 영화로 봤거든요. 그런데 글쎄 내용이 생각이 하나도 안나네요. 기네스 팰트로가 나왔다는 것 외에는요 ㅠㅠ
위에 Falstaff님도 말씀하셨듯이 디킨스의 작품은 한권 읽고 말기에는 아쉬운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세익스피어 이후로 영국이 자랑하는 작가이기도 하고요. 올리버 트위스트도 페이지가 잘 넘어가는 소설인 것은 확실합니다.
적어도 <위대한 유산>, <데이비드 코퍼필드>는 읽을 생각이어요.

초딩 2021-05-15 1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이것도 읽고 싶은 책!

hnine 2021-05-15 22:40   좋아요 0 | URL
페이지가 쑥쑥 넘어간다는 것은 보장합니다.
재미있어요.

그레이스 2021-05-15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두도시이야기>
프랑스혁명과 그것을 바라보는 두개의 시각.
그리고 모비딕과 함께 유명한 첫문장으로 손꼽히는
˝최고의 시간이면서 최악의 시간이었다....˝로 시작하는 암시.
좋았어요~♡

hnine 2023-09-07 16:25   좋아요 1 | URL
저는 두도시 이야기 아직 안읽었어요.
최고의 시간이면서 최악의 시간이었다는 첫문장이 어딘지 찰스 디킨스 답다는 생각이 드네요.
Call me Ishmael. 모비딕 첫문장이지요 ^^ 짧은데 강한 인상을 팍 던져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