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귀한 일상 - 일상에서 발견하는 생명과 존재의 아름다움
김혜련 지음 / 서울셀렉션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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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전작을 각별한 느낌으로 읽었었다.





<밥 하는 시간>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였다.

이번에 새로 나온 에세이의 제목은 <고귀한 일상>.

밥 하는 시간과 같은 결의 이야기가 담기었겠구나, 제목을 보는 순간 감이 왔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였던 그녀는 마흔 후반에 하던 일을 접었고 오십 초반에 경주로 내려가 자기가 살 집을 짓고 밭을 갈며 살고 있다. 그러기까지 방황의 얘기가 <밥 하는 시간>이라는 책 속에 있었다.

온통 찾다가 돌아오니 처음부터 이미 저절로 다 있는 것을 이제 안다. 그리하여 답할 수 있다.

'그냥 살 뿐.' (28쪽)

하루 24시간을 피자 조각 나누듯이 네 조각, 아니 여섯 조각, 여덟 조각으로, 그 한 조각을 다시 두 조각으로 나누며 살아버티던 시게에서, 갑자기 하루 24시간이 한 덩어리로 주어지며 알아서 쓰라고 던져진 때가 찾아왔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인생의 룰 이랄까 그런 것을 다 뒤집어 엎고 새로운 제2의 철학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살면서 무엇이 정말 중요한 것인지, 그렇게 갈구하던 나만의 자유 시간이 자유가 아니라 형벌처럼 느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할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직접 그 질문에 부딪히게 되었다.

'늘 하던 일 하고 싶지, 특별한 일을 하고 싶지 않아.'

특별한 일이 따로 없다는 걸 온몸이 아는 거지.

하루하루 일상 그것이 특별함인 거지.

혼자 밥을 먹으며 이 특별한 일상이 기적 같다고 느낀다. (47쪽)

어제와 같은 이것이 그냥 시시한 반복, 아무것도 안일어남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특별함이고 고귀한 것임을 나이들며 알아간다. 특별한 일을 찾던 눈과 마음이 다시 나 있는 자리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공백에 대한 두려움, 고요에 대한 두려움, 혼자를 대면하지 못함.

《중세의 가을》에서 요한 하위징아 (Johan Huizinga)는 '공백에 대한 두려움'을 정신적 발전이 끝나 버린 시대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현대인은 공백을 못 견뎌 한다. (53쪽)

특별히 더 중요하고 집착해야할 것이 없다. 매일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이것이 다 중요하고 고귀한 것이라는 깨달음이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한 순간에 온 것이 아니라는 것만 알뿐.

내 생각은 고귀한데 나의 일상은 천박하다. 이 사실을 깨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고귀한 생각을 하는 꽤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실제 삶 속에서 나는 봐주기 힘들 만큼 천박했다.

난 평생 그럴듯한 삶을 꿈꾸면서 그 근원이 되는 것들은 죄다 무시하고 살았다. (70쪽)

'사소한 것을 고귀하게 하라' 라는 소제목 아래 세쪽에 걸친 글은 읽고, 한번 더 읽었다.

내 생각이 어떤 대단한 생각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나의 삶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을뿐. 다만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서 반가운 마음이다. 내 생각이 아주 유별난 생각은 아니구나, 혼자 이상한 곳으로 와있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안심이랄까.

아직도 배움이 많이 필요하고 아직도 덜어낼게 많은 삶이다. 채운게 뭐 있다고 덜어낼게 있냐는 생각은 적어도 하지 않을 겸손함이라도 배울 수 있다면.


책은 금방 읽었는데 리뷰를 바로 올리지 못했다. 리뷰의 성격으로 쓰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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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3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04 0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1-09-04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 밥을 먹으며 이 특별한 일상이 기적 같다고 느낀다. (47쪽)
: 이 글을 읽으니 어느 책에서 읽은 - 행복하게 해 줄 것들을 이미 갖고 있는데 다만 행복을 느끼지 못할 뿐이라는 - 글이
생각납니다.

hnine 2021-09-05 05:29   좋아요 1 | URL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 이 말도 지금 막 생각나네요. 이것도 아마 어디서 읽은 것 같은데, 같은 맥락이겠지요.
다 시시해졌다는 말은 어떤게 더 특별히 중요하고 덜 중요하지 않다는 걸 의미했는데 읽으시는 분들도 그렇게 받아들이시는지 궁금해져요.

서니데이 2021-09-05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들의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요즘 생각하게 됩니다.
전에는 잘 몰랐거든요.
커다란 상장 같은 목표도 좋지만, 매일의 날들도 바꿀 수 없을 시간 같아요.
hnine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편안한 저녁시간 되세요.^^

hnine 2021-09-05 23:40   좋아요 1 | URL
저는 오늘 오랜만에 바깥 외출을 하고 왔답니다. 가까운 수목원에 다녀왔어요.
신기한 식물들 많이 보고 사진도 많이 찍고, 날은 잔뜩 흐린 날이었지만 마음은 개인 날이었어요.
매일의 날들을 새로이 바라볼 수 있는 마음으로 살고 싶어요. 새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이미 새로 시작된 날 자체가 새로운 일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