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의 선택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7
윌리엄 스타이런 지음, 한정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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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 Hobson's choice 라는 말이 있다. 'to have no choice at all' 을 뜻하는 것으로,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다고는 하나 실제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를 말한다. 

소피의 선택, 이 책의 여정을 다 끝내고 제목의 소피의 선택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게되었고 (소설의 거의 끝무렵에 밝혀진다), 혹시 이 소설때문에 이후로 소피의 선택이라는 말도 Hobson's choice처럼 어떤 특수상황을 의미하는 관용구로 쓰이고 있나 궁금해져서 google에서 찾아보았다. 

1979년 발표된 이 소설에서 유래하여 매우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하는 경우를 일컬는 경우에 사용된다고 한다. 어떤 것을 선택해봤자 결과는 다른 하나를 선택했을 때보다 나을게 없는 경우를 말한다. 

윌리엄 스타이런은 25살에 첫 장편소설 발표부터 문단의 호평을 받는다. 소피의 선택은 그의 네번째 장편소설로서 1979년 그의 나이 55살때 발표하여 다음해 내셔널 북 어워드를 수상하였고 몇년 후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메릴 스트립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그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이라고 생각되는 인물인 '스팅고'가 화자로 등장한다. 작가를 꿈꾸고 있는 스팅고는 대학을 졸업한 후 출판사에 취직하였다가 사표를 내고 전업작가로 나서기위한 습작 생활에 들어간다. 뉴욕의 작은 공동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그곳에 살고 있는 다른 방 사람들중 소피 그리고 그녀의 애인인 네이선과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된다. 소피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폴란드 여자이고 네이선은 유태계 미국인이다. 난민수용소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미국까지 흘러들어오게 된 소피를 네이선이 도와주었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만 소피와 네이선은 둘 다 정신적으로 불안하여 언제 어떤 일을 일으킬지 모르는 상태이며 특히 네이선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중증 상태이며. 이들 사이에 있는 스팅고 역시 자신의 정체성과 작가로서의 성공 여부가 불확실하며 인간 관계 맺음에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상태로서 소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괴로와하고 네이선에 대해서도 묘한 연민과 매력을 느껴서 더욱 복잡한 심리 상태를 보인다. 

네이선이 발작을 일으키고 소피에게 변태적인 행위나 가학행위를 한후 그녀를 떠날때마다 스팅고는 혼자 남은 소피가 무너지지 않도록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주며 그녀가 털어놓는 과거 얘기를 들어준다. 마치 참을성 있는 고해신부처럼.

이 소설은 작가의 개인적인 작가로 일어서기까지의 방황과 불안, 그의 가족사와 관련된 미국 노예 제도에 대한 작가적 분석, 그리고 나찌의 유태인 학살에서 보인 잔혹성과 광기에 희생되는 인간의 파국의 양상이 두개의 큰 줄기를 이루며 진행된다.

민족과 국가의 선택과 결정이 개인의 운명에 어떻게 관여하고 어떤 모습의 파국으로 몰고 가는지,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르는 죄악의 모습과 광기는 모두 우리 인간에 내재하고 있는 악마성에서 비롯됨을, 복잡한 인간 관계와 심리 상태, 변태적인 행위와 가학 행위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국가의 차원에서 그리고 개인의 차원에서.

소피에 대한 네이선의 비정상적이고 가학적인 애정 행위, 그런 네이선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소피의 이해 불가한 심리, 그 사이에서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하려는 강박을 보이는 스팅고는 읽는 내내 이 작품에 대한 나의 판단을 어렵게 했고 혼란스러웠다. 이 정도 수위의 묘사가 이 정도 분량이나 작가에게 꼭 필요했을까 마지막까지 결론을 못내리고 책장을 덮었다. 영화에서는 어떻게 그려졌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독자가 여성이냐 남성이냐에 따라서도 작품에 대한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다는 짐작이다.

소피의 욕망도 나처럼 끝이 없었으나, 거기에는 다소 복잡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원초적인 욕망이 컸을 것이고, 또한 성교를 통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와 그 고통에서 벗어나 망각으로 빠져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죽음을 물리치려는 격렬한 싸움이 지칠 줄 모르는 성욕으로 나타났던 것 같기도 하다. (2권, 444쪽)

스팅고가 말하는 위의 대목을 겨우 찾아 작가의 변을 들은 셈 친다. 

윌리엄 스타이런은 말년에 꽤 오랫동안 심한 우울증으로 시달렸고 그의 아버지 역시 우울증으로 고통받았던 집안 내력이 있다. 


두권에 걸친 분량의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을 부분을 두툼한 책의 말미에서 발견했다. 스팅고가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며 스스로 묻고 대답하는 형식으로 다음과 같이 쓴 부분이다.

질문: "아우슈비츠에서, 신은 어디 있었는가?" 

대답: "인간은 어디 있었는가?" (2권, 474쪽)

또하나의 질문으로 답할 수 밖에 없는 대답.

신의 존재를 묻기 앞서 인간인 우리에 대해서는 알고 있냐고 묻는 지적인가.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다음과 같은 시구절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차가운 모래 아래서 나는 죽음을 꿈꾸었으나

새벽녘에 깨어나 보니

밝은 새벽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이날은 심판의 날이 아니었다. 아침일 뿐이었다. 아름답고 빛나는 아침. (2권, 4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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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08-27 21: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적당한 선에서 보여주고 묘사해도 충분히 이해할 텐데
유난히 그런 것에 집착하는 감독이나 작가들이 있는 것 같더군요.
그런 거 보면 좀 사디즘이란 생각도 들어요.
이 작품 영화나 책으로든 함 볼까 했는데 좀 괴로울 것 같아서 볼 수 있을까 싶어요.ㅠ

hnine 2021-08-28 05:37   좋아요 3 | URL
작가가 젊은 시절 쓴 작품도 아니고 실력을 인정받은 후 발표한, 시간과 공을 많이 들인 작품이겠기에 더 집중해서 읽었는데 저는 마지막까지도 작가의 의도에 공감을 다 하지 못하는 부분이 남아있었답니다. 아무리 유명한 작품이라 할지라도 그런 작품들을 어찌 제가 다 이해할 수 있겠어요 ^^
죄악을 저지르는 것도 인간, 죄악의 대상이 되는 것도 인간. 인간은 천사도 아니고 악마도 아닌, 천사이면서 또 악마이기도 한 이중적 존재, 다중적 존재인 것 같아요.

scott 2021-09-19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치 나이님
추석연휴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ʕ ̳• · • ̳ʔ
/ づ🌖 =͟͟͞͞🌖
해피 추석~

hnine 2021-09-22 05:50   좋아요 0 | URL
남편과 둘이서, 오붓하고 한적하고 조용한 추석을 보냈어요.
scott님의 추석도 평화로왔기를...

coolcat329 2021-11-08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도 읽으면서 네이선의 상식을 벗어난 폭력과 행위, 스팅고의 그 집착에 조금 불편함을 느꼈어요.
다만 유대인으로서 피해자라는 생각에 괴로워하는 네이선에게도 본인이 그토록 경멸하는 폭력성 잔인함이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이 품고있는 이중성의 아이러니를 보여준게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

hnine 2021-11-09 06:07   좋아요 1 | URL
읽으면서 참 고민 많이 하며 읽었는데, 인용해놓은 부분을 읽으며 제 고민의 가닥을 잡을 수 있었답니다.
인간인 우리도 우리 자신을 이렇게 모르고 있었다는 것, 그런 우매함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지만, 죽음을 꿈꾸면서도 다음 날 다시 찬란한 아침을 맞는 그 우매함때문에 극복하며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요. 아이러니지요.
읽는 동안 좀 질리기도 해서, 많은 분들이 영화를 추천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볼 생각을 안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