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군대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8
노먼 메일러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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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노먼 메일러의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를 읽고 나니 도저히 그것으로 멈출 수 없었다. 

<밤의 군대들>은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가 나오고 나서 출간되었고 (1968년) 노먼 메일러의 또다른 대표작이면서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이라는 두개의 상을 받게 한 작품이다. 역시, 누구나 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 독특한 형식과 내용을 하고 있었다. 

우선 모든 글의 성격을 픽션이냐 논픽션이냐로 분류한다면 이 책은 어느 쪽으로도 분류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실제 있었던 일을 보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으니 논픽션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쓴 사람의 주관과 생각이 듬뿍 들어가있으니 픽션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저자는 왜 이처럼 제3의 형식의 책을 쓰게 되었을까. 아마도 신문과 방송이 대중에게 사실을 보도하는 매체의 전부였던 시대에 그 '보도를 보도해보겠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논쟁의 불씨를 짐작하면서도, 논쟁적이지 않은 작품은 쓰지 않는다는 평소 노먼 메일러의 고집을 생각할때 가능한 시도이다.

작가의 이러한 심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을 본문 중에서 찾아본다.

신문이란 사람의 행동을 왜곡한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운데, 기자들은 사람이 말한 낱말과 문장을 부수고 비틀고 추리고 짜서 결국에는 훌륭한 작가를 얼빠진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필연적인 결론이 나온다. 말을 길게 늘어놓을수록 더 바보가 된다고. 만일 헨리 제임스가 요즘 인터뷰를 했다면 통신수업에서 토론학을 배운 히피처럼 보도됐을 것이다.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이 보도 내용은 항상 이상하게 간추려지고 생략되어서 오해가 빚어지고 바보스러워진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 놓인 오해의 장벽은 신문을 통해서 시간이 흘러갈수록 두터워진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묘한 슬픔이 훌륭한 작가의 가슴마다 비집어 든다. 작가의 작품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이를 오도하는 언론기관의 잘못으로 작가는 무지한 독자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들은 고통받는다. 이들이 무엇을 하려고 하면 그게 신문에 보도되는데 행위의 동기가 비틀리고 말이 잘못 전달되곤 했다. 

이런 일을 몇 번 겪으면 작가는 아예 체념하고 다른 일거리로 방향을 바꾸는데, 예를 들면 목적의식을 가지고 투쟁하든가 새 책을 쓰든가 영화를 만들든가 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기껏해야 가망 없는 평판을 감내하든가 나쁜 경우엔 산 채로 자신을 매장시키는 기사에 고통을 받는다. (108, 109쪽)


1967년 10월 21일, 미국의 국방성 펜타곤 앞에서 미국의 베트남 참전을 반대하기 위해 다양한 집단의 사람들이 모여 시위가 있었다. 이중엔 진보적 학계 인사를 비롯하여 시인, 비평가, 히피족, 대학생, 등 여러 계층,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속해있었다. 이 일이 있기 약 한달전 노먼 메일러는 하버드 동문이자 오래된 친구인 미첼 굿맨과 전화 통화를 한다. 미첼 굿맨은 노먼 메일리에게 시위 계획을 알려주며 참가할 것은 권유한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아하다가 참여하는 사람들과 모임을 주관하는 사람들에 대해 알게 되면서 점차 생각이 바뀐 그는 목요일에는 사전 모임에서 연설, 금요일에는 법무부에서 시위, 토요일에 펜타곤 앞에 모여 시위라는 3일 동안의 일정에 당시 잘 나가는 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참가하기로 하고 자기가 보고 느낀대로 써보기로 한다. 그래서 모임 연단에서 연설을 하기도 하고, 시위대에 참여하여 거의 자발적으로 경찰들에게 체포되어 하루만에 풀려나긴 했지만 감옥에서 지내보기도 하고 재판을 받기도 한다. 그가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에 찬성했느냐 반대했느냐 그것이 이 행사 참여 목적에서 아예 제외된다고 볼 수 없지만 그것이 주요 목적은 아니었다. 감옥에 들어가면서도 그는 어서 이 일정을 끝내고 뉴욕에서 있을 파티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서슴없이 쓰고 있고 베트남 참전 반대 군중을 가장행렬에 비유하는 비판적 의견도 감추지 않는다.

난잡하고 방자하고 부주의하게 LSD를 남용하고 그 폭식의 상패로서 자신들의 등에 모든 시대의 역사를 걸친 악한들이 지금 신만이 아는 역사의 진수를 모조리 짊어진 채 전진하고 있다 (양심의 가책 때문인가.) 다른 악한들을 치겠다고 지금 걸어가고 있다. 신파시즘의 성과학기술적 다양성을 위해서 독선과 탐욕과 (때론 자신들도 모르는) 음흉한 정욕 속에서 현재의 약속을 무너뜨리는 이 나라의 모든 기업을 대표하는 악한과 전쟁을 하겠단다. (148쪽)


그럼 저자는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에 대해 중립적이었는가? 

그는 자신의 의견을 아예 <우리는 왜 베트남에 있는가>라는 제목의 글로써 밝히고 있다 (이글은 따로 1967년에 단편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메일러는 전쟁을 옹호하는 입장도 알고 비방하는 입장도 알지만 결국 둘 다에 질려 버렸다. 전쟁을 옹호하는 주장은 근본적으로 조사하지 않은 가정 위에 세워졌고 끝없이 되풀이됐다. 한편 철수하자는 주장은 한 번도 그 중요성을 밝혀 본 적이 없다. 메일러는 미국의 베트남전쟁 참전을 2차 세계대전 이후 있었던 어러 사건들의 절정으로 생각했다. 정치가, 기업가, 장군, 신문 편집자, 입법가 등 미국의 가장 강력한 중년층과 나이든 와스프(WASP) 들은 의견을 한데 모아 지적인 결속을 다짐했다. 중세 기사와 맞먹는 신앙심으로 공산주의가 기독교 문화에 대한 필살의 적이라는 신념을 굳혔다. 전후 세계에서 공산주의와 대적하지 않으면 기독교 자체가 말살되리라고 생각했기에, 겸손한 타협도 있었으나 공공연히 전쟁을 벌이며 냉전 시대를 열었다. 

(278쪽)

이렇게 시작하는 <우리는 왜 베트남에 있는가>라는 글을 통해 노먼 메일러는 자신을 보수적 좌파라고 일컬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데, 요약해서 올려본다.

메일러는 보수적 좌파로서 그 나름대로 관점이 있다. 

모든 전쟁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베트남전쟁을 미국입장에서 볼 때 나쁘다. 나쁜 전쟁이기 때문이다. 부자들이 더 좋은 무기를 가지고 싸울 때,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싸움은 나쁜 전쟁이다. 폭탄으로 수많은 부녀자와 아이들을 죽이고 다치게 하는 일이 매일같이 일어난다면 그 전쟁은 나쁘다. 인구를 재배치하는 전쟁은 나쁘다. 전선도 없고 뚜렷한 절정도 없는 전쟁은 나쁘다. 과열된 우월감과 과열된 논쟁 속에서 나라에서 가장 용감한 남자들을 전쟁터로 끌고 가는 전쟁은 나쁘다. 그런 전쟁은 다른 인종들을 사냥하겠다는 내밀한 정욕에 부채질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애국심을 지속할 의미를 전혀 제시하지 못하는 전쟁은 분명히 나쁘다. 그 뿌리가 너무 복잡하고 타협적이어서 그 자체를 전쟁으로서 개선할 전망이 없는 싸움은 나쁘다. 좋은 전쟁은, 더 노력하면 혼란, 악, 몹쓸 것들을 효과적으로 쓸어버릴 수 있다는 구체적 가능성을 가져야 한다. 모든 보수적 시각에서 전쟁의 의미를 살펴보니 (전쟁을 옹호할 권리는 보수주의에 유보하고) 베트남전쟁은 나빠도 보통 나쁜 전쟁이 아니다. (284쪽)

이어서 두번째 이유로 메일러는 미국이 아시아에서 철수하고 세월이 흐른 뒤 아시아 대부분이 공산화된다고 가정할 때, 이것이 정말 문제가 되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285쪽) 2차 세계대전 이후 와스프 해군 대장, 장군, 정치가, 입법가, 편집자, 기업가들이 다음번 전쟁은 기독교와 공산주의 사이에 벌어질 거라고 수군거렸는데 이들은 마르크스를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으며 좋은 기독교인과 나쁜 기독교인이 있듯이 좋은 공산주의자가 있고 나쁜 공산주의자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아시아가 공산화될까봐 떨지 말고 아시아는 아시아인들에게 맡기라는 생각이다.

빨리 손을 떼라. 공산주의가 확장될수록 공산주의 그 자체의 모슨은 더욱더 커질 것이고 공산주의의 팽창 그 자체가 스스로 견제한다. 공산주의를 패배시킬 유일한 힘은 바로 공산주의 그 자체다. (287쪽)

어쨌든 그는 베트남전쟁에 반대한다는 항의를 상징적으로 보이기 위해 체포되었고 감옥에서 지낸 길지 않은 시간등, 자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결코 사실만 전달하겠다는 선언을 하지 않고 도리어 소설을 쓰겠다며 글을 쓴다.

훌륭한 소설이란 눈에 비치는 광경을 구체화하여 독자가 다른 광경들을 더 잘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연못을 들여다보려 할 때는 현미경 노릇, 숲을 탐색하려 할 때는 탑 위 망원경 노릇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방법은 확연해진다. 펜타곤 시위를 둘러싼 대중매체는 역사가의 노력에 장막을 드리우는 부정확성의 숲을 만들어놓았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어떤 가능성, 나아가 사실을 전망할 도구들까지 제공하려고 한다. (334쪽)

어쩌면 이 대목이 이 책의 의미를 요약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자신이 보고 겪은 것을 바탕으로 이 책의 1부를 썼고 제목을 '소설로서의 역사'라고 붙였으며, 2부는 '역사로서의 소설'이라는 제목으로 각 언론사에서 이 사건을 어떻게 보도했는지 모아놓았다. 소설로서의 역사란 소설인가 역사인가. 역사로서의 소설을 우리는 역사라고 볼 것인가 소설이라고 볼것인가.

책의 마지막 부분을 소제목 '은유의 탄생'이라는 글로 마무리한 것은 그 자체가 얼마나 상징적인지.

미국, 새로운 인간은 신이 사랑뿐 아니라 권력도 만든다는 믿음으로 이 땅에 태어났지. 

한때는 비길 데 없이 찬란하게 아름다웠지만 지금은 짓무른 피부를 지닌 미국이라는 여인, 사생아인지 아닌지 아무도 모르는 아이를 배어 벽도 보이지 않는 지하 감옥에 갇혀 시들어 가고 있다. 이제 그 두려운 진통의 첫 신호가 왔고 계속될 것이다. 얼마나 계속될지 의사도 모른다. 다만 가짜 진통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아, 진짜다. 이제 아기를 낳을 것이다. 어떤 아기일까? 지금까지 세계가 알아 온 가장 두려운 전체주의?

신이 갇혀 몸부림친다. (427쪽)

지금의 현실과 오버랩되며 오싹해진다. 전체주의란 어떤 모습을 하고 우리에게 파고들어있는 것일까.

어쩌면 노먼 메일러는 이 책을 씀으로써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이라는 팩트를 통해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를 얘기하고 싶었으며, 보이는 것에 갇혀진 진실, 무엇을 믿고 살아야할지 혼란과 갈등이 커져가는 인간들, 0과 1사이의 경계, 옳고 그름, 득과 실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더 나아가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무너져가는진 현대 사회를 향해 정신 차리고 살라고 일침을 던져주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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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10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치 나인님 이달의 당선! 추카 합니다
에이치 나인님 리뷰 자주 보고 싶습니다 ^.^

hnine 2021-09-11 05:4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오자도 막 나오고 ㅠㅠ
읽은 책은 다 리뷰 올리려고 하는데 요즘 독서량이 그리 많지 않기도 하고, 읽는 책들이 주로 두툼한 세계문학전집이기도 하고, 핑계라면 그렇네요.

하양물감 2021-09-10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들러서 읽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hnine 2021-09-11 05:50   좋아요 1 | URL
하양물감님 올리시는 리뷰 지금도 즐겨 읽고 있어요.
한솔이도 종종 궁금하고요. 똘똘하게 잘 자랐겠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양물감 2021-09-11 08:59   좋아요 0 | URL
한솔이는 이제 청소년이라 예쁜 모습은 사라졌어요. ㅋ

서니데이 2021-09-10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hnine 2021-09-11 05:5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마음에 오래 남을거라고 생각했던 책의 리뷰라서 더 기쁘네요.

초딩 2021-09-11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hnine 2021-09-12 05:1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초딩님도 축하드려요. 리뷰와 페이퍼 2관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