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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7
에벌린 워 지음, 백지민 옮김 / 민음사 / 2018년 9월
평점 :
지나간 시절을 다시 살아볼수는 없다. 하지만 지나간 시절 속에 다시 들어가보는 듯한 경험은 할 수 있는 것 같다는 경험을 3년 전 해본 적이 있다. 그건 바로 그 장소를 다시 방문하게 되었을때가 아닐까.
저자 에벌린 워의 자전적 이야기가 많이 반영되어 있는 이 소설은 2차 세계 대전에 참전중인 중년 장교 찰스 라이더가 부대와 함께 우연히 자기가 열아홉 젊은 시절을 보냈던 장소인 브라이즈헤드 성을 방문하여 머물게 되면서 1인칭 시점으로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는 전에 이곳에 있었어." 내가 말했다. 나는 전에 그곳에 있었다. 첫 방문은 이십 년도 더 전인 6월의 구름 한 점 없는 날, 메도스위트가 배수로에 크림색으로 흐드러지고 여름의 온갖 향기로 공기가 묵직할 때 서배스천과 함께였다. 그때는 유난히도 해가 쨍한 날이었으며, 나는 수차례, 다양한 심기로 그곳에 있었음에도 다시 찾은 지금 내 마음이 회상한 것은 그 첫 방문이었다. (39쪽)
서민층 출신 찰스는 집안의 기대를 안고 옥스포드에 입학한다. 선배, 동급생과 맺어지는 새로운 관계, 새로운 환경 속에서 가장 두드러진 대상은 동료인 서배스천이었다. 서배스천을 만나기 이전과 이후 찰스의 인생은 달라졌으니까. 서배스천이 눈에 띄는 외모를 하고 있기는 했지만 결코 완벽한 인간도 아니었고 모범이 될 만한 인물이 아니었음에도 서배스천의 모든 행동과 말과 거취는 찰스의 생각과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관계를 두고 치명적인 관계, 운명적 관계라 부를 것이다.
이 소설이 출간되자마자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는 말이 의아할 정도로 이 소설은 영국 귀족 계급, 대중적이지 않은 옥스포드라는 특별한 기관에서의 집단과 개인으로서의 생활 방식 등을 그것도 아주 세세히 다루며 진행해나가고 있다. 또한 청춘들의 연애사, 성장통, 동성간 우정, 종교, 결혼 등 하나에 집중하지 않은 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어 어디에 촛점을 맞춰야 할지 끝까지 결정을 못하며 읽기를 마쳤고 다 읽은 후 해설을 참고하여서야 이런 주제들이 모두 다루어졌구나 이해할수 있었다. 오히려 그런 이유에서일까. 1981년 영국에서 ㅇ이 작품이 TV 시리즈물로 만들어졌을 때 그 인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출간된 해가 1945년이라는 연도에서 짐작되듯이 이 소설이 출간되었을 시기는 2차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의 복판에 있던 시기이고 거의 모든 사람이 신체적 정신적 배고픔에 시달릴때였으며 작가인 에벌린 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 가운데 1920, 3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중상위층 사람들의 얘기가 사람들에게 어떤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했던 것일까. 이 소설에 대한 해설을 보면 이것을 성냥팔이 소녀가 눈보라 속에서 성냥불을 켜서 잠시라도 추위와 배고픔을 잊는 것에 비유해놓고 있다. 이 소설이 그당시 눈보라속 성냥불 역할을 해주었다는 것이다.
자유분방한 옥스포드에서의 생활, 아슬아슬할 정도의 청춘, 하지만 지켜야할 종교와 도덕, 자유가 도덕과 종교의 범위를 넘어갔다고 하는 판단이 이후 이들이 스스로 자기 인생을 꾸려나가는데 어떤 영향으로 작용을 하는지. 참으로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여러 가치관과 잣대의 충돌을 저자는 자기 인생에서 겪었고 그것을 스스로 대표작이라고 말하는 이 소설 속에서 드물게 개정판까지 내며 정리해보려고 한 것 같다. 1981년에 TV영상물로 만들어졌다고 했는데 이후로도 다른 해석과 다른 방식의 시도의 여지가 많아보인다. 찰스가 브라이즈헤드를 재방문하게 된 것처럼 이 작품 역시 재독, 재해석의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2019년 가을, 나는 수십년 만에 나의 이십대 후반과 삼십대 초반을 보내던 곳을 혼자 다시 방문해본 적이 있다. 갈때만 해도 반갑고 그리운 마음이었는데 막상 기차에서 내려 그곳의 지역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보는 순간부터 나는 발걸음이 느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보는 듯 마는 듯 서둘러 둘러보고는 다시 돌아오는 기차를 탈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차마 당당하게 둘러볼 수 없는 마음에 웃음대신 눈물을 흘렸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시 찾은 ○○○』모두 이런 곳, 이런 시기를 마음 속 한켠에 갖고 있지 않을까. 차마 아무때나 꺼내볼 수 없는 그런 브라이즈헤드가.
참으로 마음 복잡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언젠가 재방문 해볼만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