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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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하녀? 뭐냐? 이 애매한 조합은?’

내용을 예상할 수 없는 책 제목에 순간 당황했다. 뭘까? 이 책은? 물론 그 기분이 오래가진 않았다. 다름아닌 저자가 고병권, ‘고추장 아저씨(?)’인데 그게 뭐 대수야? 읽는 내내 무릎을 칠 게 뻔한데. 당혹감과 궁금증, 호기심, 기대감 같은 것들이 순식간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서점에서 책 한 권을 들고 갖가지 표정으로 자문자답하는 내 모습. 모르긴 몰라도 아마 가관이었을 듯하다.

 

처음에 가졌던 궁금증은 싱거울 정도로 금방 풀렸다. ‘만물의 근원은 물(水)’이라고 주장했던 고대 철학자 탈레스. 그가 어느날 별을 보면서 걷다가 우물에 빠졌는데 그걸 본 하녀가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탈레스는 하늘의 별을 보는 데는 열심이면서 발치 앞에 있는 것은 알지 못한다.” 이 일화에서 저자는 위대한 철학자와 재치만점의 하녀, 둘 중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다. 둘 모두 옳은 동시에 모두 틀렸다고 말한 저자는 ‘철학이 ’박식함‘에 있지 않고 ’일깨움‘에 있다‘고 강조한다.

 

책에는 제목에서 ‘하녀’로 지칭하는 일반 서민, 사회의 관심에서 벗어난 마이너리티의 일상과 그 속에서 마주치는 철학적 사유, 여러 사건 사고를 통해 어떤 것들을 느낄 수 있는지 하나하나 짚고 있다. 너무 힘들고 고단해서,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운명의 줄을 놓아버리는 이들을 이야기하면서 ‘있다’는 것과 ‘존재’, ‘선물’의 의미를 되새기고 한때 혼란스런 시기를 맞아 도피하듯 미국으로 향한 도착한 저자는 고요함 속의 소란스러움을 깨달았다고 털어놓는다. 또 인류의 역사, 진보를 프랑스 혁명이 당시 독일인의 마음에 일으킨 변화를 통해 전해주고 부당한 취급을 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회사의 관계 속에서 노동자의 사회적 위치를 가늠해 보면서 좋은 사회란 어떤 사회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공부하는 이들은 시끄러운 곳을 피해 조용한 곳을 찾지만, 아마도 우리가 공부하는 목적은 시끄러운 곳에서 고요를 얻는 것에 있을 것이다. 세상과 거리 두기를 할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거리두기를 해야 하며, 세상에서 벗어날 것이 아니라 세상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 공부일 것이다. - (머리에 타는 불을 끄듯 공부하라. 41쪽)

 

한마디로 <철학자와 하녀>는 ‘현장 인문학자’로 통하는 저자가 불법이주자, 비정규직 노동자, 재소자, 장애인, 성매매 여성 등을 만나 이야기하고 강연하고 끊임없이 고민한 것들을 글로 쓰고 그것을 모아 출간한 것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자꾸 혼동이 생긴다. 저자가 예전에 썼던 글이 분명한데 이상하게도 그걸 느낄 수가 없다. 본문 중에 언급되는 사건, 사고들이 지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의 일, 바로 오늘 일어난 일처럼 와 닿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참혹한 사고에 지켜보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 일처럼 고통을 함께 나누고 위로하려는 행위에 대해 청와대 대변인이 ‘순수 유가족’ 운운하는 것을 보면 국가가 무엇인지 의문이 생긴다.

 

이해당사자도 아닌 사람들이 어떤 불이익조차 감수하고 나서게 되는 순간이 있다. 아니 행동에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맘속에서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내 일이 아니지만 그것을 지켜보며 맘속에 공감이 일어날 때, 우리는 ‘개인’이 아니라 ‘인류’를 느끼는 것이다. - (구경꾼 맘속에서 일어난 혁명. 74쪽)

 

소외받는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고 대화했던 저자는 끝에 이르러 다시 ‘말’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을 읽고 강연을 하면서 ‘좋은 글’ ‘좋은 말씀’을 접하지만 그 ‘좋은 글’ ‘좋은 말씀’이 더 이상 발전되지 못하고 거기서 그치고 만다며 한탄한다. 좋은 말을 내 것이 되게 하려면 자기만의 방식으로 체험을 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들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행동하지 않는 양심, 철학을 꼬집은 게 아닐까.

 

“높이 오를 생각이라면, 그대들 자신의 발로 오르도록 하라!.” 차라투스트라가 자신을 구원해달라며 찾아온 이들에게 던진 말이다. 확실히 그렇다. 내 발로 오르지 않은 산은 풍문과 구경거리로만 존재하는 산이다. 그러니 산에 오르려면 스스로 오르는 수밖에 없다. - (에필로그. 옳은 말은 옳은 말일 뿐이다. 2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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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 - 부부 건축가가 들려주는 집과 도시의 숨겨진 이야기들
임형남.노은주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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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꽃보다 할배>에서 스페인편이 방송됐다. 이전의 유럽과 대만편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스페인편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가우디의 기이할 만큼 아름다운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과 요정의 나라에 온 것 같은 구엘공원,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음악으로 알려진 알함브라 궁전의 정교하고 섬세한 장식과 안뜰, 아찔한 협곡 위에 세워진 마을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그 두 마을을 잇는 누에보 다리로 유명한 론다는 스페인 최고의 절경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어느 한 곳이라도 인상적이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하지만 가장 궁금했던 건 다름 아닌 이야기였다. 자연과 인간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곳,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어떤 일상과 이야기들이 펼쳐질까.

 

 

‘부부 건축가가 들려주는 집과 도시에 숨겨진 이야기들’이라는 부제가 달린 <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에서는 집이 단순히 나무나 돌,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진 딱딱한 건물이 아니라고 한다. 어떤 집이나 건물에는 그 곳만의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라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좋은 건축, 집을 지을 수 있다고 하는데. 무심코 지나친 동네의 여러 건물들, 고단한 일상이 녹아있는 집에 숨어있는 이야기, 왠지 솔깃해진다.

 

 

저자는 사람과 집, 사람과 건축의 숨은 이야기를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일상 속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상황, 즐겨보는 책이나 영화, 음악과 공연에 대해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해서 점점 대화를 확장시켜 그와 관련한 건물, 건축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거나 우리가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을 짚어준다. 이를테면 제일 먼저 소개된 ‘맥거핀 효과’에서는 중요한 것 같지만 아무것도 아닌 속임수나 미끼에 대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빌미로 시작된 미국의 이라크전쟁, 금강산댐에 대응하기 위해 건설한 평화의 댐을 예를 들어 ‘현실에서의 맥거핀은 이렇게 전쟁을 일으키거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까지 악용되곤 하는 것(23쪽)이라고 설명한다. 그런 다음 기존 도시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계획한 도시 ‘뉴타운’의 허와 실을 꼬집는다.

 

 

‘도서관’편도 인상적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으로 말문을 꺼낸 저자는 중세 도서관 특유의 깊고 어두운 분위기에 매료되었다면서 도서관에서의 추억을 털어놓는다. 책을 읽는 장소인 도서관에 공부를 하기 위해 찾아왔다가 공부는 않고 열람실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일탈’을 일삼으며 수많은 책에 빠져들었는데 그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하나의 궁금증이 다른 것으로 이어지는 지식의 미로, 그 강렬한 경험을 가슴에 새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혼란스런 입구를 통해 밝고 높은 실내로 들어온다. 그리고 어두운 서가에서 책을 꺼내들고 밝은 창 쪽으로 가서 책을 읽는다.(189쪽)’

 

 

건축은 ‘집이나 성, 다리 따위의 구조물을 그 목적에 따라 설계하여 짓는 것’이라고 한다. 주어진 한정된 공간을 사람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통해 만난 것은 미처 알지 못했던 우리의 일상 속 이야기였고 우리의 문화이며 더 나아가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이었다. 사람과 집, 사람과 길, 도시와 건축. 그 속에 깃든 숨은 이야기에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이런 경험, 흔치 않다. 저자의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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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 : 독서에 관하여 위대한 생각 시리즈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유예진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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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잡으면 끝을 본다.’ 예전엔 그랬다. 한 번 읽기 시작한 책은 끝까지 읽어야 된다고, 그걸 당연하게 여겼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읽는 도중에 덮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처음 기대에 못 미치거나 비슷한 내용의 글이 반복되는 자기계발서, 아무리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을 때인데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후자의 경우였다. 모두 11권인 책은 1권에서부터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깊은 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가 두서없이 떠오르는 기억 속에서 헤매고 다니는 것처럼 그것을 지켜보는 책 밖의 나도 기억의 미로에 던져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읽다가 덮고, 읽다가 덮고...를 몇 번 반복하다가 그만 밀쳐두고 말았다. 언젠간 읽겠지...하면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이름이 표지인 <독서에 관하여>가 출간되었을 때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완독하지 못한 씁쓸함. 결코 유쾌하지 않은 경험. 내가 이정도 밖에 안 되나 하는 자괴감 같은 것들이 불쑥 고개를 들었지만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았다. 프루스트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나면 그의 작품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뿔싸! 내가 크게 오해를 했다. 아니, 잘못 알고 접근했다는 게 옳은 표현일 듯하다. <독서에 대하여>는 프루스트의 책읽기에 대한 글이 아니다.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을 쓰기 이전에 번역가와 미술평론가로도 활동했다고 한다. 특히 존 러스킨에게 매료되어 그의 책을 두 권 번역하고 역자 서문을 남겼는데 ‘독서에 관하여’는 러스킨의 <참깨와 백합>, ‘러스킨에 의한 아미앵의 노트르담’은 <아미앵의 성서>에 덧붙인 글이다. 즉, 프루스트가 러스킨의 글을 번역하고 나서 독자들을 위해 책의 내용이나 저자의 의도 같은 걸 설명한 역자 서문과 유명 화가, 미술에 관한 글을 수록된 책이 바로 <독서에 관하여>이다.

 

문제는 이 글, 역자 서문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이다. 일단 서문치고는 글의 분량이 제법 길다. 어린 시절의 책읽기와 일상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으로 시작된 ‘독서에 대하여’는 러스킨의 <참께와 백합>에 수록된 두 개의 강연에 대해 설명한다. 도서관 설립을 지원하기 위해 옛 성현의 경지에 이르는 길은 오직 독서이며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독서를 주제로 한 ‘왕들의 보물’과 여성은 저마다 마음의 화원을 가지고 있다면서 여성의 교육과 의무, 역할에 대한 강연 ‘여왕들의 정원’에서 드러난 러스킨의 생각과 주장을 짚어주면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더해서 전하고 있다. ‘러스킨에 의한 아미앵의 노트르담’은 아미앵의 여행안내서라고 할 수 있는 <아미앵의 성서>에 붙인 서문인데 본문에서 러스킨이 썼던 표현과 여정에 자신의 경험을 더해서 풀어놓았다. 러스킨과 프루스트가 추천하는 여정이란 어떨지...상상해봤지만 아미앵을 가보지 않은 나로서는 쉽지 않았다.

 

이후로는 샤르댕, 렘브란트, 귀스타브 모로, 모네 같은 당시의 유명 화가와 미술작품에 대한 글이 수록되어 있는데 미술평론가로서의 프루스트를 만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나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감흥을 무척 세밀하고 아름답게 표현해 놓아서 때론 그림이 마치 눈앞에 펼쳐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흑백이지만 본문에 수록된 그림을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프루스트의 글은 역시 쉽지 않았다. 수식어가 많은 긴 문장에 본문의 문단 나눔도 거의 없다시피 해서 책을 읽다가 한 눈이라도 팔면 다시 되짚어가며 읽어야했다. 본문의 아래에 위치한 각주도 시선을 분산시켜 책의 몰입을 방해했지만 꾹꾹 눌렀다. 러스킨에 매료되어 그의 뒤를 따르듯 했던 프루스트가 자신만의 색깔과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프루스트의 문장은 아직 낯설지만 한편으론 기대가 된다. 이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만나게 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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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 조선의 책과 지식은 조선사회와 어떻게 만나고 헤어졌을까?
강명관 지음 / 천년의상상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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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인 것 같다. 교과서로 알고 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조선의 모습을 만났다. 장터 투전판의 노름꾼에서부터 뒷골목의 폭력조직, 도둑, 기생, 특히 관료로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과거시험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상상을 초월했다. 오늘날 수능시험장이 최첨단 기기를 동원한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갖가지 대책을 세우는 것처럼 그 옛날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명예나 권력과는 거리가 먼 민초들, 주류에서 벗어난 비주류들의 삶의 공간인 뒷골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조선의 이미지와 사뭇 다른 것이었다.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고 ‘야사’로 지나치고 말았을 이야기지만 정말 흥미로웠다. 나로 하여금 새로운 조선의 모습을 만날 수 있게 한 책 <조선의 뒷골목 풍경>을 시작으로 저자 강명관의 책을 기회가 닿는대로 읽었다.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그림으로 읽는 조선 여성의 역사>를 읽으면서 ‘조선’이라는 거대한 퍼즐을 맞추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이번에 만난 책이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내게 있어 ‘조선’이란 이름의 퍼즐을 성공적으로 완성할 수 있는 핵심적인 조각이 아닐까 싶다. 다름 아닌 ‘책’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저자는 서두에 이렇게 말한다. ‘만약 인류의 역사가 진보를 향한 변화라면, 그 변화의 이면에 아주 복잡한 요인이 있다면, 책 역시 반드시 거기에 끼일 것이다.’ 즉, 인류의 역사는 책의 역사와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인류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방향을 결정짓는 요인이기에 ‘책의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역사를 이해하는 일’이라고.

 

이 책은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라는 제목이 곧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대변해준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책의 역사를 다루기 이전에 저자는 고려시대의 출판, 인쇄는 어떠했는지 알려준다. 당시 고려는 출판을 전담했던 관청에서 서적을 출간했는데 ‘내서성’에서 ‘비서성’ ‘비서감’ ‘전교서’ 등 관청의 명칭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책의 인쇄와 보급을 맡았던 ‘서적포’, 왕과 신하들이 학문을 강론하는 장소였던 ‘서적소’를 비롯해 주로 어떤 책을 만들었는지, 고려의 국가도서관과 거기에 구비된 장서는 무엇이었는지 살펴본다. 그런 다음 구텐베르크보다 88년 앞섰다는 조선의 금속활자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세계 최초’를 강조하지 않는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일부 지배층에서 독점하던 지식이 대중화 되어 서구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에 비해 조선의 금속활자는 국가가 인쇄, 출판에 관한 모든 것을 독점하면서 발전할 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고 꼬집는다.

 

1446년, 조선은 획기적인 대변혁이 일어난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것이다. 문자를 통해 백성들을 가르치려는 의도로 한글이 창제되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한글로 쓴 책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한글은 어떻게 사용되었는가. 한글로 쓴 책은 임진왜란 이전에는 없었고 그 이전에는 오로지 번역의 형태로 존재했다고 한다. 왜냐면 조선 역시 고려와 마찬가지로 책의 인쇄, 출판이 국가가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책을 읽고 지식을 축적한 지배층이 자신들의 체제 유지에 이로운 책만을 찍어냈다. 백성들을 위해 쓴 <삼강행실도>조차 한자로 되어 있어 이해를 돕는 그림을 덧붙였다 하더라도 길거리 아이들과 여염 부녀자들까지 쉽게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이후 저자는 책의 출판과 인쇄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다. 책이 어떻게 쓰이고 인쇄출판이 어디서 이루어졌는지, 어떻게 읽고 유통되었는지, 책값은 얼마였는지, 책의 제작에 필요한 종이는 어떻게 생산되었는지 등 조선시대의 책과 관련된 다양한 궁금증을 하나씩 짚어나간다. 그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는데 얼마전 읽었던 책을 통해 알게 된 ‘책쾌’였다. 서적매매의 중개인으로 ‘책쾌’가 맡은 역할이 컸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 조선,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의 세 나라 중에서 조선만 서점이 없었다는 것은 정말 충격이었다. 19세기 후반에 가서야 서점이 등장했다고 짐작할 뿐.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산소가 혈관을 타고 온 몸을 골고루 순환해야 건강하듯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의 경험과 지혜, 지식을 글로 남기고 그 지식을 한데 모은 책이 나라 곳곳에, 백성 모두에게 고루 주어져야 하는데 조선은 그렇지 못했다. 지금까지 조선시대의 역사를 대할 때마다 왠지 모르게 갑갑했는데 그게 어쩌면 당시 지식의 보급이 원활하지 못했기에 일어났을 거라 생각하니 실로 안타깝다.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제작한 나라’면 뭐하는가.

 

책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이자 문화의 역사다. 책의 역사를 따라가면 인간이 쌓아올린 문화의 역사를 볼 수 있다. -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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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2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2
EBS 역사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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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歷史), 지난 과거의 중요한 사실을 기록해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 역사 때문에 새해 벽두부터 나라 안이 들썩였다. 지난해 친일파를 애국지사로 기록하고 일제 식민시대를 미화하며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 방식에서도 문제점을 보이는 등 왜곡된 역사를 서술한 교학사 역사 교과서에 대해 논란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다 일부 고등학교에서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면서 해당학교의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여러 시민단체에서 교학사 교과서 채택 철회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그 결과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했던 학교에서 채택을 포기하면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률은 0%대에 그쳤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의 역사관이 어떠한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지만 정부에서 교과서를 직접 제작하는 ‘국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또 한번의 논란이 예견되고 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다.” - 연산군.

 

이런 차에 보게 된 책이 <역사 e 2>이다. 이 책은 EBS 역사채널e에서 제작된 <역사 e>를 모아서 책으로 엮은 것인데, 한국사의 주요한 사건과 그 이면에 감춰진 기록과 인물들을 찾아내 영상과 함께 새롭게 조명해놓은 프로그램이다. 한 회당 방송시간은 약 5분,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그 속에 담아낸 내용은 실로 크다.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고리타분한 역사, 그마저도 박물관을 찾아야 만날 수 있었던 역사의 흔적과 단면들을 세련된 영상과 간략한 설명을 통해 보다 가깝고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부 ‘세상에 버릴 사람, 없다’, 2부 ‘사라진 것들, 되살리다’, 3부 ‘시대의 맥박, 살아 있다’. 여기에는 각각 일곱 개, 모두 21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실제 방송 대본과 몇 장의 사진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방송은 여기가 끝이었으나 책은 한걸음 더 나아간다. 각각의 주제마다 한정된 시간, 짧은 문장으로 풀어내지 못한 것들을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는데, 이 부분이 ‘핵심’이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제일 먼저 소개된 ‘책의 신선, 책쾌’는 서점이 거의 없었던 조선시대에 전국을 돌아다니며 책을 유통시킨 서적중개상 ‘책쾌’에 관한 이야긴데, 책쾌가 처음 등장한 시기부터 책쾌로 인해 도서 대여점이 등장하고 여성들의 독서클럽이 생기기도 했다는 것, ‘조신선’이라 불리던 조생이 책쾌 중에서 특별했다는 것은 상세설명에서 다루고 있다. 그리고 하나의 주제가 끝날 때마다 참고자료를 소개해놓아서 관심 있는 부분을 더 찾아볼 수 있도록 배려해놓은 부분도 돋보였다.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늘 강조했던 것은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것, 흐름을 파악하라는 거였다. 하지만 <역사 e 2>는 달랐다. 울창한 숲이 아니라 그 속의 나무 한 그루, 가지 하나까지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의 숨겨진 뒷이야기, 누군가 일부러 들추지 않으면 사라지고 잊혀지고 말았을 야사(野史)를 소개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역사에 흥미와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것은 책의 후반에 가서야 빛을 발한다. 초반에 새롭고 신선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묵직해진다. 도쿄 전범 재판에서 벌어진 어이없는 일들, 명문가의 자제로 독립운동의 자금, 에너지를 도맡았지만 그것을 알리지 않고 파락호라는 오명을 써야했던 김용환, 24살 꽃다운 나이에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졌던 윤봉길 의사....등 우리가 잊고 있던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될 심오하고 원대한 의미를 가슴 깊이 심어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 단재 신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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