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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자연스러운 삶을 위한 철학 - 세상에서 가장 쉬운 『에티카』 해설서
황진규 지음 / 철학흥신소 / 2025년 11월
평점 :
몇 년 전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읽었다. 매주 일정 분량을 정해서 발제와 토론을 하면서 진행을 했는데 정말 어렵게 읽었다. 철학책이 분명하지만 형식을 보면 여태까지 봤던 여느 철학책과는 완전히 달랐다. ‘정의’,‘정리’,‘증명’으로 이어지는데 읽으면서 수학책을 읽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저자의 지침대로 따라가다보면 앞뒤의 개념들이 서로 연결되는데 잠깐 집중이 흐트러지는 순간 이전에 지나왔던 것들이 완전히 날아가 리셋되어 버리는 신기한 경험... 페이지 단 몇 장을 사이에 두고 계속 반복하는, 제자리걸음하는 듯한 느낌.
최근에 출간된 <스피노자, 자연스러운 삶을 위한 철학>을 보고 처음엔 지나쳤다. 스피노자? 내게 큰 시련을 준 철학자? 어우야, 됐어. 그러다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에티카> 해설서’란 부제를 보고 멈춰섰다. 몇 년 전 <에티카> 읽는데 도움이 될만한 해설서를 찾던 때가 떠올랐다. 쉬운 <에티카> 해설서? 얼마나 쉽게 풀어냈을까 궁금해졌다.
책은 가장 먼저 ‘나’를 이야기한다. ‘더 나은 ‘나’를 위해’ 꼭 필요한 것들, ‘지성’,‘자유’,‘의지’,‘욕망’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일례로 일상에서 자주 언급하는 ‘자유’를 사실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저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을 때’ 자유롭다고 느끼지만 스피노자는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고 꼬집는다. 진정한 자유란 자신의 본성을 따르는 삶, ‘오직 자신이기에 따를 수밖에 없는 ‘규칙’을 발견하고 그 규칙에 따라 ‘체계’를 만들고 그 체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반복’하는 삶, 그것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50쪽)’이라는 것이다. 즉 자유란 규칙을 벗어난 것이 아니라 규칙 속에 존재한다는 말이다.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요? 자연스러운 기쁨입니다. (...) 자극적이지도 않고, 딱히 특별한 순간도 아니지만, 그 어떤 자극적이고 특별한 기쁨보다 더 깊은 기쁨의 순간들이 있죠. 은은하고 고요하지만 깊은 기쁨을 느끼는 그 모든 순간이 자연스러운 기쁨일 겁니다. -10쪽
‘선악’을 다룬 대목도 인상깊었다. 자녀들에게 ‘착하게 살’라고 하면서도 ‘착하기만 하면 호구가 된다’고 강조한다. 이러면 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건지 알 수 없는데 스피노자는 가장 먼저 ‘선과 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기쁨’을 주는 것은 ‘선’이고 ‘슬픔’을 주는 건 ‘악’이라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나’.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 나의 감정이 핵심이다. 어찌보면 파격적인 대목인데 ‘착하면 호구가 된다’는 것도 이렇게 접근해보면 된다. 문제의 어떤 것이 내게 기쁨을 주는지 슬픔을 주는지 따져보라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선택의 순간마다 내게 기쁨인지 슬픔인지 체크하는 게 쉽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필요한 훈련이 아닐까 싶다.
‘슬픔’은 우리를 파괴하는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파괴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경보 장치다. ‘증오’, ‘멸시’, ‘공포’, ‘질투’, ‘치욕’, ‘절망’은 우리 안에 있다. 그 슬픔은 우리를 파괴하는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파괴되는 것에 저항하는 감정이다. (...) 우리 안에 있는 ‘슬픔’은 우리를 지켜주는 일종의 방어기제인 셈이다. “사물은 결코 자신이 파괴될 수 있는 어떤 것, 즉 자신의 존재를 제거하는 어떤 것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지 않다.” 스피노자의 말은 빈틈없이 옳다. -147~148쪽
일곱 개의 챕터로 이뤄진 책은 각각의 챕터마다 ‘<에티카> 한 걸음 더’란 코너를 마련해서 스피노자의 철학과 그에 대한 논란, 잘못 알려진 대목을 수록해놓았다. 처음 <에티카>를 읽을 때 애를 먹었던 ‘자기원인’, ‘실체와 양태’에 대해서도 언급해놓았는데 역시나 쉽지 않았다. 인간의 감정을 책 한 권으로 완전히 이해한다는 건 무리일테니까. 그럼에도 의미있는 책읽기였다.
철학은 무엇일까요? ‘밥’입니다. ‘밥’이 있어야 살 수 있듯, ‘철학’이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반문하고 싶으실 겁니다. 철학 없이도 살아가고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은 무엇이냐고요. 철학은 삶을 구성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철학이 없다면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게’ 됩니다. ‘삶을 구성하는 방식’을 아는 이들만 능동적으로 살 수 있고, 그 방식을 모르는 이들은 세상에 휩쓸리게 되니까요. ‘사는 것’과 ‘살아지는 것’은 다르지요. 스스로 삶을 구성해 나가지 못하고 세상에 휩쓸릴 때 우리는 정말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는 것’과 ‘살아지는 것’ 사이에는 ‘삶’과 ‘죽음’만큼이나 큰 간극이 있는 것 아닐까요? -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