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파스텔, 나만의 작품 그리기 - 회화적이고 감성적인, 특별한 오일파스텔의 세계 오일파스텔, 나만의 작품
이주헌(어반포잇) 지음 / 리얼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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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책 읽기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득이한 사고로 두 달 남짓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요. 치료가 어느 정도 이뤄져 행동이 자유로워졌을 때 엄마에게 가장 먼저 책과 스케치북, 크레파스를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남은 기간 동안 병실에서 줄곧 했던 것이 책 읽고 그림 그리기가 전부였지요. 퇴원 무렵 제가 있던 병실의 벽에는 온통 그림이 붙여져 있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엄마가 그걸 일일이 떼느라 고생 좀 하셨다고 하더군요.


 

사실 책 읽기와 그림 그리기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활동이지요. 특히 그림은 잘 그리는 것보다 그림을 그리는 그 자체를 즐기는데요.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이든 기억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 자신이 바라는 무언가이든, 그것을 그림으로 그린다는 건 참으로 매력적입니다. 어떤 것을 꼼꼼하게 관찰하고 그것의 특징을 간단하게 혹은 세밀하게 그려내려면 일단 집중력은 기본, 거기에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기도 필요합니다. 한마디로 그림 그리기는 그림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때로 마음을 치유하는 고도의 정신활동이자 육체적인 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유익한 활동인 그림 그리기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소년기를 정점으로 해서 멀리하기 시작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 대학입시 때문이겠죠. 입시와 관련 없는 과목의 수업이 학교에서 사라지듯이 미대를 지망하거나 미술을 전공으로 하지 않는 사람은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더군요.


 

돌아보니 저도 그랬습니다. 여고 때 미술 선생님께서 제게 미대를 가라고 권하셨어요. 전 내가 그림을 잘 그리고 소질이 있다는 의미인가 싶어서, 괜히 기분이 들떴구요. 집에 돌아오자마자 엄마에게 말했는데요. 일언지하에 거절당했습니다. 당시 미대를 다니는 언니가 있었는데 수업에 필요한 재료비며 실습비 같은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들었나봐요. 엄마는 우리집에 미대는 한 명만. 넌 안된다고 하셨죠. 그때 들었던 생각이 , 미술을 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구나. 그림이 좋다고, 하고 싶다고 해서 함부로 시작하면 안되겠구나였습니다.


 

오래전, 30년도 훨씬 전의 일인데도 그때의 기억, 생각은 지천명을 넘긴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해 외부활동이 제한되고 집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실내에서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게 좋을까 고민하게 됐구요. 독서 외에 다른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문득 오래전 내가 무척 좋아했던 그림이 떠오르더군요. 하지만 중년 아줌마가 돼서 그림을 시작하는 게 가능할까. 주책맞다고 흉보지는 않을까. 그림을 배우려면 학원을 다니든 해야 할 텐데 생활비에서 이런 취미생활에 비용을 지불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온갖 생각들이 다 들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이웃 블로그를 통해 오일파스텔이란 걸 알게 됐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몇 장의 사진으로 올려놓은 글을 보면서 오일파스텔화가 수채화보다는 비용이나 난이도 면에서 진입장벽이 낮을 것 같았어요. 학원에 다니지 않더라도 유투브에 올라온 영상을 보면서 하면 되지 않을까 싶더군요.


 

그런 가운데 만난 책이 <오일파스텔, 나만의 작품 그리기>입니다. 나뭇가지 가득 흐드러지게 핀 분홍빛 꽃과 회갈색의 벽돌집과 현관의 좌우에 놓인 초록초록한 화분들. 마치 여유롭고 평화로운 마을의 어느 집을 사진으로 담은 것 같은 표지에 순간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이 그림이 수채화도, 유화도, 아닌 오일파스텔이라는 게 놀라웠어요. 오일파스텔로 이렇게까지 표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거든요.


 

다다름이라는 드로잉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저자는 최근 오일파스텔이 많은 이들에게 각광을 받는 이유를 수채화처럼 얇은 그라데이션도 가능하고 유화처럼 꾸덕꾸덕한 질감도 기능한 매력적인 소재인데다가 휴대성과 가성비가 좋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본문에 수록해놓은 자신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오일파스텔의 기법을 차근차근 연습하다 보면 곧 다양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하네요.

 

 

책은 모두 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일파스텔을 처음 접하는 저같은 초보자에게는 역시 1오일파스텔 재료와 기법이 가장 중요하겠죠. 오일파스텔의 브랜드마다 어떤 특징이 있는지, 오일파스텔로 그림을 그리기 적합한 종이의 종류에 대해 사진을 첨부해서 설명해 놓았습니다. 크레파스의 한 종류로 안료를 유지로 굳혀 만든 게 오일파스텔이라서 뭉툭한 선은 물론이고 파스텔을 잘라서 사용하면 섬세한 표현도 가능하다고 하는데요. 오일파스텔을 좀 더 효과적으로, 풍부하게 표현을 하고자 할 때 필요한 보조도구와 호환재료, 블랜딩 도구 등등 오일파스텔의 가장 기본적인 ABC를 간단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일파스텔의 여러 기법(점 찍기, 선 긋기, 면 채우기)과 그림을 그릴 때 주의할 점, 그림의 구도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짚어주는데요. 특히 꽃을 그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꽃의 형태와 모양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면서 꽃이 피어있는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간단한 스케치로 전해줍니다.


 

그런 다음 2장부터는 변화무쌍한 구름의 모습, 평안과 안식을 주는 바다 풍경(3), 설렘을 주는 꽃밭 풍경(4),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노을풍경(5),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 풍경(6), 설렘과 화사함이 가득한 꽃 그림(7), 작품 같은 인물 그림(8)으로 이어지는데요. 그림 하나하나마다 구도를 잡거나 오일파스텔로 선을 긋거나 점을 찍고 면을 채워나가고 손이나 다른 도구를 이용해 터치하면서 완성해나가는 과정을 일일이 사진으로 수록해놓아서 실제로 연습할 때 보면서 그대로 따라그리기 하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어떤 도구로든 그림을 그린다는 건 역시 몸을, 손을 쓰는 활동이라 옆에서 직접 지도를 받는 게 가장 좋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렇게 책 한 권으로 시작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대신 마음을 조급하면 먹으면 안되겠죠. 첨엔 틀림없이 본문에 수록된 사진을 그대로 따라그리기조차 힘들 게 뻔하니까요. 지금의 제 목표는 우선 바다를 그리는 거예요. 조금만 걸어가면 금방 바다에 닿으면서도 그 바다를 제대로 그려본 적이 없거든요. 오일파스텔과의 첫만남으로 인해 제가 어떤 풍경에 가 닿을지 두군두군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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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8-02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 그리는 몽당연필님 멋있어요. 부디 조만간 몽당연필님만의 풍경을 가지시기를.....
 
인류 모두의 적 - 해적 한 명이 바꿔놓은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
스티븐 존슨 지음, 강주헌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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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만화 <아스테릭스>. 우락부락한 몸집의 독특한 개성의 해적들이 바다를 누비며 벌이는 이야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던 기억이 난다. 어른이 되어서 그 만화의 역사 왜곡에 대해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책이 다시 출간되었다고 해서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떤 부분에서 왜곡이 있었는지... 그리고 해적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만화 <원피스>. 주인공 루피는 고무고무 열매를 먹고 온몸이 고무처럼 늘어나는데 초파, 상디 같은 개성있는 동료들과 전세계를 누비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길게 늘어져서 보다가 이제 그만! 외쳐버렸다. 지금쯤이면 100권이 출간되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 <인류 모두의 적>을 봤을 때는 무심히 넘겼다. 그러다 며칠 후 다시 보았을 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해적 한 명이 바꿔놓은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이라는 부제였다. 내가 아무리 세계사에 무지하다고 해도 저런, 특별한 해적이 있었다면 모를 수가 있나? 학창시절 수업 시간에라도 배우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지금까지, 아무도, 이런 얘길 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짐작가는 게 있었다.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이, 나라에겐 틀림없이 이 해적의 존재가 반갑지 않을 터. 되도록 아무도 모르게 숨기고 싶지 않을까?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만 봐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역사를 교묘하게 왜곡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생각의 고리가 여기에 이르자 관심이 생겼다. 알고 싶어졌다. 세계사를 바꿔놓았다는 이 정체불명의 해적이.

 

이 두 배가 인도양에서 맞닥뜨린 사건은 그런 미세한 원인들이 세계사에 큰 파급 효과를 낳은 경우였다. 역사의 넓은 관점에서 볼 때 그런 대치는 대체로 사소한 풍돌, 즉 금세 꺼져버리는 불꽃에 불과하다. 그러나 간혹 누군가가 그은 성냥불이 온 세상을 밝히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런 성냥불 중 하나에 대한 이야기다. - 20.

 

날씨는 화창했다로 시작한 책은 16959, 수라트 서쪽 인도양에서 해적선이 무굴제국의 보물선(건스웨이호)을 습격하던 날을 전한다. ‘파국적 결과는 지극히 사소한 실수로부터 시작되는 법이라며 우연의 연속인지, 운명인지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건스웨이호의 망꾼이 경종을 몇 초 늦게 울린 것을 시작으로 대포의 미세한 결함으로 대포가 폭발하면서 포수가 즉사해버리고 상대편 영국배(펜시호)에서 쏜 포탄 중 하나는 아주 정확하게 날아와 주 돛대 아래쪽을 맞춰 가장 파괴적인 타격을 입히고 만 것이다.

 

세상을 경악에 빠뜨린 악명 높은 해적에 대해, 그의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인류 모두의 적>5(1[원정], 2[선상반란], 3[약탈] , 4[추적], 5[재판])로 구성되어 있다. 책은 주인공, 잉글랜드 데번셔 출신의 청년이 영국 왕립 해군에 입대와 당시 해군 입대와 관련한 배경(‘부랑자 단속법에 의해 부랑자나 난민들은 채찍질이나 해군 입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헨리 에브리라는 미스터리에 싸인 그의 이름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어이없이 보물선을 약탈당한 무굴제국이 오래전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으며 조화롭게 공존하던 힌두 문화와 무슬림 문화가 어떻게 깨어졌는지 풀어낸다.

 

모든 위대한 전설적인 인물의 출생에 대해서는 몇 번이고 고쳐 써지게 마련이다. 세대를 거듭하며 전해진 이야기에 이런저런 소문과 풍문이 더해지고, 교묘하게 수정되며 다층적으로 짜인다. 한동안 헨리 에브리는 만신전에 묻힌 여느 인물만큼이나 널리 알려진 전설적인 인물이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영감을 주는 영웅이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무자비한 살인자였다. 또 폭도였고, 노동자 계급의 영웅이었으며, 국가의 적이었고, 해적왕이었다. 그러고는 유령이 되었다. - 33~34

 

1650년대 말에 두 화면으로 에브리의 탄생과 아우랑제브의 즉위를 모두 지켜본 사람이 있었더라도, 둘의 충돌 이후로 인도에서 이슬람 시대가 붕괴하고, 대영제국군이 들어서서 두 세기 이상 인도 아대륙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 61.

 

15세기부터 세계는 바야흐로 대항해시대. 바다를 주름잡던 영국은 공공연히 해적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17세기, 엘리자베스 1세는 동인도회사의 법인설립을 인가하고 무굴제국과 손을 잡고 동인도회사를 통해 막대한 자금을 손에 넣게 된다. 하지만 그 무굴제국의 보물선을 에브리에 의해 습격을 당하고 성지 순례를 다녀오던 황제의 직계 가족이 모욕적인 일을 겪자 무굴제국의 황제는 동인도회사와의 무역을 끊어버린다. 해적들의 우두머리, 에브리가 영국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도리어 다급해진 건 영국이었다. 에브리와 그의 일당을 인류 모두의 적이라 하여 현상금을 내걸고 공개수배령을 내리기에 이른다. 그런 다음 모굴 제국 황제의 권력을 등에 업고 인도 지역에서 대대적인 권력을 행사하기에 이르는데 이것이 훗날 인도가 대영제국과 동인도회사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되는 결정적인 시초가 된 셈이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해적선의 우두머리에 불과한 에브리로부터 대영제국이 탄생하는 과정을 보면서 궁금했다. 에브리가 해적이 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우연한 일이 연이어 일어나고 그것이 운명이 되었다고 하기엔 세계사적으로 미친 영향이 너무나 크다. 에브리의 기록은 생각만큼 많이 남겨져 있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언젠가 또다른 기록을 통해 그의 숨겨진 이면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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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1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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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고양이에게 자꾸 시선이 머문다.


 

코로나로 인해 오랫동안 지속해오던 독서모임이 위기를 맞았다. 온라인 영상토론이 낯설어서 어쩔 수 없이 잠정중단 된 모임이 있고, 직접 만나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온라인으로 이어가는 모임도 있다. 온라인으로 모임을 하다 보면 참가한 이의 주변 상황을 자연스레 접하게 되는데 느낌이 색다르다. 한참 토론이 진행될 때 날 좀 보라며 애교부리듯 칭얼대는 반려동물의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때론 자신도 우리의 토론에 할 얘기가 있다는 듯 서슴없이 카메라 앞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곤 한다. 또 온라인 필사 모임에선 단톡으로 진행상황을 각자 사진으로 인증하는데 이때 종종 고양이가 등장한다. 어이, 집사! 오늘은 여기까지! 하듯 앞발로 책을 덮어버리기도 하고 필사하지 말고 나랑 놀라달라는 듯 아예 책과 노트 위에 앉거나 엎드리는 고양이를 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쟤들, 혹시 글자 읽을 줄 아는 거 아냐?


 

뫼비우스의 띠를 옮겨놓은 듯 계단과 건물이 이리저리 얽혀있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한층 더해주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도도하고 당당하게 앉아있는 고양이다. <문명>은 표지에서부터 끝났다고 해야 할까? 표지를 넘기면 얼마나 많은 수수께끼를 만나게 될지 무수한 의문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거기에 저자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니. 읽지 않을 수 없다.


 

글을 읽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 바랄 게 없을 거야. 종이에 촘촘히 박혀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는 해바라기 씨만 한 글자들의 뜻을 알 수 있다면. 줄줄이 이어지는 글자들에 담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면 살맛이 나겠지. - 13.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글을 읽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해서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문자를 익히지 못한 이의 넋두리인가 했는데 천만의 말씀. 바로 세상에 눈뜬 특별한 고양이다.


 

이야기되지 않는 모든 것은 잊힌다. - 14


 

시종일관 당당하게 라고 일컫는 건 바로 흰털과 검은 털이 섞인 암고양이 바스테트다. ‘지나친 완벽주의자여서 단점마저 매력으로 바꿔버리는 이 고양이는 자신이 스스로 고양이라는 종의 한계, 암컷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한다. 그리고 밝힌다. 자신에게는 원대한 꿈이 있다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이 서로 소통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당돌함 그 자체인 고양이 눈에 비친 인간은 형편없는 외모를 한 나약한 존재였다. “이러니 어떻게 내가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 있겠어?(24)” 인간에게 집사로서의 임무가 주어진 게 바로 이때부터였나보다.


 

답답한 인간들 속에서 평이한 일상을 보내던 바스테트는 어느 날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목격한다. 수염 달린 인간이 수염 없는 인간을 죽이고 서로 맞붙어 싸우는 모습. 그리고 알 수 없는 전염병이 인간 세계에 퍼지면서 도시엔 죽음의 기운이 가득하지만 반대로 세력을 넓혀가는 동물이 나타났으니, 바로 쥐였다.


 

난 쥐가 싫어. 그렇지만 그들의 공격성과 무서운 적응력, 그리고 번식력이 경쟁 관계의 다른 종들을 압도한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어. - 29

 


바스테트는 건너편 집으로 이사 온 샴고양이 피타고라스를 위험에서 구해준 것을 계기로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피타고라스에겐 특이한 게 있었는데 바로 이마 위에 구멍이 하나 있다는 것. <3의 눈>이라 일컫는 그것은 뇌와 컴퓨터를 연결할 수 있는 USB 단자였는데 피타고라스를 통해 바스테트는 인간세계에 대해 알게 된다. 그런 어느날 인간들의 습격으로 아들이 실종되자 피타고라스와 함께 아들을 찾아나선다.


 

볼로뉴숲의 고양이들을 만난 바스테트는 쥐들이 확산되는 걸 막기 위해 그들과 시뉴섬에 진지를 구축하는데 쥐들의 공격을 받는다. 하지만 바스테트의 기발한 전술로 쥐를 물리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지만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또다시 쥐들이 무리 지어 습격했는데 이전보다 강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공격이 더 포악하고 거세졌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현실로 다가왔음을 느낀 피타고라스는 시뉴섬을 떠나 시테섬으로 이동할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쪽배 몇 척에 나누어 타고 이동하게 되는데...


 

이제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 피타고라스의 말대로 우리는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미래를 다시 일구어야 한다. -51.

 


시테섬에서 다시 공동체를 이끌며 얼마간은 특별한 것 없는 일상을 보낸다. 하지만 또다시 쥐 군단의 공격이 시작되자 거대한 고양이과 동물인 사자 한니발의 활약으로 쥐들을 해치우고 포로를 잡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 포로를 통해 쥐들의 새로운 우두머리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덩치는 크지 않고 하얀 털에 빨간 눈의 흰 쥐인데 이마 꼭대기에 특이한 구멍이 있어서 거기로 방대한 지식을 갖게 됐다고. 바스테트와 피타고라스는 알게 된다. 적진의 우두머리 역시 제3의 눈을 가졌으며 그의 이름은 바로 티무르라는 것을...

 


인간의 실험을 통해 방대한 지식을 갖게 된 동물들의 이야기는 그동안 영화나 문학작품으로 여러번 소개가 됐다. 그 속에서 인간은 눈부신 문명을 일구었지만 언제나 자신들의 욕망을 폭력성을 다스리지 못하고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실험의 도구였던 동물의 지배를 받으면서. 여기서 <문명>은 그동안의 디스토피아 세계를 다룬 작품과 차별성을 드러낸다. 인간은 모두 사라져야 한다는 측과 인간과 지식을 공유하고 협동해야 한다는 측이 존재한다. 이런 가운데 바스테트는 과연 자신의 목표인 세상의 모든 종이 소통하고 협력하여 새로운 문명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인가.

 


여태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겠다는 결정에는 위험이 따르게 마련이야.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건 익숙한 길을 가는 것보다 당연히 위험하지. - 171.

 


베르베르 소설의 특징이자 장점은 문장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 <문명> 역시 무리 없이 책장이 넘어가는 걸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작가가 예상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전세계가 코로나로 인해 전염병과의 사투를 벌이는 중이어선지 <문명>을 읽으면서 자꾸만 우리 인간의 행태를 돌아보게 했다. 3의 눈까지는 아니어도 언젠가 인간처럼 말을 하는 동물이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보게 됐다. 알고보니 <문명>은 베르베르의 <고양이>에 이어지는 작품이었다. <고양이>를 읽지 않아도 소설을 이해하는데 크게 지장은 없지만 그래도 <고양이>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문명>을 거친 3부작으로 이어진다니 늦게라도 <고양이>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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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면 삼키고 쓰면 좀 뱉을게요 -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는 인생
김혜원 지음 / 유영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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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잠정중단 상태이지만 10년 넘게 독서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모임 초창기 때부터 함께 해온 멤버가 대부분이고 간간이 새 멤버가 참석하면 그때마다 우린 자기소개를 하곤 한다. 새 멤버가 낯선 모임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거치는 과정이지만 의문이 들곤 한다. 짧으면 수초, 길면 1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하고 자신을 소개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때론 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나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말하는 나실제 나는 같은 인물일까?


 

복불복 사탕 뽑기가 그려진 책 <달면 삼키고 쓰면 좀 뱉을게요>의 첫인상, 제목이 이렇게 발칙해도 돼?였다. ‘이게 바로 나야!’라고 당돌하게 외치는 전형적인 20대 청춘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나와는 접점이 없을 거라고 스킵하려던 차에 눈길에 꽂힌 부제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지는 인생’. 입에 넣었을 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건 누구나 당연히 하는 반응인데 그걸 남 눈치 보지 않고 가능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울 수 있나? 궁금했다. 저자가 이렇게 마음먹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결심한 이후로 일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일단 결심부터 했다. ‘아무거나로 인생을 낭비하지 않기, 한 번 사는 인생 아무거나 말고 좋아하는 것으로 채우며 살아봐야지 11

 


한동안 내가 읽었던 책이 주로 어렵고 난해한 내용이 많아서 책을 읽다보면 자연히 미간에 인상을 잔뜩 쓰곤 했는데 이 책은 일상의 이야기가 평이한 문체로 서술되어 있었다. 300쪽이 안되는 책을 두 시간 가량 읽으면서 어느새 자꾸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저자의 일상처럼 나 역시 아무거나를 자주 입에 올렸다. 점심 메뉴를 고를 때 고기만 아니면 뭐든, 쇼핑도 유행보다 무난한 스타일, 음악 역시 최신음악보다 듣기 편한 것... 주변 분위기를 보고, 그들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면서 도드라지지 않는 걸 선택하는 일상이 되풀이되었다. 그러다 저자는 낯선 곳을 여행하던 중에 문득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깨달았다면 난 지지리도 말 안 듣는 자식을 보면서 ~~구 소용없다를 읊조렸다.


 

며칠 전 류시화 시인이 올린 글이 떠오른다. 세상은 싫어하는 것으로 자신을 정의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것으로 자신을 정의하는 사람 둘로 나뉜다고. 우리의 에너지는 우리가 집중하는 곳으로 흐르기 마련이니 기왕이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며 살자는 이야기였다. -119쪽


 

나도 당연히 좋아하는 게 있는데. 하지만 내게 전업주부라는 위치가 엄마라는 명찰이, 나보다 가족을 우선시하도록 매뉴얼 되어 있었다. 저자는 일로 만난 사이가 어려웠다고 하는데 난 아이가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로 만난 학부모들이 불편했다. 그들의 자식과 내 자식이 엄연히 다른데 그들의 자식자랑에 마냥 박수쳐주기도 솔직히 속이 상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품는 내가 못나보였다.


 

애정을 기반으로 한 관계만을 맺어 오다가 이해관계로 얽힌 사람들을 처음 사귀게 되었을 때,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들과 잘 지내고는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124

 


여러분은 자신의 취미생활을 위해 돈을 어느 정도까지 쓸 수 있어요? 자신의 소득과 상관없이사람들에게 물은 적이 있다. 사실 그건 나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기도 했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지출. 미용실에서 머리를 매만지고 옷차림을 유행하는 스타일로 바꾸고 누구나 한두 개쯤 있다는 명품백을 장만하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건너뛰고 살았고 그게 내 스타일이라고 여겼던 것이 실은 초라한 나를 숨기려는 건 아니었을까.


 

좋아하는 사람에게 쓰는 돈을 아끼게 될 때 내가 가난해졌음을 실감한다.- 130.

 


이전과 달라진 나를 시도하는 건 솔직히 나조차 두렵다. 내 생각, 느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어떻게 될까? 쟤 갑자기 왜 저래? 뭐 잘못 먹었나, 그러겠지. 분명. 모험을 하기엔 늦은 나이 같지만 어쩌면 모험을 할 수 있는 마지막 나이가 아닐까 싶다. 입대를 앞두고 7번 국도를 걸었다는 청년처럼 거창하지 않지만 새로운 시도...해봐야겠다. 더 늦기 전에.

 


세상에는 내비게이션을 끄고 달려야만 닿을 수 있는 장소도 있다. -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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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장 365일 붓다와 마음공부 -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사는 지혜
이동연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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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종교가 불교라고 해도 되나? 내가 불교를 믿는 게 맞나? 불교신자 시늉만 내고 있었던 건 아닌가?


 

2021년 새해 첫날부터 매일 조금씩 필사를 하고 있다. 톨스토이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의 지성이라 불렸던 이들의 사상과 저작에서 수집한 글을 1년의 일기형식으로 편집해놓은 책인데 필사하면서 공감 가는 부분도 많았지만 종교(기독교)와 관련한 대목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동양사상이나 불교에서 같은 형식의 책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하루 365일 붓다와 마음공부>란 책의 출간이 반가웠다. 하지만 본문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멈칫했다. 여시아문(如是我聞) 때문에. 집에서 틈틈이 108배를 하고 부처님 오신 날에 사찰에 연등을 단다고 해서 모두 불교신자인 건 아니다. 반대로 108배를 하지 않고 연등을 달지 않는다고 해서 불교신자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그가 삶을 어떻게 대하는지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마음자리가 어떠한지가 중요하고 일상 속에서 자신 안의 부처를 찾아 깨달음을 얻는 것, 그것이 불교의 핵심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불교경전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여시아문(如是我聞)이 생소했기에 우선 찾아봤다. 여시는 이와 같이’, 아문은 내가 들었다의 뜻으로 들은 교법을 그대로 믿고 따라 기록한다, 붓다의 면전에서 직접 들은 가르침을 하나도 보태거나 빼지 않고 그대로 전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또한 모든 불교경전에는 첫머리에 여시아문일시불재(如是我聞一時佛在)라는 글귀가 나오는데 이는 붓다가 죽으면서 제자들에게 불경의 첫머리에 두도록 한 데 따른 것으로 경전의 내용은 붓다가 어느어느 장소에서 설교한 것으로 내가 확실히 들었으니 의심하지 말 것을 권유하는 뜻이라고 한다. 아하, 그제야 무릎을 쳤다. 그리고 집에 있는 경전의 첫머리를 찾아보니 정말 여시아문으로 시작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하루 365일 붓다와 마음공부>의 구성은 달력과 유사하다. 크게 열두 달로 나누어 각 달마다 주제를 정해서 그에 해당하는 붓다의 말씀과 해설을 매일 1장씩 수록해놓았다. <붓다와 마음공부>를 만난 건 5, 주제는 [견실한 삶을 위한 고찰]이었다. 그 중에서 527, ‘나쁜 경험이 더욱 발전의 원천이 될 수 있다’‘뜻을 정해 해탈한 사람은 악마의 수렁에서도 영원히 벗어난다라는 글에 우리의 경험이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전해준다. 어떤 경험이든 그것을 자신의 삶을 발전하는 근거로 만들 수 있다면 좋은 경험, 나쁜 경험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대목에서 결국 모든 일은 나 자신의 마음자리와 성찰에 있다는 걸 또한번 깨닫게 되었다.


 

앞부분엔 어떤 내용이 있을까 궁금해서 틈틈이 살펴봤다. 1월은 [삶의 주인으로 살라]는 주제로 가장 먼저 행복과 불행에 대해 이야기한다. ‘행복과 불행은 긴 시간 속에서 순간일 뿐이다며 행복과 불행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지 묻는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지 선택할 수 있어서 나치 수용소 같은 극한 상황 속에서도 내면의 자유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2[평탄한 삶을 위해]에서 듣기경청에 대해 말하는데 듣기는 귀로 하지만 경청은 마음으로 한다면서 듣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철학사에 있어 중요한 궤적을 남긴 철학자의 책을 읽다 보면 종종 좌절을 겪곤 한다. 내가 분명 책을 집중해서읽고 있건만 도무지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조차 없는,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 같을 때, 읽는 걸 포기하고 싶어진다. 내가 무지하다는 건 알았지만 그럼에도 나의 무지를 확인하는 순간을 맞닥뜨리면 가장 먼저 나 자신에게 실망하게 된다. 그러면 안되겠지만 자존감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하루 365일 붓다와 마음공부>는 어느 한 구절도 복잡하거나 난해하지 않았다. 읽으면 쉽게 이해되는 글, 문득 생각나 다시 읽으면 그날의 상황과 마음에 따라 의미가 더 깊어지는 글이었다. 매일, 한 꼭지씩, 천천히 읽으면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책이다. 다만 살짝, 아쉬운 점을 하나 꼽자면 본문의 한자가 너무 작다. 필사를 하려면 작은 한자가 보이지 않아 사진으로 찍어 확대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어쩌면 이것도 내가 한자에 무지한 때문일수도 있겠다. 삶이 불안하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짙은 안개속이라고 생각된다면 조금씩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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