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의 우리 사람
그레이엄 그린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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빰 빰 빠바 빰 빰 빰 빠바 빰 빰 빠바 따라란~ 따라란~ ♩♩♪

가족들과 [미션 임파서블]을 봤다. 디지털 정보를 모두 통제하는 인공지능 엔티티로 인해 사람들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급기야 엔티티가 인류 전체를 핵전쟁으로 몰아넣는 절체절명의 위기, ‘톰 아저씨에단 헌트와 팀원들은 목숨을 걸고 불가능한 미션으로 뛰어든다. 첩보액션물은 이래야지, 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영화는 스릴과 박진감이 넘쳤다. 하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고난도의 액션 장면을 소화하는 주인공을 보니 어쩐지 짠하기도 했다.


 

<아바나의 우리 사람>을 읽는 느낌이 꼭 그랬다. ‘쿠바 혁명 직전 혼란스러운 도시에서 벌어지는 비밀 요원의 활약상’, ‘스파이 스릴러란 소개문구를 보고 손에 땀을 쥐는 스릴과 박진감 넘치는 액션이 가득할거라 여겼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첩보 스릴러인데도 웃기고 거기다 유머가 있다고 해야 할까? 비밀요원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측은하다 못해 짠내가 났다. 그런데 여기서 이해할 수 없는 건 어찌 보면 부조화이면서 미스 매칭 같은 이 조합이 사람들을 더 끌어당긴다는 점이다. 어쩌나, 이 사람?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까? 조마조마 걱정이 되면서도 궁금하게 만든다.


 

소설의 주인공은 영국인 제임스 워몰드. 이혼남인 그는 쿠바의 아바나에서 진공청소기를 판매하면서 딸 밀리를 혼자 키우고 있다. 그의 유일한 낙이라면 독일인 의사 하셀바허와 바에서 술 한 잔을 즐기는 것이었다. 십 대의 딸을 키우는 어려움과 서로의 일상을 농담처럼 주고 받으면서. 그런 어느 날 워몰드는 자신의 가게를 방문한 낯선 인물을 경계하듯 긴장하게 된다. 옷차림부터 음성, 말투와 사소한 행동까지 모두 예사롭지 않았다. “영국인이시죠?”라며 대뜸 물어본 남자는 워몰드와 마치 동문서답 같은 대화를 주고 받더니 다시 만날 것이라며 가버렸다. 혹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사람은 아닌지 그 남자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가질법하지만 그에겐 더 큰 걱정거리가 있었다. 바로 딸 밀리. 외모를 화려하게 치장하는 건 십대라서 그렇다고 해도 학교에서의 말썽으로 그가 불려가기도 했는데.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밀리가 돈을 물 쓰듯 하는 거였다. 급기야 밀리가 말 한 마리를 덜컥 구입하면서 워몰드의 걱정은 더욱 깊어져 갔다.


 

그런 차에 우연히 들른 바에서 워몰드는 지난번 가게를 방문한 신사를 만나는데 그의 행동이 심상치 않았다. 대뜸 워몰드를 화장실로 데려가더니 물을 틀어놓고선 알 수 없는 애길 늘어놓기 시작했다. 자신은 영국 정보국 출신인데 우리 사람이 필요하다고. 그러면서 자신을 도와 첩보활동을 해주는 대가로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호손의 말에 워몰드는 그의 제안을 수락하는데...


 

애국심 충만한 영국인이니까요. 당신은 여기서 오랫동안 살았고, 유럽 상인회의 존경받는 회원이죠. 우리는 아바나에 우리 사람이 필요합니다. 잠수함은 연료를 필요합니다. 독재자들은 끼리끼리 뭉칩니다. 커다란 존재들이 작은 존재들을 끌어들이지요.” -48


 

20세기 중반, 냉전이 극심한 때였다. 당시 서구가 정보를 둘러싸고 암암리에 치열한 첩보전쟁을 펼칠 때를 다룬 소설 <아바나의 우리 사람>. 여느 첩보스릴러소설과는 다른 어딘가 살짝 2% 부족한 인물들과 예상과는 다른 스토리 전개, 허를 찔린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흥미로웠다. 저자인 그레이엄 그린은 이 작품이 처음인데 스릴러 소설의 대가라도 한다. 그의 다른 작품도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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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 과학편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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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프로그램 제목을 보고 무릎을 쳤다. 벌거벗은 임금님도 아니고 역사? 어리석은 임금님이 재봉사의 꼬임에 넘어가 알몸으로 거리를 행진하는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재밌었는데 이번엔 역사를 벗긴다니. 발상이 새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의 변천 과정과 기록이 역사인데 그것을 벗긴다? 누구도 함부로 좌지우지할 수 없는 것이 역사라고 여겼는데 참신한 접근이 아닌가. 더구나 세계사! 학창시절 이과를 선택하면서 세계사를 공부한 시간이 적었던 나로선 반가운 소식이었다. 안타까운 점은 방송을 매번 챙겨보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어쩌다 재방송을 보긴 했지만 궁금했던 부분을 놓쳤다는 아쉬움은 컸는데. 방송으로 다뤄졌던 부분이 책으로 묶여 출간되었다.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벌거벗은 세계사>는 지금까지 몇 권을 책을 출간했다. 이번엔 과학편. ‘벗겼다, 세상의 위대한 발견!’이란 부제만으로도 흥분이 되었다. 과학사의 위대한 발견을 도대체 어떻게 벗긴다는 걸까.

<벌거벗은 세계사 과학편>에는 인류사에 있어 중요한 과학적 발견과 사건 열 가지를 소개해놓았다. ‘벌거벗은 공룡의 비밀’ ‘벌거벗은 화산 폭발’ ‘벌거벗은 세균 전쟁’ ‘벌거벗은 갈릴레오 갈릴레이’ ‘벌거벗은 찰스 다윈과 우생학’ ‘벌거벗은 알프레드 노벨’ ‘벌거벗은 토머스 에디슨’ ‘벌거벗은 바다 오염’ ‘벌거벗은 마리 퀴리’ ‘벌거벗은 로버트 오펜하이머’. 소제목만으로 어떤 내용일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와 반대로 도대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이를테면 가장 먼저 소개된 ‘벌거벗은 공룡의 비밀’편. 인류가 지구에 등장하기 이전부터 이미 지구를 지배했던 거대한 육상동물 공룡. 하지만 갑작스럽게 지구에서 사라지는 바람에 우리는 화석을 통해서만 그들을 접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바로 그 공룡의 미스터리를 벗기겠다고 한다. 공룡 화석이 처음 발견된 이야기부터 무서울 정도로 큰 도마뱀이란 의미의 ‘공룡’이란 이름붙이기를 시작으로 공룡연구에 ‘뼈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는 것, 공룡계의 최강자 ‘티라노사우르스’ 화석이 등장까지 일련의 과정들을 전하고 있다. 눈길을 끌었던 대목은 바로 ‘치키노사우르스 프로젝트’였다. 육식공룡이 새의 조상이니까 반대로 새를 통해 공룡의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란 발상이다. 그 첫 번째로 ‘공룡의 얼굴을 가진 닭’ 실험을 했는데 골격만 보면 상당히 유사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실험이 성공한다면 ‘치키노사우르스’는 어떤 모습일까. 본문에 수록된 상상도에 일단 빵 터졌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우리에게 노벨은 또다른 의미로 다가왔는데 <벌거벗은 세계사 과학편>으로 만난 노벨은 어쩐지 안타깝다. 노벨은 한마디로 ‘인류에게 발전과 죽음을 동시에 선사한 인물’이었다. 화약 전문가이자 천재로 통했지만 가장 위험하고 강력한 폭발물인 다이너마이트 발명자이기도 하다. 책에는 노벨상의 창시자인 노벨의 어린 시절부터 그가 어떻게 희대의 발명품이란 다이너마이트를 만들게 되었는지 이야기한다. 중년의 나이에 막대한 부를 쌓은 성공한 삶을 꾸려갈 것 같지만 노벨에게 ‘사랑’은 허락되지 않았던 걸까. 숨 쉴 틈 없이 바쁜 그에게 다가온 여인은 노벨을 금전적 도움을 주는 인물로 여겼던 듯하다. 그로 인해 평생 독신의 삶을 살아간다.

과학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지금 우리가 과학 법칙으로 알고 있는 것들도 새로운 시도와 가설, 실험을 통해 확인되면 이전의 것은 즉시 폐기된다. 명왕성이 태양계에서 제외된 것처럼. 이것은 과학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에게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고정관념을 경계하라는 것. 언제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지금까지 많은 책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끼게 됐다. 새롭게 알게 된 것들,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이번 기회에 다시 돌아보고 짚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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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윤석열 탄핵 사건 선고 결정문 읽기와 필사 -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 파면 결정문 전문 수록
대한민국.헌법재판소 지음 / 시원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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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을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드는 시각. 언제나처럼 컴퓨터를 켰다. 포털 메인에 올라온 한 줄의 속보. ‘대통령 긴급 국무회의’. 어쩐지 쎄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불길한 기분. 곧이어 대통령긴급대국민담화가 발표됐다.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몇 개의 카톡방에서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이거 진짜냐”, “AI 조작영상 아니냐”, “21세기에 무슨 비상계엄이냐”.


 

잠시후 실시간 방송영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국회 상공위에 헬기가 날고 있었다. 헬기에서 내린 완전무장한 군인들. 국회로 시민들이 모이고 있었다. 계엄해제 결의를 위해 국회의원들도 달려가고 있었다. 국회를 둘러싸고 들어가려는 국회의원과 이를 막는 경찰들의 실랑이가 이어졌다. 보다 못한 시민들이 나섰다. 국회의원들이 국회 담을 넘을 수 있도록 도왔다. 10년 같은 1분이 지나고. 자정을 훌쩍 넘어 124일 새벽1시 재석 190인 중 찬성 190인으로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비상계엄해제 발표는 더뎠다. 그보다 세 시간이 지나서야 대국민담화가 발표되었다. 뜬눈으로 밤을 샜다.


 

그날부터였다. 알 수 없는 불안과 우울함이 계속됐다.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시민들의 집회가 전국 곳곳에서 이어졌고 1214일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다. 사람들은 환호했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내가 두 발을 딛고 살고 있는 이 땅이 정말 법치국가인지 의심케하는 일이 연이어 벌어졌다. ‘비상계엄’, ‘내란’, ‘독재’. 지난 20세기를 끝으로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 여겼던 일들이 반복되었다. 어떻게 될 것인가. 혼란을 거듭하다 122일 만인 202544,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되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대행의 발표에 사람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그동안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되는 재판을 뉴스나 동영상으로 지켜봤지만 솔직히 불안했다. 법정에서 오가는 용어의 의미를 알지 못했고 그것이 탄핵사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어 불안하고 초조했다. 다행히 비상계엄을 통해 내란을 꾀한 대통령이 파면되었고 그순간 역사적인 탄핵선고 결정문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 윤석열 탄핵 사건 선고 결정문 읽기와 필사>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 파면 결정문의 전문이 수록되어 있다. 왼쪽 페이지에는 결정문의 원문이, 오른쪽 페이지에는 독자가 직접 필사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본문 내용은 탄핵사건의 발단이 어떠한지부터 짚고 있다. 탄핵의 요건은 무엇이고 적법하게 이루어졌는지, 계엄선포를 둘러싼 청구인과 피청구인의 대립된 부분, 국회에 군경을 투입한 것과 중앙선관위를 압수수색한 것의 문제는 무엇인지, 뿐만아니라 법조인의 위치를 확인하려고 한 의도는 무엇인며 이 모든 걸 종합하여 피청구인을 파면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법 위반이 중대한지 여부를 따져보는 등 재판에서 다루었던 부분이 수록되었다.



 



뉴스나 영상을 통해 이미 접했던 법조문도 있었지만 책의 형태로, 거기다 직접 필사하며 마주한 법조문은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한 글자라도 틀리지 않기 위해 몇 번이나 거듭확인하며 한 자 한자 적어나가는 선고결정문’, 오늘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가 꼭 한번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결론

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헌법 제1조 제1항).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율적 이성을 신뢰하고 모든 정치적 견해들이 각각 상대적 진리성과 합리성을 지닌다고 전제하는 다원적 세계관에 입각한 것으로서, 대등한 동료시민들 간의 존중과 박애에 기초한 자율적이고 협력적인 공적 의사결정을 본질로 한다(헌재 2014. 12. 19.

2013헌다1 참조).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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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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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엔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정원을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그림의 윤곽이 사람의 형체란 걸 알 수 있었다. 측면 15도로 향한 얼굴의 형체. 어딘가 낯이 익었다. 보자마자 누군지 단박에 알만큼 친숙한 인물은 아니고 곰곰이 생각하니 그제야 떠오르는 얼굴. 바로 폴 오스터였다.


 

폴 오스터의 소설 <바움가트너>는 정원사란 의미의 바움가트너란 성을 가진 노교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0년 전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잃은 은퇴를 앞둔 노교수. 이것만으로도 주인공인 노교수 바움가트너의 일상이 어떨지 떠올랐다. 오랫동안 함께 삶을 꾸려왔기에 서로의 존재는 마치 공기처럼 사소한 일상의 곳곳에 자연스레 녹아든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어느 한쪽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면? 배우자의 사망은 우리가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가장 극심한 스트레스라고 한다. 배우자를 잃은 슬픔이 스트레스 수준을 넘어 염증이나 심하게는 심장 질환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될까. 어떤 일이 일어날까.

 

10년이란 세월은 쓰나미 같던 슬픔을 어느 정도는 잠재울 수 있겠지만 완전히 치유하진 못한다. 언제, 어떤 사소한 사건을 계기로 무의식 깊숙하게 가라앉은 상실은 순식간에 수면 위로 떠오르고 말 것이다. 바움가트너에게도 그랬다. 일상의 루틴이 아주 사소한 일로 어긋나는 것이 시작이었다. 아차 하다가 냄비를 태우고 손에 화상을 입는다. 가사도우미(플로렌스 부인)의 딸 로지타에게서 플로렌스 씨가 일하다가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흥분한 로지타를 간신히 안심시키지만 실은 그도 이미 심리적으로 동요가 된 상태. 어두운 지하실 층계를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뎌 그만 바닥으로 구르고 만다.


 

저게 시작이었다. 그는 혼잣말을 한다. 오늘의 첫 사고, 그로 인해 다른 모든 사고가 생겨나는 바람에 끝없는 사고로 얼룩진 하루가 되어 버렸지만..-31


 

오래전 중고가게에서 고작 10센트 주고 구입한 냄비를 시커멓게 태운 일은 바움가트너에게 잊고 있던 아내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아내를 처음 만난 그 날을. 거기다 10년 만에 들어간 아내의 서재에서 그는 그녀의 발표하지 않은 글을 발견하게 된다. 또 팔이나 다리가 절단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팔다리에서 환지통이라는 통증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된다. 환지통에 호기심이 생긴 바움가트너는 관련 서적을 찾아 읽기 시작한다. 마치 그에게 환지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산다는 건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고통을 두려워하며 사는 것은 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68

 


20244월 폴 오스터는 세상을 떠났다. <바움가트너>는 폴 오스터의 1주기에 맞춰 출간된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삶과 죽음, 기억과 정체성, 상실과 고통을 심오한 철학처럼 풀어놓았는다. <빵 굽는 타자기>, <폐허의 도시>, <달의 궁전>, <뉴욕 3부작> 등 그의 작품 대부분을 갖고 있으면서도 지금껏 만나지 못한 작가 폴 오스터. 그와의 첫 만남이 마지막 작품이라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바움가트너가 상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억을 따라 과거로 향하듯 나도 그렇게 해볼까. 그의 작품을 거꾸로 읽어보자. 의미있는 책읽기가 되지 않을까.


 

고개를 들고 눈을 가늘게 뜬 채 허공을 보는데 새 한 마리가 머리 위를 지나간다. 저렇게 하얀 구름이라니. (중략) 지구에는 불이 붙었고, 세상은 타오르고 있는데, 그래도 지금 당장은 이와 같은 날이 있으니 즐길 수 있을 때 이런 날을 즐기는 게 낫다. 이게 그가 보게 될 마지막 좋은 날일지 누가 알겠는가.-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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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5-11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때 폴 오스터 정말 좋아해서 그의 책을 다 찾아서 읽은 적도 있네요. 그리고 달의 궁전 이후 좀 시들해졌는데 마지막 작품이라고 해서 이 책은 읽어야겠다하고 있어요. 몽당연필님 리뷰 보니까 역시 읽어야겠네요.
 
정선 목민심서 (다산의 지혜 에디션) 다산의 지혜 에디션
정약용 지음, 다산연구회 편역 / 창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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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명석한 두뇌에 많이 배워 높은 자리에까지 오른 양반들이 하는 행동이 왜 이 모양인가.' 의문을 넘어 자괴감이 든다. 흔히 말하는 IQ, 누구보다 똑똑한 머리에 최고의 대학을 나와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들에게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자신들은 누구보다 월등하다는 우월감. '엘리트'로서의 권위는 인정받아 마땅하다는 자신감. 더 나아가 우월한 자신들이 권력을 휘두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오만함.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우리는 언제부터 단추를 잘못 꿰고 있었던 걸까.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 대표실학자로 손꼽히는 정약용의 <정선 목민심서>. 지방의 수령이 백성을 올바르게 다스리기 위해 반드시 해야할 지침들을 수록해 놓았다. 학창시절 역사수업시간에 계속 강조했던 대목이라 '정약용'와 '목민심서'를 짝짓는 건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그 속에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알지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는 봐야 한다. 그때와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인데 18세기, 200년 전 저술된 책을 구태여 읽을 필요가 있을까 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잘못된 생각이었다. 


​​


태어나면 죽고, 기쁜 일이 있으면 슬픈 일도 있는, 끊임없이 욕망에 사로잡히는 인간의 삶의 방식이 18세기와 지금이 다르지 않듯이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었다. 바로 백성을 대하는 태도였다. 


벼슬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두려워할 외(畏)’ 한 글자이다. 

의(義)를 두려워하고 법을 두려워하고 상관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두려워하여 마음에 언제나 두려움을 간직하면, 혹시라도 방자하게 되지 않을 것이니, 이로써 허물을 적게 할 수 있다. <정선 목민심서> 52~53쪽



십여 년 전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었다. 신유사옥으로 귀양살이에 올랐던 정약용이 두 아들과 가족,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가 수록된 책이었다. 고독하고 외로운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줄곧 두 아들이 훌륭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는데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망한 집안의 자손이니 행실을 바르게 하라는 것에서부터 삐딱하게 행동하지(눈알도 함부로 굴리지) 말 것이며 밤낮으로 독서에 매진하라는 등 마치 곁에서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시시콜콜하게 짚어놓았다. 



<정선 목민심서>는 한마디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의 지방수령 버전이라고 할까? 수령이 부임지로 떠나는 그 순간부터 도착해서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과 과업에 대해 짚고 있다. 첫 부임지로 가는 행장을 꾸릴 때 의복과 안장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청렴함을 유지해야 하는지, 백성에게 대하는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수령으로서 임금의 명령인 법을 행할 때는 어떠해야 하는지 등 아주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 일일이, 시시콜콜하게 전하고 있다. 



​"정약용 이 양반, 은근 잔소리꾼이네?" 


유배지에서 지내는 양반이 수령에게 이래라 저래라 너무 하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 그의 심정을 생각하니 이해가 됐다. 인간을 본디 선하다고 여겼던 정약용, 그는 '백성은 하늘의 적자이고 임금의 백성이고 나라의 근간'으로 여겼다. 해서 자신이 수령으로서 '목민(牧民)', 백성을 위하고 보살피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지만 갇힌 몸이라 행동에 제약이 따르니 '심서(心書)'라고 책제목을 붙인 걸 떠올랐다. 그에겐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마을 수령들이 마치 자신의 아들처럼 여겨졌던 건 아닐까. 그의 간절한 바람이 생각하니 가슴 한켠이 저릿했다. 



상사의 명령이 공법에 어긋나고 민생에 해를 끼치는 것이면 굽히지 말고 꿋꿋이 자신을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 109쪽


백성이 곤궁하면 자식을 낳아도 잘 거두지 못하니, 깨우치고 타일러서 우리 자녀들을 보전케 해야 할 것이다. 141쪽


노동력을 부담지우는 것은 신중히 하되 되도록 줄여야 한다. 백성들에게 이로운 일이 아니면 해서는 안 된다. 229쪽



<정선 목민심서>를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만인에게 공평하다는 법이 유독 한 사람만의 이득과 권력을 이롭게 할 때, 백성보다 권문세가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것에 급급할 때, 정약용 그는 뭐라고 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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