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 어쩌다 자본주의가 여기까지 온 걸까?
데이비드 하비 지음, 강윤혜 옮김 / 선순환 / 2021년 10월
평점 :
독서모임에서 고병권의 <자본>을 읽고 있다. 마르크스의 <자본> 1권을 고병권이 이해하기 쉽게 총 12권으로 쉽게 풀이해놓은 책인데 현재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이공계 출신인데다 인문학이나 경제에 관한 지식과 상식이 부족해서인지 <자본>을 제대로 이해하는 걸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자본>의 해설서를 진도에 맞춰서 함께 보고 있는데 커리큘럼에 해당하는 책만 읽을 때와는 달리 시간이나 품은 많이 들지만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학창 시절 자습서나 참고서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간혹 어떤 이는 내게 꼭 그렇게까지 해서 <자본>을 읽어야 하냐고 묻곤 한다. <자본>을 읽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2000년 새해를 맞이해서 영국 BBC방송에서 인터넷으로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했다. “지난 천 년 동안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라고 질문했는데 1위를 차지한 사람이 바로 카를 마르크스였다.
<자본>이란 제목만 보면 마르크스의 영향력은 경제학에 한정되어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자본>을 보면 책이 저술된 19세기는 물론이고 이전 몇 세기 전의 영국이나 유럽의 역사, 경제, 시대적 상황이 맞물려 있는데 그렇게 복잡하게 얽힌 관계를 추적해서 쓴 책이 바로 <자본>이다. 때문에 마르크스는 경제학은 물론 현대 사상 전반에 걸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을뿐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데 있어 유용한 틀로 재조명되고 있다.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를 <자본>의 참고서 삼아 보고 있는데 최근 그의 신간이 출간되었다. ‘어쩌다 자본주의가 여기까지 온 걸까’라는 부제의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이다. 눈여겨보고 있는 저자의 신간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제목을 보고 의문이 생겼다. ‘자본’과 ‘자본주의’는 어떻게 다를까 하는 것이다. 지금 읽고 있는 <자본>과도 관계가 있는 게 분명했다.
책은 2019년 가을, 산티아고를 비롯한 세계의 고질적인 문제의 원인을 찾아가는 ‘지구촌 곳곳이 불안하다’를 시작으로 열아홉 개의 글이 수록되어 있는데 저자인 데이비드 하비가 2018년부터 격주로 진행한 팟캐스트와 온라인 강의를 바탕으로 집필되었다. 대략 20쪽 내외의 분량으로 이뤄진 글은 저자가 직접 강의하는 것처럼 구어체로 서술되어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노동운동과 시위가 거세게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들 시위의 공통된 맥락을 보자면, 현 경제 시스템이 대중들에게 보장했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 또 정치 시스템이 비정상적으로 초부유층의 편에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는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 12쪽.
저자의 해석이 낯익지 않은가? 해당 본문의 어디에도 우리나라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석한 내용이 우리나라의 상황과 ‘똑같다’고 할 만큼 절묘하게 닮아있다. 열심히 일하면 먹고 사는데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누구나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일을 하면 할수록 노동자들의 삶이 더욱 팍팍해지는 이유가 바로 경제적 원인뿐만 아니라 정치에도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나라의 이름만 다를 뿐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는 어디든 비슷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19세기에 쓰여진 <자본>이 21세기인 오늘날에도 통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자본>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의 과제는 현 사회에 잠재되어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잘 살펴서 그 대안이 될 수 있는, 보다 사회주의적인 시대로 평화롭게 전환할 수 있도록 모색하는 것입니다. 혁명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기나긴 여정입니다. - 28쪽.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의 대통령 후보가 결정되면서 그들의 정책과 공약이 하나씩 거론되고 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선거에 나온 정치인들의 정책이나 공약을 살펴보면 용어나 단어의 표현만 다를 뿐 여야가 거의 동일한 공약이 있는가 하면 완전 정반대를 추구하는 것이 있다. 이를테면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정부 주도로 할 것인가, 아니면 정부는 최대한 뒤로 물러나고 시장에 맡겨둘 것인가를 두고 서로 치열하게 논쟁을 벌인다.
저자도 이 부분에 주목해서 다루고 있다. 자본가가 막강한 힘을 갖게 되면 그만큼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가 심해지고 그것은 고스란히 자본가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상황이 될 거라면서 신자유주의의 모순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본가가 자신의 이윤을 위해 노동자의 임금을 계속 줄이면 그것은 결국 시장이 줄어드는 악순환을 불러오게 된다고. 그 해결책 중의 하나가 바로 신용카드였다고 한다. 부족한 임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신용카드를 쓰다 보면 점점 더 많이 빚을 지게 되는데 그것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말이다. 소름끼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이 집을 압류당하도록 하는 것이 자본가의 입장에서는 매우 유리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압류당한 주택이 시장에 엄청나게 나오면, 해지펀드와 사모펀드 등이 헐값으로 사들여 엄청난 이익을 낼 수 있었죠. 이런 식으로 주택시장이 되살아났습니다. - 51쪽.
‘자유’가 좋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사소한 것까지 주인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노예보다 ‘자유’가 백번 좋으니까. 그래서 ‘자유’란 말이 들어가면 모두 옳고 정의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정치인들이 입버릇처럼 언급하는 말 ‘신자유주의’는 어떤가. ‘신자유주의’는 과연 사회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과 대중에게 이로운 것일까?
‘신자유주의란 언제나 상류층과 자본가를 위한 것이며,...상류층의 재산과 권력을 유지하고 보강하는 것이며,..부자는 결국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계속 그 상태로 가난해지도록 작동하는 것이 신자유주의라면?...신자유주의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곳은 어디나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죠. -77~78쪽.
자본주의는 어느 꽃에 앉아야 자본이 제일 많이 증식되는지 고민하면서 끊임없이 움직이죠. 이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우리 시대의 자본주의 구조와 경제, 정치권력을 다시금 영토화시키고 있는 것은 돈의 형태를 띤 자본입니다. - 144쪽
각각의 글마다 언급하고 있는 상황이나 저자의 분석은 실로 놀라운 수준이다. 어느 것 하나 우리와 무관하지 않은 대목이 없었다. 한국전쟁 후 폐허가 된 우리나라를 미국이 경제적으로 지원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성장을 위해 우리가 어떤 희생을 치러야 했는지 이 모든 것에는 철두철미하게 힘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지금은 비상 상황입니다.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꾸고 정치경제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 모든 것의 배경에는 근본적으로 자본축적이라는 커다란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요. -241쪽
노동자는 기계의 부속품이거나 기계를 지키는 존재로 전락했습니다....한때 노동자들의 기능이 필요했던 자본가들은 이제 이런 속박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런 기능은 이제 기계 속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기술을 통해 생산된 지식은 기계로 흘러 들어가며, 기계는 자본주의 역동성의 ’영혼‘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서술하고 있는 당시의 상황입니다. - 321쪽
강의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글이어서 내용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눈으로 훑고 지나는 식으로 읽어서는 책의 핵심을 놓치기 쉽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와 무관한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의 일상은 정치와 때어놓을 수 없다.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가길 원한다면 매일 조금씩 규칙적으로 꼭꼭 씹어서 읽어나가길 권하고 싶다.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책이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 책을 펼쳤을 때 중앙의 여백이 지나치게 좁게 제본이 되어있다. 해서 책을 읽을 때나 밑줄을 긋거나 할 때 책 중앙 부분을 힘줘 눌러주어야 하는 불편한 점이 있다. 책의 가로폭을 조금 넓이면 집중도나 가독성이 훨씬 나아지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