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향연 2015.봄 Vol.3 - 3호
도서출판 숲 편집부 엮음 / 도서출판 숲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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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발간을 내내 기다렸습니다. 이번엔 오뒷세이아에 대한 탐색이 돋보입니다. 번역자 천병희의 인터뷰도 인상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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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치유한다 - 신경증 극복과 인간다운 성장
카렌 호나이 지음, 서상복 옮김 / 연암서가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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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증이란 뭔가. 책을 읽다 말고 검색부터 했다. 어렴풋하게가 아닌 정확한 의미를 알고 싶었다. ‘신경증이란 내적인 심리적 갈등이 있거나 외부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다루는 과정에서 무리가 생겨 심리적 긴장이나 증상이 일어나는 인격 변화’라고 한다. 여러 가지 원인으로 나타나는 불안 증상 자체와 불안을 다루기 위해 방어기제가 동원되고 그런 증상들을 유발하는 것이 ‘신경증’으로 불안과 불면증, 두통, 원인을 알 수 없는 위장 장애, 화병과 같은 것들이 모두 신경증의 증상이다. 문제는 이런 ‘신경증’이 현대에 와서는 조현병(정신분열증) 같은 정신증보다 비교적 흔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신경증이 어떻게 해서 나타나고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신경증을 극복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삶의 질’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나를 치유한다>의 부제가 ‘신경증 극복과 인간다운 성장’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신경증은 현대인들이 대부분 앓고 있는 정신 질환이다. 우리가 일평생 감기를 앓고 낫기를 반복하듯이, 신경계를 기반으로 감각하고 욕구하고 생각하는 인간은 모두 가볍거나 심각하게, 길거나 짧게 신경증을 앓고 낫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23쪽

 

카렌 호나이. 정신분석이나 심리학 서적을 읽을 때 간혹 만나게 되는 이름인데 독일 출생의 정신분석학자이다. ‘정신분석’하면 바로 떠올리게 되는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았지만 여러 면에서 그와는 다른 이론을 주장한다. 정신분석가의 역할에 있어서도 호나이는 프로이트와는 달리 “환자가 자신의 본능을 지배하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경증 경향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을 만큼 불안을 덜어주는 것”이라며 환자가 보다 능동적으로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내가 나를 치유한다>에서는 신경증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신경증의 일반적인 특징을 설명하면서 신경증에 걸리는 사람의 성격유형과 치유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모두 15개의 장으로 나누어 풀어내고 있다. 성장과정에서의 오류나 올바르지 않은 인간관계는 불안과 내면의 갈등을 불러오고 그로 인해 신경증에 걸리는 과정을 하나하나 설명하는데 두 아이를 기르는 부모여서인지 아이, 양육에 관한 대목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이를테면 아이는 어떤 조건에서 성장하든 정신에 특별한 결함이 없다면 ‘진실한 나’, 자아를 계발해서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고 인생의 목표를 찾는 자신이 본래 지닌 잠재력을 발현한다고 한다. 하지만 성장환경에서 만나는 이들이 갖고 있는 신경증에 따라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데 이럴 때 아이는 심각한 불안감과 막연한 걱정 ‘근본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자신의 진실한 감정을 자발적으로 드러내지 못해서 남들과 맛서 사는 방법을 택하거나 때로는 파괴력이 강한 복수의 충동에 휩싸이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인물로 히틀러를 꼽는다. 어린 시절의 굴욕과 유년기 이후의 신경증으로 인해 전 생애동안 대중을 지배하고 승리를 쟁취하려는 미친 욕망에 사로잡혀 살았던 히틀러. 저자는 그와 유사한 성향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일상 속에서 빈번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무작정 영광을 좇는 충동이 강박에 사로잡히게 하고 그것이 좌정될 경우 공황이나 우울, 절망, 현실 도피와 같은 반응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신경증 환자는 아주 많이 알지만 만족할 줄 모르고 모든 것을 알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파우스트’라고 할만큼 완벽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절실하게 필요한 자신감과 자존감을 얻지는 못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저자는 입센의 <페르 귄트>를 통해 설명한다. 현실이 아닌 이상과 꿈만을 좇는 ‘페르 귄트처럼 몽상의 세계에 사는 한, 당신은 자신에게 진실할 수 없다. 몽상계와 진실한 나를 잇는 다리는 없다’고 꼬집는다. 뿐만 아니라 신경증 환자는 자존심과 자부심에 상처를 입는 상황을 피하려고 무작정 회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삶을 제한하고 속박하다보면 진실한 나와는 더욱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경증은 급성 장애로 진행되기도 하고 정지 상태로 꽤 오래 머물기도 하지만, 본래 급성 장애도 아니고 정지 상태도 아니다. 그것은 자체의 운동량에 따라 변화를 겪는 과정으로 자체의 무정한 논리에 따라 가차 없이 인격의 넓은 영역을 점점 집어삼킨다. 또 갈등을 야기할뿐더러 갈등을 해결해야 할 필요를 낳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개인이 찾아낸 해결책은 인위적인 수단이므로 다시 새로운 해결책을 요구하는 갈등이 자꾸 생겨나기 마련이다. 개인은 새로운 해결책 덕분에 쉽고 평탄하게 기능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경증은 개인을 진실한 나에게서 멀리 아주 멀리 떨어뜨려서 인격이 드러나는 개인의 성장이 위태로워지는 과정이다. -459쪽

 

어려운 글은 아니다. 문장은 평이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신경증에 시달리고 있고 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기에 예를 들어 쉽게 풀어내고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정신분석을 바탕으로 둔 것이기에 쉽지 않았다. 특히 ‘신경증’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프로이트를 바탕으로 해서 그에 다른 이론을 풀어놓은 거라 기본적으로 프로이트의 이론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으면 이해하는데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다. 본문 곳곳에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조지 오웰의 <1984>, 스탕달의 <적과 흑>, 허먼 멜빌의 <모비 딕>처럼 익숙한 문학작품을 언급하고 있어서 반가웠고 ‘신경증’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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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덕끄덕 세계사 1 : 고대 제국의 흥망 - 술술 읽히고 착착 정리되는 끄덕끄덕 세계사 1
서경석 지음 / 아카넷주니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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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이수제라고 아세요? 학생들이 많은 과목을 공부하는데서 오는 학습부담을 줄이기 위해 특정과목을 일정기간에 몰아서 학습하는 건데요. 역사(세계사), 사회처럼 학습 분량이 만만치 않은 과목까지 집중이수제를 하니까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은 것 같아요. 학교에서의 수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데 시험범위는 많다보니 자연히 암기할 것도 많아지죠. 그러다보니 해당 과목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더군요. 사회와 역사에 대한 기본임과 동시에 커다란 틀을 잡을 수 있는 기회인데 의미 없이 지나치는 것 같아 엄마인 저로선 안타깝더군요.

 

얼마전 출간된 <끄덕끄덕 세계사>에 관심이 갔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아이가 역사나 세계사를 ‘암기하는 과목’이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류의 생활,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아나가는 과정, 그 재미를 느낄 수 있었으면 했거든요. 역사를 전공하고 학생들을 지도해서인지 이 책의 저자도 역사에 대한 인식, 가치관을 강조하고 있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역사란 무엇이고 왜 역사를 배워야 하는지 조목조목 말하는데요. 역사란 인류가 걸어온 발자취 속의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내기 때문에 ‘역사는 이야기이자 문학’이라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1부 문명의 탄생’ ‘2부 지역을 통일한 제국의 등장’으로 인류의 문명이 어떻게 탄생해서 어떤 지역으로 전파되었고 그것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살펴보는데요. 최초의 인류를 발굴하는 것으로 출발해서 오랫동안 침팬지를 관찰한 제인 구달의 연구를 인간이 생태계의 정점에 설 수 있었던 이유를 찾아봅니다. 뿐만 아니라 인류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전환점이라는 농경의 시작과 불의 사용이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하나하나 짚어줍니다.

 

얼마전부터 <일리아스>를 읽기 시작해서인지 미케네 문명에서 트로이전쟁과 관련한 대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흔히 트로이 전쟁의 시초가 파리스의 심판과 파리스가 메넬랑오스의 아내인 헬레네를 납치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관련 책을 찾아보면 그것보다는 트로이가 자리한 위치,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요충지였기 때문에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어떤 것으로든 전쟁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군요. 고대 인도에서 여러 종교가 파생되는 과정도 흥미로웠습니다.

 

왜? 어떻게? 어떤 학문이든 공부하다보면 이 두 가지 질문을 수없이 되새기게 됩니다. 특히 문자가 없던 시대이거나 자료가 남아있지 않은 경우에 역사학자들은 하나의 의문과 질문을 풀어내기 위해 상상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다음 숙고의 과정을 거친다고 하는데요. 바로 그런 오랜 노력의 결실이 본문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당시 사회의 분위기와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많은 사진과 그림은 몰입감을 더해주고 ‘똑똑하게 정리하는 착착 마인드맵’ 코너로 해당 내용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에 대한 책임이 있었음에도 다시 국제사회로 돌아왔습니다. 이는 독일이 그 책임을 직시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사 청산은 화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전제조건입니다.”

 

최근 일본을 방문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기자회견이 화제가 됐었죠. 독일과 일본. 두 나라는 2차 대전의 전범국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역사를 인지하는 태도에서는 상반되는 차이를 보여주는데요. 부끄러웠던 지난 역사를 직시하고 또다시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잊지 않도록 끊임없이 역사를 되새기고 기억하는 것. 우리에게도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은 자기가 누구인지 알 수 없고, 따라서 스스로를 지켜나갈 수 없다. 하지만 역사를 잊지 않고 지킨 민족은 언젠가는 나라를 되찾아 더욱 발전할 수 있다. -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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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들지 않는다 - 젊음을 죽이는 적들에 대항하는 법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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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은 붉은 늑대. 실루엣만 있어서 시선이 어딜 향하고 있는지, 표정이 어떤지 알 수 없지만. 왠지 알 것 같다. 저 늑대는 분명 나를 보고 있다. 내 주변을 서성이며 간간이 무심한 듯 고개를 돌리기도 하지만 목표를 잊진 않는다. 노리는 건 오직 나의 허점. 아차 하는 순간 저 녀석은 내 목덜미에 날카로운 이빨을 박아버리겠지. 꾸울꺽. 녀석이 눈치 채지 못하게 조심스럽게 침을 삼킨다. 늑대와 나. 팽팽한 긴장감이 계속 이어진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처음 <나는 길들지 않는다>를 보면서 학창시절에 읽었던 <어린왕자>가 떠올랐다. 어린 왕자와 여우의 대화 속에 ‘길들이다’는 대목이 있었다. 길들인다는 건 관계를 맺는다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유일한 존재가 된다고 했던가?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라던 여우의 말이 말랑말랑하고 인상적이어서 읽자마자 단박에 가슴에 꽂혀버렸다. ‘길들이다’는 것이 이렇게 감상적인 거구나 감탄을 했다. 만약 그때의 날 마루야마 겐지가 봤다면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넌, 주거쓰. 아웃!”

 

 

‘젊음을 죽이는 적들에 대항하는 법’이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저자는 ‘진정한 젊음’이 무엇인가를 모색한다. 젊음은 단순히 육체적인 젊음, 건강함이나 신체 기능의 탁월함이 아니라는 것. 육체가 늙었더라도 정신적으로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젊음이라고 강조한다.

 

 

육체는 비록 늙었어도 정신의 젊음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특질이며, 또 특권이다.…… 인간 역시 야생동물이라는 점을 다시금 상기해주기 바란다. - 15쪽.

 

 

그렇다면 생명이 다해서 죽음을 맞을 때까지 진정한 젊음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절대, 길들지 마라”고 한다. 가족에 길들지 말고, 직장에 길들지 말고, 지배자들에게 길들지 말라고. 아니, 인간은 본디 사회적 동물이라 태어나면서부터 가족, 학교, 회사조직에 들어가면서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히 적응하고 길들기 마련인데 길들지 말라니! 어쩌란 말야? 대체 이유가 뭔데? 뭣 때문에 그러는건데? 거센 항의의 말이 툭툭 튀어나왔다.

 

 

당신의 젊음을 말살한 그 최초의 적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유아기와 유년기에 부모가 당신에게 쏟은 사랑이다. 특히 어머니의 맹목적인 사랑이다. - 25쪽.

 

 

저자는 진정한 젊음은 정신적인 자립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자립은 또 뭐냐? 주어진 상황을 전체적, 객관적으로 파악한 후에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지 제대로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인데 문제는 여기에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존재라는 어머니도,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고 사회적 성공을 이룰 수 있는 회사도 걸림돌이 된다는 거다. 어머니는 자식이 홀로 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남편 포함) 자신의 방식대로, 원하는 대로 길들이고 있고. 대부분의 직장인 역시 도전보다는 ‘안정’을 취하려는 습성 때문에 회사에서 요구하는 대로 끌려 다니다가 인생을 마감하기 일쑤라며 꼬집는다. 지배자, 국가에 대해서는 더 강한 어조로 말한다. 사회가 혼란하고 정치마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정치에 무관심해지는데 국가는 바로 그것을 노린다고. 특히 중년보다 젊은 사람을. 그 예로 저자는 미국 정부가 실업자가 증가하는데도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은 군인의 숫자를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하면 진정한 당신 자신으로 살지 않았고, 진정한 인생으로부터 피해만 다닌 얼간이였다. 누가 폭력을 가하며 강요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집단과 조직에 팔아넘기면서 이용당하고 종속당하는 타율의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 81쪽.

 

 

의지박약이야. 그건 죽은 삶이야. 넌 현대판 노예야. 총알받이나 다를 바 없어....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생각해봤다. 솔직히, 기분 나쁘다. 그것도 아~~~주 많이.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하고 앞으로 그와의 관계를 끊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잠깐이라도 곱씹어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싶다. 왜냐면 그가 그렇게 쓴 소리를 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테니까. 나이가 적다고 생각도 젊지 않다는 건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모든 점에서 존경할만한 사람을 만나기란 하늘에 별 따기 만큼 어렵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허점과 부족한 점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니까.

 

 

백 보 아니 천 보를 양보해서, 신과 위인이 존재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나 그들이 있을 곳은 자신 속 밖에는 없다. 신과 악마와 위인은 모두 당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것이다. - 179쪽.

 

 

결국 화살은, 해결책은, 자신을 구제할 수 있은 힘은 타인이 아닌 자신의 내면에 있다. 세상의 모든 지식과 지혜는 자신이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 비롯된다는 것과 흡사하다. 삶의 시작도 매듭도 모두 내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니. 짐작했지만 훨씬 묵직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마지막 저자가 던진 선동, 질문에 대한 나의 해답을 모색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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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와 드골 - 위대한 우정의 역사
알렉상드르 뒤발 스탈라 지음, 변광배.김웅권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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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양복을 입은 초로의 두 신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소파나 의자가 아닌 건물의 계단 같은 곳에 앉아 열심히 얘기를 하는 사람과 그를 바라보며 경청하는 사람. 그림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표정이나 모습은 생기가 넘친다. 무슨 얘길 저리도 재미나게 하는 걸까. 곰곰이 귀를 기울이면 들리지 않을까 착각이라도 할만큼. 자, 그렇다면 문제를 풀어보자. 책의 제목은 <말로와 드골>. 표지에 그려진 두 사람. 누가 말로이고 누가 드골인가? 두 사람의 모습을 알지 못하는 나로선 ‘찍어볼까?’ 하다가 금방 알아차렸다. 붉은색 글자의 말로와 초록의 드골. 빨강과 초록색 글자로 된 제목과 짝짓기라도 하듯 손에 불붙은 담배를 들고 있는 이는 말로이고 손에 초록색 안경을 들고 있는 사람이 드골이 분명하다. 거기에 ‘위대한 우정의 역사’라는 짧은 문구. 간단하지만 가장 명확하게 주인공과 책 내용을 소개하는 표지가 아닌가. 절묘하다. 멋지다.

 

솔직히 말로와 드골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아는 것이라고는 앙드레 말로가 중국혁명을 다룬 <인간의 조건>을 썼다는 것과 샤를 드골이 프랑스의 대통령이었으며 최근 스캔들로 전세계인의 주목을 끌고 있는 그 누군가와는 정반대의 인물이라는 것 정도? 때문에 ‘위대한 우정의 역사’라는 부제가 금방 와닿지 않았다. 이 두 인물이 생전에 어떤 계기로 만났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고나 할까? 의문은 곧 호기심을 불러왔다. 이 둘의 접점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다. 그래. 만나보자고. 까짓 거. 작가고 대통령이었다 해도 어차피 할배들 아냐? 모 방송국의 여행 프로그램에서 최고의 짐꾼으로 활약했던 배우만큼은 아니지만 할배들 얘기야 얼마든지 들어주지. 말해보라고. 당신들 우정의 역사를.

 

말로와 드골. 그들은 서로를 가리켜 “그 파시스트!” “그 공산주의자!”라고 했다. 11년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 차이만 봐도 그렇지만 예술가와 정치가는 특성상 좋은 조합이 아니다. 허나 그들은 1945년 7월 18일, 첫 만남을 가졌다. 만나자마자 드골 장군은 말로에게 돌직구를 날렸다. 이에 말로는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자신의 정치에 참여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스페인 내전과 레지스탕스 운동에 대해, 더 나아가 자신은 프랑스와 결혼했노라고 말하는 말로. 한 시간 정도의 만남에 불과했지만 서로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엔 충분했다.

 

드골 장군과 앙드레 말로는 서로 첫눈에 반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25년 이상 동안 그 강도 면에서 한결 같았던 그들 사이의 우정이 시작된 것이다. - 19쪽.

 

이후 책은 샤를 드골과 앙드레 말로의 성장과정을 전하는데 둘은 여러 면에서 대조가 된다. 화목한 집안에서 태어나 엄격하면서도 소양을 갖춘 지도자로서의 어린 시절을 보낸 드골은 열다섯 살 무렵, 군인이 될 것을 결심하고 프랑스의 명문학교인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간다. 말로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스스로가 ‘나는 어린 시절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환상적인 이야기를 좋아했던 할아버지와 열정을 지닌 아버지가 말로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지만 그에 비해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결코 좋지 않았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도 두 사람에게 완전히 상반되는 삶의 궤적을 남겼다.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포화를 뒤집어쓰며 참혹함을 겪은 드골과 전쟁에 참전한 아버지를 통해 영웅적인 이야기에 젖어있던 젊은 청년 말로. 이후로도 둘은 장교와 모험가의 모습으로 평행선 위를 걷는다. 그러다 1930년대가 되면서 커다란 변화가 시작된다. 파시즘과 나치즘이 유럽을 잠식하려 하자 말로는 탐험가에서 투사로 탈바꿈한다. <인간의 조건>을 출간하여 공쿠르상을 수상을 시작으로 나치의 비리를 고발하는 작품을 발표한다. 당시 드골은 프랑스의 군대를 걱정이 깊어져 <미래의 군대>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전문 장갑부대를 창설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강연도 다녔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때 말로가 37세, 드골이 48세였다. 이전까지 줄곧 상반되는 삶의 궤적을 그리던 두 사람이 드디어 접점을 향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 두 사람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점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하고 있었다. 인간의 조건에 대한 날카로운 의식, 즉, 인간의 자유, 존엄성, 그리고 환원 불가능성에 대한 의식이 그것이다. - 148쪽.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고 두 사람은 처음으로 만난다. 서로가 다른 성향과 기질을 지녔고 삶의 경험도 상반되지만 추구하는 가치가 같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후 1959년 드골은 대통령이 되었고 말로를 문화부장관에 임명하기에 이른다. 조국 프랑스를 위대한 나라로 만들고 유럽에 민주주의를 다시 꽃피우고 프랑스의 문화와 예술을 빛내는데 함께 손을 잡은 것이다.

 

드골 장군은 앙드레 말로에게서 자신과 같은 높이에 있고 자신에 상응하는 또 다른 자아, 그러니까 그를 포기의 유혹에 대해 경계하게 해준 그런 존재를 만났던 것이다. 그의 앞에서는 드골 장군은 드골 장군으로만 존재할 수 있었고 행동할 수 있었다. -351쪽.

 

1970년 11월 9일 저녁 무렵, 짧은 산택을 마친 드골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곧 그의 심장도 멈추고 만다. 오래전 처음 만난 이후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고 신념을 더욱 굳건히 다지는 계기가 되었던 드골의 죽음 이후로도 말로는 자신의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지병과 건강악화로 1976년 11월 23일 새벽, 말로는 숨을 거둔다. 태어난 순간도, 생을 마감하는 순간도 달랐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영혼을 서로 통한다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말로와 드골, 그들의 우정은 참으로 위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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