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 조선의 책과 지식은 조선사회와 어떻게 만나고 헤어졌을까?
강명관 지음 / 천년의상상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년전 인 것 같다. 교과서로 알고 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조선의 모습을 만났다. 장터 투전판의 노름꾼에서부터 뒷골목의 폭력조직, 도둑, 기생, 특히 관료로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과거시험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상상을 초월했다. 오늘날 수능시험장이 최첨단 기기를 동원한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갖가지 대책을 세우는 것처럼 그 옛날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명예나 권력과는 거리가 먼 민초들, 주류에서 벗어난 비주류들의 삶의 공간인 뒷골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조선의 이미지와 사뭇 다른 것이었다.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고 ‘야사’로 지나치고 말았을 이야기지만 정말 흥미로웠다. 나로 하여금 새로운 조선의 모습을 만날 수 있게 한 책 <조선의 뒷골목 풍경>을 시작으로 저자 강명관의 책을 기회가 닿는대로 읽었다.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그림으로 읽는 조선 여성의 역사>를 읽으면서 ‘조선’이라는 거대한 퍼즐을 맞추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이번에 만난 책이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내게 있어 ‘조선’이란 이름의 퍼즐을 성공적으로 완성할 수 있는 핵심적인 조각이 아닐까 싶다. 다름 아닌 ‘책’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저자는 서두에 이렇게 말한다. ‘만약 인류의 역사가 진보를 향한 변화라면, 그 변화의 이면에 아주 복잡한 요인이 있다면, 책 역시 반드시 거기에 끼일 것이다.’ 즉, 인류의 역사는 책의 역사와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인류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방향을 결정짓는 요인이기에 ‘책의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역사를 이해하는 일’이라고.

 

이 책은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라는 제목이 곧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대변해준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책의 역사를 다루기 이전에 저자는 고려시대의 출판, 인쇄는 어떠했는지 알려준다. 당시 고려는 출판을 전담했던 관청에서 서적을 출간했는데 ‘내서성’에서 ‘비서성’ ‘비서감’ ‘전교서’ 등 관청의 명칭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책의 인쇄와 보급을 맡았던 ‘서적포’, 왕과 신하들이 학문을 강론하는 장소였던 ‘서적소’를 비롯해 주로 어떤 책을 만들었는지, 고려의 국가도서관과 거기에 구비된 장서는 무엇이었는지 살펴본다. 그런 다음 구텐베르크보다 88년 앞섰다는 조선의 금속활자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세계 최초’를 강조하지 않는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일부 지배층에서 독점하던 지식이 대중화 되어 서구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에 비해 조선의 금속활자는 국가가 인쇄, 출판에 관한 모든 것을 독점하면서 발전할 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고 꼬집는다.

 

1446년, 조선은 획기적인 대변혁이 일어난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것이다. 문자를 통해 백성들을 가르치려는 의도로 한글이 창제되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한글로 쓴 책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한글은 어떻게 사용되었는가. 한글로 쓴 책은 임진왜란 이전에는 없었고 그 이전에는 오로지 번역의 형태로 존재했다고 한다. 왜냐면 조선 역시 고려와 마찬가지로 책의 인쇄, 출판이 국가가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책을 읽고 지식을 축적한 지배층이 자신들의 체제 유지에 이로운 책만을 찍어냈다. 백성들을 위해 쓴 <삼강행실도>조차 한자로 되어 있어 이해를 돕는 그림을 덧붙였다 하더라도 길거리 아이들과 여염 부녀자들까지 쉽게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이후 저자는 책의 출판과 인쇄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다. 책이 어떻게 쓰이고 인쇄출판이 어디서 이루어졌는지, 어떻게 읽고 유통되었는지, 책값은 얼마였는지, 책의 제작에 필요한 종이는 어떻게 생산되었는지 등 조선시대의 책과 관련된 다양한 궁금증을 하나씩 짚어나간다. 그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는데 얼마전 읽었던 책을 통해 알게 된 ‘책쾌’였다. 서적매매의 중개인으로 ‘책쾌’가 맡은 역할이 컸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 조선,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의 세 나라 중에서 조선만 서점이 없었다는 것은 정말 충격이었다. 19세기 후반에 가서야 서점이 등장했다고 짐작할 뿐.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산소가 혈관을 타고 온 몸을 골고루 순환해야 건강하듯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의 경험과 지혜, 지식을 글로 남기고 그 지식을 한데 모은 책이 나라 곳곳에, 백성 모두에게 고루 주어져야 하는데 조선은 그렇지 못했다. 지금까지 조선시대의 역사를 대할 때마다 왠지 모르게 갑갑했는데 그게 어쩌면 당시 지식의 보급이 원활하지 못했기에 일어났을 거라 생각하니 실로 안타깝다.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제작한 나라’면 뭐하는가.

 

책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이자 문화의 역사다. 책의 역사를 따라가면 인간이 쌓아올린 문화의 역사를 볼 수 있다. - 3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