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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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하녀? 뭐냐? 이 애매한 조합은?’

내용을 예상할 수 없는 책 제목에 순간 당황했다. 뭘까? 이 책은? 물론 그 기분이 오래가진 않았다. 다름아닌 저자가 고병권, ‘고추장 아저씨(?)’인데 그게 뭐 대수야? 읽는 내내 무릎을 칠 게 뻔한데. 당혹감과 궁금증, 호기심, 기대감 같은 것들이 순식간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서점에서 책 한 권을 들고 갖가지 표정으로 자문자답하는 내 모습. 모르긴 몰라도 아마 가관이었을 듯하다.

 

처음에 가졌던 궁금증은 싱거울 정도로 금방 풀렸다. ‘만물의 근원은 물(水)’이라고 주장했던 고대 철학자 탈레스. 그가 어느날 별을 보면서 걷다가 우물에 빠졌는데 그걸 본 하녀가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탈레스는 하늘의 별을 보는 데는 열심이면서 발치 앞에 있는 것은 알지 못한다.” 이 일화에서 저자는 위대한 철학자와 재치만점의 하녀, 둘 중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다. 둘 모두 옳은 동시에 모두 틀렸다고 말한 저자는 ‘철학이 ’박식함‘에 있지 않고 ’일깨움‘에 있다‘고 강조한다.

 

책에는 제목에서 ‘하녀’로 지칭하는 일반 서민, 사회의 관심에서 벗어난 마이너리티의 일상과 그 속에서 마주치는 철학적 사유, 여러 사건 사고를 통해 어떤 것들을 느낄 수 있는지 하나하나 짚고 있다. 너무 힘들고 고단해서,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운명의 줄을 놓아버리는 이들을 이야기하면서 ‘있다’는 것과 ‘존재’, ‘선물’의 의미를 되새기고 한때 혼란스런 시기를 맞아 도피하듯 미국으로 향한 도착한 저자는 고요함 속의 소란스러움을 깨달았다고 털어놓는다. 또 인류의 역사, 진보를 프랑스 혁명이 당시 독일인의 마음에 일으킨 변화를 통해 전해주고 부당한 취급을 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회사의 관계 속에서 노동자의 사회적 위치를 가늠해 보면서 좋은 사회란 어떤 사회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공부하는 이들은 시끄러운 곳을 피해 조용한 곳을 찾지만, 아마도 우리가 공부하는 목적은 시끄러운 곳에서 고요를 얻는 것에 있을 것이다. 세상과 거리 두기를 할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거리두기를 해야 하며, 세상에서 벗어날 것이 아니라 세상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 공부일 것이다. - (머리에 타는 불을 끄듯 공부하라. 41쪽)

 

한마디로 <철학자와 하녀>는 ‘현장 인문학자’로 통하는 저자가 불법이주자, 비정규직 노동자, 재소자, 장애인, 성매매 여성 등을 만나 이야기하고 강연하고 끊임없이 고민한 것들을 글로 쓰고 그것을 모아 출간한 것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자꾸 혼동이 생긴다. 저자가 예전에 썼던 글이 분명한데 이상하게도 그걸 느낄 수가 없다. 본문 중에 언급되는 사건, 사고들이 지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의 일, 바로 오늘 일어난 일처럼 와 닿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참혹한 사고에 지켜보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 일처럼 고통을 함께 나누고 위로하려는 행위에 대해 청와대 대변인이 ‘순수 유가족’ 운운하는 것을 보면 국가가 무엇인지 의문이 생긴다.

 

이해당사자도 아닌 사람들이 어떤 불이익조차 감수하고 나서게 되는 순간이 있다. 아니 행동에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맘속에서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내 일이 아니지만 그것을 지켜보며 맘속에 공감이 일어날 때, 우리는 ‘개인’이 아니라 ‘인류’를 느끼는 것이다. - (구경꾼 맘속에서 일어난 혁명. 74쪽)

 

소외받는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고 대화했던 저자는 끝에 이르러 다시 ‘말’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을 읽고 강연을 하면서 ‘좋은 글’ ‘좋은 말씀’을 접하지만 그 ‘좋은 글’ ‘좋은 말씀’이 더 이상 발전되지 못하고 거기서 그치고 만다며 한탄한다. 좋은 말을 내 것이 되게 하려면 자기만의 방식으로 체험을 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들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행동하지 않는 양심, 철학을 꼬집은 게 아닐까.

 

“높이 오를 생각이라면, 그대들 자신의 발로 오르도록 하라!.” 차라투스트라가 자신을 구원해달라며 찾아온 이들에게 던진 말이다. 확실히 그렇다. 내 발로 오르지 않은 산은 풍문과 구경거리로만 존재하는 산이다. 그러니 산에 오르려면 스스로 오르는 수밖에 없다. - (에필로그. 옳은 말은 옳은 말일 뿐이다. 2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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