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모두의 적 - 해적 한 명이 바꿔놓은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
스티븐 존슨 지음, 강주헌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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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만화 <아스테릭스>. 우락부락한 몸집의 독특한 개성의 해적들이 바다를 누비며 벌이는 이야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던 기억이 난다. 어른이 되어서 그 만화의 역사 왜곡에 대해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책이 다시 출간되었다고 해서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떤 부분에서 왜곡이 있었는지... 그리고 해적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만화 <원피스>. 주인공 루피는 고무고무 열매를 먹고 온몸이 고무처럼 늘어나는데 초파, 상디 같은 개성있는 동료들과 전세계를 누비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길게 늘어져서 보다가 이제 그만! 외쳐버렸다. 지금쯤이면 100권이 출간되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 <인류 모두의 적>을 봤을 때는 무심히 넘겼다. 그러다 며칠 후 다시 보았을 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해적 한 명이 바꿔놓은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이라는 부제였다. 내가 아무리 세계사에 무지하다고 해도 저런, 특별한 해적이 있었다면 모를 수가 있나? 학창시절 수업 시간에라도 배우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지금까지, 아무도, 이런 얘길 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짐작가는 게 있었다.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이, 나라에겐 틀림없이 이 해적의 존재가 반갑지 않을 터. 되도록 아무도 모르게 숨기고 싶지 않을까?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만 봐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역사를 교묘하게 왜곡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생각의 고리가 여기에 이르자 관심이 생겼다. 알고 싶어졌다. 세계사를 바꿔놓았다는 이 정체불명의 해적이.

 

이 두 배가 인도양에서 맞닥뜨린 사건은 그런 미세한 원인들이 세계사에 큰 파급 효과를 낳은 경우였다. 역사의 넓은 관점에서 볼 때 그런 대치는 대체로 사소한 풍돌, 즉 금세 꺼져버리는 불꽃에 불과하다. 그러나 간혹 누군가가 그은 성냥불이 온 세상을 밝히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런 성냥불 중 하나에 대한 이야기다. - 20.

 

날씨는 화창했다로 시작한 책은 16959, 수라트 서쪽 인도양에서 해적선이 무굴제국의 보물선(건스웨이호)을 습격하던 날을 전한다. ‘파국적 결과는 지극히 사소한 실수로부터 시작되는 법이라며 우연의 연속인지, 운명인지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건스웨이호의 망꾼이 경종을 몇 초 늦게 울린 것을 시작으로 대포의 미세한 결함으로 대포가 폭발하면서 포수가 즉사해버리고 상대편 영국배(펜시호)에서 쏜 포탄 중 하나는 아주 정확하게 날아와 주 돛대 아래쪽을 맞춰 가장 파괴적인 타격을 입히고 만 것이다.

 

세상을 경악에 빠뜨린 악명 높은 해적에 대해, 그의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인류 모두의 적>5(1[원정], 2[선상반란], 3[약탈] , 4[추적], 5[재판])로 구성되어 있다. 책은 주인공, 잉글랜드 데번셔 출신의 청년이 영국 왕립 해군에 입대와 당시 해군 입대와 관련한 배경(‘부랑자 단속법에 의해 부랑자나 난민들은 채찍질이나 해군 입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헨리 에브리라는 미스터리에 싸인 그의 이름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어이없이 보물선을 약탈당한 무굴제국이 오래전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으며 조화롭게 공존하던 힌두 문화와 무슬림 문화가 어떻게 깨어졌는지 풀어낸다.

 

모든 위대한 전설적인 인물의 출생에 대해서는 몇 번이고 고쳐 써지게 마련이다. 세대를 거듭하며 전해진 이야기에 이런저런 소문과 풍문이 더해지고, 교묘하게 수정되며 다층적으로 짜인다. 한동안 헨리 에브리는 만신전에 묻힌 여느 인물만큼이나 널리 알려진 전설적인 인물이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영감을 주는 영웅이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무자비한 살인자였다. 또 폭도였고, 노동자 계급의 영웅이었으며, 국가의 적이었고, 해적왕이었다. 그러고는 유령이 되었다. - 33~34

 

1650년대 말에 두 화면으로 에브리의 탄생과 아우랑제브의 즉위를 모두 지켜본 사람이 있었더라도, 둘의 충돌 이후로 인도에서 이슬람 시대가 붕괴하고, 대영제국군이 들어서서 두 세기 이상 인도 아대륙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 61.

 

15세기부터 세계는 바야흐로 대항해시대. 바다를 주름잡던 영국은 공공연히 해적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17세기, 엘리자베스 1세는 동인도회사의 법인설립을 인가하고 무굴제국과 손을 잡고 동인도회사를 통해 막대한 자금을 손에 넣게 된다. 하지만 그 무굴제국의 보물선을 에브리에 의해 습격을 당하고 성지 순례를 다녀오던 황제의 직계 가족이 모욕적인 일을 겪자 무굴제국의 황제는 동인도회사와의 무역을 끊어버린다. 해적들의 우두머리, 에브리가 영국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도리어 다급해진 건 영국이었다. 에브리와 그의 일당을 인류 모두의 적이라 하여 현상금을 내걸고 공개수배령을 내리기에 이른다. 그런 다음 모굴 제국 황제의 권력을 등에 업고 인도 지역에서 대대적인 권력을 행사하기에 이르는데 이것이 훗날 인도가 대영제국과 동인도회사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되는 결정적인 시초가 된 셈이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해적선의 우두머리에 불과한 에브리로부터 대영제국이 탄생하는 과정을 보면서 궁금했다. 에브리가 해적이 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우연한 일이 연이어 일어나고 그것이 운명이 되었다고 하기엔 세계사적으로 미친 영향이 너무나 크다. 에브리의 기록은 생각만큼 많이 남겨져 있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언젠가 또다른 기록을 통해 그의 숨겨진 이면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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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장 365일 붓다와 마음공부 -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사는 지혜
이동연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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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종교가 불교라고 해도 되나? 내가 불교를 믿는 게 맞나? 불교신자 시늉만 내고 있었던 건 아닌가?


 

2021년 새해 첫날부터 매일 조금씩 필사를 하고 있다. 톨스토이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의 지성이라 불렸던 이들의 사상과 저작에서 수집한 글을 1년의 일기형식으로 편집해놓은 책인데 필사하면서 공감 가는 부분도 많았지만 종교(기독교)와 관련한 대목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동양사상이나 불교에서 같은 형식의 책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하루 365일 붓다와 마음공부>란 책의 출간이 반가웠다. 하지만 본문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멈칫했다. 여시아문(如是我聞) 때문에. 집에서 틈틈이 108배를 하고 부처님 오신 날에 사찰에 연등을 단다고 해서 모두 불교신자인 건 아니다. 반대로 108배를 하지 않고 연등을 달지 않는다고 해서 불교신자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그가 삶을 어떻게 대하는지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마음자리가 어떠한지가 중요하고 일상 속에서 자신 안의 부처를 찾아 깨달음을 얻는 것, 그것이 불교의 핵심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불교경전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여시아문(如是我聞)이 생소했기에 우선 찾아봤다. 여시는 이와 같이’, 아문은 내가 들었다의 뜻으로 들은 교법을 그대로 믿고 따라 기록한다, 붓다의 면전에서 직접 들은 가르침을 하나도 보태거나 빼지 않고 그대로 전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또한 모든 불교경전에는 첫머리에 여시아문일시불재(如是我聞一時佛在)라는 글귀가 나오는데 이는 붓다가 죽으면서 제자들에게 불경의 첫머리에 두도록 한 데 따른 것으로 경전의 내용은 붓다가 어느어느 장소에서 설교한 것으로 내가 확실히 들었으니 의심하지 말 것을 권유하는 뜻이라고 한다. 아하, 그제야 무릎을 쳤다. 그리고 집에 있는 경전의 첫머리를 찾아보니 정말 여시아문으로 시작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하루 365일 붓다와 마음공부>의 구성은 달력과 유사하다. 크게 열두 달로 나누어 각 달마다 주제를 정해서 그에 해당하는 붓다의 말씀과 해설을 매일 1장씩 수록해놓았다. <붓다와 마음공부>를 만난 건 5, 주제는 [견실한 삶을 위한 고찰]이었다. 그 중에서 527, ‘나쁜 경험이 더욱 발전의 원천이 될 수 있다’‘뜻을 정해 해탈한 사람은 악마의 수렁에서도 영원히 벗어난다라는 글에 우리의 경험이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전해준다. 어떤 경험이든 그것을 자신의 삶을 발전하는 근거로 만들 수 있다면 좋은 경험, 나쁜 경험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대목에서 결국 모든 일은 나 자신의 마음자리와 성찰에 있다는 걸 또한번 깨닫게 되었다.


 

앞부분엔 어떤 내용이 있을까 궁금해서 틈틈이 살펴봤다. 1월은 [삶의 주인으로 살라]는 주제로 가장 먼저 행복과 불행에 대해 이야기한다. ‘행복과 불행은 긴 시간 속에서 순간일 뿐이다며 행복과 불행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지 묻는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지 선택할 수 있어서 나치 수용소 같은 극한 상황 속에서도 내면의 자유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2[평탄한 삶을 위해]에서 듣기경청에 대해 말하는데 듣기는 귀로 하지만 경청은 마음으로 한다면서 듣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철학사에 있어 중요한 궤적을 남긴 철학자의 책을 읽다 보면 종종 좌절을 겪곤 한다. 내가 분명 책을 집중해서읽고 있건만 도무지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조차 없는,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 같을 때, 읽는 걸 포기하고 싶어진다. 내가 무지하다는 건 알았지만 그럼에도 나의 무지를 확인하는 순간을 맞닥뜨리면 가장 먼저 나 자신에게 실망하게 된다. 그러면 안되겠지만 자존감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하루 365일 붓다와 마음공부>는 어느 한 구절도 복잡하거나 난해하지 않았다. 읽으면 쉽게 이해되는 글, 문득 생각나 다시 읽으면 그날의 상황과 마음에 따라 의미가 더 깊어지는 글이었다. 매일, 한 꼭지씩, 천천히 읽으면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책이다. 다만 살짝, 아쉬운 점을 하나 꼽자면 본문의 한자가 너무 작다. 필사를 하려면 작은 한자가 보이지 않아 사진으로 찍어 확대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어쩌면 이것도 내가 한자에 무지한 때문일수도 있겠다. 삶이 불안하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짙은 안개속이라고 생각된다면 조금씩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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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질문 - 내 안의 두려움을 마주하는 인생의 지혜를 찾아서
다큐멘터리 〈Noble Asks〉 제작팀 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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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자는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 운다고 하더니 딱 내가 그 형국이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신지 몇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상실의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모를 여읜 자식들이 대부분 그렇지 않은가 싶지만 꼭 그렇다고 장담할 순 없다. 일상에 쫓기다가도 문득 멍하니 있거나 생각에 잠길 때 거리에서 다정한 모녀의 모습을 볼 때면 문득문득 후회가 밀려온다. 난 다른 형제에 비해 엄마의 속을 덜 썩였지만 반면에 살가운 딸은 아니었구나. 깨닫는다. 남에게 폐끼치지 않고 자기 할 일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무뚝뚝한 딸. 그게 나였다고.



날 왜 낳았어!

어쩌면 난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슬픔의 이유를. 오래전, 사춘기도 모르고 지냈다 싶은 내가 딱 한 번 엄마의 가슴에 날카로운 대못을 박았다. 날 왜 낳았냐고. 물었다. 그때 엄마의 기분이 어땠을까, 얼마나 충격이 컸을지 지금 내가 새삼 느끼고 있다. 아들을 키우면서... 난 알고 있다. 그날의 내 무모한 행동을 생전에 엄마에게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얼렁뚱땅 넘긴 게 이렇게 한으로 남았다는 것을. 그리고 아직 모르고 있다. 난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 길을 찾지 못했다는 것을.



<오래된 질문>은 생물학계의 대석학으로 알려진 과학철학자 데니스 노블 박사가 한국의 사찰을 방문해서 고승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책이다. 통도사의 성파 스님, 실상사의 도법스님, 백양사 천진암의 정관 스님, 땅끝 미황사의 금강 스님. 불교를 믿거나 불교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큰스님들이다. 그런데 생물학자가 불교의 스님들과 대체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내 안의 두려움을 마주하는 인생의 지혜를 찾았을까? 과학과 종교는 극과 극인데 그들의 만남이 과연 순탄했을까? 이런 궁금증이 나로 하여금 책장을 넘기게 만들었다.



중요한 건 쓸데없는 걸 많이 아는 게 아닙니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죠. 모르고 있다는 껄 모르는 것, 그게 가장 큰 병입니다. - 33.(성파)



책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삶은 왜 괴로운가?’ ‘나는 누구인가?’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이 네 개의 대주제 아래 그것을 풀어가기 위한 스님들의 말씀과 데니스 노블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한 꼭지마다 글의 길이는 짧은데 그 속에 핵심을 단번에 꿰뚫는 글이 많았다.



머리는 하늘을 향해 있고 두 발은 땅을 딛고 서 있는 모습으로 생긴 사람이 깨달은 자, 부처다. 밥이 오면 입을 열고 졸음이 오면 눈을 감으며 사는 사람이 깨달은 자, 부처다. 바꿔 말하면 이런 얘기를 하는 거죠. 나와 당신, 우리 모두가 부처다. 인간은 누구나 다 부처다 125(도법)



고통에서 벗어나거나 누가 나를 화나게 한다면 우선 원인을 알아야 하는데 그러자면 사실을 정확하게 직시해야 한다거나 세상은 많은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하는데 그걸 잊고 따로따로 살기 때문에 인간과 인간이, 인간과 자연이, 제대로 온전히 살아가기 힘든 거라고 짚어준다.



만약 당신이 남과 비교하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훨씬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내가 보는 현상과 주변 환경들을 온전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와 겸손한 마음가짐이 걸림 없는 삶, 자유로운 삶을 만들어줄 것입니다. - 147(정관)



과학자와 스님들의 대화가 겉돌지는 않을까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데니스 노블이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의 관점을 보여주는 시의 원문을 해석하기 위해 한자를 배울 만큼 동양사상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인지 그들의 대화는 때론 굳이 통역을 거치지 않아도 통했다고 한다. 마치 염화미소의 부처님과 가섭처럼.



참선을 하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 참선은 삶을 다르게 인식하는 방법입니다.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환영에서 벗어나고, 헛된 망상들이 걷히면서, 자연스럽게 현재로 초점이 맞춰지는 거지요. (……) 비로소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게 됩니다. - 186, (금강)



마음편히 사찰을 자주 찾을 수도 없는 상황이 일 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사람에게 오른팔이 있으면 왼팔이 있듯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인데 요즘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예전처럼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다. 시원하게 소통되지 못하고 어딘가 막힌 듯 답답함을 느끼는 날이 많아지면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의문이 들곤 했다. <오래된 질문>을 틈틈이 조금씩 마음 내키는 대로 손에 집히는 대로 읽어 나갔다. 몇 번을 읽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결국 덮어버리고 마는 책보다 <오래된 질문>은 짧지만 금방 공감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몇 번이고 곱씹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글이 많아서 좋았다. 그때그때 연필로, 형광펜으로 줄을 긋고, 포스트잇과 플래그를 붙여 가며 메모를 했다. 곳곳에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는 책, 필사하면서 생각을 가다듬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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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인간과 괴물의 마음 - 나를 잃지 않고 나와 마주하는 경계의 감정
이창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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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이었다. 중범죄 등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법안에 대해 대한의사협회가 크게 반발하면서 급기야 코로나19 백신접종에 협력하지 않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의 집단행동은 사람의 생명이나 안전보다 자신의 이권과 기득권을 놓치지 않는 데만 몰두한 듯했다. 유치원 다니는 어린아이보다 못한 이기적이고 몰상식한 행동을 일삼는 그들이 사회의 지도층이자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고도 변함없이 존경을 받고 싶은지 묻고 싶었다. 왜 그들로 인한 창피함은 우리들의 몫인가. 그들의 행위가 왜 이토록 수치스러운가.



인간과 괴물의 마음이란 부제의 책 <수치>의 표지를 한참 바라봤다. 흑백의 사람 옆모습이 아래위로 나뉜 표지를 보면서 온라인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착시 이미지가 떠올랐다. 젊은 여인의 옆모습이라고 여겼던 그림이 어느새 매부리코의 노파 얼굴로 바뀌고 아리따운 여인으로 보였던 그림은 둥지로 날아드는 새였으며 가운데가 불룩하니 휘었다고 생각한 선은 알고 보면 휘어짐이 없는 직선이었다. 이런 경험을 미루어 짐작해보면 흑백의 두 얼굴이 상징하는 건 어쩌면 뇌의 착시처럼 같으면서도 다른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창피함과 부끄러움과 수치는 어떻게 다른가. 같은 감정인가. 늘 궁금했다. 심리학과 철학, 상담심리학의 이력을 지닌 저자는 첫 문장에 나의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내어놓는다. ‘부끄러움수치와 같은 뜻을 가진다고. 차이점이 있다면 부끄러움보다 수치가 좀 더 부정적인 의미를 띄고 부끄러움은 순 우리말이지만 수치는 한자어라고 말한다. 좋은 감정이지만 나쁜 감정이기도 한 두 얼굴을 지닌 감정 수치. 저자는 수치의 두 가지 얼굴에 대해 세세하게 풀어놓는다.



우리가 앞으로 탐구할 낯붉힘의 감정인 수치는 조금 특별한 감정이다. 수치는 넓이와 깊이를 모두 가진 감정이기 때문이다. - 6.



책은 크게 다섯 부로 나누어져 있다. 그리고 각 부는 다시 주제에 따라 2~4개의 장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를테면 1수치, 감정과 문화부끄러움의 감정부끄러움의 언어문화라는 장에서 부끄러움이 어떤 감정인지 알기 위해 감정이 일어나는 마음의 상태가 어떠한지, 사람의 감정 변화와 관련해서는 뇌의 어느 부위가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험을 통해 살펴본다. 부끄러움의 옛말이 붓그럽다붓그리다란 것과 부끄러움이 일차 감정이 아니라 사회감정인 이차감정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됐다. 인간이 감정을 느낄 때 신체적으로 변화가 나타나는데 그동안 여러 문학작품을 통해 접했던 대목이 많아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에 표시해 놓은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고 수치의 의미를 표로 나타내놓아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에 좋았다.



이차 감정이 없는 짐승들은 부끄러움을 느낄 수 없지만, 인간은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지각만 한다면 이 또한 인간이 아니다. 그것을 내면에서 다시 불러일으켜서 느껴야 한다. 그래야 인간이다. - 75.



2수치, 아래쪽 얼굴부터 본격적으로 수치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수치란 감정의 탄생을 이야기하기 위해 저자는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에게로 포커스를 맞춘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알몸으로 지내던 그들이 뱀의 유혹과 부추김에 선악과를 먹은 이후 갑자기 수치, 그것도 부정적인 감정을 알게 되는데 그 순간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역설적으로 인간이 되는 순간 생겨난 감정이 바로 수치다라고.



수치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며, 그 길은 이전처럼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엄혹한 현실을 알려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 125.



얼마전에 읽었던 <실낙원>이 바로 이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인데, 기독교를 믿지 않는 내게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하느님을 불복종한 벌로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자 그들이 서로에게 취했던 행동이었다. 신의 완전함을 추구하고자 했던 인간의 의도가 어떠한 것이었는지보다 서로가 서로를 원망하고 책임을 전가하고 질책하는 장면, 수치스러운 모습이었다.



이후부터 프로이트가 등장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인 해석이 동원되고 리비도라는 낯선 용어를 통해 인간의 수치가 신화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하나하나 살펴보는데 이전만큼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브래드쇼는 수치가 인간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악마적인 존재로 일컬었는데 수치로 인한 질병을 언급하는 대목은 아무래도 마음이 무거웠다.



요즘 뉴스를 보면 우리가 수치심에 둔감한 사회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폭행을 가하고 젊은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을 가십거리로 생각하고 정치인은 어제 했던 말을 오늘 뒤집기 일쑤다. 부끄러움, 수치란 감정이 없는 사회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인간에게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정적인 부분을 갖고 있지만 그 역시도 인간다움을 찾는 과정이 아닐까. 부끄러운 말과 행동을 했을 때 그걸 재빨리 알아차리고 수정하려고 노력하는 자세, 용기가 그 어느때보다도 필요하다. 인간의 감정의 숨은 이면을 알고자 하는 이가 읽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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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
최진석 지음 / 북루덴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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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됐을까. 5~6년 정도 된 것 같다. 인문고전 독서토론모임을 시작하면서 인문학이 대체 뭔지 궁금했다. ‘그냥 문..이에요,라고 말하는 지인이 있는가 하면 두 말 않고 철학!’이라고 강조하는 이도 있었다. 종합해보면 철학은 기본적으로 포함된 것 같은데 더 이상의 설명이 없어 도서관에 가서 책을 뒤져봤다. 그때 읽었던 책이 <인간이 그린 무늬/최진석>였다.



저자는 인문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골치 아프고 난해한 이론이나 고차원적인 학문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데 꼭 필요한 도구 같은 것이라면서 인간이 그리는 무늬’ ‘인간의 동선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명쾌한 설명이었다. 지인이 인문학을 ..이라고 말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후로 저자의 책은 챙겨서 읽게 됐다. 노자와 [도덕경]을 바탕으로 인류가 철학을 하게 된 역사적인 배경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힘을 잃어가고 있다며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인 자신으로 돌아가려면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던 <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 인류 역사에 언제나 위기는 있었다면서 위기를 극복하려면 철학이 필요함을, 그러려면 먼저 철학을 고리타분한 학문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며 일침을 가한 <탁월한 사유의 시선>까지. 저자의 글을 읽을 때면 느슨하게 늘어지는 마음을 다잡곤 했다.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 출간 소식이 누구보다 반가웠다. 이번엔 어떤 걸 가르쳐주시려나 기대가 됐다. ‘이제는 건너가자. 철학자의 시선으로 본 대한민국!’라고 적힌 띠지를 벗기고 표지를 살펴보면서 깜짝 놀랐다. 왼쪽 아래 귀퉁이에 국회의사당이 뒤집혀 있었다. 비스듬히 그어진 은 단순히 선이 아니라 예리한 칼로 베어버린 것 같았다. 띠지의 건너가자라는 것의 의미가 대체 뭘까 더욱 궁금해졌다.




대한민국에는 정치 공작이 대부분을 차지함으로써 지금은 정치가 사라졌습니다. 철학적으로는 사회 통합이 이상적인 일로 간주되지만, 권력을 잡고 유지하는 데 사회를 분열시키는 것이 더 유리하다면 차라리 분열을 하나의 방법으로 채택해버리는 것이죠. - 9~10.



삼십대 초반의 저자가 홍콩행 비행기를 타는 것으로 시작한 책은 우리나라를 둘러싼 여건이 어떠한지, 중국과의 관계, 북한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며 강조한다. 친일 청산 문제에서 우리는 독일과 프랑스처럼 전쟁으로 주권을 빼앗긴 게 아니라 눈만 꿈뻑이다가 일본의 속국이 되었고 연합군의 도움으로 해방이 되었지만 우린 마치 스스로의 힘으로 해방이 된 줄 착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국가의 일을 진영의 논리로 다루니, 국가는 표류할 수밖에 없다. 종속적이고 집단적 사고에 매몰되어 있으면, 어떤 문제를 독립적인 사고 능력으로 집요하게 다루지 못하고 바로 반대편을 선택해버리거나 논리를 임의대로 사용하는 특징을 보인다. -88.



촛불집회로 탄생한 정부, 문재인 정부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도 풀어놓았다. 대통령이 처음 내세웠던 경험해보지 않은 나라가 어떤 나라이며 약속했던 인사 5대 원칙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대통령의 고유함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 하면서 말한다. 과거와 결별하려면 먼저 내 과거와 결별해야 하듯이 적폐 청산도 내 안의 적폐를 먼저 청산해야 한다고. 저자의 <나는 5.18을 왜곡한다>라는 글이 발표되고 나서 논란의 중심에 서야 했던 때를 돌아보면서 자신의 글이 오히려 왜곡 해석되는 현실에 분노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는 세계 모든 나라가 놀랄 정도로 눈부신 초고속 성장을 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 드리워진 어둠은 매우 짙다. 나라의 모든 정책과 노선이 전쟁으로 황폐해진 나라의 재건과 성장에 맞춰져 있다 보니 인권이나 참된 민주화에 대한 의식은 그에 비해 성장하지 못했다. 이미 예전에 폐기했어야 할 낡은 프레임을 갖고 목청 높이는 정치세력이야말로 자기 탈피를 못하는 사람이라며 꼬집는다.



문제 없는 부부도 없고, 문제 없는 국가도 없다. 문제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미래적으로 풀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다루는 능력이다. 모든 발전은 문제를 해결해가는 노력의 결과다. -175.



목차에 상관없이 매일 조금씩 끌리는 대목부터 읽어나갔다. 뒤표지의 철학자가 낱낱이 짚어낸 대한민국의 문제라는 문구처럼 저자의 예리하고 날카로운 시선이 잘 드러나는 책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저자의 책을 꾸준히 읽어온 나로선 솔직히 아쉬운 마음도 없지 않다. 진정한 민주화를 쟁취하고 다음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오히려 정쟁에 휘말려 있는 상황이 저자는 매우 답답했던 듯하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일개 전업주부인 나조차 지금의 우리 정치를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왠지 고개를 젓게 된다. ‘어느 진영도 미래를 말하는 능력이 없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저자의 생각이 미래인가?



새로워져야 할 때 새로워지지 않으면 현재 가지고 있는 새로움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급속하게 더 낡아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 239.



내겐 말을 지지리도 안 듣는 중학생 아들이 있다. 온라인 수업에 농땡이를 치고 시험을 곱게 말아먹는 아들을 보면 난 답답하기만 하다. 아들 인생이니 내비둬,하고 싶지만 아들의 미래가 어떨지 경험상 그려지기 때문에 자꾸만 다그치게 된다. 중학생을 거쳐온 선배로서 조언과 충고를 한다. 하지만 아들은 나의 모든 얘기가 그저 지겨운 잔소리에 불과하다.



난 저자의 글이 잔소리로 취급되지 않았으면 한다. 온라인에서 검색만 하면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정치논평에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자면 글에 가득한 흥분을 가라앉혀야 한다. 철학자의 냉철함으로 짧으면서도 핵심을 꿰뚫는 단 하나의 화살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각각의 글마다 발표된 시점을 수록하는 것이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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