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선생의 지도로 읽는 세계사 : 서양 편 - 지리로 ‘역사 아는 척하기’ 시리즈
한영준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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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4,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수도에 미사일 공격과 지상군을 투입하면서 침공을 가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를 추구한다면서 이에 만약 다른 나라가 간섭할 경우 즉각 보복할 것이며 특히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인 나토에 가입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마치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군사시설을 다수 파괴했고 그로 인해 수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거나 고향을 떠나는 것을 보면서 전세계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과 비서방국가 간이 다시 신냉전을 벌이는 계기가 되었으며 두 나라의 지정학적인 갈등이 주변 국가로 연쇄적인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먼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으로 치부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보니 궁금해졌다. 우크라이나는 어떤 나라인가. 러시아는 왜 우크라이나에 침공을 가하는 결정을 내렸을까.



 

나의 궁금증을 간단하게 풀어준 이가 있었는데 바로 [두선생의 역사공장]이라는 유투브 영상이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지도상의 위치를 시작으로 지리적 여건과 환경이 어떠한지 그로 인해 어떤 점에서 차이점을 드러낼 수 밖에 없었는지 설명해주었다. 마치 학창시절 선생님의 열정적인 수업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역사를 공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번거롭더라도 일일이 지도를 찾아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었다.

 



얼마전에 출간된 <두선생의 지도로 읽는 세계사, 서양편>은 부제가 인상적이다. [지리로 역사를 아는 척하기시리즈], 두선생의 역사공장 유투브를 접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아마 이이런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지리로 역사를 아는 척 하는 게 가능하냐고. 역사 지식이 아니라 그저 아는 척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은 다섯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먼저 중동을 시작으로 유럽, 미국, 중남미를 거쳐 아프리카로 마무리하고 있는데 각 챕터마다 해당 지역의 자연지리와 역사, 인문지리에 대해 풀어낸 다음 챕터 정리로 한 번 더 짚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중동편에서 가장 먼저 언급하는 것이 왜 중동으로 불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것인데 유럽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용어라고 한다. 중동 대신 메나’ ‘남아시아와 아프리카로 부르자는 주장도 있을만큼 이 지역은 지리적 위치나 민족 구성, 종교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고 그만큼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중동에 속하는 각 국가의 지리적인 여건을 짚은 다음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중동의 여러 나라가 왜 끊이지 않는 충돌을 일으키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예전에 종교에 대한 책에서 종교로 인한 중동 국가 간의 첨예한 갈등을 알게 됐는데 지도가 더해져서 시각적으로 접하니 이전보다 더 이해하기가 수월했다.



 

지구는 크게 육지와 바다로 나뉜다. 그리고 육지는 강과 호수, 평야와 산맥, 사막 등 지역마다 다른 환경을 갖고 있는데 여기에 인간이란 요소가 더해지면서 더욱 복잡한 상황이 빚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역사인데 그 출발이 바로 지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리를 아는 것만으로 모든 역사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학창시절 닥치고 암기하는 과목으로 여겼던 역사를 지리적인 면을 살펴보면 그 속에 숨겨진 과거의 사람들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연결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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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누구니 - 젓가락의 문화유전자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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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잘못해도 서툴러도 밥 잘 먹어요.󰁗

그러나 주위 사람 내가 밥 먹을 때

한 마디씩 하죠. 너 밥상에 불만 있냐. ♫ ♪


 

DJ. DOC의 이 노래가 나왔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성인이 된 후에는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식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마다 주눅 들곤 했다. 나의 서툰 젓가락질을 흉보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서.



 

가장 긴장됐던 순간은 결혼 전 신랑집에 인사하러 갔을 때였다. 어르신께서 형식이나 격식을 따지지 않고 소탈하다고 신랑이 귀뜸해줬지만 그래도 혹 실수를 하진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정말 다행인 건 신랑이 어르신께 내가 채식을 한다는 걸 미리 얘기해두었는지 식탁에 내가 꺼리는 음식은 없었다. 익숙하고 친숙한 반찬 덕분에 편안한 마음으로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어머님께서 한마디 하셨다. “된장국에 넣은 멸치도 고기라고 안 먹었네?” 허걱....ㅠㅠ


 


아이를 기르면서도 아이가 혹 나의 젓가락질을 보고 배우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식사 때 아이 맞은편 자리에 늘 신랑을 앉혔던 것도 아이의 시선이 나의 손에 머물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나름 선방한 것 같지만 종종 의문이 들었다. 대체 젓가락이 뭐길래, 그저 식사할 때 쓰는 도구 중 하나인 젓가락 때문에 이렇게 애를 태울 필요가 있나 싶어서.



 

작고 둥근 푸른 공 같은 지구를 젓가락이 집고 있는 모습에 쿡 웃음이 터졌다. X자로 교차된 젓가락이 꼭 나의 젓가락질을 보는 것 같아서. 표지 그림 덕분에 <너 누구니>가 담고 있는 얘기가 무엇일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리고 더욱더 궁금해졌다. ‘젓가락에 대해 할 말이 얼마나 될까젓가락에 대해 무슨 얘길 하길래 책 한 권이 출간되었을까




궁금증에 책을 펼쳤는데 저자는 도리어 수수께끼로 맞받아치고 있다. 깊은밤 옛날얘기해 달라며 몰려온 손자손녀들을 대하듯 꼬부랑 이야기 열두 고개(수저 고개, 짝꿍 고개, 가락 고개, 밥상 고개, 사이 고개, 막대기 고개, 엄지 고개, 쌀밥 고개, 밈 고개, 저맹 고개, 분디나무 고개, 생명축제 고개)로 이끌고 있다.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 꼬부랑 넘어가는 것처럼 흥겹게 나서보자.



젓가락은 옛날 유물이 아닙니다지금도 끼니때 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용하는 물건입니다신기하지 않습니까천 년 동안 내려온 젓가락과 젓가락질그 속에 한국인의 마음과 생활의식이 화석처럼 찍혀 있다면그것은 어떤 고전보다도 더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줄 것입니다. - 13~14.

 

 

책은 모두 12개의 장(고개), 각 장마다 두세 개의 꼬부랑길로 이뤄져 있는데 본문의 형식이 독특하다. 소주제마다 그에 관련 내용을 길게 서술하는, 기존의 책에서 접할 수 있는 형식이 아니라 10줄 내외의 짤막한 글에 번호를 달아 놓았는데 마치 수수께끼의 힌트 같은 느낌이 든다. 언제 어느 때든 심지어 어느 부분을 펼쳐 읽어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데 짧은 내용은 기억하기에도 용이해서 누군가와 대화할 때 한두 가지 꺼내어 말문을 여는데 활용하기 제격이다.


 


젓가락을 사용하는 한중일 3국 중에서 쇠젓가락은 한국인만 쓴다는 거 알아? 그래서 수저라는 개념도 일본이나 중국에는 없다지 뭐야.”라고 한다거나 일본에는 부부 젓가락 세트가 있는데 색깔과 길이를 다르게 만든 젓가락인데 셋트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고 해심지어 1억짜리고 있다던데상상이 돼?” “거기다 일본은 가족 간에도 젓가락을 따로 쓴대그래서 일회용 젓가락 와리바시가 나오게 되었다는데중국은 완전 반대래자기 젓가락을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걸 허용하는데 친밀함을 표시하기 위해서라고 하네.” 부모의 경제력이 아이의 대학진학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하잖아. 근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수저계급론기준표까지 있다고 하더라구. 놀랍지?” 







우리는 몇천 년 동안 사용해왔고지금도 매일 젓가락으로 식사를 한다그런데도 왜 우리는 왜 젓가락 행진곡이 작곡된 것처럼젓가락을 문화로 만들지 못했을까엉뚱하게 젓가락질도 못 하는 서양 사람이 만든 찹스틱 왈츠라는 곡을그걸 어쩌다 우리가 치고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젓가락 문화권에서 젓가락 왈츠 같은 음악이 작곡되지 않은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이것도 등잔밑이 어둡다고 하면서 그냥 지나칠 것인가. - 47.

 


 

젓가락에 대한 흥미롭고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많았다. 젓가락의 출발은 뜨거운 음식을 먹기 위해서인데. 음식이 식지 않게 계속 끓였고 배고플 때 허겁지겁 먹다가 자꾸 화상을 입으니까 손가락을 보호하기 위해 젓가락을 쓰게 되었단다. 그리고 유인원과 인간은 닮은꼴이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DNA가 아니라 손을 이루고 있는 뼈와 힘줄, 근육이라고 한다. 특히 엄지손가락이 나머지 네 손가락과 마주 보는 위치에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바로 그 점이 인류문명을 일으키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젓가락질을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그 버릇이 평생을 간다면서 이렇게 덧붙여놓았다. ‘막 젓가락질하는 사람치고 막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213)’ 충격이다. 지금이라도 젓가락질을 다시 배워야하는 걸까 고민이 된다.

 


알고 보면 쓸모 있고 신기한 젓가락에 대한 이야기, 일명 알쓸신젓이라고 할까? 일상 속의 소소한 것에 숨겨진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이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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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을 놓치지 마 - 꿈과 삶을 그린 우리 그림 보물 상자
이종수 지음 / 학고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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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을 놓치지 마>는 제목만으로 무엇을 다루었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책이다. 노란색 표지에 금박의 선이 서로 교차한 모양이 마치 사진찍기 전에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구도를 가늠해보는 것 같다. 함께 삶을 일궈가는 사랑하는 가족의 순간을, 일상에서 놓치기 싫은 기억하고 싶은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남기는데 대체 책은 어떤 것을 놓치면 안된다고 말하려는 것일까. ‘꿈과 삶을 그린 우리 그림 보물 상자라는 부제와 표지의 동양화의 일부가 이 책의 내용을 짐작해볼 수 있는 유일한 힌트인 셈이랄까.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놓치지 말아야 할 순간이 있다. 화가에게도 붓을 들어야 할 순간이 있듯이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은가. () 지금 내 마음 두드리는 그림 한 점 있다면 첫걸음이 되기 충분하다. 보물찾기를 시작해보자. 이 봄 지나기 전에 길을 나서보는 거다. 이 순간을 놓치지 마. 당신의 보물이 기다리고 있다. - 10


 

어떤 그림을 좋아하세요?” 사람들은 저자에게 자주 묻는다고 했다. 그 질문에 저자는 고심했던 것 같다. 수많은 그림 중에서 어떤 그림이 좋은 그림일까. 이에 저자는 우리 나라의 보물을 떠올린다. 다만 2,643점의 국보와 보물 가운데 그림은 303점에 불과하다고 한다.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림을 비단이나 종이에 그리기 때문에 훼손되기 쉽다고 하지만 그렇다해도 겨우 이 정도인가. 놀랐다.


 

국문학과 미술사학을 공부한 저자는 보물로 지정된 그림 중에서 22, 보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역사적 가치나 작품의 의미에 있어 꼭 알아두어야 할 그림 4점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 그림을 이야기한다. 이상, 현실, 역사, 보물 아닌 보물로 나누었는데 각각의 꼭지 제목만 보면 어떤 그림을 다루고 있는지 몇 개를 제외하고는 예상하기 어렵다. 저자가 소개한 그림에는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 접한 그림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낯선 그림이 더 많았다. 거기다 풍경화는 왜 그리도 다 비슷하게 보이는지. 이 모든 게 그림에 대한 지식이 짧기 때문일거라 생각하니 저자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졌다.


 

짬짬이 책의 순서와 상관없이 끌리는 대목부터 읽어나갔는데 책장을 덮고도 특히 기억에 남는 그림이 있다. 우선 가장 먼저 소개된 김홍도의 [마상청앵도]. 말을 타고 가던 선비가 고개를 돌려 나뭇가지에 시선이 머무는 장면을 그린 그림인데, 저자는 화가가 자신의 봄을 그림 속 주인공에게 투영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선비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나무 위의 꾀꼬리일까, 흩날리는 버들잎이었을까.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 봄날 나는 어땠는가. 바삐 길을 가다가도 걸음을 멈추고 깊어가는 봄을 마주했는가.


 

병아리를 낚아챈 고양이를 잡으려는 소동을 그린 김득신의 [야묘도추]. 고양이가 자신의 새끼를 잡아가서 당황한 어미닭과 당돌한 고양이를 한 대 후려치기 위해 담뱃대를 휘젓는 사내, 그 뒤의 여인. 이들의 모습을 잘 포착한 그림이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저자의 설명에 찬찬히, 때로는 그림을 부분적으로 살펴보니 이전에 미처 몰랐던 부분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똑같은 그림책을 매일 질리지도 않고 읽어달라고 하는 이유가 읽을때마다 그림에서 새로운 걸 느끼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나도 그랬다.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고양이가 어미닭이 방심한 순간, 병아리를 입에 물자 고양이를 쫓으려는 사내와 여인의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느낌이랄까. 18세기 말~19세기 초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조선판 슬랩스틱 코미디를 본 것 같았다.


 

그리고 [곤여만국전도]. 이탈리아 출신의 가톨릭 사제 마테오 리치가 제작한 [곤여만국전도]는 당시로선 최신의 정보를 반영한 세계지도다. 하지만 이 지도의 가장 큰 의미는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뒤흔들었다는 데 있다. 조선에선 숙종 때인 1708, 중국 원본을 모사해 지도를 제작했는데 이 지도의 이본은 화재로 소실되고 현재 국내에 존재하는 [곤여만국전도]는 서울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것이 유일하다고 한다. 가로 531cm, 세로 172cm 8폭 병풍 속에 세계의 모든 나라를 담아낸 지도에는 이국적이고 희귀한 동물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본문에 수록된 사진은 낡고 상태가 좋지 못해 어떤 지도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몇 년 전 화재로 소실된 [곤여만국전도]가 복원작업을 마치고 봉선사로 돌아갔다고 하는데 그 사진을 함께 곁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복원된 곤여만국전도를 바라보고 있는 월운 스님 (출처: 경기일보)]

 


마음을 둔 것에는 시선이 오래도록 머문다. 가슴에 담아둔 것은 시간이 흘러도 그 가치나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나는 어떠했나 돌아보게 된다.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본 나의 시선에, 마음에, 가슴에 꼭꼭 눌러 담아둔 것은 과연 무엇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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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좌파생활 - 우리, 좌파 합시다!
우석훈 지음 / 오픈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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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의 고1 때다. 학부모총회가 있다고 해서 부지런히 학교 강당에 도착하니 너무 이른 시간인지 아무도 없었다. 기다리면서 책을 읽으려고 편한 자리를 골라 앉았다. 책을 읽는 동안 주변이 조금씩 웅성거리기 시작하더니 이어 국민의례가 있겠습니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서둘러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총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검은색 옷을 입고 있는 거였다. 총회에 드레스 코드라도 있었나? 당황해서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대박, 총회 온 사람들 옷이 전부 블랙, 나만 빨강” “괘안음. 왼쪽에만 안 앉으면” “왼쪽? ?” “그럼 좌빨이잖아” “, 나 젤 왼쪽줄에 앉았는데?” “ㅋㅋ 완전 좌빨 인증이네우연히 왼쪽에, 우연히 나 홀로 빨간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본의 아니게 완전 좌빨이 되어 버린 그 날, 생각했다. ‘좌빨? 내가? 그래서, 뭐 어쩌라고!’

 


좌파’, ‘우파’. 도대체, 언제부터, 나뉘게 되었을까. 정치가 좌우파로 나뉘게 된 것은 1789년 프랑스 혁명 때였다. 혁명 중 소집된 국민의회에서 의장석을 중심으로 당시 다른 주장을 하는 세력들이 좌우로 앉았는데 이때 온건 개혁세력이 오른쪽에, 급진 개혁세력이 왼쪽에 앉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좌우파는 이념이나 계급에 대한 개념이 아니다. 사회파 내부에 도 좌파와 우파가 있고 부르주아 진영에도 좌파와 우파가 있다. 결국 좌우는 어떤 사안에 대한 태도와 관련된 개념이라는 것이다.

 


붉은 장식선과 커다란 붉은 글씨로 가득한 <슬기로운 좌파 생활>은 제목에 이어 우리, 좌파합시다!’란 부제에까지 좌파를 강조하고 있다. 대놓고 좌파에 대해 이야기하겠다고 공표한 느낌이랄까? 아니나다를까 페미냐?”는 질문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좌파인데요.”

 


좌파! 그래, 빨갱이다. 평등주의자, 이갈리테리언이다, () 이갈리테리언, ‘모든 사람들은 동등하게 중요하며, 삶에 있어서 같은 권리와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나는 좌파로서, 이갈리테리언으로서, 남녀평등 정도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나의 믿음이다. 좌파에게 남녀평등은 기본이다. - 10

 


이어 저자는 진보, 보수를 말한다. ‘보수가 자본주의를 지키고 좌파가 그 자본주의의 문제를 공격하는 것이 좌파인데, ‘보수에 대한 반대에서 출발한 것이 진보라고. 흔히 좌파는 진보, 우파는 보수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다. 그런가 싶다가도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나와 같은 독자를 염두한 것인지 진보/보수, 좌파/우파, 이 네 개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고르게 된다고 하지만 선명하게 와닿지 않는다. 사안에 따라 각자 자신이 무엇을 것을 추구하고 가장 우선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깊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고 나면 자신의 성향이 어떤지 실감하겠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정치와 손잡은 언론의 왜곡된 프레임에 갇혀 오랫동안 살아온 영향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일제강점기 시절 총독부에서 하는 일에 거부하는 것이 나라 구하는 방법이라고 여겼던 것처럼, 정부 여당에 반대하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고 믿는 20대가 점점 늘어날 것이다. - 36.


 

한국에서 좌파가 사라지면 은밀한 토건과 음습한 거래에서 진보와 보수가 대동단결하는 지점이 너무 많아진다. - 40.


 

저자는 한국의 좌파는 현재도 소수에 불과한데 앞으로 더 줄어들어 멸종될 가능성도 높다. 특히 20대 좌파의 심각성을 본문 곳곳에 강조하고 있다. 저자의 우려와 걱정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론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좌파의 자리가 절대적인 고정석인가? 그저 왼쪽에 앉아서 좌파가 된 것이다. 즉 인간은 누구나 동등하고 평등하기에 남녀를, 세대를 갈라 서로를 향해 맹렬히 비난을 쏟아내는 현실에서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세력이 좌파일텐데, 그렇다면 좌파, 우파는 상대적인 것이다. 즉 어느 시대, 어느 세대에서도 좌파는 존재한다.

 


디바이드 앤 룰’, 영국이 인도를 통치할 때 인도 국민끼리 서로 분리시켜서 자기들끼리 싸우게 했던 대표적 식민지 통치 방식이다. 한국의 군사 정권도 이런 방식을 사용했다. 경상도와 전라도에 차별을 두는 것은 야비한 방식이지만, 독재 시대에는 총독부 시절부터 익숙한 장치들이 한국에서도 사용되었다. - 56

 


게다가 한국의 좌파는 진보와 분리된 길을 걸어갈 거라니 그게 가능하기는 한가? 우리나라의 모든 좌파들이 저자처럼 자신이 좌파라는 걸 밝히지 않고 살아가고 그래서 어떤 정당이나 시민단체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일상 속에서 생활 좌파로만 살아갈 거라고 하는데. 좌파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삶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 정치든 시민단체든 어떤 형식으로든 나서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어떻게 확신하는 거지? 저자가 주장하는 논리적 추론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 않나 싶다. 또한 대선 후보경선 과정에서 민주당의 결선투표를 언급하고 있는데 저자가 과연 민주당의 해당 당규를 확인하기는 했을까? 의문이 든다. 저자가 주장하는 논리적 추론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 않나 싶다.

 


이 새로운 시대에 좌파는 어떻게 태어날까? <자본론>1876,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자본주의 공업 시대가 완전히 자리를 잡으며 그 모순이 첨예화되던 순간에 탄생했다. 한국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디지털의 전면화가 유토피아를 열어주는 것만은 아니다. 크고 작은 문제가 계속해서 만들어질 것이다. 어쩌면 다음의 <자본론>은 텍스트로 된 책이 아니라 메타버스 안에서 카피레프트 공동체가 만들어낸 작은 약속의 형태가 될 수도 있다. - 212

 


대학입학 이후 줄곧 좌파로 살았다는 저자는 좌파는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한국의 좌파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사실 엄혹한 군사정권 아래에선 좌파는 입에 담기도, 가까이해서도 안 되는 단어였지만 21세기에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좌파냐, 우파냐 선을 긋고 구분하기보다 우선 지금 우리 앞에 놓여진 상황, 여건, 사안을 하나하나 곱씹어보는 시간을 가져봐야 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가 과연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 다음 결정하면 된다. 어떤 방식으로든 자리에서 떨치고 일어나서 행동을 하거나 아니면 생활 좌파로 남거나.

 


그럼에도 한국에 좌파들은 여전히 등장한다, 누가 그들을 이끌고 지도할까? 그런 건 없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하자고 해서 하는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 모순, 특히 한국 자본주의 모순 속에서 튀어나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참지만, 참기 싫은 사람들도 등장하기 마련이다. - 297.

 


때론 한 장의 사진이 모든 걸 말해준다. 5년 전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토론회에서 장애학생 부모들이 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 앞에 무릎을 꿇고 읍소했던 모습이 SNS로 퍼지면서 사회에 특수학교 설립의 필요성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다행히 해당 특수학교는 2020년에 개교했다) 최근 가장 인상적인 사진은 자신들의 이동권을 보장해달라며 지하철에서 시위를 하는 장애인의 모습이었다. 혼잡한 지하철에서 시위를 한다며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었고 곧 집권당이 될 국민의힘 당대표는 오히려 경찰개입을 주문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들과 함께 연대하겠다는 시민들이 부쩍 늘었다는 보도를 접했다. 만약 이런 상황을 내가 마주했다면 어땠을까. 나의 불편함을 피력할 것인가 우리 사회가 정의롭게 나아갈 수 있도록 움직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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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필로소피 - 아침을 바꾸는 철학자의 질문
라이언 홀리데이.스티븐 핸슬먼 지음, 장원철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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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이었다. 우연히 접한 계간지에서 서양인문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알게 되어 참가하게 되었다. <일리아스> <오뒷세이아>를 시작으로 제목만 알고 있거나 이름만 익숙한 철학자들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렵지 않게 읽은 책도 있었지만 도무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가늠하지 못해 혼동의 도가니 속을 헤맨 책들도 많았다. 햇수는 착착 진행됐지만 그만큼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철학개념도 쌓여가는 것 같았다. 언제 어느때든 다시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언제나 생각으로 그쳤다.


 

<데일리 필로소피>가 출간되었을 때 반가웠다. 매일 조금씩, 철학의 주요한 문장, 문구를 만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저자인 라이언 홀리데이가 <스토아 수업> <에고라는 적>이라는 책을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사상가라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1년을 3개월씩,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철학자처럼 아침을 시작하는 법, 나를 지키면서도 단단하게 관계 맺기, 지치고 불안한 마음에 용기를 더하는 말들, 매일 저녁 나의 하루를 의미 있게 만드는 질문들) 365일을 날짜별로 철학의 요점이나 명언 등을 선별해서 수록하고 그 아래에 저자가 해당 글에 설명을 더해놓았다. 분량도 하루 한 쪽이어서 읽는데 부담도 없다.


 

작년에 매일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을 읽고 필사했는데 <데일리 필로소피>도 그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데일리 필로소피>만의 독특한 점은 <인생독본>은 톨스토이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선현들의 글을 모아놓았다면 <데일리 필로소피>는 스토아 철학자들의 글, 스토아 학파 사상가들의 정수를 뽑아서 수록해놓았다는 것이다.


 

정념과 감정, 욕망, 욕구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이성을 중시하고 금욕적으로 살면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고 더 나아가 불안이 없는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스토아학파. 그 철학을 평생 일상에서 실천하며 살았던 세네카,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그들이 남긴 말과 글, 철학은 21세기를 살아가는 내게도 깊은 울림으로 남았다.





 

2022년엔 매일 아침 <데일리 필로소피>를 읽고 필사하고 있는데 이 책과의 만남이, 책 속 철학자들이 전하는 질문이 내 삶의 목적을, 방향을 찾아가는데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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