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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글쓰기 - 퓰리처상 수상 작가가 들려주는 글쓰기의 지혜
애니 딜러드 지음, 이미선 옮김 / 공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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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틈만 나면 책을 읽어대는 내게 친정엄마는 이런 얘길 하신다. “맨날천날 책만 읽으면 머하노. 퀴즈프로라도 나가바라. 상금타면 맛있는 거라도 먹어보구로.” 늘 듣는 얘기라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간혹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난 단순히 책 읽는 걸 좋아하는 걸까. 뭔가를 이루기 위해 책을 읽는 걸까. 결론은...난 뭔가를 이루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때의 무언가는 내 글로 탄생한 책을 갖고 싶다는 거다. 그래서 글쓰기에 관한 책이라면 어떤 것이든 찾아서 읽어보지만 아직 이렇다할 책을 만나지 못했다. 이제 글쓰기 책을 그만 읽어도 될 것 같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행동이 따라주지 않는다. 나의 글 역시 쓰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왜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글을 쓸 수 없는 걸까.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애착과 집착의 사이에서 방황할 때 한 권의 책을 만났다. ‘퓰리처상 수상작가가 들려주는 글쓰기의 지혜’란 부제가 달린 <창조적 글쓰기>. 제목의 ‘창조적’이란 단어가 내 눈이 번쩍 떠졌다. 평소에 나 자신이 창의성이나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여겼던 차였다. 이번에야말로 내게 피와 살이 될 책 한 권을 만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저자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라니.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




책은 ‘글쓰기의 미학’ ‘상상력의 에너지’ ‘몰입과 비전’ ‘경계를 넘는 열정’ ‘무한함의 가장자리’ ‘창조성의 탄생’해서 모두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저자는 처음 1장에서 글쓰기란 어떤 것이며 글을 쓸 때 어떤 함정에 빠지기 쉬운지, 유명작가들이 어떻게 글을 써나갔는지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그다음 2장부터는 저자 자신의 얘기를 풀어놓고 있었다. 글쓰기 위해 필요한 공간은 멋진 작업장보다는 사방이 꽉 막힌 작은 공간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자신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겪었던 일, 이를테면 장작을 패면서 경험했던 몰입의 경지, 하나의 사물이나 대상(나방의 날갯짓)에서 새롭게 느꼈던 감동, 그동안 만난 사람들에게서 어떤 영감을 받았으며 그로 인해 자신의 상상력을 어떻게 키울 수 있었는지를 털어놓고 있었다.




160여 쪽의 책을 매일 조금씩 읽었다. <창조적 글쓰기> 이 책을 통해 글 쓰는 일이 얼마만큼의 끈기를 필요로 하는지, 또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는 비참함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삶을 이어가는지 알 수 있었다.  <마의 산>을 쓴 토마스 만은 하루에 매일 한 쪽씩 글을 썼다는 대목은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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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 김열규 교수의 열정적 책 읽기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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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유명작가의 저자 강연회에 다녀왔다. 자신이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언제 하게 됐느냐는 관객의 질문에 우선 집안이 책을 읽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어느 정도였느냐면 6.25때 피난을 가서도 엄마가 장에 갔다가 새로 나온 책이라며 <걸리버 여행기>란 책을 내미셨다는 거다. 그러면서 전쟁이 터져서 피난을 가면서도 인쇄기를 싸 짊어지고 가는 사람도 희한하고 그 책을 사다 주는 사람이나 사다 준다고 또 읽는 사람이나 모두 희한했다며 웃으셨는데 그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너무너무 부러웠다.




<메멘토모리, 죽음을 기억하라>의 저자 김열규 교수의 열정적 책읽기 <독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얼마전의 저자 강연회를 떠올랐다. 지금이야 ‘김.열.규.’란 이름 석자는 국문학과 민속학, 한국학의 석학으로 누구에게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김열규 교수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 책에서는 바로 그 삶의 여정이 담겨있다. 김열규 교수가 오랜 세월 동안 공들여 쌓아온 세계, 책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펼쳐진다.




이 책은 크게 두 개로 나뉜다. 1부는 ‘서書_ 책, 내게로 오다’는 한마디로 저자의 책읽기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바구 떼바구 강떼바구, 옛날, 옛날, 그 옛날에...”로 시작되던 할머니의 옛날이야기가 그에게 듣기의 시작이자 읽기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매일밤 할머니를 스승으로 한 수업, 옛날이야기 몇 개를 번갈아가며 반복하는 일상이었지만 그에게는 모든 것의 출발점이었다. 또 ‘언문제문’을 낮게 읊조리는 어머니의 음성에서 그는 어린 아이임에도 한의 정서를 느끼고 눈을 뜰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한국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는 바로 거기에 있다고 저자는 털어놓고 있다. 낭독을 즐기던 어린 시절을 비롯해 해방과 광복이란  시대적인 큰 변화속에서도 책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그 이후의 한국 현대사 흐름에 그의 책읽기가 어떤 단계를 거쳐갔는지....그의 책과 함께 한 삶이 펼쳐져있다.




2부‘독讀_ 읽기의 소요유(逍遙遊)’에서는 책읽기의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꼼꼼읽기', '클로즈 리딩'이라든가...하는 책읽기의 요령과 ‘속독’으로 책을 읽는 현대인이 무엇을 놓칠 수 있는지, ‘삼단뛰기’와 ‘장애물경주’처럼 읽기에도 비결이 있다고 말하며 읽기의 카타르시스가 무엇인지 하나하나 빠짐없이 읽으면서 재미를 찾으라고 조언을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시나 소설, 논설문을 어떻게 읽고 그 구조는 어떠한지에 대해서도 얘기해놓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 바로 김열규 교수가 자신의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었던 고전을 소개하면서 책을 읽는 누구나 자신에게 삶의 지침이 될 수 있는 책,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는 책을 찾아보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거기에 소개된 책의 목록이 정말 굉장했다. 올해로 희수(喜寿), 77세인 김열규 교수가 평생토록 책을 읽고도 미처 못 읽은 책들이 아쉽고 사무치게 그립다는 대목이 가슴에 찡하게 와닿았다.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나무 앞에 서있는 느낌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 생활자의 수기>, 체호프의 <내기>,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릴케의 <말테의 수기>, 슈테판 츠바이크의 <에라스무스 전기>.




예전에 읽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바람에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 책, 차마 읽을 엄두도 내지 못한 책들을 바라보면서 나 자신에게 세 가지 약속을 했다. 하나, 이 책들을 언제라도 꼭 읽어내자, 그래서 내 것이 되게 만들자고. 둘, 나만의 고전, 내 삶의 나침반이 되어줄 책을 찾아내자고. 그리고 마지막 셋,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읽어주자고. 내 유년시절엔 비록 “옛날 옛날 옛날에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에...”하고 이야기나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아이들에겐 내가 듣기의 시작이자 읽기의 시작이 되어주자고...아이들이 금방 사서 펴든 새 책에서 갓 핀 장미의 향을 맡을 수 있다면 무엇인들 못하랴!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삶의 책 읽기는 농부의 연장과도 같은 것이었다. 삽과 괭이로 농부가 논밭을 갈 듯, 나는 책을 통해 지식의 논을 가꾸고 마음의 밭을 일궜다. - 서문 중에서. ··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시던 할머니의 목소리, 언문제문을 읊조리시던 어머니의 목소리. 그 둘은 나의 첫 고전이자, 영원한 고전이다. 내 귀에 들려오던 그분들의 목소리가 없었다면 내게 글이며, 책이며, 문학은 없었을 것이다. - 17쪽.




읽는다는 것은 '아는 것'도 '아는 짓'도 아니었다. 그건 '되는 것' 이었다. 내가 나 아닌 다른 뭔가가 되는 것, 그렇게 나만의 세상이 만들어지는 걸  실감하곤 했다. - 85쪽.




꽃은 새로울수록 좋고 정은 묵을수록 좋은 것! 책은 양수겸장(兩手兼將)이다. 금방 사서 펴든 새 책에서는, 갓 핀 장미의 향이 난다. 오래오래 읽고 묵힌 책에서는 폴폴 정의 냄새가 끼친다. - 198쪽.




책 읽기와 함께한 지난날을 돌아보니, 그 오랜 자국들이 새삼스럽다. 눈밭에 찍힌 발자국 같아보인다. 이제 눈꽃이라도 필까?...그래도 아쉬움이 있다면, 그건 미처 못 읽은 책들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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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4 2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몽당연필 2008-10-06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보세요. 전 아주 좋았거든요. 제가 워낙 내공이 딸려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좀 지난뒤에 다시 한번 더 읽고 싶은 책이었답니다. ^^
 
이경 고종황제 - 조선의 마지막 승부사
이상각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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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학창시절 국사는 정말 재미없고 골치 아픈 과목 중 하나였다. 중요한 부분, 시험에 반드시 출제되는 부분을 형광펜으로 죽죽 글을 그어가며 달달달 외워야했으니 좋은 기억이 남았을리 없다. 그러다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우연히 참가한 박물관 강좌를 통해 국사에 대한 생각은 180도 방향전환을 했다. 내가 한국인인 이상 우리의 역사를 결코 피해갈 수 없다는 생각, 역사는 단순히 지나온 과거의 기록에 그치지 않고 미래로 끝없이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틈나는대로 역사관련책을 보면서 그동안 지식에 머물러 있던 역사를 우리 조상의 삶으로 내 안에 녹여내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현재와 비교적 가장 가까운 시대인 조선후기 19세기말 무렵의 역사는 이상하게도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내가 오히려 교묘히 피해갔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거다. 우리 민족의 운명이 일본의 제국주의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고 유린되는 고통스런 역사의 현장에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았다. 할 수 있다면 눈을 감고서라도 지나고 싶었다. 그 앞을. 그러나 언제까지 그럴순 없었다. 감았던 눈을 이제 뜨자고, 치가 떨리는 분노와 슬픔에 입술을 깨물게 되더라도 이제는 맞서자고 마음먹는다.




<이산 정조대왕> <이도 세종대왕>을 저술한 저자 이상각의 <이경 고종황제>를 손에 들고 가슴이 두근댔다. <이경 고종황제>란 제목보다 ‘조선의 마지막 승부사’란 부제에 관심이 집중됐다. 쇄국정책을 펼쳤던 흥선대원군의 아들이자 명성황후의 남편으로만 알고 있던 고종. 그 둘 사이에서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했던 유약한 임금으로만 알고 있던 고종에게 혹시나 숨겨진 포커페이스가 있었던 건 아닐까....그의 어떤 새로운 모습을 만나게 될지 기대가 됐다.




이 책은 ‘아버지의 시대’ ‘내가 조선의 주인이다’ ‘끓어오르는 땅’ ‘대한제국의 꿈’ ‘대한독립만세’ 모두 5부로 구성되어 있다. 고종이 어떻게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됐는지 그 과정과 흥선대원군이 어떤 정책을 펼쳐 나갔는지 철저한 쇄국정책을 펴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부터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약관에 접어든 고종은 서서히 정치에 관심을 보이게 되고 명성황후는 ‘조선은 전하의 나라이니 국정을 직접 돌보라’며 수시로 친정을 권유한다. 마침내 고종은 명성황후의 조언대로 친정을 시작하고 흥선대원군은 퇴진한다.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에서 제왕수업을 받지 않은 고종은 정치의 경험도 없었고 지지기반도 없다보니 자연히 명성황후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갑작스런 정책 변화에 국민들은 휘둘리고 내정불안이 계속되는 가운데 조선을 노리는 외세의 야욕은 점차 거세져가고 있었다. 그후 조선은 동학농민전쟁을 비롯한 청일전쟁, 갑오개혁, 명성황후시해, 을미사변, 을미개혁...등으로 이어지는 몰락의 길을 걸어가게 됐는데...




텔레비전 사극을 통해 고집 센 아버지 흥선대원군과 명민한 명성황후에 휘둘리는 나약하고 존재감 없었던 임금 고종, 그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와 편견을 깨트리게 될 것이란 기대가 너무 컸던걸까. 책을 읽고 난 느낌은 한마디로 ‘글쎄올시다...’정도? 이 책을 통해 저자가 과연 얘기하고 싶었던 게 무엇이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저자는 서두에 ‘왜 고종에게 망국의 책임만 추궁하는지, 왜 그의 개혁적인 성과나 반일의지는 외면하고 탐욕하다고만 않는지’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그래서 구한말 고종의 입장에서 시각에서 판단해보려고 노력했다고 하는데 이 책을 통해 고종의 어떤 점을 새롭게 알게 됐는지 모르겠다. 물론 조선을 삼킨 일제r가 고종의 업적이나 치세를 철저하게 왜곡하고 해방한 후에도 그때의 왜곡이 계속된 이유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설명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조선의 26대 임금이자 대한제국의 초대황제인 이경 고종황제, 그의 진면목을 우리는 과연 언제쯤 만날 수 있게 될까.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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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패턴 - 루스 베네딕트 서거 60주년 기념, 새롭게 탄생한 문화인류학의 고전
루스 베네딕트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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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이다. 화제의 책을 소개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국화와 칼>이란 책에 대해 알게 됐다. 국화(평화)와 칼(전쟁)로 상징되는 극단적인 일본문화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고전으로 평가받는 책인데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읽었던 것으로 안다. 나 역시 그 책을 읽고 싶었지만 매번 기회를 놓쳐서 아직도 읽지 못했다. 작가의 이름은 모른채 그저 <국화와 칼>이란 책만 알고 있다가 최근 <문화의 패턴>이란 책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두 책의 저자가 같은 인물, 루스 베네딕트였다. 그것도 매력적인 미모의 여자!!




문화인류학의 입문서로 알려진 이 책은 문화가 우리 인간의 삶과 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려주고 있다. 저자 루스 베네딕트는 문화의 형태와 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세 원시부족을 선정하여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의식과 생활 등 특징을 조사한다. 




먼저 뉴멕시코의 푸에블로 부족, 아메리카 중심부에 살아선지 서구 문명에 가장 잘 알려진 원시부족 중 하나인 그들은 개인보다 철저히 단체를 중시한다. 결혼이나 이혼 같은 문제는 개인이 알아서 처리해야 할 사소한 문제로 치부해버렸고 초자연적인 힘을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든 환각을 경험하면 그것을 죽음의 징조로 받아들였다. 또 모계사회인데다 부부도 규칙에 따라 살기 때문에 여자가 새 남자를 맞아들이려면 남편의 물건을 문턱 위에 올려놓는데 남편은 그 물건 꾸러미를 들고 어머니 집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도부족. 돌이 많고 험준한 화산섬이라 토지가 별로 없고 어업도 하기 힘든 척박한 환경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탓인지 과거엔 식인을 하기도 했다. 부족민의 생명이나 권리를 보호해줄 법은 물론 추장이나 정치조직이 없으며 배신을 밥 먹듯이 하고 서로 적대적이었다. 친밀함의 상징인 결혼도 서로의 적대감을 완화시키지 못하고 장모는 사위가 될 남자를 집에 가두기까지 한다. 또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주술에 의존한다. 주술의 도움이 없으면 작물은 자라지 않고 성욕도 일어나지 않으며 경제적 거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술의 소유권이란 게 있어서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가족 간에 치열한 투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밴쿠버 섬의 콰키우틀족. 해안에 거주하는 그들은 물고기나 바다표범, 고래가 풍부해서 원시부족치고는 많은 재산을 소유한 부족이다. 개인의 재산을 철저히 따져서 상속이 이뤄지고 개인의 능력에 따라 귀족 칭호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자기 우월의식이 지나치게 강해서 주인은 손님 앞에서 자신의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 자랑하면 다음날엔 거꾸로 상대방 손님이 또 더 많은 재산을 탕진하는 식의 경쟁을 일삼는다. 또 결혼을 통해 신분이 높아지기도 하지만 상대방을 죽여서 그의 이름을 비롯한 권리를 얻기도 하는...현재의 상식이나 이성으론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책에는 이 세 원시부족의 특징을 서술하는 중간 중간 디오니소스와 아폴로를 거론하면서 디오니소스적 문화니 디오니소스형 인간 혹은 아폴로적 관습, 아폴로형 인간이란 말을 한다. 그것은 니체의 존재의 가치에 도달하는 두 가지 아주 상반된 방식에 기초를 두고 있다.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 형이 추구하는 감정에 가장 가까운 상태는 환각이나 술 취한 상태인데 그에 비해 아폴로 형의 인간은 그런 도취의 체험을 이해하지 못한다. 항상 중도를 지키며 파괴적인 심리 상태를 멀리한다.




저자가 살펴본 곳 중 아폴로 형에 속하는 부족은 푸에블로 족인데 그 외 대부분의 아메리칸 인디언이나 멕시코의 인디언들은 아주 열정적인 디오니소스적이라는 대목이 있었다. 물론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그 세 부족 모두 상식의 수준을 벗어나 있다. 하지만 아폴로와 디오니소스 적인 면모를 보이는 그 부족의 모습에서  현재 우리들의 모습이 들여다보이는 것 같아 순간순간 당황스러웠다.




<문화의 패턴> 쉽지 않은 책일거라 짐작은 했지만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원시부족 사람들을 연구함으로써 전통적 관습의 영향 아래 개인의 습관이 형성되는 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하지만 20세기 초 지구의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원시부족의 삶은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이 책을 읽고 가장 먼저 ‘문화’가 무슨 뜻인지 찾았다. 문화란 ‘지식·신앙·예술·도덕·법률·관습 등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이며 ‘인류에서만 볼 수 있는 사유(思惟), 행동의 양식(생활방식) 중에서 유전에 의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에 의해서 소속하는 사회(협동을 학습한 사람들의 집단)로부터 습득하고 전달받은 것 전체를 포괄하는 총칭’이라고 되어 있었다. 순간 혹 떼려다 혹 하나 더 붙이고 말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이야!!

 

<문화의 패턴>은 루스 베네딕트의 서거 60주년을 기념해서 출간됐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구촌은 갈수록 점차 가까워지고 세계 각국의 문화를 접할 기회도 그만큼 많아졌다. 낯선 나라의 낯선 문화에 대해 무조건 거부하기 이전에 그들의 역사를 돌아보며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기를 두고 다시 한번 꼼꼼히 꼭꼭 씹어가며 읽어보고 싶다.







베네딕트는 세 부족을 독립된 문화의 패턴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도부 족 같은 의심, 콰키우틀 같은 과시, 주니 족 같은 달관이 현대인에게는 셋이면서 하나로 종합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견해도 있다. 가령, 현대인은 어떤 때는 의심에 빠지고, 어떤 때는 과시를 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달관의 태도를 보이는 그런 모순적인 존재이다. 만약 자신이 의심을 많이 하는 현대인이라고 생각된다면, 베네딕트의 가르침대로(그렇게 의심이 많게 된 것은 본인의 성격이라기보다 문화적 조건화에 의한 것이므로) 본인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은 개인의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의 차원으로 확대되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베네딕트는 주장하고 있다. - 403~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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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선 여행 - 과학의 역사를 따라 걷는 유쾌한 천문학 산책
쳇 레이모 지음, 변용란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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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선여행>은 2003년 가을, 영국 그리니치 왕립 천문대를 방문한 저자 쳇 레이모가 본초 자오선을 따라 떠났던 도보여행의 기록이다.




북위 50도 47분, 경도 0도 0분. 정확히 경도 0도 지점인 그리니치 본초 자오선 바로 위에 선 저자는 본격적인 여행에 앞서 그리니치의 자오선이 국제 표준이 된 과정을 얘기한다. 그전까지 세계 주요 국가들은 제각각 각국의 수도를 기점으로 경도를 측정했기 때문에 통일된 지도나 시간이 없었다.




그러다 1707년 10월, 영국의 실리제도 근처에서 영국 해군 함대가 암초에 부딪혀 배 4척이 침몰하고 2000명 이상의 병사가 목숨을 잃는 사고가 벌어진다. 또 철도와 전신의 보급, 제국의 확대로 인해 유럽에서 미국까지 해저케이블로 불과 몇 초 만에 전보를 보낼 수 있게 되자 표준 경도와 표준시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위도의 경우엔 만장일치로 합의가 이뤄졌지만 문제는 경도였다. 적도의 어느 부분을 경도 0도로 할 것인지, 지도상에 동서의 위치를 표시할 기준점을 어디에 둬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됐다.




그런 가운데 1884년 미국 워싱턴에서 25개국의 대표들이 참석하여 본초 자오선을 결정하는 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세계 지도와 시각을 통일할 경도 기준을 놓고 영국과 프랑스는 팽팽한 경쟁을 벌인다. 특히 프랑스는 “자국의 지도에 ‘그리니치 기준 동경, 서경’이라고 표시하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강경하게 나왔다. 이에 결국 자오선은 표결에 붙여지고 25개 참가국 중 22개국의 동의로 지구의 행성 주민들은 어떤 개인이나 종족, 나라도 특권을 주장할 수 없는 공간과 시간 개념을 향해 첫 걸음을 내딛게 됐다.




영국 남쪽의 바닷가 작은 마을 피치헤이븐에서 출발해서 본초 자오선을 따라 그리니치 천문대를 거쳐 케임브리지까지 영국 남동부 지역을 가로지르는 저자의 여정에는 과학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 유적지가 많았다.




본초 자오선을 따라 걷다가 만나는 작은 마을 ‘필트다운’은 고고학사에서 무척 유명한 곳이다. 사람의 두개골에 인간의 두개골에 유인원의 턱뼈를 갖춘 ‘필트다운인’은 영국 언론을 열광시켰다. 최소한 10만년 이상, 어쩌면 100만년 전의 것일지도 모르는 그것이 인간과 원숭이를 이어주는 잃어버린 고리가 영국에서 발견된 것은 그야말로 빅뉴스였다. 하지만 그것이 사기극이라고 밝혀지면서 ‘필트다운’은 유명한 동시에 수치스런 장소가 되어버렸다.




또 런던의 남쪽 켄트주에 있는 ‘다운’은 찰스 다윈의 집인 ‘다운 하우스’가 있는데 자오선에서 불과 4킬로미터 떨어져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지 칼리지에 있는 아이작 뉴턴의 연구실 역시 자오선에서 그리 멀지 않으며 공룡화석이 발견된 곳으로 알려진 라일리지스 절벽이나 과학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과학자들,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을 비롯해 지질학의 아버지라 불린 찰스 라이엘, 살균의학자 창시자인 조지프 리스터의 무덤이 있는 웨스트민스트 사원도 본초 자오선과 가까이 있었다.




‘과학의 역사를 따라 걷는 유쾌한 천문학 산책’이란 부제가 붙은 <자오선 여행> 영국 남부의 피치헤이븐에서 시작해 본초 자오선을 따라 브라이튼, 필트 다운, 케임브리지 등의 도시를 찾아 걸어다니는 저자의 여행을 통해 우리는 천문학과 지리학, 생물학, 지질학, 물리학과 같은 과학의 역사를 훑어볼 수 있었다. 또 인간과 우주의 관계와 그 속에 숨은 의문들을 풀기 위해 노력했던 과학자들과 수많은 인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소한 곁다리 : 그리 쉽지 않은 책이었지만 본문 중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다. 아이의 그림책 중에 <지구 둘레를 잰 도서관 사서>란 책이 있는데, 내용이 <자오선 여행>과 중복되는 부분이어서 읽을 때 많이 참고가 됐다. 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의 작품 <내 이름은 빨강>이 본문에 잠깐 언급이 되고 있어서 괜히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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