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하위징아
빌렘 오터스페어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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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요즘 우리 집은 ‘둘째 한글 깨치기 대작전’에 들어갔다. 아니,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 듯하다. 내가 어릴적 한글을 수월하게 깨쳤기에 한글을 배우는 건 어렵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큰아이나 작은아이도 모두 한글 깨치는 과정이 힘들었다. 그렇게 책을 많이 읽어주고 또 봤는데도 왜 한글을 모르지? 이러다 입학전에 한글을 깨칠 수 있을까? 나로선 걱정이 되고 의문도 들지만 어쨌든, 둘째는 요즘 한글공부에 여념이 없다. 모국어든 외국어든 언어를 습득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두 아들을 통해 느끼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요한 하위징아>를 보니 이렇게 어렵고 고차원(?)적인 언어를, 십 수 개에 걸쳐 능통한 이가 있다. 2개 국어, 혹은 3개 국어에 능하다는 사람은 곧잘 보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더욱 놀라운 점은 그가 현대의 인물도 아니라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 중반에 세상을 떠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다름아닌 요한 하우징아. 사실 하위징아와는 이번이 지난해에 첫 만남을 가졌다. 그의 책 <중세의 가을>을 보면서 중세의 역사와 문화를 비롯해 동서양의 작품을 넘나들며 거론하는 문학적 비교에 혀를 내둘렀는데 거기에는 언어와 어학에 대한 하위징아의 남다른 재능이 밑바탕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됐다.

 

네덜란드 학자인 저자 빌렘 오터스페어는 서두에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글 읽는 방법을 배운 것은 하위징아로부터였다고. 하위징아와 저자의 인연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10여년 전 저자가 하버드 대학의 교수로 있을 때 했던 강의가 바로 ‘요한 하위징아’에 대한 것이었다고 하니 이 책 <요한 하위징아>의 출간은 저자에게 있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듯하다.

 

책은 하위징아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네덜란드의 엘리트 계급 집안에서 태어난 하위징아는 목사인 할아버지와 생리학 교수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다. 할아버지를 통해 치열하고 엄격한 환경 속에서 자신을 절제하고 관리하는 삶을, 아버지에게서 생명의 기원과 같은 과학적인 진실을 배웠는데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의 이념과 사상은 하위징아로 하여금 종교 대 과학, 감성 대 이성, 공동체 대 개인, 영원과 변화라는 중요한 화두에 몰두하게 만들었고 더 나아가 언어와 역사라는 대조적인 학문에 두각을 드러내게 된다. 그 모든 것이 사상가이면서 역사가이고 문화사를 창시한 요한 하위징아의 밑바탕이었다.

 

<하위징아 읽기(Reading Huizinga)>. 이 책의 원제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요한 하위징아의 ‘작품’이다. 고전작가가 드문 네덜란드에서 요한 하위징아의 작품ㅡ<중세의 가을>, <호모 루덴스>, <에라스뮈스>ㅡ이 지금도 많은 이에게 읽히고 명성이 자자한 이유, 배경은 무엇인지 그가 남긴 훌륭한 작품을 통해 모색해보자는 것이다. 그것도 저자의 시각이 아닌 하위징아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과 철학을 통해서 말이다. 해서 본문 곳곳에는 하위징아의 작품이 자주 언급되는데 특히 <중세의 가을>와 <호모 루덴스>가 눈에 띄었다. 읽기를 중시했던 하위징아가 특히 좋아했던 것은 동화인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부터 두 개의 정반대 개념을 한데 묶어서 ‘모순어법’이라는 서술하는 독특한 글쓰기를 했는데 대조와 대립, 대비를 통한 글쓰기가 가장 잘 드러난 것이 <중세의 가을>이라는 것이다. 대조와 대립이 하위징아의 이념과 사상을 관통하는 핵심이라고 한다면 역사와 문화를 연구함에 있어서 균형과 안정, 조화 역시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는 것을 놀이와 문화와의 관계를 다루었던 <호모 루덴스>를 통해 이야기한다.

 

책을 읽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책을 ‘읽다’는 것은 글을 보고 소리내어, 혹은 눈으로 ‘읽는다’는 것과 함께 글에 담긴 뜻을 ‘헤아려 알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즉 읽었다고 해서 그것을 이해했다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지난해 난 요한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을 과연 읽은 것일까? 의문이 생긴다.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생각이나 의견, 주장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에 대해 동의하거나 비판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솔직히 자신이 없다. 겉으로는 읽었지만 이해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조만간 다시 읽어야겠다. 하위징아가 어떤 삶을 살았고 그것이 그의 글쓰기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으며 어떤 글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알게 되었으니 이번에는 좀 쉽게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열정이 없으면 역사도 없고 따라서 역사 기록도 없다. 하위징아가 보기에 읽어줄 수 없는 역사는 전혀 역사가 아니다. 가독성이란 곧 드라마이고, 드라마는 곧 열정이다. - 170쪽.

 

하위징아는 예술을 인생의 거울이라고 보았다.... 만약 그 둘이 서로 떨어져 있거나, 예술이 삶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면, 그 전망은 왜곡될 것이다. - 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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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하루 - 실록과 사관이 미처 쓰지 못한 비밀의 역사 하루 시리즈
이한우 지음 / 김영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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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결혼기념일을 맞아 남편과 영화 [광해]를 봤습니다. 주연배우가 일인이역을 맡았는데 그 연기가 일품이라는 지인의 얘기에 더 궁금했는데요. 왕권을 둘러싼 권력의 알력과 정쟁이 치열하던 시기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라서 잔인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영화는 저의 예상과 다른 면을 보여주더군요. 자객에 의한 암살을 두려워했던 광해는 자신과 꼭 닮은 대역을 세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펼쳐졌는데요. 두 시간이 넘는 영화에 몰입해서 보고 나오면서 남편은 그랬습니다. “영화, 괜찮네” 영화평이 짜기로 소문난 남편에게서 실로 놀라운 반응이 나왔는데요. 전 주연인 이병헌의 연기도 좋았지만 그보다 주변인물들이 더 인상에 남았습니다. 진짜 왕이 아닌 하선을 보좌하고 지키려 애썼던 도승지 허균과 도부장, 조내관 그들의 진심이 전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짠했습니다.

 

‘실록과 사관이 미처 쓰지 못한 비밀의 역사’라는 부제의 책 <왕의 하루> 출간소식에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영화 [광해] 였습니다. 왕궁의 깊숙한 곳에서 생활하면서 나라를 움직였던 조선의 왕, 그들의 일상이 어떠했을지도 궁금했지만 무엇보다 광해가 집권했을 당시 보름간의 기록이 사라졌다는 대목이 역사적으로도 사실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새벽 4시경, 서른 세 번의 종을 쳐서 파루를 알리면 도성의 문이 열리고 밤 10경 스물여덟 번의 종을 쳐서 인정을 알리면 도성의 문이 닫혔다는 책의 시작 부분, 역시 [광해]를 연상시키더군요. 침전에 든 왕이 일어나는 순간부터 하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왕의 업무를 포함한 일상을 소개해놓았습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 ‘역사를 바꾼 운명의 하루’는 독특하게 시작합니다. 역사적으로 커다란 분기점,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의 왕이 등장해서 자신의 이야기, 억울함을 털어놓으면 그 뒤에 전후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설명해주는 형식입니다. 이를테면 고려의 변방지역 무장에 불과했던 이성계가 위화도회군하여 최영과 정몽주를 제거하고 조선을 세우게 되는 날을 비롯해서 궁궐에서 태어난 첫 번째 원자라는 축복속에 태어난 연산군은 생모가 폐비가 되어 죽음에 이르던 과정을 알게 되고 복수를 행하면서 결국 중종반정을 맞게 되는 왕의 운명을 바뀌게 했던 ‘하루’를 이야기합니다. 2부 ‘군신이 격돌한 전쟁의 하루’에서는 태종 이방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과 책사 한명회를 등에 업은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는 과정처럼 팽팽한 대립과 갈등, 줄다리기가 어떠했는지 전해줍니다. 3부 ‘하루에 담긴 조선 왕의 모든 것’에서는 왕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왕위에 오르는 첫날에서부터 목숨이 다해 임종에 이르기까지 왕에게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에 대해 알려주는데요. 왕의 이름, 묘호에 대한 것에서부터 ‘종’과 ‘조’가 어떻게 다른지, 왕의 결혼식, 왕이 되기 위해 ‘제왕학' 수업을 받는 것 등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합니다. 집권기간 내내 치세를 누리고 문화를 발전시켰던 세종대왕이나 중종과 같은 왕이 좀 더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지금 우리 시대는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변했을까. 상상해보곤 하는데요. 500년의 역사를 지닌 조선과 지금의 시간의 간극이 너무 커서인지 이러이러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나라는 ‘대통령 선거’가 큰 화두가 되었습니다. 어떤 이를 대통령으로 뽑는 것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더 좋은지를 두고 가족들이, 직장동료들이, 친구들이 수시로 토론을 하고 서로의 주장을 내세웠습니다. 신문과 방송 같은 언론 매체에서도 역시 서로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이 암암리에 날선 공방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마음 속에 한 분을 꾹 찍어 두었습니다. 정치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담쌓고 지내는 게 속편하다고 생각하는 일개 주부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그 분이 꼭 대통령이 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결과는 어떻게 됐냐구요? 2012년 12월 19일, 그 날로부터 한동안 전 내내 속으로 눈물을 삼켰습니다. 좀 더 많은 이들이 저와 같은 생각이길 간절히 바랬는데 그것이 통하지 않았던 거지요. 사람들은 그러더군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비슷할 거라고. 누가 대통령 자리에 앉더라도 서민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미련은 버리라고. 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쉬움은 이제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장구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은 왕의 운명의 하루에 대한 이야기 <왕의 하루>의 책장을 덮으면서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더군요. 만약 그들의 하루가 바뀌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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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십대를 위한 철학 교과서, 나 - 청소년, 철학과 사랑에 빠지다 꿈결 청소년 교양서 시리즈 꿈의 비행 3
고규홍 외 지음 / 꿈결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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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 부끄럽습니다만, 학창시절 제가 가장 어려워했던 과목이 뭔지 아십니까? 영어? 수학? 에이, 그건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학생이 어려워한 거고. 공부를 해도해도 알 듯 모를 듯 아리송하고 성적도 안 나오는 과목. 바로 국민윤리였습니다. 이런 말하면 다들 이상하게 쳐다보던데. 사실, 그랬어요. 특히 철학이나 사상에 관한 부분에서는 교과서와 참고서를 아무리 읽어도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요, 학력고사 칠 때 시험과목으로 포함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이제 다시는 철학이 날 괴롭히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그게 아니네요. 시나 소설 같은 문학작품을 읽거나 역사, 경제 같은 인문서적을 읽을 때도 철학이 기본바탕으로 되어 있지 않으면 깊이있는 생각, 사고, 이해는 어렵더군요. 해서 철학에 관한 여러 책을 찾아봤는데요. 예비지식 없이 그때그때 눈에 띄는 책을 무작정 읽다보니 오히려 더 엉킨 기분이 들더군요. 뭔가 체계적인 독서가 필요하다는 걸 느끼던 차에 바로 이 책을 만났습니다. <생각하는 십대를 위한 철학 교과서, 나>입니다.

 

제목의 ‘생각하는 십대’라는 대목이 끌리더군요. 내 나이가 이미 불혹을 한참 넘어섰지만 기본부터 다지려면 십대의 수준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책은 크게 세 개의 장으로 구분됩니다. 1장 [나], 2장 [나와 우리], 3장 [나와 세계]. 세상에 단 하나뿐인 유일한 존재 ‘나’를 시작으로 생각과 사고를 점차 확대해나갈 수 있습니다. 책은 가장 근원적인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바로 ‘나는 누구인가’인데요. 작고한 배우 추송웅님의 모노드라마 [빨간 피터의 고백]의 원작인 카프카의 <학술원에 보내는 보고서>을 바탕으로 인간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집니다. 밀림에서 잡혀온 원숭이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사람처럼 행동하지만 결코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없었다는 것과 인간의 사회화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인간의 행동을 보고 그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 어떻게 판단하는지 인식하는 과정인 ‘도덕’과 ‘윤리’에 대해 살펴보고 사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갈등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정의’에 대해 고민해보기도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왕따당하는 친구를 모른 척해도 될까?’ ‘누가 역사를 만드는가?’처럼 사춘기를 겪는 십대의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하고 고민하는 주제와 질문들을 <학술원에 보내는 보고서> <정의론> <역사란 무엇인가>와 같은 고전을 바탕으로 풀어나가는데요. 책에는 이런 형식으로 모두 열 다섯 개의 철학적인 질문과 정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이야기, 질문이 끝날 때마다 본문에 언급된 책 이외에 참고할만한 책을 소개하고 있어서 생각과 사고를 확장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물음에는 이미 답이 숨어있다고. 물음은 그 자체가 답을 찾기 위한 탐색이라고. 결국 어떤 것이든 물음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하기 이전에 자신에게 어떤 물음을 던지면 될지 끊임없이 고민해보라고 조언하는데요. 비단 십대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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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 - 제왕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정치학 교과서
왕굉빈 해설, 황효순 편역 / 베이직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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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의 나이를 처음엔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나이 한 살 더 먹은 것뿐인데 뭐가 달라질까 했어요. 왜냐면 다른 이들이 공포에 떠는 서른도 전 그냥 무덤덤하게 맞았으니까요. 근데 어우~, 불혹이 되니까 다르긴 다르더군요. (평소 운동량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일단 계절마다 순하게 넘어가는 법이 ‘결코’ 없고 한 번 아프면 일주일은 기본, 열흘을 넘기는 경우가 허다하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생각했지요. 아, 불혹이 되면 병원비가 많이 들어가는구나.


근데 좀 지나보니 그게 전부가 아니더군요. 이전에는 눈여겨보지도 않던 것들에 눈이 가고 관심이 가지고 조금씩 파고드는 것들이 생기게 됐습니다. 이를테면 책을 고를 때 예전에는 어렵고 고리타분하다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철학이나 인문서적의 책장을 뒤적이는, 실로 놀라운 일이 벌어지게 됐지요. 그래서 또 생각했습니다. 아, 불혹이 되니 읽어야할 책, 사야할 책들이 더 많아지는구나.


동양의 고전을 넘어 세계의 고전으로 일컫는 <논어> <노자> <장자>를 읽기 된 것도 모두 불혹에 접어들면서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만난 <한비자>까지.


<한비자>는 정치인이나 전문경영인들이 반드시 읽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비자>를 ‘제왕학’이라고 한다기에 제가 읽을 일은 없을 거라 여겼습니다. 그렇잖아요? 평범한 가정주부가 뭐 하러 그렇게 어렵고 골치 아픈 책을 읽겠어요? 그것 말고도 읽을 책이 얼마나 많은데요. 하지만 복병이 있었습니다. ‘궁금증’이란 이름의 복병이. 도대체 <한비자>가 무엇을 담고 있는 책이기에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군주들이 곁에 두고 있었는지. 21세기 최첨단 현대사회를 이끌어가는 정치인과 경영인들에게 정치철학 교과서가 되었는지. 문득 알고 싶더란 말입니다.


책은 제일 먼저 <한비자>의 저자(책의 양이 방대해서 후대에 글이 추가되었다고 하지만)인 한비의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생애를 이야기합니다. 한나라의 왕족으로 태어났지만 남 앞에 나서기보다 조용히 글을 쓰는 일에 몰두했던 한비. 그가 쓴 글을 읽은 진시황이 한비를 만나기 위해 한나라를 공격해서 그를 대면하게 되는데요. 순자 밑에서 함께 동문수학했던 이사의 시기와 모함으로 한비는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렇게 한비가 죽고 난 후 한나라는 진에 의해 멸망을 맞게 되고 진은 전국시대를 통일하는 최초의 통일제국이 됩니다.


군주를 위해서 쓴 글, 군주를 설득하기 위해서 쓴 글인 <한비자>는 한비의 사상뿐 아니라 그가 영향을 받은 초기 법가사상가인 상앙의 ‘법(法)’, 신도의 ‘세(勢)’, 신불해의 ‘술(術)’의 사상과 주장도 담겨 있는데요. ‘외도내법’ ‘외유음법’이라 하여 겉으로는 도(道)와 유학을 중시하는 듯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법(法)을 강조한 <한비자>는 전국을 통일한 진시황의 강력한 왕권과 통치이념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법은 당시 중국에서 반드시 지켜야하는 것이어서 법가와 관련된 책이나 의학서, 농업 같은 실용서를 제외한 모든 책은 불온하다하여 불태워지고 정치를 비판하는 학자들을 산 채로 파묻는 ‘분서갱유’라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던 거지요.


한비는 여러 면에서 <군주론>의 마키아벨리를 떠올리게 합니다. 우선 그들이 살았던 시대가 혼란한 시대였던 점이나 강력한 군주의 통치기술이나 독재를 주장했다는 것이 비슷한지만 다른 점도 있습니다. 강력한 군주가 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주장이었다면 한비는 오직 법(法)에 의한 통치를 주장함과 동시에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데 필요한 이념과 통치기술까지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책, 55편 20책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한비자>를 500여 쪽의 책 한 권으로 얼마나 이해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엔 무심코 넘겼지만 중반을 넘어서면서 비슷한 내용이 자꾸 반복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오리무중에 빠졌다고 할까요. 뭔가 확실하게 정리가 되지 않는 기분이 들지만 <한비자>를 통해 중국의 고대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 유익했습니다. 오랜 불경기로 갈수록 삶은 팍팍해지고 특히 대선을 코앞에 둔 요즘이이서 <한비자>는 더욱 의미있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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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 - 세계적인 인문학자가 밝히는 서구문화의 근원 10 그레이트 이펙트 2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김헌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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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신들이 지배하던 시대. 트로이를 두고 수많은 전쟁영웅들로 장기판을 벌이며 신화가 된 여자들의 이야기’로 문을 연 웹툰이 있다. 웹툰을 시작하기에 앞서 작가는 이렇게 밝혔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재해석했지만 원작과는 다른 이야기라고. 하지만 트로이의 왕녀 카산드라와 그리스의 헬레네의 관점에서 트로이 전쟁을 풀어낸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헥토르와 아킬레우스, 오디세우스, 아가멤논...과 같은 영웅들의 등장을 보고 있노라면 ‘원작과는 다른 이야기’라고 하나 파격적이면서도 논리적인 전개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원작과는 다른 이야기’에 오히려 원작인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궁금해졌다.


사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 대한 관심은 오래 됐다. 책이나 영화에서 두 권의 책이 언급될 때마다 ‘읽어야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 덤벼들수는 없는 법. 평소 책에 있어서만큼은 장르도, 계통도, 기초도 깡그리 무시하고 용감무쌍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지성인이라면, 교양을 위해 반드시 읽어야 될 고전]이라는 말에 무작정 시도했다가 도중에 포기하고 덮어버린 책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데...’라는 생각이 늘 앞을 가로막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이기만 한 게 언제인지... 


알베르토 망구엘. 얼마전 출간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란 책의 저자가 그가 아니었다면 아마 이번에도 시도하지 않았으리라. 책에 관한 엄청난 내공을 지닌 독서가이자 작가, 비평가, 번역가인 그의 책 <책 읽는 사람들>을 틈틈이 읽고 있는 중이어서 그가 전하는 서구문화의 근원이 되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책은 대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저자이자 시각장애인, 음유시인으로 알려진 호메로스. 그가 정말 실존하는 인물인지, 의문을 갖는 것으로 시작된다. 우리의 구비문학의 대부분이 작자미상인 경우가 많은 것처럼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역시 오랜 세월 전해져오면서 원래의 이야기에 여러 가지로 추가되거나 삭제되었으리라는 것이다. 때문에 호메로스가 한 명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짚어준다. 각각 24권으로 이뤄진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간단한 줄거리를 소개한 다음 호메로스의 출생과 삶에 대해 남아있는 기록을 바탕으로 추적해 가는데 헤로도토스(?)의 <호메로스의 생애>를 통해 호메로스가 트로이아 전쟁이 끝나고 168년 후에 태어났다고 전한다. 또 호메로스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같은 철학자와 기독교, 이슬람교에 어떤 영양을 주었는지 살펴본다. 이후 저자는 호메로스가 단테의 <신곡>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의  괴테, 20세기 최고의 소설로 일컫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수학자이자 작가인 루이스 캐럴이 아이들을 위해 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지금도 많은 아이들이 좋아해서 그저 ‘동화’로, 아동문학의 최고 고전 중의 하나로 알고 있지만 그 텍스트를 파고 들어가면 동화나 고전 그 이상의 내용이 담겨있다고 한다. 그런 것처럼 고대 그리스의 눈먼 시인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납치하는 것으로 시작된 트로이와 그리스 연합군 간의 전쟁을 다룬 <일리아스>와 오디세우스가 트로이를 공략한 후 귀국하기까지 십 년에 걸친 바다에서의 모험 이야기 <오디세이아>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고 있을 뿐 문화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재탄생되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시작된 책읽기가 결코 쉽지 않은, 더 큰 숙제를 떠안게 되었지만 그래도 의미있는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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