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유산 -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마흔다섯 가지 힘
KBS 한국의 유산 제작팀 지음 / 상상너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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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텔레비전 방송으로 제작됐던 프로그램이 책으로 출간되는 경우를 자주 만난다. 평소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나로선 모르고 지나쳤던 좋은 프로그램, 특히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만날 수 있으니 이 이상 반가울 수 없다. 책에서 받은 느낌에 따라 인터넷으로 해당 프로그램을 찾아보기도 하고 그냥 책을 읽은 것에서 그치기도 한다.




이번에 만난 <한국의 유산>도 텔레비전으로 방송되었던 프로그램이다. [한국의 유산]이라는 방송시간 1분 정도의 짧은 다큐멘터리라고 한다. 순간, 의문이 들었다. 겨우 1분. 시계 초침이 한 바퀴 도는 그 짧은 시간동안 도대체 무엇이 담겼길래 이렇게 책으로도 출간된 걸까. 책장을 펼치기도 전에 궁금증이 밀려왔다. 그 앞에서 더 이상 ‘책부터 읽는’ 방식을 고수할 수가 없었다. 책에 첨부된 DVD를 컴퓨터에 넣고 작동시켰다.




두 둥! 어디선가 바람이 밀려왔다. 두 둥! 힘찬 북소리가 내 가슴에 울린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마흔다섯 가시 힘’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의 유산>은 우리의 수많은 유산 중에서 아름다운 전통문화와 정신, 선조들의 빛나는 지혜를 느낄 수 있는 유산들을 소개하고 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한국의 기록유산’에서는 올해 들어 천 년을 맞이한 [팔만대장경]을 비롯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보관중인 것을 우리의 역사학자가 발견해 얼마 전 우리나라에 대여 형식으로 반환된 [직지심체요철], 우리 선조들의 천문학적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천상분야열차지도], 우리나라 최초의 요리책이자 세계 최초로 채소를 온실에서 재배한 기록인 [산가요록],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사라질 위험에 놓였지만 두 선비가 혼신의 힘을 다해 지켜낸 [조선왕조실록], 일제 식민통치하에서 독일로 반출되었다가 우리의 신부에 의해 발견되어 우리나라로 돌아온 [겸재 정선 화첩] 등에 대해 알려준다. 2부 ‘한국의 인물유산’에서는 우리 역사에서 위대한 인물로 손꼽히는 이순신을 비롯해 제국주의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독립투사 안중근과 그런 아들에게 손수 지은 수의와 함께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의연하게 버려라’는 편지를 보낸 글을 어머니, 한국전쟁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은 수많은 병사와 그들의 편지는 가슴 저리게 다가왔다. 마지막 3부 ‘한국의 문화유산’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사냥법의 하나이자 유네스코에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매사냥]과 둥근 달을 바라보며 손을 잡고 둥글게 돌아가며 춤을 추면서 화합과 소통을 나누는 종합예술 [강강술래], 큰아이의 역사만화에서 봤던 [칠지도]를 비롯해서 우리가 이미 오래 전부터 세계와 교류한 것을 알 수 있는 여러 문화유산들을 만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마흔다섯 가시 힘’. 사실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들고 내일을 밝혀줄 힘이 어디 마흔다섯 가지뿐이겠는가. 하지만 그 마흔다섯 가지 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역시 일본에 빼앗긴 우리의 [조선왕실의궤]와 중국에서의 독립운동 중 남겼다는 [제시의 일기]였다. 힘없는 나라의 설움, 아픔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유산 앞에서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들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음을 잊지 말자.




두 둥! 두 둥! 거센 북소리가 내 가슴을 울렸다. 두 둥! 두 둥! 잊고 살았던 우리 민족의 혼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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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의 발견 - 내 안에 잠재된 기질.성격.재능에 관한 비밀
제롬 케이건 지음, 김병화 옮김 / 시공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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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알 수가 없어!

요즘 큰 아이를 볼 때마다 내 머릿속에선 이런 말풍선이 뜬다.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지만 참 모를 일일세.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내 아이에 대해 알지 못하는 건 사실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 ‘알지 못함’을 ‘남자와 여자의 뇌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이해했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뭔가가 더 있었다. 의문을 갖게 된 계기를 말하자면. 큰아이는 로봇을 좋아한다. 국내의 여러 로봇대회에 참가하고 있지만 그리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엄마의 마음으로는 조금이라도 승부욕을 가졌으면 하지만 아이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얼마전 시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래로 가장 충격적인 성적을 받아왔기에 학교를 찾았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내버려두기엔 5학년이란 학년의 무게가 만만찮았다. 방학동안 무엇을 보충하면 좋을지 여쭤보고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았다. 거기서 또다시 충격을 받았다. “○○는 시험에 연연하지 않는 것 같아요”하며 선생님께서 내미신 시험지에는 학반번호와 이름 외에는 어떤 표시도 없었다. 답은 답지에 적었다 치더라도 보는 순간 “헉!” 외마디 비명이 터졌다. 아니, 얘가 왜 이럴까? 초등학교 성적이 아무리 중요하지 않다고 해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내가 아이를 잘못 기른 걸까? 내가 알지 못하는 내 아이에 대해 알고 싶었다.




‘내 안에 잠재된 기질. 성격. 재능에 대한 비밀’이란 부제의 <성격의 발견>은 한마디로 성격에 대한 책이다. 우리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을 취하게 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지 또 그로 인해 나타난 결과를 통해 무엇을 알 수 있는지 알려준다. 또한 사람마다 다른 기질이 어떻게 나타나게 되는지,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지 아니면 부모의 양육에 의해 만들어지는지 알아보고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기질은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보여준다.




아이의 기질과 성격에 대해 흥미로운 실험이 있었다. 생후 첫 3년 동안의 반응이 성인이 되어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떻게 드러나는지 보여주는데 놀라웠다. 소심하고 수줍음이 많은 아이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의존적인 성향이 강하고 어려운 도전이다 위험한 취미를 즐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직업도 교사나 학문을 탐구하는 길을 택했다. 반면에 생후 첫 3년 동안 가장 겁이 없었던 대담한 아이들은 직업도 불확실한, 대담한, 위험한 도전이 따르는 분야를 선택했다고 한다. 생후 16주의 아기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도 인상적이었다. 아기가 낯선 환경에 놓였을 때 보이는 반응과 성장한 이후의 성격을 알아보는 거였는데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며 반응을 보인 아이는 자란 뒤에도 낯선 방이나 환경에 소심하고 불안한 모습을 보였고 옹알이를 하며 조용히 있던 아이들은 느긋한 성격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임신과 출산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도 이후 아이의 성격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특히 임신 중에 독감에 걸린 산모가 낳은 아기는 나중에 정신분열증에 걸릴 위험이 더 높다고 한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어땠더라?’ 돌아보곤 했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를 비롯해서 아이가 어렸을 때 어떤 걸 좋아했고 무엇을 즐겼는지 자꾸자꾸 떠올려보게 됐다. 그러면서 때론 마음이 무거웠고 때론 위로를 받았다. 아이의 기질은 어떤 특정한 심리적인 특징을 발전시키는 하나의 가능성일 뿐, 어른이 되었을 때의 기질적 특성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타고 난 기질이나 성격도 후천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과 능력 면에서 볼 때 여자에 비해 남자가 능력을 발휘하는데 있어서 기복이 더 심하다는 거였다.




오늘, 이웃 블로그를 방문했다가 이런 글을 봤다. ‘좋아하는 것 자체가 능력’이라고. ‘어쩌면 평생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할 꿈. 그걸 발견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해줘야 하지 않을까’라고.




쉽지 않은 책을 어렵사리 읽었지만 솔직히 아직도 내 아이가 어떤 기질을 지녔는지 어떤 성격인지 알지 못한다. 초반엔 ‘생후 첫 3년이 지났는데 어쩌지?’ 걱정에 고민도 됐지만 조금씩 털어내려고 한다. 내 아이가 어린만큼 가꾸고 다듬고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 역시 많다고 생각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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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 개항부터 해방 후까지 역사를 응시한 결정적 그림으로, 마침내 우리 근대를 만나다!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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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와 안중근이 서로에게 총을 들이댈 뻔하다’

며칠전 인터넷으로 이런 기사를 봤다. 너무나 놀라운 이야기여서 그 내막을 알아보니 이러했다. 김구와 안중근이 애국운동가라는 점에서 큰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신분은 달랐다. 서민출신이었던 김구가 구한말 서민중심의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했다면 양반가문의 아들이었던 안중근은 동학군을 진압하는 민병대활동을 했다. 즉, 친서민 대 반서민으로 맞서게 된 것. 흥미로운 건 동학운동 당시 이 두 사람이 같은 현장에 있었다는 점이다. 가까운 거리에서 대치하다가 그대로 격돌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김구와 안중근 부대의 정면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이 김구에게 서로의 부대만큼은 싸우지 말자는 비밀협정을 제시했다는데, 그때 만약 그들간에 비밀협정이 없었다면, 그대로 격돌했다면 우리 역사는 어땠을까? 어쩌면 지금과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역사를 좋아하면서도 구한말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극히 적다. (내 기억력의 한계인지 모르겠지만) 학창시절 수업시간에도 우리의 근대사에 대해서는 그다지 자세한 언급이 없었던 것 같다. 몇 백 년 전도 아니고 시기적으로 지금의 우리와 가장 가까운 때인데 왜일까 궁금했다. 그러다 지난해 가을 도서관에서 부산의 역사를 답사와 함께 돌아보는 강좌에 참여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반만년이라는 기나긴 역사에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36년간의 일제식민 통치하에 있으면서 우리의 많은 것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을 보면서 내가 알지 못했던 우리 역사의 일부분을 만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국의 화가의 눈에 비친 [서울 풍경]을 통해 막  근대에 접어든 모습과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보여주면서 저자는 당시 우리의 궁에 왕조차 머물 수 없어서 빈 궁궐로 남아야했던 경복궁의 아픈 과거를 전해준다. 또한 우리의 근대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대해서 당시의 의거를 신문은 어떻게 보도했는지 알려준다. 학창시절 교과서에 그림으로 수록됐던 당시의 의거를 이탈리아 신문의 삽화와 일본 신문의 흑백도판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독립 전에는 시신을 옮기지 마라. 대한독립의 소리가 들려오면 천국에서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라던 안중근 의사가 유언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확한 무덤자리를 찾을 수 없어 유해를 발굴하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과 함께. 한강과 대동강을 오가며 대규모의 운송을 담당했던 황포돛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는데 [노을 속의 황포돛대]는 정말이지 너무나 아름다웠다. 절경 그 자체였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광복 후 서울의 모습을 담은 그림 [서울 풍경]이었다. 휴버트 보스의 [서울 풍경(1898)]에는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던 광화문이 박득순의 [서울 풍경(1949)]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이유는 일제가 조선총독부 건물을 광화문이 가린다며 옮겨버렸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놀라우면서도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었고 당시 일제의 탄압이 어떠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저자는 모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모국의 그림을 모으다 어느새 한국의 근대에 관한 각종 자료들을 수집하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모은 자료를 정리하고 수정 보완해서 출간되기까지 꼬박 4년이 걸려 완성된 책이 바로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이다. 사실 그림이 그린 이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도 있고 관심도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다. 때문에 개항해서부터 해방 후까지 당시 우리의 역사가 어떠했는지 그림으로 모든 것을 알아내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 우리의 과거이기에 그 간극을 메우는 것 역시 우리의 몫일 것이다. 오늘의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 의해 그림이나 사진으로 남아 역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당연하면서도 왠지 마음이 무겁고 한편으론 아찔하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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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교는 불행한가 - 전 거창고 교장 전성은, 대한민국 교육을 말하다 전 거창고 교장 전성은 교육 3부작 시리즈 1
전성은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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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큰아이가 입학하던 무렵이 생각난다. 걷는 것에서 뛰고 말하는 것까지 또래보다 느렸던 큰아이. 걸핏하면 아파서 병원 신세를 졌기에 이 아이가 제대로 자랄 수나 있을까? 걱정했는데. 그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는 건 내게 대단히 큰 사건(?) 아니, 성과였다. 학교에서 친절한 선생님과 다정한 친구들을 만나 매일매일 공부도 배우고 친구들과 우정을 쌓으며 즐겁게 생활할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아이는 갈수록 학교에 흥미를 잃어갔다. 이미 다 알고 가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할까봐 선행학습은커녕 한글을 기초만 깨치고 입학했다. 그런데도 아이는 수업에 재미나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아이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은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거리가 되고 말았다. 더욱 놀라운 건 그것이 비단 내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충격이었다. 아이들이. 왜? 학교를 싫어할까. 다른 곳도 아니고 초등학교가 왜 이렇게 살벌한 현장으로 변해버린 것일까.




깨어진 유리, 어두컴컴한 실내, 삭막한 분위기. <왜 학교는 불행한가> 표지를 보는 순간 호러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성인인 내가 봐도 들어가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표지가 현재 학교의 모습,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었을 거라는 건 안다. 하지만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에 알고 싶었다. 왜, 무엇 때문에 우리의 학교가 불행한지.




전 거창고의 교장을 지냈던 저자 전성은은 <왜 학교는 불행한가>를 통해 우리 학교 교육의 현실과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은 크게 ‘학교란 무엇인가’ ‘학교교육의 목적’ ‘평화를 위한 학교교육 제도’ ‘교사의 길, 학생의 길’ 이렇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먼저 학교가 어떻게 해서 생기고 어떤 과정으로 성장하게 됐는지 학교의 기원과 역사로 말문을 연 저자는 학교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짚어주는데 정말 놀랍다. 애초에 학교가 생기게 된 것이 바로 국가를 위해, 국가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즉,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만든 곳이 학교이고 교육이지 인간을 더 인간답고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탄생한 게 아니라는 거다. 학교의 탄생과 교육의 목적에서부터 이미 완전히 상식을 벗어난 셈이다. 결국 아이들은 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흔히 말하는 일류대학에 가기 위해 친구와의 즐거운 놀이도 반납하고 밤잠을 줄여가며 공부공부 또 공부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학부모와 교사, 정부의 교육정책이 변해야 한다고.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하면 문제의 해결은 더욱 멀어진다고. 내가 자주 방문하는 블로그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지금의 우리 교육현실이 ‘달리는 기차를 이길 수 있다고 믿고 아이들이 기차 앞에서 선로를 열심히 달리고 있’는 격이라고. 문제는 기차와 아이들의 간격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소름끼치는 현실이다. 아이들의 다양한 개성과 소질을 인정하고 개개인의 다름 또한 인정하는 교육, 그것이 이뤄지는 현장이 학교이기를 소망한다.




학교는 보다 자유롭고 평등하며,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재능과 관심을 최대한도로 발휘하고 즐기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곳이어야 한다. 국가는 사회의 상식에 맞서 학교가 그러한 곳이 되도록 돕는 일을 해야 한다. - 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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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으로 산다는 것 - 플러스 에디션
김혜남 지음 / 걷는나무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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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가 있었습니다. 어리다는 이유로 제약이 따르고 공부가 힘겹게만 느껴질 때. 얼른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나이만큼 먹는다는 동지팥죽 새알심을 너무 많이 먹어서 탈이 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이기도 했었지요. 하지만 성인이 되고 결혼해서 아이 둘을 키우는 지금은, 막상 어른이 되고 나니 도리어 ‘어른’이기에 감당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힘겹습니다. 나이할 수만 있다면 나를 옥죄고 있는 모든 것들을 벗어던지고 싶은,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시간이 흘러 일정 수준의 나이가 되면 누구나 다 어른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나보다 많은 나이에도 철없는 행동을 일삼는 이가 있는가하면 훨씬 적은 나이인데도 성숙한 이가 있습니다. 도대체 ‘어른’이란 게 무얼까요? ‘다 자란 사람’ 혹은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전적인 의미 외에 또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았어요. 궁금했습니다.




예전에 지인에게서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란 책에 대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서른 살의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상황과 그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심리적인 변화를 인식하고 자신의 상처를 돌아보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했는데요. 당시 이미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긴 시점이라 그 책이 그다지 끌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어요. <어른으로 산다는 것>이란 제목에서부터 무언가 묵직한 것이 가슴을 누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어른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먼저 ‘나잇값’을 꺼냅니다. 어른이기에 짊어져야할 몫이 있고 책임이 있어서 그 기대치에 못 미칠 경우 “나잇값 좀 해라” “나잇값도 못한다?”는 말을 하게 된다고. 그러면서 의문을 던지지요. 도대체 어른이라는 게 무엇이길래 어른에게 이토록 많은 것을 기대하고 짐을 지우는 것인가. ‘바로 이거다!’라고 명확하게 답을 내릴 순 없지만 저자는 그것이 결코 감당키 어려운 짐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누구나 때가 되면 스스로 짐을 들게 될 때 그때야말로 진정한 자유가 찾아온다고. 자신의 인생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다고 말입니다.




어른이 되기를 두려워하는, 언제나 아이로 머물고 싶어 하는 ‘피터팬 신드롬’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피터 팬]의 저자 제임스 배리가 어린 시절 형의 죽음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슬픔과 상처, 경험이 그로 하여금 스스로 어른이 되기를 거부했다는 건데요. 피터 팬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사랑받는 존재이긴 하지만 그것이 성인의 경우, 상황에 따라 심각하게 돌아봐야 된다면서 몇 가지의 경우를 짚어주고 있습니다. 또 성장이란 친숙했던 것들과 이별하고 소중했던 것들을 떠나보내는 것이고 고통스러운 일이어서 ‘모든 성장에는 성장통이 따른다’면서 성장통을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후반부 ‘부모와 관련한 대목이었어요. 두 아이, 그것도 아들만 둘인 저는 매일 전쟁을 치르는 기분인데요. 저자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미움이라는 감정이 붙어있을 수 없다고 하면서 그 이유를 몇 가지 소개했습니다. '아이는 엄마의 사생활을 방해한다. 아이는 무자비하며, 엄마를 마치 무보수의 하녀나 노예, 하층민처럼 취급한다...등’ 어쩜 그리도 꼭 들어맞는지 순간 무릎을 쳤는데요. 여기서의 핵심은 하나였습니다. 아이는 부모가 아니라는 것. 모든 부모가 아이의 수호천사가 되기를 자청하지만 그럴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된다는 것. 부모이기에 갖는 불안감을 버리고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도록 존중해주라는 거였는데요. 이미 아는 내용이었지만 제겐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어른이니까, 엄마이니까 이래야 한다는 생각, 그 자체가 고정관념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거품처럼 잔뜩 부풀려졌던 부담감을 덜어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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