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묻고 노벨 경제학자가 답하다
한순구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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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어렵다.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적지도 않은 경제학 관련 책을 읽으면서 내린 결론, 물론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다. 해서 제목에 ‘경제학’이란 단어가 들어간 책을 보면 고개는 절레절레, 손을 휘휘 내젓곤 한다. ‘이제부터는 경제학의 ‘기역 자’도 안 볼거야’ 다짐하지만 호기심이 가고 흥미로워 보이는 책은 일단 봐야 하는 나의 치명적인 약점 때문에 이 결심은 오래 가지 못한다. 왜냐면 궁금한 마음에 덮어놓고 덤벼들었다가 책장을 넘기면서 머리에 쥐가 난다며 비명을 지를 때도 있지만 간혹 책의 내용을 그런대로 수월하게 이해하는 의외의 경우도 있기 때문에 경제학과의 인연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것이다.


이 책 <대한민국이 묻고 노벨 경제학자가 답하다>도 한참 고민했다. 내 머리에 한 무리의 쥐가 총출동할 것인지, 아니면 오호, 그렇군 하고 무릎을 치게 할 책인지 쉽게 판단이 서질 않았다. 이럴 땐 어쩔 수 없다. 어떤 내용이 수록됐는지 목차를 훑어보며 추측해보는 수밖에. 그랬더니 이 책은 전자보다는 후자의 경우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왜 사람들은 국민의 이익에 해를 끼치는 정치인에게 표를 던질까?’ ‘더 많은 지지층을 가진 후보가 선거에서 패배하는 이유는?’ ‘청년 실업이 심각한데 어째서 기업은 사람이 없다고 할까?’... 질문과 답변으로 진행되는 책에 언뜻 이런 내용이 보였다. 정치나 사회적인 이슈가 어째서 이 책에? 이런 것들이 과연 경제학으로 설명이 될까? 순식간에 호기심이 급발동, 자, 출동~!


저자인 한순구 교수는 서두에 현재 우리나라가 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 복잡한 사회현상들을 이해하고 해결하려면 경제학적인 접근방법을 필요하다고 말한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세계의 석학들에게 해결방안을 물어보겠다. 자신이 그 사이 중간자의 역할을 맡겠노라고. 그렇게해서 탄생한 책이 <대한민국이 묻고 노벨 경제학자가 답하다>이다.


책을 펼치자마자 내가 가장 궁금했던 부분,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부분부터 하나씩 읽어나갔다. ‘왜 사람들은 국민의 이익에 해를 끼치는 정치인에게 표를 던질까?’에서는 국민들이 잘못된 정치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민주주의 정치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국회에서 어떤 법안이나 정책이 결정될 때 그로 인해 이익을 보는 집단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고 그 외 다수가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수가 손해를 보는 금액이 아주 적기 때문에 굳이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정책에 반대하거나 항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이런 현상이 정치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나 학교 어디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니. 저자는 말한다. ‘정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보면 정치인의 ‘선심 정치’는 언제나 옳은 결과만을 가져오지 않는다면서 일본의 작은 마을에 막대한 예산을 들여 신칸센 역이 들어오게 된 과정을 설명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다나카가 계속해서 선거에서 승리해 16번이나 의원에서 선출되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가 정계에서 은퇴한 뒤에는 장녀인 다나카 마키코가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다섯 차례나 의원에 선출되고 장관까지 역임했다. 비난 받아 마땅한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는 그와 자녀에게까지 자신의 표를 던져 뽑아주었다. - 21쪽.


‘더 많은 지지층을 가진 후보가 선거에서 패배하는 이유?’에서는 투표제도가 갖고 있는 딜레마를 짚어본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엇갈린 의견이 나올 때 사용하는 방법인 투표제도. 그런데 그 투표제도에 모순이 있다면? 저자는 많은 투표방식 중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당선되는 방식인 단순 다수결 제도는 후보가 단 두 명뿐인 경우에 가장 적합한 제도라고 말하면서 세 명 이상의 후보 중에서 한 명을 선출해야 하는 투표에는 단순 다수결 제도가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따라서 단순히 가장 좋아하는 후보만 표시할 것이 아니라 두 번째, 세 번째 좋아하는 후보까지 표시하는 방식을 제안하면서 완벽하게 이상적인 투표방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대한민국이 버리고, 고치고, 다시 생각해야 할 것들!’이라는 부제로 대한민국이 현재 안고 있는 금융위기, 노후대책, 물가정책, 청년실업, 빈곤의 악순환 등 모두 21개의 문제점들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는지 노벨 경제학자의 답변을 들었다. 워낙 경제학에 무지하기에 그들의 이야기가 때로는 어렵고 까다로웠지만 그래도 읽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학은 단순히 학문의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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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 제주도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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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뜨거운 햇살이 어느새 조금 누그러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 제 가슴에도  조금씩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어딜 봐도 비슷비슷한 모양의 아파트로 사방이 틀어 막힌 곳을 벗어나고 싶다. 어디론가 가고 싶다는 건데요. 그렇다면 대체 어디로 갈 것인가? 전 단박에 말합니다. “제주도!”라고.


그럼 제주도를 아직 못 가봤느냐? 사실 그렇지도 않습니다. 대학시절 전공 때문에 저희 과는 해마다 채집여행을 가는데 제주도도 그렇게 채집여행으로 갔습니다. 제주도를 간다고 저나 친구들은 잔뜩 들떠있었지만 막상 저희들이 향한 곳은 제주판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는 ‘썩은 섬’에서 내내 조개와 새우, 게, 가재를 채집했구요. 한라산에 오를 때도 저희에게 내려진 지시는 ‘제주의 식물분포와 생태 관찰’이었습니다. 결국 제주도를 갔지만 갔다고 볼 수도 없는 애매모호한 상황이 되어 버린지라 언제든 제주도를 가서 제대로 둘러보고 말거라고 다짐을 했는데요. 안타깝게도 그때의 다짐을 아직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답니다.


최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권, 제주편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왠지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곳곳을 살펴보고 그 의미와 아름다움을 되새기는 계기를 심어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시리즈가 출간될 때마다 매번 챙겨서 보곤 했는데요. 이번이 ‘제주도’라니.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습니다. 제주도를 관광명소를 소개하는 숱한 여행서와는 분명 뭔가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서두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 책은 ‘제주 허씨’를 위한 ‘제주학’ 안내서라고. 렌터카를 이용해 제주도를 자유롭게 여행하기 위해 여행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제주도의 제대로 된 역사와 자연, 문화유산을 전하기 위해 이 책을 지었노라고.


제주답사 일번지, 와흘 본향당을 시작된 책은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제주공항의 가로수로 심은 나무이야기를 비롯해서 산천단에서 제를 올리며 답사의 마음을 다지는 것. 특히 제주 여인들의 영혼의 동사무소에 해당하는 ‘본향당’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소지(흰 백지)를 가슴에 품고 소원을 빌면 그것을 제주의 신 ‘할망’이 읽어본다는 대목은 독특하면서도 감동스러워서 언제든 제주에 오면 잊지 않고 꼭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주하면 빼놓을 수 없는 아픈 역사, ‘4. 3사건’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고 이야기합니다. ‘4. 3 사건’에 대해 아는 것이 적었기에 책이 전하는 이야기는 실로 충격적이었구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많이 남아있다니 안타까움이 밀려왔습니다.


제주도의 모든 것은 제게 낯설면서도 친근했습니다. 자신의 진짜 살붙이에게만 ‘삼촌’이라고 부르고 그외 남을 부를 때는 모두 ‘삼춘’이라고 한다는 명칭이 그러했고 제주도 특유의 언어가 살아있는 명칭과 이름들은 책을 소리내어 읽을 때 입에 착 달라붙지 않아 더듬거리곤 했지만 그마저도 자잘한 재미로 다가왔습니다.


불혹을 넘어 지천명에 가까워지는 나이가 되도록 제주도를 돌아보지 않았다는 것에 사실 부끄러울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권 제주편,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을 만나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제주도의 유명관광지를 둘러보기 이전에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알 수 있어서, 그런 기회를 갖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어찌 보면 다시없는 행운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결심만이 남았습니다. 언제 제주도로 향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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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기억, 지도 - KBS 특집 다큐멘터리 지도에 새겨진 2,000년 문명의 기억을 따라가다
KBS <문명의 기억, 지도> 제작팀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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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 부끄럽지만 난 길치에 방향치다. 이전에 갔던 곳이라고 해서 쉽게 찾아가는 일은 지극히 드물다. 지인들은 나의 이런 치명적인 결함을 잘 알고 있기에 내가 낯선 장소에 가야 할 일이 생기면 약도와 함께 ‘지하철 몇 번 출구로 나와서 어느 방향으로 몇 블록을 지나서 어떤 건물(1층에 무엇이 있는지까지)’이라고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설명해준다. 상세한 안내 덕분에, 운이 좋아서 단 한 번에 찾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적지 주위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한참동안 방황한 적도 숱하게 많다. 기다리다 지쳐서 어떨 때는 지인이 나를 데리러 나오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른다.


<문명의 기억, 지도>라는 책을 보았을 때 의문이 들었다. 사실 지도라면 어떤 지역이나 나라를 모습이나 여러 사항들을 평면적인 그림으로 나타낸, 단순한 기호이자 표시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상의 것, 인류의 ‘문명’을 담아냈다니.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쉽게 상상이 되질 않았다. ‘지도에 새겨진 2,000년 문명의 기억을 따라가다’라는 부제가 달린 <문명의 기억, 지도>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던 것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책은 크게 ‘달의 산’ ‘프롤레마이오스’ ‘프레스터 존’ ‘지도전쟁’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고대부터 중세, 근세, 근현대를 대표하는 지도를 통해 당시 세계의 모습과 상황, 주변국과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살펴보고 있다.


본문에서 가장 먼저 소개되고 있는 것은 바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지도라서 시험에 꼭 나올 거라고 외우는데 이름이 난해하다며 투덜댔던 적이 있는데 이렇게 다시 보게 되다니. 그것도 아프리카 남단의 탐험이 이뤄지기 이전에 아프리카 대륙을 그려 넣었다니 놀라웠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지도의 정확함이다. 나일 강이 두 개의 물줄기로 흐른다는 것에서부터 그 발원지로 알려진 ‘달의 산’을 지도에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산꼭대기가 만년설로 덮여있어 달처럼 하얗게 빛난다고 붙여진 이름 ‘달의 산’을 동양의 작은 나라 조선이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그것을 밝히기 위해 조선이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그리기 위해 중국으로부터 지도를 입수했던 경로와 그 주변 국가의 당시 상황을 짚어보는데 몽골을 비롯해서 아랍, 지중해로 추적해간 끝에 ‘달의 산’이란 이름이 2,000년 전 고대 그리스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밝혀내기에 이른다. 놀라움을 넘어서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봤을 때 지도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축적, 나라의 크기나 배치, 비율이 전혀 맞지 않아서 왠지 엉성하게 보였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탄생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상상 그 이상. 인류의 문명이 어떻게 탄생하고 다른 나라로 전파되어 가는지 느껴볼 수 있었다.


이외에도 서양지도로는 최초로 중국이 그려진 [프롤레마이오스 세계지도]를 비롯해서 12장의 양피지에 로마의 길을 그려넣은 [포이팅거 지도], [카탈루냐 지도], [이드리시 지도], [대명혼일도] 등을 소개하면서 한 장의 지도로 인해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그것이 인류의 역사와 문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하나하나 전해준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현대에 있어서의 지도의 의미, 한 장의 지도가 갖는 힘이 어느 정도이며 지도를 연구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네덜란드와 일본, 아메리카 원주민의 구술지도를 통해 강조하고 있다. 지도는 그것 자체로 바로 하나의 권력이자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무기라는 것을. 그리고 말한다. 지도는 박제된 과거의 그림이 아니라고. ‘그 속에는 ‘인류의 오랜 상상력과 호기심, 한 시대의 가치관과 철학, 종교와 문화, 그리고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살아서 꿈틀대고 있다.(17쪽)’고.


어제와 오늘, 약속 장소를 향하면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지도를 검색하는 거였다. 단순히 점과 선으로 이뤄졌던 지도는 점차 입체적으로 바뀌어 이제는 위성과 도시 곳곳에 설치된 CCTV를 통해 현장의 모습까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나처럼 지리에 약한 사람들에게 참 편리하겠다고 생각했던 지도. 이 시대의 지도를 미래의 인류는 과연 어떻게 기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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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치고 배우고 익혀라 - 시대의 지성 16인의 터닝포인트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이종탁 지음 / 휴먼큐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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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에서는 채식주의지만 책에 대해서는 잡식성입니다. 어떤 저자나 분야에 대해 편견이 없는 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손이 가지 않는 책이 있는데요. 경제나 정치에 관한 책이나 저명인사의 자서전 성격을 띤 인터뷰 글은 기본지식이 없어 이해하기 어렵고 까다롭다는 생각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접하는 기회가 적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읽은 책 <훔치고 배우고 익혀라>는 달랐어요. 지금껏 저의 책읽기 패턴에 의하면 분명 제외되었을 책인데도 <훔치고 배우고 익혀라>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문재인과 안철수, 조국, 박경철, 박원순, 조정래...등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인물들. 그들에 대해 알고 싶다는 마음이 불끈 일었습니다.


‘시대의 지성 16인의 터닝포인트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라는 부제의 <훔치고 배우고 익혀라>는 한마디로 말하면 인터뷰집입니다. 신문사의 사회부기자로 출발해서 이제 출판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오늘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 크게 부각되고 있는 인물들을 만나고 인터뷰를 하는데요. 2009년에서 2011년까지 진행한 인터뷰 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내용을 좀 더 보강하여 출간된 책에는 문재인을 시작으로 박경철, 이지성, 박노자, 안철수, 조국, 고승덕, 한승헌, 박원순, 윤무부, 이길여, 이세돌, 조정래, 강준만, 송창식, 정두언에 이르기까지 모두 16명의 인물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모두 이 시대의 지성으로 이름난 이들,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을 이룬 이들인데요. 저자는 그들의 ‘성공담’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삶을 살다보면 승승장구할 때가 있는 가하면 때론 실패하고 고난을 겪기도 하는데 이것은 어느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죠. 다만 성공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자신에게 다가온 기회, 터닝포인트를 어떻게 포착하고 발전을 시키느냐가 문제인데요. 저자는 바로 그 ‘터닝포인트’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정치와 무관한 삶을 살고 싶었지만 노무현 재단의 일을 하면서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인의 자리에 오른 문재인은 학창시절 ‘문제아’로 통했지만 입대 후 공수부대 생활을 하면서 도전을 즐기게 됐다고 하고 의사이면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박경철은 인문학에 대한 열망을 경제학 공부를 통해 여러 학문이 융합되는 경험을 했는데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던 것이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꿈꾸는 다락방>을 비롯해 <리딩으로 리딩하라>는 책의 저자 이지성은 언뜻 다치바나 다카시를 떠올리게 했구요. 하나의 문장을 쓸 때도 평균 세 번씩 생각하고 쓴다는 조정래의 글쓰기는 저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행운의 여신은 앞머리만 있고 뒷머리가 없다'는 속담이 생각납니다. 행운의 여신이 자신에게 다가왔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아야지 뒷모습을 보이고 떠나갈 때는 아무리 잡으려고 애를 써도 되지 않는다는 얘긴데요. 처음엔 이 얘기를 기회를 잘 포착하라는 정도로 여겼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다가온 기회,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면 언제 어느 때라도 전력질수에 임할 수 있는 자세와 그만큼의 노력, 열정이 필요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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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살고 싶은 집은 - 건축가 이일훈과 국어선생 송승훈이 e메일로 지은 집, 잔서완석루
이일훈.송승훈 지음, 신승은 그림, 진효숙 사진 / 서해문집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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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독특하고 재밌게 생긴 책장이네. 멋지다. <제가 살고 싶은 집은...>의 표지를 보는 순간 단박에 반해 버렸습니다. 가구공장에서 일률적으로 제작한 5단 책장이 아니라 우리집 방과 거실의 높이, 폭에 꼭 맞는 책장. 그것도 기왕이면 많은 책을 꽂을 수 있도록 최소한 6단 책장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라고 늘 노래 부르곤 했는데. 폭이 넓은 복도의 양옆을 칸의 위치가 일정하지 않은, 마치 계단처럼 생긴 자그마치 7단 책장이 떡하니 제 눈앞에 나타나니.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습니다.


표지가 책장과 서재의 모습인데다가 ‘제가 살고 싶은 집은...’이라는 제목과 ‘어떤 집을 짓고 싶으세요?’라는 문구에서 이 책은 ‘그래, 바로 서재에 관한 책’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제 예상과 다를 수도 있다고 조금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e-메일로 지은 집’ 이게 대체 어떤 의미인지 아리송했거든요. e-메일로 집을 짓다니. 대체 무슨 의미지?


그런데요. 제 예상이 빗나갔다는 걸 알아채는 데엔 결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초반 몇 장을 넘기니 바로 드러나더군요. 함께 집을 짓고 싶다는 국어교사 송승훈의 제안에 건축가 이일훈이 어떤 집을 꿈꾸는지,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지 서로 질문하고 답변을 주고받은 기록, 그것도 e-메일로 의한 책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새로 지을 집을 구상하기 전에 집주인이 갖는 꿈을 글로 써보라는 건축가의 제안에 ‘구름배 같은 집’이었으면 좋겠다면서 집의 요소요소에 대한 생각, 을 조목조목 늘어놓는 건축주. 집을 짓는 건축자재를 논할 때도 하나하나 꼼꼼하게 비교하고 논의하고 자료를 첨부하는 건축주와 건축가.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하면서 일을 진행시켜나가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2005년 8월 23일부터 2007년 12월 30일까지. 건축주 송승훈과 건축가 이일훈은 메일을 주고 받았는데요. 손 글씨로 쓴 편지가 아니라 e-메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다른 이의 사생활이 담긴 글이어서 처음엔 금지된 것을 몰래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주고받는 메일이 쌓일수록 이건 단순한 글이 아니라 현재 ‘집’에 살고 있고 이후 언제라도 ‘집’을 지을 이들이라면 꼭 한번 고민해봐야 할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서재가 갖는 의미, 공부를 하는 장소이므로 너무 편한 것보다 다소 긴장감이 드는, 어찌 보면 불편할 수도 있는 장치들을 해달라는 대목은 책을 대하는 마음자세를 돌아보게 했는데요. 그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집이 바로 ‘잔서완석루’, ‘낡은 책이 있는 거친 돌집’입니다.


이 책의 공저자인 이일훈과 송승훈, 두 저자는 알고 보니 제게 낯선 분이 아니었습니다.  건축가인 이일훈은 <뒷산이 하하하>란 책을 통해 첫만남을 가졌구요. 건축주이자 국어교사 송승훈은 제가 자주 들락거리는 ‘책따세’의 일원이시더군요. 특별하지 않은 지극히 사소한 것이지만 그래도 어찌나 반갑던지...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진짜 멋진 책은 다 읽은 후에 작가가 엄청 친한 친구처럼 느껴져서 내킬 때마다 전화를 걸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했는데요. 바로 제가 그랬습니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 이후 언제라도 제가 꿈꾸던 집을 지을 때. 그때 이 두 저자와 꼭 한 번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진 않겠지만 말입니다.


책장을 덮고 난 이후로도 내내 건축가 이일훈이 던진 말들이 떠나지 않습니다.  

"어떤 집을 꿈꾸고 계신가요?"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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