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에 폐허에 눈이 내릴까 - 김수영 탄생 100주년 기념 시그림집
김수영 지음, 박수연 엮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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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특징을 얘기해봐” “시의 3요소가 뭐지?”

작년 여름 제가 중학생 아들의 국어 공부를 봐줬는데요. 아이가 제일 힘들어한 것이 바로 였습니다. 아들만 그런건지 요즘 아이들 대부분이 그런건지 알 수 없지만 깊은 생각이란 걸 하지 않는 모습에 그야말로 제 머리의 뚜껑이 열릴 정도였지요. 맘 같아선 그래, 시는 읽어서 느끼면 되는 거지 그냥 되는대로’ ‘니가 느끼는대로’ ‘니 맘대로 해봐!’ 외치고 싶지만 막상 시험, 점수로 연결되니 생각처럼 되질 않더군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20세기에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국어 시간에 주제, 제제, 소재, 시의 운율이 어쩌구, 이 시에 드러난 심상이 무엇인가...등등 시를 완전히 분해한 다음 씹어먹듯이 외우고 시험까지 쳤는데요. 성인이 되고 보니 무엇 하나 남는 게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답니다. 하지만 이제 그걸 다시 아들에게 강요해야 하다니...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아니? 작가의 생각? 작가의 의도? 물론 중요하지.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출제자가 이 문제를 왜 냈는지 생각해봐야 해, 학습목표를 니 머리에 빡! 넣어두고 유추를 해봐. 그래야 문제가 풀려”...이러고 있다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폐허에 폐허에 눈이 내릴까>를 보고 제일 먼저 떠올랐던 건 김수영은 제목에 왜 폐허에를 두 번 넣었을까였습니다. 분명 이유가 있을텐데 말이죠. 김수영의 시를 모두(아니 솔직히 거의 모른다는 게 맞을 겁니다. 예전에 김수영 시집을 구입했지만 읽다가 도중에 덮어버렸습니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더라구요) 알지 못하는지라 짐작만 했지요. 강조하는건가? 하고요.

 


김수영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출간된 시그림집 <폐허에 폐허에 눈이 내릴까>를 손에 들고 이번엔 예전과 다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내가 아무리 무심하고 둔해도 세월을 그냥 날로 먹지는 않았을테니 이전처럼 김수영 시 한 편 읽으면서 머리 싸매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런데 웬걸요, 그다지 달라진 게 없는 거예요. 이만저만 실망이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도 덮어버려? 하지만 이번엔 정말 그냥 덮고 싶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인터넷에서 김수영의 생애에 대한 정보를 입력한 다음 시를 읽으니 그나마 조금 낫더군요.

 


음악은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자

저무는 해와 같이

나의 앞에는 회색이 뭉치고

응결되고

또 주먹을 쥐어도 모자라는

이날 또 어느 날에

나는 춤을 추고 있었나 보다 - [음악 /1950.2]

 


서울에서 지주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식민지 조선에서 집안은 결국 몰락했고 일본 유학길에 오릅니다. 일본에서 김수영은 학문보다 시와 연극에 몰두하는데요. 일본에서 학병 징집을 피해 만주로 이주했다가 광복을 계기로 귀국합니다. 그러다 6.25 전쟁으로 때 서울을 점령한 북한국에 징집되었다가 탈출에 성공하지만 경찰에 체포되어 거제 포로수용소에 갇히고 마는데요. 당시 수용소는 반공 포로와 공산주의 포로들이 매일 패싸움을 벌이고 수시로 유혈사태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런 공포 분위기 속에서 고초를 겪던 김수영은 3년 후 민간인 억류자로 석방되는데요. 이후로도 그의 삶은 여전히 고달픔의 연속이었습니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 가야 할 운명과 사명이 놓여 있는 이 방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 [달나라의 장난 / 1953]

 


식민지-전쟁-독재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은 김수영에게 무척 힘겨운 나날이었습니다. 시대를 이끌어가는 지식인이자 예술가로서 사회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함, 무자비한 권력의 압박을 무심히 넘길 수 없었던 그는 당시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끊임없이 추구하게 되는데요. 어렵사리 4.19 혁명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전 이승만 독재 정권처럼 인간의 자유를 무시한 채 반공법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자 [“김일성 만세”]라는 시를 써서 신문사에 보냅니다. 북한과 남한 따로 정부가 꾸려졌으니 진정한 언론의 자유를 외친다면 김일성 만세를 인정하면 되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걸 비판하는 시인데 당시 문단이 시의 문맥이 아니라 시의 김일성이란 단어에 치중한 탓인지 그의 사후에야 발표되었습니다.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 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

나는 잠이 깰 수밖에 - [“김일성 만세”/ 1960.10,6]

 


4.19 혁명이 어떤 것도 변혁하지 못하고 그래서 사회를,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자 안타까운 마음을 시에 풀어내기에 이릅니다. 마치 혁명의 실패를 예감하기라도 한 것처럼.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광기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운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 [그 방을 생각하며/ 1960.10.30.]

 


권력으로 사람들을 짓누르는 현실에 좌절한 그에게 마지막 해방구는 술이었다고 합니다. 술에 취해 쓰러져있는 그는 종종 경찰서 신세를 지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서라도 잊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가 꿈꾸었던 건 어떤 세상일까.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그가 남긴 마지막 시에서 그가 염원했던 것, 그가 끝까지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어도, 제아무리 권력이 억압을 가해도 결코 그들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겠다는, 약하고 힘없는 풀일지언정 언제나 그들보다 먼저 움직이고 말겠노라고.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 [/ 1968.5.29.]

 


우리 역사의 칠흑 같은 어두운 시대를 걸으면서 길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던 시인 김수영. 날카롭고 거칠고 힘찬 그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기엔 아직 소양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언제든 펼쳐볼 수 있도록 가까이에 두고서 시간과 정성을 들여 천천히, 소리 내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제목에 왜 폐허에를 두 번 넣었을까하는 의문은 책의 마지막에 풀렸습니다. 궁금하시다면 꼭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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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1-05 16: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당선작 축하드려요

초딩 2021-11-07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일요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