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회항... 참 유명한 사건이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일터다.
이른바 재벌집 자식으로 자라나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이륙하려는 항공기를 돌려 자신의 부하직원을 떨구고 간 사람이야... 그렇게 자라왔으니 그렇다고 치자.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상황은 뭔가 이 사회가 많이 비틀어져 있음을 느끼게 한다.
정말 '모멸의 시대'에 접어든 것 아닐까?
아파트 경비원, 청소미화원.. 이들은 이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처해 있는 사람들로 여겨진다.
주민의 모멸에 항의하며 자살한 경비원이 있고 식당에서 밥조차 먹는 것도 제한해서 화장실 옆의 공간에서 식사를 해야 하는 미화원들도 있다. 이런 어이없는 상황이 너무 당연스레 여겨지는 현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판매원들은 어떤가?
얼마전 개봉했다 내려간 영하 '카트'에서 손님의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해서 무릎 꿇고 사죄하는 장면이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는 주차원이 손님에게 무릎을 꿇어야 하는 사실로 나타났고 백화점 매장에서는 손님의 환불요구에 응하지 않았다고 빰을 얻어 맞는 상황까지 나아갔다.
아파트 청소용역을 하는 분이 복도에 보푸라기가 많이 떨어져 있는 집을 노크했다가 폭행을 당했다는 기사에 "우리가 내는 관리비로 먹고사는 주제에" 어딜 함부로 노크하냐고 했다는 주민의 폭언에서 약자에게는 아무런 권리가 없는 시대임을 느끼게 한다.
'소비자는 왕이다'
이 하나의 구호가 사방천지에 왕들을 귀환을 부르고 있는 듯한 현실에서 타인의 노동에 대한 감사함이나 타인의 노고에 대한 공감은 사라지고 지위에 따른 대접에만 신경쓰고 있다. 자신보다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모멸을 자신보다 윗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는 굴종을 보내고 있는건 아닐지.
물론 개별 인격체 중에 정말 말종이 있을 수도 있다. 문제를 개별화 시키면 해법은 단순해 진다. 못된 놈들만 적절하게 처벌하면 끝이다. 하지만 사회가 이러한 문제에 둔감해진다면 이는 개별적인 개인의 일탈로 해석하고 해결할 수 없다. 당장 주민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한 미화원은 용역업체로 부터 해고 통지를 받았다. 주민과 관계가 껄끄러워진 노동자와 계속 고용을 유지 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여기에는 누가 잘 못했는가에 대한 판단은 전혀 없다. 누가 더 힘이 쎈 갑이냐는 판단만 있는 것이다.
이러니 가정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가르키며, 공부 안하면 저렇게 고생하고 산다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고생만 하나? 이제 평생 멸시 받고 이에 항의라고 할라치면 해고를 감수해야 한다. 인간적인 가치나 자유, 평등함은 다 말아먹고 그냥 노예처럼 굴종하고 살아야 한다. 결론은 무한경쟁... 밟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도태되고 그럼 끝인 사회가 과연 정상적인 사회일까? 어느덧 우리들의 감수성은 타인을 밟지 않으면 내가 밟히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일까?
서동진 교수의 '변증법의 낮잠'을 읽다가 87년 6월 항쟁에 대한 대목에서 새삼 놀란 것이 있다. 6월 항쟁 이후 대통령 선거에 백기완 선생이 민중진영 후보로 나와서 내건 공약 중 재벌해체와 재벌의 소유재산을 공공의 재산으로 환수하겠다는 공약이 있었다. 그때는 그러한 공약이 최소한 정신병자 취급을 받아야 할 공약은 아니었다. 지금은? 아마 가장 진보적이라는 정당도 함부로 외치지 못할 공약일 것이다. 자유주의적 신자유주의의 시대를 경과하면서 우리의 정치적 상상력은 이렇게 오그라 들었다. 노동해방은 사라지고 일할 권리를 주장해야 하는 해고노동자와 언제 해고될지 몰라 불안에 떨며 전전긍긍해 하는 비정규직 노동이 전체 노동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
비정규직을 버팀목 삼아 자신의 안전을 누리던 정규직에게 이 정부는 고용안전을 유연화(?) 시키겠다고 한다. 비정규직에 대해 냉랭한 시선을 보냈던 정규직에게 돌아온 이 부메랑을 어찌할런지. 같이 살자고 연대하지 않고 희생양으로 치부하면 자신의 안전만 도모했한 결과는 정규직이 중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이라면 이제 한계치까지 온 듯하다.
조직 내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합법적으로 해고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자본의 무한 착취에 굴종하고 감내하는 착한(?) 노동자가 되라고 훈육하겠다는 것이다. 쌍차 굴뚝에서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하는 노동자에게 하루 100만원씩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쌍용자동차의 날 선 언급도 다를 바없다. 이미 이 세상은 자본의 세상이고 자본이 가진 가장 커다란 권력인 금력과 자본의 이해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정부의 형사권은 항상 이 시대를 거스르려는 사람들에게 무지막지한 폭력을 사용해 왔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 그렇게 분노하면서 정말 분노하고 바꿔야 할 것에 대해서는 너무 무감각해져 왔다. 이게 신자유주의 15년이 정치사회적 결론이다.
자신의 계층 사다리의 밑바닥이 아니라는 점에 위안 받으며 더 낮은 사람들을 멸시하고 굴종하고 살 것인가? 힘겹게 싸우는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연대하면서 살 것인가? 선택은 결국 개인의 몫으로 돌아가는가? 이런 시대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