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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있는 예수 - 종교의 거짓말과 철학적 지혜
티모시 프리크. 피터 갠디 지음, 유승종 옮김 / 어문학사 / 2009년 9월
평점 :
가끔 난 기독교인이 아니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시한다고 하면서도 기독교에 대한 서적이나 비판 서적을 필독서로 탐독하는 것도
그런 강박증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사실 이 책을 집어 들고 살까 말까 망설였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도 더 이상 기독교를
비판하는 책을 읽어 무엇할까 하는 마음에서 였다.
이문열을 싫어하기 이전, 난 사실 기독교를 버릴 때, 이문열의 도움이 컸다. 그의 소설
'사람의 아들'은 정통적 기독교 시각을 탈피해서 이단의 시선으로 기독교를 바라보게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하기야 초기만 해도 결론이 어쩡쩡해서 그렇지 이문열의 문제
제기는 첨단을 달리는 데가 있었다. '영웅시대'만 해도 감히 좌익사범을 소설의 중심에
놓았다는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시절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어쩡쩡한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결국 미심쩍은 작가의 심정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으니...그래서
더더욱 이문열을 싫어 하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아들'은 교회다니는
사람들에게는 꼭 한 번 읽으라고 권한다.
더불어 이 책의 저자들이 지은 책이 기독교인들에게 꼭 권하는 책이다. '예수는 신화다'
라는 제목의 책인데, 내용은 현란한 증거들을 끌여들여 예수의 존재는 신화를 유대식으로
다시 꾸며낸 것이지 역사적 인물은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책이다.
기독교인이 믿는 하나님의 독생자가 그저 신화 속 이야기라는 주장은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는 예수의 권위를
그냥 허구의 이야기로 깔아 뭉개버린 탁월한 책으로 기억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예수'를 허구의 존재로, 아니 영지주의적 비유로 본다.
이 책이 비판하는 대상은 '문자주의' 종교다. 지금의 유대교, 기독교, 카톨린, 이슬람교가
모두 해당 될 것인데, 결국 신의 말씀이라는 권위를 가지고 일점일획도 틀림없는 경전을
믿고 따르는 것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앙인들에게야 정말 죄 받을 소리지만, 이젠 이 소리가 나는 너무 당연하게 여겨진다.
다만, 그렇다고 성서나 코란을 모두 부정하지 않는다. 다른 식으로 긍정한다.
그 경전들은 비유로서는 가치가 있다고 여기고 있다. 영적인 고양을 하기 위한 풍부한
텍스트로서의 경전은 보존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옛 이야기를 진짜로 믿고 그
당시 야만적 윤리를 신의 뜻으로 포장하고 권력을 남용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말이다.
더불어 영지주의적 일자에 대한 현대적 풀이를 늘어 놓는다. 철학의 이름으로...
과연 영지주의 철학은 가능할 것인가. 과거 플로티누스의 이론을 토대로 한 것 같은 일자론이
이들 저자의 현대 영지주의다. 이것에 동의하던가 말던가는 독자의 선택 나름이리라
다만, 철학이라 하기에 너무 종교적이고 종교라 하기엔 철학에 치우쳐 있어 이도저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 아쉽다.
그래도 이들의 싸움이 소중한 것은 아직도 '문자주의'신앙자들, 근본주의자들이 이 사회와
세계에 가하는 폭력이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것 보단 그래도 덜 극단적이면서
중도적인 것이 답이 될 수도 있겠다.
난 아직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지만,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이들의 설명은 묘하게
친근하다. 우리는 하나다. 그러니 더 이상 분열하고 갈라서서 싸우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