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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다이어트 그리고 아파트 원시인 - 70만 년의 진화를 거슬러 올라가는 위험한 추적기
마를린 주크 지음, 김홍표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인류의 초기 조상은 곡물, 유제품, 정제유나 설탕 등 농작물을 섭취하지 않았다. 250만 년 인류 역사에서 농업기술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만 년도 채 되지 않는다. 원시 인류는 수렵과 채집 등을 겸하며 생선과 고기, 채소와 과일 등을 섭취했다. 지금은 시들해졌지만, ‘구석기 다이어트’가 관심을 모았었다. 구석기 다이어트란 구석기 시대 원시 인류의 식생활을 응용한 다이어트 방법이다. 과일 및 채소류 중심의 식단을 섭취하는 대신 곡류, 우유, 설탕 등 가공식품 등의 식단을 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이 특징이다. 인류가 농경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곡류 중심의 탄수화물 섭취량은 급격히 늘어났다. 구석기 원시 인류와 같은 유전자를 가진 현대인들이 탄수화물을 원활하게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만과 당뇨병이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살 빼려면 자연, 아니 구석기 시대로 돌아가라? 《섹스, 다이어트 그리고 아파트 원시인》(위즈덤하우스, 2017)의 저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마를린 주크(Marlene Zuk)는 구석기 식단으로는 절대로 건강해질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녀는 구석기 다이어트의 열풍을 통해 드러난 진화에 대한 착각을 지적한다. 이 책에서 그녀는 ‘진화에 대한 대중의 착각’을 ‘구석기 환상’이라고 표현한다. ‘구석기 환상’에 빠진 대중과 전문가들은 현재보다 과거가 더 살기 좋다는 착각을 한다. 그들은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게 되고, 결국 현재의 문제를 잘 해결하기 위해선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어렵다고 느껴져서 과거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것일까? 주크는 너무나도 뻔한 근거를 내세워 구석기 환상을 비판하지 않는다. 그녀는 식생활, 성생활, 양육, 질병 등 인간의 생활방식 및 생활환경이 어떻게 현재의 모습으로 이르게 되었는지 진화론적 관점으로 밝혀내고자 한다. 그리고 이 분석들을 근거로 그녀는 인류의 진화에 대한 순전한 믿음이 ‘환상’임을 증명한다.
다윈(Darwin)이 진화론을 내세운 이후부터 진화론자들은 ‘적자생존’을 바탕으로 한 미래 예측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인류사회는 수렵사회에서 농경 사회로, 다시 산업사회로 진화했다고 생각했다. 진화론을 통해 사회변화를 통찰한 사회학자들은 사회가 한 단계씩 발전해나간다는 믿음을 도출하기에 이른다. ‘진화’의 틀에서 사회 발전을 설명하려는 열망과 맞물리면서 진화론은 서구식 진보주의적 세계관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진보주의적 세계관은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단선적인 흐름으로 보게 했고, 인류의 진화를 ‘진보의 역사’로 해석했다.
주크는 ‘진보’와 ‘발전’과 연관 짓는 진화에 대한 인식을 거부하면서 인류의 진화 과정을 돌아본다. 그녀는 현대인을 ‘최종 진화형’으로 보지 않는다. 사실 그녀의 진화론은 낯설지 않다. 그것은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가 생전에 줄기차게 주장했던 진화론과 비슷하다. 그래서 주크는 자신의 논지를 전달하기 위해 굴드의 주장을 인용하기도 한다. 인류는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구석기 원시 인류와 유전자 정보와 현대인의 유전자 정보는 서로 같을 순 없다. 인간은 단지 특정한 목적, 즉 과거보다 더 잘 살기 위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진화하는 것이 아니다. 눈 깜짝할 새 일어나는 인류의 진화는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알려주지 않는다.
현대 인류는 과거 원시 인류들이 꿈도 못 꾸던 온갖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구석기 시대의 원시 인류보다 과연 더 건강하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인류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진화는 갑작스러운 시련들의 연속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들이 꾸준히 발전해 왔으며, 미래에는 더 나은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주문을 걸고 있다. 다윈의 진화론 이후로 인류는 지금까지 ‘진화의 환상’을 맛보면서 기분 좋게 취해 있었다. ‘진화의 환상’에 취한 우리는 자신들이 과거 사람들보다 행복하게 살아왔다는 착각에 빠졌다. 과거 사람을 ‘고대 유물’ 수준으로 취급하는 우리는 세상 유일한 승리자인 것처럼 살고 있다. 자신들도 ‘진화 중’ 또는 예상치 못한 시련을 겪는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인간은 발전한 것이 아니라, 그저 ‘변화’한 것이다. 단테(Dante)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문에 적힌 경고문을 인용하여 이렇게 고쳐 쓸 수 있다. “시시각각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들어온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원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살아있는 한 계속 변화에 적응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됐다.
※ Trivia
* 52쪽 : ‘호모 에르카스터’(X) → 호모 에르가스터(Homo ergaster)
* 103쪽 : 드라마 <소프라노> (X) → 소프라노스(Sopran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