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태원 역 《나의 꿈꾸는 여자 : 환상 미스테리 걸작선》 (동숭동, 1993) 

 

 

알라딘에 표지 사진이 없는(No image) ‘오래된 책’이 많다. 작년에 표지 사진 없는 책을 위해 알라딘 회원이 직접 찍은 표지 사진을 추가하는 것을 서재지기님에게 제안한 적이 있다. 처음에 《나의 꿈꾸는 여자》를 검색했을 땐 표지가 없었다. 지금은 표지가 나온다. 표지 사진은 내가 찍은 것이다. 이런 작업이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이겠지만, 내겐 정말 고마운 일이다. 오래된 '절판본'에 대한 리뷰를 쓰고 싶은 의욕이 생긴다.

 

 

 

 

 

 

 

레이 브래드버리 장의사(The Handler) [1]

http://blog.aladin.co.kr/haesung/9573458

 

 

 

 

베네딕트는 시트를 씌운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마치 밤늦게 영화를 보고 돌아왔을 때처럼 강력한 기만함과 자신만만함을 느꼈다. 영화관을 나왔을 때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돼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미남이고 단정하고 용감한 영화 주인공의 매력을 빠짐없이 겸비하고 목소리까지. 그렇다, 성량이 풍부하고 맑았으며 왼쪽 눈썹을 약간 치켜 올린 그는 소리내어가며 지팡이를 짚는다‥…. 이러한 영화 최면술이 베네딕트의 경우 자택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기까지 죽 지속되는 경우도 있었다. 베네딕트가 그러한 기적적인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베네딕트의 생활에서는 이 두 가지 시간, 즉 영화관과 이‥… 베네딕트 자신의 냉방이 완비된 소극장‥…의 두 가지에서였다.

 

베네딕트는 잠든 사람들의 열을 누비고 다니면서 하얀 명찰에 쓰인 이름을 하나하나 조사했다.

 

월터스 씨. 스미스 씨. 브라운 양. 앤드루스 씨.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기분은 어떠신지요, 셀먼드 부인?”

 

그는 침대 밑에 숨은 아이라도 찾듯이 시트를 젖히더니 이렇게 말했다.

 

기분이 좋으신 것 같군요, 부인.”

 

 

 

       

 

 

생전의 셀먼드 부인과는 한 번도 말을 주고받은 적이 없었다. 그녀는 스커트 자락에 숨긴 롤러스케이트로 미끄러지듯 우아하게 구는 척하며 하얀 조각상처럼 재빨리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베네딕트는 의자를 끌어당겨 확대경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부인, 알고 계십니까. 당신의 모공은 지방 과다 분비입니다. 살아가는 납 인형이었던 거지요. 지방은 모여 여드름이 되지요.[5] 결국은 기름진 식사가 사망의 원인이 된 것입니다. 스펀지케이크나 크림 캔디 같은 걸 마구마구 뱃속에 채워 넣은 것이 원인이었던 거지요. 부인은 언제나 좋은 머리가 자랑거리였죠. 나 따위는 마치 신발 밑의 동전쯤으로나 보고‥… 그런데 그 머리라는 게 파르페나 레모네이드나 소다수 속에 떠 있는 것에 불과했지요. 그 대단한 자랑거리였던 머리도 요 모양이 되어서…‥.

 

베네딕트는 그녀에게 훌륭한 수술을 가했다. 두개골을 둥글게 자르고 뚜껑을 열어 골을 꺼냈다. 그리고 과자점에서 사용하는 설탕 짜는 기구로 그녀의 텅 빈 두개골 속으로 생크림과 분홍색, 흰색, 녹색의 장식용 설탕 등을 짜넣고 그 위에 아름다운 핑크빛 글자로 단 꿈이라고 쓴 후 뚜껑을 닫고 두개골을 꿰매 맞추고 솔기를 납 가루로 감추어 버렸다.

 

, 이제 됐다.”

 

베네딕트는 다음 시체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레인 씨. 인종적 편견의 맹장께서는 기분이 어떠신지요? 여러 번 빤 것 같은 순백한 분, 눈처럼, 목면(木棉)처럼 순백한 당신. 레인 씨, 당신은 유태인이나 흑인과 같은 소수 민족을 몹시 싫어하셨죠.”

 

시트를 벗기니 레인 씨가 냉담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보세요, 레인 씨. 나도 그 소수 민족의 한 사람입니다. 열악한 소수 민족입니다.[6] 이야기를 할 때도 큰소리를 내지 않도록 소곤소곤 말하고 쥐 같은 작은 존재에도 겁을 먹는 남자이지요. 이제부터 그런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려 하는지 짐작이 갑니까? 우선 편협한 당신의 몸에서 피를 완전히 뽑아낼 겁니다.”

  

 

 

         

 

 

눈의 순결함과 목면의 깨끗함을 가진 레인 씨의 체내에서 방부 액이 주입되었다. 베네딕트는 배꼽을 움켜쥐고 웃었다. 레인 씨가 새까맣게 된 것이다. 진흙처럼 검게, 밤의 어둠처럼 검게. 그가 사용한 방부 액이라는 것은…‥ 잉크였다.

  

 

아니 이거, 에드먼드 워스 씨 아닙니까!”

 

생전의 워스는 얼마나 아름다운 육체를 가지고 있었던가! 굵은 뼈와 뼈 사이로 근육이 팽팽하게 뻗어 있어서 힘이 세고 가슴은 마치 바위 같았다. 그가 가는 곳마다 여자들은 말을 잃었고 남자들의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하룻밤 이 육체를 빌려가 자기 아내에게 즐거운 경악을 안겨주고 싶다고 말했다.[7] 하지만 워스의 육체는 어차피 워스의 것, 그는 그러한 종류의 일이나 쾌락에 그 육체를 사용하면서 죄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화제를 풍부하게 했던 것이다.

 

그런 당신이 결국 이곳에 오셨군요.”

 

베네딕트는 일찍이 이런 종류의 기구를 장인방[8]에 달고 그것에 턱을 걸고 매달림으로써 자신의 우스꽝스럽기까지한 작은 키를 잡아 늘리려고 시도해본 일이 있었다.[9] 또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피부가 부끄러워서 햇볕 아래에 누워 있었던 적도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물집이 생기고 피부가 분홍빛의 엷은 종이가 되어 벗겨져서 분홍색이 더욱 짙어진 축축하고 민감한 피부를 노출시키는 데 그쳤다. 마음의 창이라고 말들 하지만 너무 가까이 들러붙은데다가 유리구슬 같은 그의 작은 눈에도 손쓸 도리가 없었다. 집이라면 새로 다시 칠하고 휴지라면 태우고 어머니라면 쏴 죽이고 새 옷을 사고 차를 구입하고 돈을 버는 식으로 외부의 환경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피부나 육체나 얼굴색이나 목소리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러한 조건에서 불운했던 베네딕트는 턱을 간질이거나 입술에 키스하거나 친구와 악수를 나누거나 향기 좋은 담배를 피우거나 하는 저 넓디넓은 밝은 세계로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추억에 빠지면서 베네딕트는 에드먼드 워스의 늠름한 육체 위에 버티고 섰다.

 

 

 

          

 

베네딕트는 워스의 목을 잘라내서 그것을 관 속에 똑바로 놓고 그것과 함께 190파운드만큼의 벽돌[10]을 채우고 배개 위에서부터 하얀 셔츠와 검은 상의를 싸서 상반신처럼 보이게 하고 턱 부분까지 청색 빌로드로 덮었다. 몸통 쪽은 냉동기 안에 넣었다.

 

  

이것으로 워스 군, 내가 죽으면 몸통과 목을 나눠서 내 목에 당신의 몸통을 이어서 매장시킬 것이오. 미리 조수에게 돈을 줘서 그 일을 시킬 거요. 생전에 아름다운 육체를 갖지 못했던 사람은 하다못해 사후에서나마 그것을 소유하게 되는 거지.”

 

에드먼드 워스의 목 위로 탁 하고 관 뚜껑이 닫혔다.

 

관의 뚜껑을 닫은 채로 장례를 하는 풍습이 이어져 온 것에 베네딕트에게 너무나도 좋은 일이었다. 베네딕트는 시체를 거꾸로 엎드리게 해서 이장하거나 억지로 외설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베네딕트의 흥미를 끈 것은 오후의 차를 마시러 가는 도중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세 명의 노파였다. 이 세 명은 모이기만 하면 소문을 퍼뜨리기로 유명했다. 뚜껑을 닫은 채였기 때문에 참석자는 몰랐지만 사실 세 명은 관 하나에 넣어져 영원히 차가운 수다를 계속하게 되었다. 다른 두 개의 관에는 작은 돌이나 깅엄[11], 쓰레기가 채워져 있었다.

 

저 사이좋은 세 사람이 결국 따로따로 헤어졌군.”

 

그렇게들 말하며 사람들은 울었다.

 

.”

 

베네딕트도 눈물 어린 얼굴을 한쪽으로 돌렸다. 또 베네딕트는 정의감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부자는 알몸뚱이로 매장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5달러의 금단추가 달린 황금색 의상을 입히고 양 눈꺼풀에 각각 20달러 금화를 얹어서 이장했다. 어떤 변호사들은 전혀 매장되지도 못하고 진개소각로에서 태워지고 관에는 일요일에 숲에서 잡은 스컹크를 넣기도 했다.

 

오후 근무 중에 쓰러진 어떤 나이든 여자는 끔찍한 계획의 희생자가 되었다. 그녀의 이불 밑에는 어떤 노인의 그것이 함께 매장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차가운 기관에 능욕당해 숨겨진 손이나 그 밖의 것으로 애무를 당하면서 관에 눕혀졌다.

 

그렇게 해서 그날 오후도 베네딕트는 시체에서 시체로 돌아다니며 그들 몸 위에 온갖 모욕을 가했다. 마지막으로 맞닥뜨린 것은 메리웰 브라이스라는 간질병 발작이 지병인 노인이었다. 브라이스 노인은 지금까지 몇 번인가 이곳으로 운반되어 왔지만 이장 직전에 되살아난 인물이었다. 베네딕트가 시트를 젖히자 브라이스 노인이 눈을 깜박거렸다.

 

아아!”

 

베네딕트는 시트 위로 쓰러질 뻔했다.

 

 

 

 

- 3부에 계속 -

 

 

 

 

 

 

 

 

 

* cyrus의 주석

 

 

 

[5] 당, 지방 과다 섭취로 여드름이 생길 수 있다.

 

[6] 베네딕트가 정말로 ‘소수 민족’이라면 그는 유전적으로 어느 혈통에 속할까? 자신의 외톨이 신세를 ‘외면 받고 차별받는 소수 민족’으로 과장해서 생각할 수도 있다.

 

[7] 워스는 마초(macho)다. 베네딕트는 ‘남자다움’, 마초에 대한 열등감과 갈망을 느낀다.

 

[8] 기둥과 기둥 사이의 벽 윗부분에 가로지른 나무 (역자 주)

 

[9]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악당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는 자신의 방에 있는 침대에 사람을 뉘여 놓고 다리가 침대보다 길면 자르고 모자라면 잡아 늘렸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사회를 재단하는 규범이다.

 

 

 

 

 

 

 

 

 

 

 

 

 

 

 

 

 

* 조지 L. 모스 《남자의 이미지》 (문예출판사, 2004)

 

 

베네딕트는 ‘키가 크고, 여자를 유혹할 수 있는 단단한 근육을 가진 남성상’을 원한다. 자기 스스로 몸을 늘리려는 시도는 ‘규범적 남성성’에 맞추기 위해 발버둥치는 불행한 남성의 모습이다. 베네딕트는 워스의 ‘늠름한 육체’에 대리만족을 느꼈고, 자신이 죽으면 워스의 ‘늠름한 몸덩어리’와 자신의 목을 이어 매장할 거라는 망상을 한다.

 

[10] 190파운드를 ‘kg’으로 환산하면 86kg.

 

[11] 번역본에는 ‘깅감’으로 나와 있는데, 현행 외국어 표기법으로 고치면 ‘깅엄(gingham)’이다. 깅엄은 ‘격자무늬가 있는 평직 무명 양복지(역자 주)’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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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7 1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07 17:55   좋아요 0 | URL
이제부터 절판본 표지 사진 찍을 때 좀 성의 있게 찍어야겠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