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프레드 상시에 《자연을 사랑한 화가 밀레》 (곰, 2014)

* 정진국 《제국과 낭만》 (깊은나무, 2017)

* 즈느비에브 라캉브르 외 《밀레》 (창해, 2000)

* 스테판 게강 외 《프랑스 낭만주의》 (창해, 2000)

 

 

 

 

《제국과 낭만》 (깊은나무, 2017)이라는 책에 보면 생소한 이름의 화가들이 소개된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알렉상드르 가브리엘 드캉(Alexandre Gabriel Decamps, 1803~1860)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드캉은 1828년에 그리스로 건너갔다. 《제국과 낭만》에서는 드캉이 프랑스를 떠나 여행을 하기 시작한 연도를 ‘1828년’이라고 적혀 있는데, 《프랑스 낭만주의》 (창해, 2000)에는 ‘1827년’으로 나와 있다. 아무튼, 드캉은 그리스와 터키의 이즈미르(Izmir)를 거쳐 중동으로 향했다. 프랑스인 화가는 그곳에서 머물면서 이국적인 동양 문화와 정취에 매료됐다. 오늘날에 드캉은 ‘잊힌 화가’로 남아있지만, 생전에 그의 작품들은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유행을 타고 큰 인기를 끌었다.

 

 

 

 

 

 

드캉의 대표작은 『이즈미르 순찰대』(1831년)다. 이즈미르는 옛날부터 무역도시로 번성했던 지역이고, 호메로스(Homeros)의 출신지로도 알려졌다. 1426년 오토만제국에 편입되었다가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을 때 그리스의 침략을 받아 그리스 영토가 되었다. 1923년에 터키 영토로 복속되었다. 드캉의 그림은 이즈미르 순찰대가 말을 타고 도시를 순찰하는 장면이다. 이 그림으로 드캉은 ‘오리엔트 화풍의 대가’로 인정받았다. 동양 문화에 심취했던 작가 겸 미술비평가 테오필 고티에(Theophile Gautier)는 드캉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승승장구했던 드캉은 말년에 파리 근교에 있는 퐁텐블로(Fontainebleau)에 거주한다. 퐁텐블로는 장 프랑수아 밀레(Jean Francois Millet)를 포함한 바르비종 화파(Barbizon School)의 근거지였다. 드캉은 밀레가 사는 마을에 정착했다. 그런데 그에게 허울 없이 지내는 친구가 딱 한 명만 있었으니 그 사람이 바로 밀레였다. 밀레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동료인 알프레드 상시에(Alfred Sensier)밀레와 드캉의 ‘은밀한(?)’ 관계를 밀레 전기에 기록했다. 다음 내용은 상시에의 밀레 전기 국역본 《자연을 사랑한 화가 밀레》 (곰, 2014)에서 인용했다.[1] 이 인용문의 일부는 《제국과 낭만》에도 나오는데[2], 사실 《제국과 낭만》의 저자인 정진국 씨가 밀레 전기를 번역했다.

 

 

 

 밀레의 삶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있다. 여러 해 전부터 퐁텐블로에서 살고 있던 드캉과의 관계다. (드캉이 열 살 연상.) 드캉은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는 일찍이 쿠르베(courbet,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화가-필자 주)의 그림에 푹 빠졌다가 그를 직접 만나고 난 뒤로 금세 멀어졌다. 그는 밀레를 만나보고 싶어할 만큼 그의 예술성에 놀라웠다.

 

어느 날 드캉이 밀레의 화실로 찾아왔다. 수염이 부스스하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화가 드캉이요. 오래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소.”

 

놀란 밀레는 반색을 했다.

 

“당신 그림이 참 좋더구먼. 솔직하고 지칠 줄도 모르고. 그림 좀 봅시다.”

 

 

(중략)

 

 

드캉은 거의 몰래 밀레의 집을 드나들었다. 그는 마을 초입에 자기 말을 매어두고 아무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후원(後園, 집 뒤에 있는 작은 정원-필자 주)으로 드나들었다.

 

“밀렵꾼처럼 당신을 놀래주려 했지. 어떤 화가도 보고 싶지 않거든. 당신만 보려고.”

 

그는 이렇게 매년 수차례씩 아무도 모르게 다녀갔다. 그가 사망하던 1860년까지 계속된 잠행이다. 그는 밀레와 몇 시간씩 그림 이야기를 했다. 당대 화가들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는 밀레의 살림집에는 들어간 적이 없다. 또 퐁텐블로의 자기 집으로 초대하지도 않았다.

 

밀레는 드캉이 특이하고 지성적인 인물이며 과거의 거장들과 당대 화가들을 보는 눈도 건전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감이 부족했다. 기병대원처럼 두꺼운 갑옷 속에 자신의 깊은 약점을 감추고 있었다. 그림에 대한 생각이 너무 많아 단호한 목표보다 수단에 너무 집착했다.

 

“나는 그가 한 번도 진심에서 우러난 말을 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그의 말은 독하고, 냉소적이며 정확한 비평을 했다. 자기 자신의 그림에 대해서도 그랬다. 그는 항상 길을 찾지 못해 고생하는 사람 같았다. 그런 고뇌에 가득한 고상한 사람이었다.”

 

 

 

상시에는 드캉을 ‘친해지기 어려운 괴팍한 사나이’으로 묘사했다. 밀레의 ‘현장매니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상시에는 밀레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 인물이다. 그가 밀레의 집에 몰래 드나드는 드캉의 기이한 행동을 수상쩍게 여기는 건 당연했다. 밀레의 영향을 받은 드캉은 퐁텐블로의 소박한 정경을 그리는 일에 천착했으나 사냥하는 도중 낙마하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드캉은 동양 문화를 향유하는 유행에 맞춘 그림을 제작하여 일찍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었고, 밀레는 유행을 따르기만 하는 획일적이고 시끄러운 파리의 분위기를 어려워했다. 결국 밀렌는 화가로서의 명예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뒤로 한 채 파리를 떠나 시골에 정착했다. 당연히 밀레의 화풍은 파리지앵(parisien)이 선호하는 미적 취향과 거리가 멀었고, 그가 그린 농촌 그림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인정받았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오늘날 두 사람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 에드워드 W. 사이드 《오리엔탈리즘》 (교보문고, 2015)

* 존 맥켄지 《오리엔탈리즘 예술과 역사》 (문화디자인, 2006)

* 이주헌 《지식의 미술관》 (아트북스, 2009)

* 이주헌 《역사의 미술관》 (아트북스, 2011)

 

 

 

미술 서적에서 ‘드캉’이라는 이름을 찾기가 어렵다. 내가 지금까지 확인된 드캉을 언급한 책이 총 다섯 권이다. 앞서 나온 정진국 씨가 쓴 《제국과 낭만》과 밀레 전기, ‘창해 ABC북 시리즈’《밀레》(창해, 2000)《프랑스 낭만주의》, 그리고 존 맥켄지의 《오리엔탈리즘, 예술과 역사》(문화디자인, 2006)이다. 《제국과 낭만》을 제외하면 나머지 네 권은 품절, 절판되었다. 어차피 네 권의 책들은 드캉을 이해하는 데 깊이 있는 문헌이 되지 못한다. 품절, 절판된 네 권의 책에 드캉이 언급된 내용을 모두 합쳐봤자 고작 문장 한 줄 나온다. 그래서 이 글을 썼을 때 그닥 도움이 되지 않았다.

 

국내에 ‘오리엔탈리즘 미술’을 소개한 문헌이 부족한 편이다. 맥켄지의 저서가 나올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 중 하나가 ‘오리엔탈리즘 미술을 배제한 에드워드 사이드’ 때문이었다. 맥켄지는 그림 속에 감춰진 오리엔탈리즘을 심도 있게 분석하여 《오리엔탈리즘》 (교보문고, 2015)이 놓친 부분을 보완했다. 아쉽게도 맥켄지는 자신의 책에 드캉을 딱 한 번만 소환했다.[3] 그는 드캉의 작품을 들라크루아와 함께 ‘열정적이고 활기 가득한 낭만주의’[4]로 규정했다.

 

 

 

 

 

[1] 《자연을 사랑한 화가 밀레》 210~211쪽

 

[2] 《제국과 낭만》 137~138쪽

 

[3] 《오리엔탈리즘, 역사와 예술》에 ‘인명 색인’이 없다. 이 좋은 책의 치명적인 단점,, 그래서 ‘드캉’을 찾기 위해 3장 ‘미술에서의 오리엔탈리즘’ 편을 무한 반복해서 읽었다... ‘책에서 드캉 서방(?) 찾기’였다.

 

[4] 《오리엔탈리즘, 역사와 예술》 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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