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의사

(The Handler)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

(번역 : 정태원)

 

 

 

 

레이 브래드버리에 관해서는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는 인기 작가다. 그의 아름다운 환상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이 작품은 조금 잔혹하다. 본 작품이 <위어드 테일즈>(47년 1월호)에 씌어졌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러한 괴기스러운 면도 브래드버리 작품의 기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아두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1]

 

 

 

 

 

 

 

 

 

베네딕트는 아담한 자택을 나왔다. 현관에 선 베네딕트의 눈에는 햇살이 따갑도록 부셨으나 가슴에는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이 어려 있었다. 영리한 눈을 한 작은 개가 지나갔다. 영리하다는 증거로 베네딕트는 그 개의 시선을 잡을 수가 없었다. 교회 옆의 묘지를 둘러싼 철문 사이로 아이 한 명이 보고 있었다. 그 아이의 찌르는 듯한 호기심에 찬 눈을 보고 베네딕트는 떠름한 얼굴이 되었다.

 

“아저씨는 장의사야?”

 

아이가 물었다. 베네딕트는 자신의 껍질 속으로 몸을 움츠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 교회는 아저씨 거야?”

 

아이가 또 물었다.

 

“그래.”

 

베네딕트가 대답했다.

 

“이 장례식 하는 가게도?”

 

“그래.”

 

베네딕트는 약간 당황하고 있었다.

 

“이 묘지도, 묘석도 모두 아저씨 거야?”

 

아이가 물었다.

 

“그래.”

 

베네딕트는 약간 쑥스러움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실제로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사업적인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덕분에 베네딕트는 오랫동안 밤낮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야 했다.

 

베네딕트는 사업의 첫 출발점으로 침례파 사람들[2]이 남기고 떠난 교회와 푸르게 이끼가 낀 묘가 몇 구 서 있는 부속묘지를 사들였다. 2단계로 착수한 것은 산뜻한 시체 임시 안치장(물론 고딕풍 건축의)에 자신을 위한 거처를 준비했다. 이것으로 베네딕트는 자신은 언제 죽어도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죽은 사람은 이들 건물을 차례차례 출입하면서 최소한의 혼란과 최대한의 조직적 축복을 받으며 묻힐 수 있었다. 베네딕트가 조간에 내는 커다란 신문 광고는 ‘화장은 사절!’이라고 강조하고 있었다. 교회를 나와 땅 속에 매장되기까지는 휘파람을 불 수 있을 정도로 손쉽게 행해지는 것이다. 보존 장치도 더없이 쾌적한 것이었다.

 

아이는 여전히 베네딕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베네딕트는 바람에 꺼진 양초처럼 참을 수 없는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베네딕트는 깊은 열등의식이 있었다. 그는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면 변명할 여지가 없는 우울한 기분에 빠져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뜻을 받아들이려고만 했으며 서로 논쟁을 하거나 큰소리를 지르거나 상대의 말을 부정하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어떤 상대와 길에서 우연히 만나면 베네딕트는 그 콧구멍이나 귀나 머리의 가르마 따위를 수줍음을 담은 눈으로 쳐다볼 뿐 결코 정면으로 상대의 눈을 쳐다보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나서 상대의 손을 마치 그것이 귀중한 선물이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의 차가운 양손으로 감싸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하던 당신이 말씀하시는 대로입니다.”

 

그런데도 언제나 상대는 베네딕트가 자신의 말 따위는 한 마디도 듣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베네딕트는 현관의 계단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에게 미움을 받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정말로 착한 아이구나.”

 

베네딕트는 돌계단을 내려가 문을 나섰지만 자그마하고 아담한 시체 안치소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 즐거움은 나중에 만끽할 것이다. 모든 사물은 순서가 중요하다. 임시 안치장에서 베네딕트를 기다리고 있는 시체 위에 천부적 재능을 떨칠 기쁨을 지금 떠올린다는 것은 오히려 손해였다. 정말로 그렇다, 우선 정해진 순서대로 시작하는 게 좋다. 먼저 마음속에 갈등을 일으켜야만 한다.

 

어디로 가야 분노할 거리를 건질 수 있을지 베네딕트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베네딕트는 반나절 걸려서 이 작은 마을의 여기저기를 방문하며 돌아다니고는 살아 있는 이웃 사람들의 우월감에 압도당해 자기 자신을 열등감 속에 빠뜨리곤 했다. 그리고는 진땀투성이로 만들어 심장도 뇌도 두려움에 떠는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버리는 것을 일상의 일과로 삼고 있었다.

 

베네딕트는 우선 약방 주인인 로저스 씨를 상대로 무의미한 아침인사를 질질 끌며 나누었다. 그러면서 로저스가 내뱉은 모멸한 표현의 억양 하나하나까지를 모두 가슴에 담아 두었다. 로저스는 장례 사업을 하는 베네딕트에게 언제나 자극하는 듯한 말을 퍼부었다.

 

“하하하.”

 

베네딕트는 지금 자신에게 퍼부어진 농담에 웃어 보이지만 그 마음속은 왈칵 울어버리고 싶은 비참한 기분이었다.

 

“그것 봐. 당신은 냉혈동물이야.”

 

오늘 아침의 로저스는 더욱 더 신랄했다.

 

“냉혈동물이라고요, 하하.”

 

베네딕트는 웃어 보였다. 약방을 나온 베네딕트는 스테이브선트를 우연히 만났다. 스테이브선트는 베네딕트와 잡담을 하고 있는 동안에 누군가와의 약속을 꾸며내려고 적당한 시기를 엿보면서 큰소리를 질렀다.

 

“베네딕트, 경기는 어때? 열심히 장사에 힘쓰고 있겠지?”

 

“예, 그저.”

 

베네딕트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당신 일은 잘 돼가고 있습니까, 스테이브선트 씨?”

 

“아니, 당신 손이 아주 차잖아? 오한이 드는 모양이군? 불감증이 있는 여자에게 방부제라도 채우기 시작한 거 아닌가? 나쁜 일은 아니군. 이봐, 내가 하는 말 들리나?”

 

스테이브선트는 이렇게 말하며 상대의 등을 두드렸다.

 

“예, 들리고말고요! 그럼, 이만.”

 

베네딕트는 엷은 미소를 뗬다. 다음 사람들과도 그런 인사가 계속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괴로움을 당하는 베네딕트는 온갖 쓰레기가 내버려지는 호수 같았다. 사람들은 맨 처음에는 자갈을 던지지만 베네딕트는 반항의 잔물결조차 일으키지 않는다는 걸 알면 작은 돌에서 벽돌, 둥근 돌 같은 점차 큰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베네딕트에게는 바닥이 없고 물보라도 일으키지 않았으며 찌꺼기도 남기지 않았다. 호수에는 반응이 없었다.

 

해가 짐에 따라 베네딕트는 더욱 더 자포자기가 되고 사람들에 대한 노여움을 더해, 건물들을 찾아다니며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속으로는 학대받는 즐거움을 가지고 그들을 미워하게 되었다. 그럴수록 더욱 커질 밤의 즐거움을 위하여. 그래서 베네딕트는 그러한 어리석고 건방지고 무례한 사람들에게 몇 번이나 깊은 상처를 입으면서도 머리를 조아리고, 위에 집어넣기 전의 비스킷처럼 그 양손을 꽉 쥐고는 그저 냉소당하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이었다.

 

“이거 이거, 사람 장사[3] 아니오?”

 

식료품점 주인 프린저가 말했다.

 

“어떻소, 댁의 콘비프나 뇌 절임의 맛은?”

 

여기에 이르러 베네딕트의 열등의식은 극도에 달했다. 귀가 따가울 정도의 모욕과 무시무시한 자기 학대의 절정에 이른 베네딕트는 미친 듯이 손목시계를 보고 정확한 시간을 확인하고는 홱 발길을 돌려 쏜살같이 거리를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이미 절정에 선 베네딕트의 심경은 완전히 준비가 갖추어져서 마침내 이뤄야 할 일, 자기 자신의 즐거움에 몰두하기 위한 완전한 마음가짐이 되어 있었다. 하루 중 두려운 시간은 끝나고 즐거운 부분이 시작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베네딕트는 부리나케 계단을 올라가 시체 안치소로 뛰어 들어갔다.

 

 

 

 

 

눈이 내린 경치처럼 새하얀 색으로 칠해진 방이 베네딕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 하얀 작은 언덕이 늘어서 있고 시트 밑에 누워 있는 것의 윤곽이 희끄무레하게 드러나 있었다. 문을 있는 힘껏 밀쳤다. 베네딕트는 빛의 홍수에 싸인 채 입구에 서서 한쪽 손으로 부자연스럽게 손잡이를 잡고 머리를 뒤로 젖히고 다른 한 손은 높이 들고 연극조의 인사를 했다.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이 돌아온 것이다. 베네딕트는 오랫동안 무대 중앙에 우뚝 선 채로 있었다. 베네딕트의 머릿속에서는 아마 빗발치는 갈채가 울려 퍼지고 있었을 것이다. 베네딕트는 꼼짝도 하지 않고 그저 다시 머리를 깊이 숙임으로써 너무나도 친절한 관객들에게 감사의 뜻을 나타냈다. 베네딕트는 상의를 벗어 걸고 하얀 새 작업복을 걸치고 재빠른 직업적 손놀림으로 소매 단추를 채우고 손을 씻으면서 천천히 주위의 친구들을 둘러보았다.

 

수확이 많은 일주일이었다. 시트 밑에는 기호에 따라 서로 다른 각양각색의 시체가 모여서 자고 있었다. 베네딕트는 그들 앞에 서자, 자신의 몸이 점차 커지며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수 있도록 치솟아가는 것을 느꼈다. 베네딕트는 스스로도 몹시 놀라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아니지만 점점 더 높이 치솟으면서 호기심도 더해진다!’[4]라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양손을 높이 뻗었다.

 

베네딕트는 그때까지도 이 방에 맨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그 경이감을 극복할 수가 없었다. 기쁨과 동시에 망설임을 느끼는 것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베네딕트의 꼭두각시에 불과해서 하고 싶은 행위를 그들에게 할 수가 있었고 게다가 상대는, 당연한 일이지만, 베네딕트의 행위에 은근한 협력을 아끼지 않는 것이었다. 그들은 도망치려고 해도 도망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베네딕트는 옛날처럼 자유롭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쑥쑥 자라나는 것이었다.

 

“오오, 위로 위로, 높이 높이 자란다. 이제 곧 머리가 천장에 부딪칠 것 같아.”

 

 

 

 

- 2부에 계속 -

 

 

 

 

 

 

 

 

* cyrus의 주석

 

 

 

 

[1] 원작 출전은 1947년에 발표된 단편집 <Dark Carnival>, 번역문 출전은 《나의 꿈꾸는 여자 : 환상 미스터리 걸작선》(동숭동, 1993). 이 책은 정태원 씨가 번역했고, 총 12편의 환상소설을 모아 놓은 앤솔로지다. 알라딘에 이 책을 검색하면 출판사명이 '민족사'(주로 불교 서적을 펴내는 출판사가 왜?)로 나온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소설뿐만 아니라 어거스트 덜레스(August Derleth), 로버트 블록(Robert Bloch), 패트리샤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 리처드 매드슨(Richard Matheson)의 소설 등이 수록되어 있다. 환상소설 앤솔로지의 제목은 리처드 매드슨의 작품명이다. 이 책은 이듬해에 《식인 달팽이》라는 괴랄한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는데, ‘식인 달팽이’는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작품명이다. 브래드버리의 소설을 소개한 짤막한 글은 정태원 씨가 썼다.

 

 

 

※ 어거스트 덜레스와 로버트 블록을 소개한 필자의 잡문

 

* 《공포특급 5》 리뷰

(2016년 4월 25일 작성, http://blog.aladin.co.kr/haesung/8452837)

 

* [누가 러브크래프트를 죽였는가?]

(2017년 5월 29일 작성, http://blog.aladin.co.kr/haesung/9366364)

 

 

 

 

[2] 침례파

자각적인 신앙고백에 기초한 침례를 시행하는 그리스도교 프로테스탄트의 한 교파. 신약성서의 내용에 따라 신앙 고백을 한 사람들에게만 세례를 베풀어야 한다고 믿으며 이 때문에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는다. (참고: 네이버 백과사전 ‘침례교’ 항목)

 

 

[3] 이 문장에서 나오는 ‘장사’는 ‘물건을 파는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가 아니다. 죽은 사람을 땅에 묻는 일(葬事)을 뜻한다.

 

 

[4] 베네딕트는 루이스 캐럴(Lewis Carrol)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주인공 소녀가 몸집이 거대해지는 장면을 자신의 모습에 빗대어 표현한다.

 

 

 

 

 

 

 

 

 

 

 

 

앨리스가 거인이 되는 장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필자의 잡문 [거인 앨리스를 사랑한 난쟁이](2017년 8월 29일 작성)를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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