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동물 - 짝짓기, 번식, 굶주림까지 우리가 몰랐던 식물들의 거대한 지성과 욕망
손승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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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척박한 모래땅이나 바윗덩어리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식물들이 있다. 어쩌다 재수 없게 그곳에 뿌리를 내린 것이 아니다. 다른 식물들이 마다하는 곳을 자기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경쟁에 시달리지 않고 자기의 영역을 구축해 나가는 생존전략을 구사했다고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숲속의 나무와 풀은 광합성에 필요한 햇빛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지만 대개는 지나친 경쟁을 피하고 생장 조건의 틈새를 찾아 불리한 환경을 극복해나간다. 언뜻 보면 지구를 지배하는 것은 동물, 특히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종류를 차지하는 것은 식물이다.

 

<EBS 다큐프라임-녹색 동물>은 식물의 생존 전략을 담기 위해 2년여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제작된 다큐멘터리다. 다큐멘터리 제작팀 프로듀서인 손승우 씨는 엄청난 자연의 원리를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 책에 많은 사진을 담았다. 이 책에 접사 사진이 많다. 그냥 눈으로 지나치며 보는 것과 깊숙이 들여다보는 것은 그 재미가 다르다. 책의 순서는 프로그램 형식과 비슷하다. 식물의 식욕, 성욕, 그리고 번식욕을 다룬다. 잠깐만! 여기서 이상한 낌새를 느낀 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식물도 인간처럼 식욕, 성욕, 번식욕이 있을까. 그렇다. 식물도 생물이다. 모든 생물의 지상 최대의 과제는 유전자의 존속과 번성이다. 동물들의 깊숙한 곳에 새겨진 생존의 목적은 오로지 종족 번식인데 하물며 식물이라고 번식의 욕구가 없을 리 없다. 식물들은 종족을 번식시키려면 잘 먹고, 짝을 잘 만나야 한다.

 

실새삼은 숙주 식물, 특히 콩과 토마토 줄기에 달라붙어 생활하는 기생식물이다. 이 녀석은 별나다. 숙주 식물을 찾을 때 냄새를 맡는다. 식물이 냄새를 맡는다? 이거 실화냐고? 그래, 사실이다. 실새삼은 토마토가 뿜어내는 화학성분을 감지하면 그 줄기를 향해 맹렬히 덩굴을 뻗어 나간다. 많은 식물은 꽃이나 열매로 곤충들을 유인하고, 거의 모든 식물이 뿌리를 통해서 잎을 통한 광합성으로 영양분을 흡수한다. 이런 식물들과 달리 벌레잡이 식물은 토양에서 충분한 영양분을 얻지 못한다. 벌레잡이 식물은 흙을 거의 구경하기 어려운 지역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곤충을 유인해서 사로잡고 소화하여 영양분을 얻는다. 네펜데스(Nepenthes)는 소화액이 담긴 긴 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통은 잎과 줄기가 변형되어 만들어진 기관이다. 커다란 통을 가진 네펜데스 라자(Nepenthes Lajah)’는 들쥐까지 잡아먹을 수 있다. 살 수만 있다면 뭐든지 먹을 수 있는 식물이 네펜데스다. 네펜데스의 일종은 박쥐의 배설물을 받아먹기도 한다.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은 꽃이 필 때 꿀을 좋아하는 곤충이나 동물을 불러 유전자가 실린 꽃가루를 나르는 심부름을 시킨다. 꽃은 식물의 생존 전략에서 가장 원초적인 기관이라 볼 수 있다. 식물은 곤충들을 유혹하기 위해 화려한 색깔과 달콤한 향기, 의도적으로 배치된 꽃잎을 무기로 완벽한 시각적 구도를 개발해왔다. 자손의 번성을 위해서 씨앗을 퍼뜨리는 방식도 식물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민들레 씨앗처럼 깃털을 만들어 바람에 실어 보내기도 하고, 겨우살이 같은 경우는 새들을 이용해 나무를 옮겨 다닌다. 겨우살이는 스스로 나무를 옮겨 다니며 번식할 수 없다. 겨우살이 열매는 겨울에 먹이를 구하지 못한 새들이 좋아하는 먹이다. 하지만 열매를 먹는 새들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끈적끈적한 점액으로 이루어진 열매를 먹으려면 씨앗을 발라내야 한다. 새들이 이것을 먹고 나서 부리에 붙은 씨앗을 떼어내려고 다른 나뭇가지에 부리를 비빌 때 씨앗이 들러붙게 된다. 점액이 마르면 접착제가 된다. 그래서 씨앗은 나뭇가지에 떨어지지 않고, 그 상태로 싹이 나와 나뭇가지에 뿌리를 박는다.

 

과거에 인간은 식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었다. 식물도 의식 체계를 가졌는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식물은 제자리에 꼼짝 못 하고 선 채 그저 생명만 이어가는 존재 정도로 치부됐다. 하지만 식물도 인간처럼 욕망한다. 그 욕망이 있어서 식물들은 잘 먹고, 잘 살고, 성공적으로 번식하려고 노력한다. 불모지에 꿋꿋하게 자라는 식물들을 들여다보면 삶의 무게로 힘들어할 때 힘을 얻는다. 생존하려는 욕구를 가진 식물들은 말없이 인간에게 삶의 자세를 가르친다. 광활한 자연 속에 열악하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적응하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다. 이렇게 자연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가르침을 준다.

 

   

 

Trivia

 

* 313쪽에 구더기 떼가 끓고 있는 동물 사체를 찍은 사진, 350쪽에 불에 타 죽은 메뚜기를 근접해서 찍은 사진이 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약혐(약간 혐오)’일 수 있으니 책을 읽기 전에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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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0 17: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7-20 18:22   좋아요 1 | URL
식물이 대단한 게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곳을 기어이 알아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