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 - 미래 로봇이 알아야 할 인간의 모든 것, 2018년 행복한아침독서 선정
닉 켈먼 지음, 김소정 옮김 / 푸른지식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제24회 영남일보 책읽기賞 독서감상문 대회에 출제한 글입니다.

 

 

 

기초과학 연구 환경이 척박한 이 땅에서 로봇기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요즘처럼 뜨거운 적은 일찍이 없었다. 언론에선 로봇 산업을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끌 차세대 미래 산업이라며 연일 치켜세운다. 대중의 상상력은 온갖 궂은일을 대신해주는,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nial Man)’에 나오는 인간형 로봇을 꿈꾸고 있다. 그 즐거운 공상 속에 인간을 닮은 존재를 만들려는 염원이 들어 있다. 인간이 기계를 발명하게 된 계기는 기계가 인간의 일을 대신 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행동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해 내는 일, 안드로이드(Android)는 기술 발전의 꼭대기에 이르는 것이 된다.

 

안드로이드도 잘만 이용할 수 있다면 인간 생활은 더 윤택하고 편해질 수 있다. 하지만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존재하듯이 안드로이드 산업에도 그림자가 어려 있다. 그 그림자는 정보사회로의 급격한 이행 중에 경험했던 대량실업의 공포다. 몇몇 학자는 안드로이드의 등장으로 사람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회사와 공장들이 속속 생길 것을 경고한다.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먼 미래에 인간과 신이 결합한 호모 데우스(Homo Deus)가 지구에 살고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는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전망한다. 인류에 행복을 선물할 거로 기대했던 데이터가 오히려 인류의 종말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하라리는 디스토피아의 미래가 꼭 예언은 아니라며, 비극으로 치닫지 않을 선택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몰락한 인류 대신 안드로이드가 지배하는 세계는 공포영화보다 더욱 심각한 현장이 될 수 있을까? 하라리의 전망이 남긴 찝찝한 뒷맛을 지우고 싶을 때 시나리오 작가 닉 켈먼(Nic Kelman)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푸른지식, 2017)을 읽으면 된다. 이 책의 주인공은 호모 사피엔스가 되고 싶은 안드로이드 이다. 잭이 사는 세상은 인류와 안드로이드가 공존하는 미래 사회이다. 안드로이드 주제에 여성 인간을 사귀기도 한다. 닉 켈먼은 과감한 역발상으로 안드로이드의 시선으로 인간을 관찰한다. 그래서 책의 부제가 미래 로봇이 알아야 할 인간의 모든 것이다.

 

이 책은 특이하게 두 개의 이야기로 교차 편집되어 있다. 하나는 잭의 이야기이며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의 인간 관찰 보고서다. 편집 방식 때문에 이야기의 몰입도가 떨어지지만, 탄생의 비밀을 추적하는 잭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결말이 몹시 궁금해진다. 잭은 처음에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눈은 정확하다. 그가 바라보는 인간은 비합리적인 행동을 한다. 우리는 자신이 합리적으로 의사 결정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의 선택은 대부분 비합리적이다. 잭은 인간처럼 행동하기 위해 인간의 약점까지 따라 한다.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안드로이드가 약점이 많은 인간이 되기 위해 흉내 내는 모습이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잭은 왜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걸까? 재미있게도 잭은 안드로이드야말로 인간보다 연약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안드로이드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말한다.

 

우리 안드로이드에 관한 사람들의 환상은 사실에 기반을 두었다기보다는 우리가 인류를 멸종시키거나 인류를 대체할 거라는 공포에 기반을 두고 있어.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들이 지금까지 만들어온 기계들이 얼마나 엉성한 것이었는지 잘 알면서도 우리는 처음부터 파괴될 수 없는 존재로 창조되었다고 믿기 때문이지. 그건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야. 우리도 사람처럼 연약한 존재란 말이야. 아니, 사람보다 더 연약할지도 몰라. (11~12)

 

듣고 보니 그럴싸하다.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문제와 마주친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이성적으로 똑똑한 결정을 내린다고 자부한다.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에는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은 인공지능,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AI 로봇이 상용화되는 미래를 원한다. 반면 어떤 이들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을 깊숙이 침투하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착각하는 인간이 엄청 똑똑한 안드로이드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생각이 우습다. 아직 완벽하게 실현되지 않은 안드로이드 제작 기술에 벌벌 떠는 인간의 모습도 좀 웃기긴 하다.

 

인간 관찰 보고서는 직업, , 사랑, 종교, 문화 등 여러 가지 삶의 방식에 얽힌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그것은 안드로이드를 위한 훌륭한 처세술이다. 인간으로 살고 싶은 안드로이드는 이 보고서를 읽고, 거기에 적힌 내용대로 행동한다. 그렇다고 이 글이 인간 독자가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 독자가 인간 관찰 보고서를 읽으면 그 글은 인간 탐구 보고서가 된다. 이 글을 읽고 우리 자신, 즉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사실 안드로이드보다 더 무서운 것이 보고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 속에 기술 발전에 집착하는 광기에 사로잡힌 인간의 모습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을 만들려는 욕구는 번식 욕구 다음으로 강하다. 인류의 초기 단계에서 이런 욕구는 아주 유용한 본능이었겠지만, 지금은 너무 지나치게 사람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욕구가 아닌가 싶다. (142)

 

우리 같은 안드로이드가 문자 그대로 사람을 종속시키거나 몰살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해도, 사람은 우리 같은 인공지능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144)

 

더 나은 기술을 끊임없이 갈망하는 인간의 상상은 미래에 대한 불안한 강박의 산물이다. 아이작 뉴턴(Isaac Newton)나는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사람들의 광기는 도저히 예측하지 못하겠다.”며 탄식했다고 한다. 미래의 모습보다 예측하기 힘든 것이 바로 우리 마음 어딘가에 숨어 있을 광기다. 안드로이드를 만들려는 인간의 시도는 바람직한 도전인가, 아니면 강박에 의한 집단 광기일까. 인간의 온기를 품지 않는 과학기술이 자본의 가치 증식에만 봉사한다면 사회적 경종이 울려야 할 것이다. 그 경종을 제때 울리려면 일단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다.

 

 

 

 

리뷰의 제목은 레미 드 구르몽의 시 낙엽의 구절(“시몬, 너는 좋냐? 낙엽 밟는 소리를.”)을 패러디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