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인지한 사물이나 현상은 우리에게 단단한 믿음을 준다. 그러나 우리는 그 믿음에 가끔 착각할 때가 있다. ‘내가 본 것이 진짜’라는 환상에 속는 것이다. 착시는 사람들이 가진 일반적인 인지 양식의 결과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말이 있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 눈과 뇌는 불완전하다.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는 형태가 모호한 대상에서 의미 있는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욕구가 빚어낸 착시 현상이다. 뇌는 사람의 얼굴 모양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어두운 밤 형체가 뚜렷이 보이지 않는 환경에서 사람과 비슷한 형상을 발견하면 뇌는 즉각 반응해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뇌의 인식 오작동 때문에 우리는 뚜렷하지 않은 형상을 ‘귀신’이라고 믿는다.
* 피츠 제임스 오브라이언 《아니물라》 (바른번역, 2016)
파레이돌리아 현상은 자신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게 지나친 자기 확신이다. 과잉 확신의 늪에 빠지면 정확한 분석이 어려워진다. 피츠 제임스 오브라이언(Fitz James O’Brien)의 《아니물라》(원제: 다이아몬드 렌즈)에 등장한 린리(Linley)의 직업은 과학자다. 하지만 그는 과학자가 경계해야 할 인식의 오류에 빠질 정도로 미숙한 면모가 있다. 현미경 렌즈 너머로 보이는 미세한 세계(micro world)에 푹 빠진 린리는 물방울 속에 보이는 불가사의한 형체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인’이라고 착각한다. 린리는 물방울의 우연한 형태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찾으려고 한다.
* E.T.A. 호프만 《모래 사나이》 (문학과지성사, 2001)
* E.T.A. 호프만 《모래 사나이》 (지만지, 2011)
호프만(Hoffmann)의 소설 『모래 사나이』에는 왜곡된 시각적 기억 때문에 엄청 고생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어린 나타나엘(Nathanael)은 변호사 코펠리우스(Coppelius)의 흉측한 외모를 잊지 못한다. 코펠리우스는 나타나엘의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사악한 존재다. 어린 나타나엘은 밤마다 찾아와 잠자는 아이의 안구를 훔친다는 ‘모래 사나이’에 대한 두려움을 코펠리우스에게 투영한다. 그가 코펠리우스와 닮은 청우계 장수 코폴라(Coppola)를 만나게 되면서, 유년 시절에 느꼈던 그것과 유사한 두려움에 빠진다. 코펠리우스와 코폴라의 이름에 공통으로 들어가 있는 ‘coppo-’는 ‘잔 모양의 물건’ 또는 ‘눈구멍’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다. 코펠리우스와 코폴라를 만나면 자신의 안구가 강탈당할까 봐 두려워한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나타나엘은 비슷한 것만 봐도 겁을 낸다. 그는 자신의 과장된 공포를 ‘망상’이 아닌 ‘실제’라고 확신한다. 모래 사나이, 코펠리우스, 코폴라가 자기에게 적대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믿고, 그때부터 편집증적 환상이 구체화하기 시작된 것이다. 원래 이 작품의 초고에 코펠리우스와 코폴라가 동일 인물임을 알려주는 대목이 있었다고 한다. 인쇄하기 위해 정리한 원고에 이 문장이 삭제되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질서한 사실들 속에서 질서를 찾으려고 한다.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서 기를 쓴다. 그리하여 그 의미를 근거 삼아 혼란스러운 감정을 추스르거나 불안한 미래를 예견해 보려 한다. 모르면 모르는 것으로 놔두든지 확실하게 알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조급해서 뭐든 빨리 확신한다. 끝내 의미를 찾지 못하면 자신이 보고 싶은 걸 그대로 믿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가짜 뉴스’와 조작된 사진을 검증 없이 사실인 양 믿는다. 확증편향은 자신의 선입견을 확증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탐색하는 경향이다. 우리 사회에 파레이돌리아, 과잉 확신 그리고 확증편향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손가락으로 어두운 거짓의 그림자를 가리켜 진짜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 그림자는 착각과 지나친 망상이 만들어낸 아주 위험한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