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의 엄지 - 자연의 역사 속에 감춰진 진화의 비밀 사이언스 클래식 29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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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기독교와 끊임없는 갈등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시초를 규명하는 이론이 진화론과 창조론으로 양분되었다. 창조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진화론이 전혀 근거 없는 억측이라고 주장한다. 그 비판 근거 가운데 하나가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다. 생물의 진화 경로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화석 증거물을 일컫는다. 복잡한 진화과정에 비하면 발굴된 화석의 수가 많지 않다. 진화학자와 고생물학자 들은 진화의 흐름에서 중간을 이어주는 생물들을 찾아내기 위해 애를 써왔다. ‘잃어버린 고리’는 다윈(Darwin)의 《종의 기원》에서 시작된 진화론을 완성해주기 위한 필요조건이었다.

 

다윈은 ‘잃어버린 고리’에 대한 약점을 극복하지 못한 채 ‘점진론’을 내세웠다. 모든 진화는 오랜 세월 자연선택과 도태를 거쳐 점진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복잡한 생물계를 이루게 됐다는 것이다. 그 후로도 다윈주의자들은 화석 기록의 불연속성을 대충 얼버무리며 “자연은 결코 비약하지 않는다.”(naturanon facit saltum)라고 확신했다.

 

그렇지만 화석 기록이 없는 ‘진화론’은 고생물학자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그래서 ‘잃어버린 고리’를 꼬집으며 창조론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하지만 진화론자들이 먼저 싸움을 걸지 않는다. 진화론자들은 ‘잃어버린 고리’가 진화론의 약점이라는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다.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은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처럼 진화론의 약점을 보완해줄 과학적 근거를 찾아내는 것이다. 굴드의 《판다의 엄지》는 ‘잃어버린 고리’ 때문에 궁지에 몰린 고생물학자들을 구원한 책이다.

 

굴드는 다윈이 생각한 것처럼 자연이 항상 점진적으로 발전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순간적 도약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굴드는 닐스 엘드리지(Niles Eldredge)와 함께 단속평형이론을 주장한다. 생물이 오랫동안 거의 변하지 않다가, 환경이 변화하면 갑작스럽게 형태의 변이나 종의 분화가 일어난다. 즉 생물은 생태계가 안정된 평형 상태에서는 거의 진화하지 않다가 빙하기, 운석 충돌 등으로 평형 상태가 깨지면서 순식간에 진화하거나 소멸하는 것이다. 실제로 진화의 역사에서 그런 사건이 자주 있었다. 4, 5억 년 전부터 지구에는 엄청나게 다양한 생물 종이 폭발적으로 생겨났다. ‘캄브리아기 폭발’이라고 불리는 시기이다. 비교적 짧은 기간에 매우 다양한 주요 동물 군(群)이 대거 출현했다는 점에서 캄브리아기는 혁명적인 지질시대로 구분된다.

 

다윈은 필요 때문에 진화한다는 라마르크(Lamarck)의 용불용설을 반박하면서 종의 다양성을 ‘우연’으로 설명했다. 진화는 목적성을 가진 것이 아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일 뿐이다. 그래서 판다(panda)는 사시사철 푸른 잎을 먹을 수 있는 대나무를 쉽게 먹을 수 있도록 손목뼈를 변형하여 다섯 개 손가락과 별개인 가짜 엄지를 만들었다. 환경에 따라 진화의 방향은 역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종의 능력을 퇴화시키기도 하고, 종을 더욱 연약하게 만들 수도 있다. 결국, 인류의 출현은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이라는 진보를 상징하는 승리의 과정이 아니라 위험과 우연한 성공의 연속이다. 생명의 진화는 인간의 출현으로 완성되지도 끝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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