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7일에 『김훈을 비판하면서 놓친 것』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습니다. 김훈의 아기 성기 묘사에 대한 생각을 소신 있게 밝힌 글이었습니다. 이 글에 대한 몇몇 분들의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의견 덕분에 제가 글을 쓰면서 놓친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버리지 못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잘못된 생각의 편린들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문제의 문장을 과학적인 관점으로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분의 공감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제 입장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남성과 여성을 철저히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반영된 논지를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제가 관음증의 의미를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영화나 소설 등 문화계 전반에 숨어있는 ‘관음증적 시선’을 읽어내는 훈련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 나탈리 앤지어 《여자, 내밀한 몸의 정체》 (문예출판사, 2016)

 

 

『김훈을 비판하면서 놓친 것』을 쓰면서 인용한 나탈리 앤지어의 문장 일부를 다시 읽어봤습니다.

 

 

 

내가 아기였을 때, 어머니는 친구에게 자기 어린 딸을 좀 봐 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딸을 수전이라고 부르자. 어머니는 신생아인 나 말고도 더 큰 딸이 있었으므로, 여자아기의 생식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주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수전의 기저귀를 갈아주다가 음순의 동그란 둔덕 사이로 삐쭉 튀어나와 있는 클리토리스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것은 음경 같지는 않았다. 내 어머니에게는 아들도 하나 있었기 때문에 아기 음경이 어떻게 생겼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여자아기의 것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코끝이나 새끼손가락처럼 보였고, 어머니가 천으로 닦아내자 당혹스러우면서도 신기하게도 약간 단단해졌다. 어머니는 수전의 두드러지게 튀어나온 클리토리스 모양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자기 딸들을 생각했고, 토실토실한 외음부 안에 눈에는 잘 안 보이지만 만지면 느낄 수 있는 클리토리스가 깔끔하게 들어가 있는 자기 딸들의 생식기가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1]

 

 

 

나탈리 앤지어의 어머니는 튀어나온 음핵(clitoris)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깔끔한 형태의 음핵을 선호했습니다. 저는 그녀의 생각을 ‘남성 중심적 사고’라고 생각했습니다. 튀어나온 음핵을 미관상 보기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을 실제로 본 적 있었습니다. 그들은 공통으로 ‘남성의 성욕을 자극하는 예쁜 음핵’이 있다고 믿었고, 그런 음핵을 가진 여성과의 잠자리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남성들이 있다는 근거만으로 ‘튀어나온 음핵을 선호하지 않는 것’을 ‘남성 중심적 사고’로 일반화했습니다. 나탈리 앤지어의 어머니처럼 여성도 튀어나온 음핵을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고, 깔끔한 음핵을 좋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음핵의 형태를 바라보는 여성의 시선에 ‘남성 중심적 사고’가 반영되어 있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여성의 신체를 마음대로 소유했던 과거의 남성들은 음핵이 ‘남성의 성적 만족감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신체 부위’로 생각했습니다. 과거 남성들은 여성이 성적 쾌락을 느낄 수 없는 존재로 생각했고, 심지어 여성이 성적 쾌락을 느낄 자유마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 옐토 드렌스 《마이 버자이너》 (동아시아, 2017)

* 이브 엔슬러 《버자이너 모놀로그》 (북하우스, 2009)

 

 

중세의 남성들은 튀어나온 음핵을 가진 여성을 ‘마녀’로 규정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황당한 내용입니다. 불행하게도 ‘마녀사냥’이 유행하던 시절에는 이 황당무계한 근거가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누구도 이 어리석은 광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마녀재판을 주관하는 집행관의 아내조차도 바보들의 행진에 동참하여 침묵했습니다. 단지 음핵이 튀어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마녀라는 억울한 누명을 받으면서 죽어간 여성이 많았습니다. 제가 인용한 문장은 1593년에 일어난 처형에 대한 목격담입니다.

 

처형이 끝나…… 세 마녀의 숨이 완전히 멎자 집행관은 그들의 옷을 벗겼고, 앨리스 새뮤얼이라는 여성의 발가벗겨진 몸에서 작은 살덩어리를 발견했는데, 마치 젖꼭지인 양 반 인치 정도 길이로 튀어나온 것이었다. 집행관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도 보고 있었으므로, 처음에는 그렇게 은밀한, 볼 것이 못 되는 부위를 노출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결국에는 그토록 이상한 물체를 감추는 것도 꺼림칙해 보였다.[2]

 

 

다음으로 이브 엔슬러(Eve Ensler)의 연극 작품 《버자이너 모놀로그》(The Vagina Monologues)에 수록된 ‘보지에 관한 사실, 하나’를 인용하겠습니다. 이 내용 역시 1593년 마녀 재판에 있었던 상황을 기록한 내용이고요, 《마이 버자이너》에도 나옵니다.

 

 

1593년 마녀재판에서 기혼남성인 한 법관이 처음으로 클리토리스를 발견했다. 그는 그것을 ‘악마의 젖꼭지’라고 이름 붙이고 마녀의 유죄 증거로 사용했다. 법관은 ‘그것은 젖꼭지처럼 튀어나온 0.5인치 길이의 살덩어리로, 첫눈에는 알아볼 수 없게 은밀한 부분과 연결되어 있지만 종국에는 너무나도 이상하게 자신의 존재를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고 말하며 마녀로 기소된 여성의 그것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까지 다 보여줬다. 구경꾼들은 그런 것을 본 일이 없었고, 그녀는 마녀로 확정 판결을 받아 처형됐다.[3]

 

 

음핵은 여성미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깔끔한 음핵이 예뻐 보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인식이 강할수록 여성도 튀어나온 음핵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오히려 튀어나온 음핵이 못생겼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은 자신의 몸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신의 몸을 사랑하지 않으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의학적 힘에 의지하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음핵을 외관상 아름답게 보이도록 만들어주는 성형 수술이 있습니다. 이 수술을 담당하는 미국인 의사는 스스로 ‘여성 성기 미용 의사’라고 소개합니다. 《마이 버자이너》의 저자 옐토 드렌스는 음핵도 성형수술의 대상이 되는 세태를 부정적으로 바라봅니다. 저도 저자의 입장에 동의합니다. 그래서 저는 깔끔한 음핵을 선호하는 것이 남성 중심적 사고가 반영된 인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여성 성기 미용 의사는 성기의 비대칭을 모조리 바로잡을 수 있다고 자랑한다. 그 의사를 인터뷰한 저널리스트는 수많은 사진들을 보았는데, 엄청나게 다채로운 개개인의 다양성이 천편일률적으로 다듬어져 일종의 표준 음부로 탈바꿈한 데 무척 놀랐다. 우리가 보는 포르노 사진들 역시 손질을 통해 다듬은 것이다. 젊은 여성들이 그토록 닮고 싶어 하는 모델은 점점 비현실적인 무언가가 되고 있다.[4]

 

 

포르노 여배우는 카메라 앞에서는 아름답게 포장된 존재입니다. 남성이 좋아하게끔 꾸미는 거죠. 포르노 여배우 대부분은 왁싱으로 음모를 제거합니다. 그러면 카메라로 비추는 음핵은 깔끔하게 보입니다. 포르노를 자주 보는 남성들은 여성의 신체에 대한 환상을 가집니다. 남성이 음모 한 올도 덮여 있지 않은 깔끔한 음핵에 익숙해지면 평범한 여성의 음핵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음모가 수북하다거나 튀어나온 음핵을 가진 여자 친구 또는 아내와의 섹스를 거부하는, 웃지 못한 상황이 펼쳐집니다. 여성의 신체 일부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섹스를 거부하고, 그녀와 헤어지자고 요구하는 남성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이런 남성은 여성의 신체가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어리석은 남성의 이야기는 《버자이너 모놀로그》에 나옵니다. 그 이야기의 제목은 ‘음모’입니다.

 

 

 

 

 

 

 

 

 

 

 

 

 

 

 

 

 

* 정희진 엮음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교양인, 2017)

 

 

 

음핵은 신체 일부입니다. 음핵이 조금 튀어나왔거나 모양이 이상해도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다만, 성호르몬 이상 원인으로 음핵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질 입구가 막혀 있거나 지나치게 튀어나온 음핵을 가진 여성, 그리고 해부학상 여성의 신체를 가졌으나 남성 생식기와 유사한 신체 기관을 가진 이들을 ‘인터섹스’라고 합니다. ‘남성’과 ‘여성’, 딱 두 가지 성별의 차이가 통용된 사회는 인터섹스를 성의 범주에 벗어난 존재로 규정합니다. 인터섹스를 인정하지 못하게 되면, 의학적인 문제가 없어도 튀어나온 음핵을 가진 여성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튀어나온 음핵을 가진 여성을 ‘마녀’로 생각하지 않겠지만, 그 대신 ‘비정상’, ‘잘못 태어난 기형’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과거처럼 신체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여성의 신체를 왜곡하고, 억압하는 일이 재현됩니다.

 

어느 분께서 여성은 자기 몸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분의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여성 스스로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자유조차 인정하지 않습니다. 남성 중심적 시선에 갇히는 바람에 자신의 몸이 마음에 들지 않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회 구조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성이 자신의 몸을 부정적으로 보는 자기혐오는 여성 개인 선호에서 비롯된 문제로만 볼 수 없습니다. 거시적으로 보면 가부장제 문화에서 내면화된 증오와 억압입니다.[5]

 

 

 

[1] 나탈리 앤지어 《여자, 그 내밀한 지리학》(《여자, 내밀한 몸의 정체》 구판) 107쪽

 

[2] 옐토 드렌스 《버자이너 문화사》(《마이 버자이너》 구판) 17쪽

 

[3] 이브 엔슬러 《버자이너 모놀로그》 73쪽

 

[4] 옐토 드렌스 《버자이너 문화사》(《마이 버자이너》 구판) 428쪽

 

[5] 이브 엔슬러 《버자이너 모놀로그》 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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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4 2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3-14 21:37   좋아요 0 | URL
팬티에 가려지는 신체 부위 선호에 따라서 이성을 만나는 남자들이 이해가지 않았어요.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오히려 그들이 절 이상하게 생각해요. ˝네가 여자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구나˝라는 식으로 말해요. 이 말이 거의 팩트 폭력급이라서 더는 말하지 못해요. ^^;;

2017-03-15 1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3-15 20:36   좋아요 1 | URL
《버자이너 모놀로그》에 인용한 글 제목을 패러디했는건데, 다시 보니까 제목에 불편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겠어요. 제목 수정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