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거래에 대하여 - 책과 서점에 대한 단상
장 뤽 낭시 지음, 이선희 옮김 / 길(도서출판)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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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다른 세계와 통하는 하나의 창이다. 색다른 경험을 간접적으로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 현상을 타파하고 사유의 영역을 넓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독서이다. 읽는 행위가 단순히 보는 행위와는 다르다. 책은 우리 뇌리에 더욱 깊이 각인시켜 준다. 그래서 어떤 책을 읽고 크게 감명받았다면 그의 일생에 걸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게 되기도 한다. 사고하는 능력, 인생을 만드는 건 외부에서 주어지는 게 아니다. 스스로 자신만의 길을 선택해서 걸어가는 것이다. 책 속에 기록해 둔 진리의 흔적을 따라가서 읽어내는 것, 그것은 마치 우리가 잠시 여유를 갖고 길을 거닐며 사색하는 산책과 유사하다. 좀 깊이 생각하면 독서는 글을 매개체로 글쓴이의 ‘마음을 읽는 것’이고 자기 자신과 ‘대화를 하는 것’이다.
 
장-뤽 낭시는 독서를 통해 자기 자신과의 끝없는 대화를 나누고, 자기 생각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을 ‘거래(commerce, 교류)’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독서를 통한 ‘만남’은 우리 사유의 폭을 넓히고, 유연한 사고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타인(다른 독자)을 좀 더 포용할 수 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듯이 한 권의 책을 만나면서 자신의 미래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선호하는 책만 골라 읽는 편식성 독서의 문제점은 다른 책들이 독자에게 말 거는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결국, 이는 좁은 영역에 스스로 갇히는 우둔함을 자초한다. ‘자신만의 세계’에 도취해 본인은 불행하게도 전혀 이를 깨닫지 못한다. 사유의 거래를 거부하거나 피하는 인간은 자기만의 철옹성을 구축해 사유의 폭을 더 이상 넓히지 못하는 완고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쯤에서 누구라도 ‘자신만의 세계’가 과연 무엇인지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껏해야 자기가 속한 지리적 · 공간적 환경 속에서 보고 듣고 읽고 이를 토대로 느끼고 판단하고 상상하는 범주가 전부다. 지극히 제한적이다. ‘자신만의 세계’를 벗어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책과 독자들을 지속적으로 만나려면 서점에 가야 한다. 지식의 전파와 깊은 사유의 생성 모두 서점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서점에서는 여전히 책이 넘쳐나고 도서 전문 강좌나 자발적 독서 모임도 많아졌다. 이 현상만 가지고, 우리나라 독서 문화가 정착되었다고 볼 수 없다. 또 우리 사회가 지식이 부족해서 이렇게 된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며 소통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이끄는 무언가가 없기 때문이다. 암울하게도 독자들을 유혹하는 서점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독자의 눈길을 받지 못한 책은 ‘닫힌 책’이다. 즉 읽히지 않은 책이다. 이것은 책이 아니다. 책은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독자가 ‘닫힌 책’을 열어야 한다. ‘열려라, 참깨!’ 당연히 안 열린다. 이 주문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너무 허술하기 짝이 없는 패스워드다. 책 자체가 펼쳐질 뿐이지 그 속에 담긴 내용이 독자를 향해 펼쳐지지 않는다. 우리가 암만 ‘독서는 넘나 좋은 것, 책을 읽읍시다!’라는 진부한 주문을 강요하듯이 외쳐 봐도 책 읽는 사람이 늘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책이 펼쳐지겠나. 알리바바는 동굴 속에 숨겨진 보물이 궁금해서 패스워드를 정확히 기억해내 동굴을 여는 데 성공했다. 알리바바처럼 호기심이 많고, 어떤 것이라도 궁금해 알아보려고 하는 독자가 많아야 한다. 그런 독자에게 책은 항상 펼쳐져 있다. ‘열린 책’은 시공을 초월해 자유롭게 다른 세계와의 만남을 연결해 준다. 알리바바형 독자는 자신에게 유익한 지식이라는 보물을 건져내기 위해 갖가지 세계와의 경험을 쌓으면서 사유의 거래를 시도한다. 사유의 거래를 끊임없이 갈구하는 독자들이 모여서 활발하게 거래를 시도하는 곳이 ‘알라딘 북플’이다. 이곳에 독자들이 매일 리뷰를 쓰며 자신과의 대화 또는 다른 독자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양파를 까듯 끝이 없는 즐거운 사유 거래의 연속이다. 이게 꽁꽁 언 채 있는 답답한 세상을 여는 하나의 방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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