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강치 멸종사 - 오키 견문록 : 종 멸종에 관한 반문명사적 기록 라메르(La Mer) 총서 1
주강현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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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끊임없이 논쟁이 되는 독도 영유권 문제는 양국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한다. 독도는 조선 전기부터 우산도 또는 삼봉도로 불리며 강원 울진현에 속해 있었다. 17세기 한일 간에 울릉도 영유권 문제가 야기되자 안용복 일행의 외교활동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울릉도와 함께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인정받았다. 사절단도, 중앙관리도 아닌 평범한 어민에 불과했지만, 안용복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인 것을 일본 막부가 자인하도록 활약한 민간 외교가이다.

 

“독도가 왜 우리 땅이냐?”고 물어보면 대다수 국민이 “당연한 것 아니냐”는 식의 답변에 머문다. 역사에 관심 있으면 “신라가 우산국(울릉도)을 편입했다는 옛 문헌이 있다”거나 “안용복이 독도에 잠입해 있던 일본 어부들을 쫓아냈었다”는 말이 나온다. “다케시마는 우리 땅”이라고 생각할 일본인에게 독도가 대한민국 땅인 이유를 설명해 줄 확실한 논리는 있어야 한다. 일본 시마네 현에 만들어진 독도 관련 홍보 자료에는 독도가 ‘에도시대부터 일본 어부들이 고기잡이를 한 곳’이라든가, ‘러일전쟁 이후 국제법상 일본 영토가 되었다’는 등 독도 영유권을 정당화하는 내용이 있다.

 

시마네 현은 1905년 2월에 독도를 일방적으로 일본 영토로 편입했다. 을사늑약으로 조선의 주권을 찬탈했던 그해이다. 시마네 현이 독도를 노리는 것은 독도 주변의 어장 때문이다. 시마네 현은 1890년대부터 강치 조업을 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독도에는 강치가 많이 서식했다. 강치 모피에 쏠린 인간, 아니 일본인들의 욕심만 아니었다면 강치는 대를 이어 독도의 바위를 덮었을 것이다. 역사는 독도 강치가 1940년대에 멸종했다고 적고 있다. 안용복의 등장 이후로 한발 물러선 일본의 울릉도 침탈은 메이지 유신 이후의 대외팽창 흐름을 타고 재개됐다. 집요하게 반복된 일본인의 울릉도 연안 불법어로와 울릉도 불법 정착은 청일전쟁 승리 이후로 사실상 합법화됐다. 오키(隱岐) 섬과 울릉도를 수시로 오간 일본인들은 강치의 모피와 기름을 원했다. 나카이 요자부로라는 어업 종사자는 강치 남획 사업을 독점하기 위해 일본 내무성을 통해 조선으로부터 독도를 임대하려고 했다. 당시 일본은 군사상 필요하면 조선의 어떤 지역도 수시로 수용할 수 있었고 일본이 추천한 재정, 외교 고문이 대내외 정책을 좌지우지하여 조선의 주권은 허울뿐이었다. 독도의 군사적 중요성에 눈뜬 일본 정부의 속내를 읽은 그는 ‘독도 영토 편입 및 차용 청원’을 제출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일본은 일관되게 다케시마 영토론을 주장하며 그 근거로서 과거의 주장만 되풀이한다. 특히 오키 섬의 어민들이 강치잡이를 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내세워 다케시마가 국제법상 일본 영토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이다. 독도 역사 및 강치 생태사를 추적한 주강현 박사는 우리나라 자료 및 일본 측 자료를 통해 다케시마 영토론에 요목조목 반박한다. 그리고 강치를 멸종시킨 과거 행적을 뻔뻔하게 독도 영유권 주장의 근거로 삼는 일본의 태도를 비판한다. 일본은 지금도 여전히 자연에 대한 탐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멸종 위기에 몰린 고래를 보호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목소리에도 일본은 다시 포경에 나서기 시작했다. 과도한 포획으로 인해 머잖아 강치처럼 우리 바다에 대형 고래들이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강치는 독도의 또 다른 자화상이다. 독도와 강치. 오랫동안 일본의 침략 근성에 시달렸다. 이제 일본은 독도를 ‘다케시마’로 만들려고 자신들이 멸종시킨 강치마저 왜곡된 역사에 편입한다. 심지어 뻔뻔스럽게도 강치 멸종의 책임을 우리나라에 떠넘기고 있으니 어이가 없는 일이다. 이 역사를 아는 대한민국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독도에는 한국전쟁이 끝난 후 미군 폭격 연습장으로 사용된 가슴 아픈 역사가 있다. 당시 독도 주변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이 미군 전투기 폭격으로 사망했고, 독도 주변에 집단 서식하던 강치들도 모두 사라졌다. 동도 해안 한쪽 구석에는 그때의 상처를 간직한 초라한 위령비가 서 있다.

 

독도 문제로 일장기를 불태우는 감정적 대응은 한계가 있다. 오히려 독도 문제를 국제적 분쟁으로 몰고 가려는 일본의 책략에 말려드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정부는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게 처음은 아닐뿐더러 매번 소극적인 대응만 반복한다. 부산 소녀상 설치 관련 문제에 거세게 항의하는 일본 정부에 제대로 힘도 못 쓰는 외교부의 수준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소녀상 설치뿐만 아니라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논쟁을 한일 간의 외교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는 민감한 문제로 인식한다.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지만 이럴수록 목청만 높일 게 아니라 독도가 우리 땅임을 주장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전략이 무엇인지 모두가 곰곰이 고민해야 한다. 거시적인 틀에서 독도 논쟁을 바라볼 수 있는 책이 바로 《독도강치 멸종사》다.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는 박제된 강치가 시마네 현 박물관에 외롭게 갇혀 있다. 독도 강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강치가 독도 주변 푸르른 바닷 품으로 돌아올 수 있다. 독도는 ‘주인 없는 섬’이 아니다. 강치의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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