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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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과거는 역사로 기록되지 않는다. 과거의 일부분이 역사로 기록될 뿐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숱한 과거 중에서 기억되는 과거만이 역사의 현장으로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과거를 기억하려는 인간의 의지보다 강렬한 건 과거를 아예 잊어버리려는 망각의 욕망이다. 인간은 그들이 속한 환경과 처지에 따라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과거를 망각하거나 왜곡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해방 후 70년이 지났건만 가혹 행위, 학살 등으로 점철된 위안부 문제는 그 실상이 오히려 망각이라는 편리한 도구에 편승, 한때 부끄러웠던 과거로까지 치부되고 있다. 위안부 문제는 단지 민족적 비극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강제로 연행된 사람들의 인권에 관한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위안부 문제는 민족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한 권리라는 보편적 층위에서 제기되어야 한다.

 

김숨의 《한 명》은 고난의 역사를 거쳐 오는 동안 무참하게 비틀리고 휘어진 한 개인의 이야기를 제시한다. 소설의 초반부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불치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할머니의 감춰진 마음을 들여다보는 서술을 통해서 끔찍한 기억의 상흔을 보여준다.

 

입으로 가져가던 국숫발이 미끄러져 대접 속으로 떨어진다. 김치 서너 조각과 고추장으로 비벼 시뻘건 국숫발들은 그새 불고 있다. 국숫발들을 흩트리다 말고 슬그머니 젓가락을 놓는다. 국숫발을 뽑듯, 석순 언니의 몸에서 피가 쭉쭉 뿜어져 나오던 게 생각나 국수를 못 먹겠다. (19~20쪽)

 

할머니들의 정신적 상처는 인간역사의 부끄러운 상처일 뿐 아니라 개인의 인권이 조직의 힘으로 침해받은 상처다. 국가적인 아픔이기도 하나 그보다 피해자들인 여성에게 더할 수 없는 아픔이고 이제까지 겪어온 억울한 고통이기도 하다. 타인의 강압 때문에 몸과 마음이 유린당하는 것은 정신적인 살인을 당하는 것이라 할 정도로 그 아픔을 겪은 사람들의 상처는 그를 겪어보지 못한 이들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다만 그 상처를 건드리지 않고 조금이라도 치유가 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일 정도를 할 수 있을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작가에게는 곳곳에 산재한 망각과 왜곡의 욕망과 싸우면서 과거를 사심 없이 되돌아보는 진술의 힘과 이 진술을 한 편의 의미 있는 서사로 만들어내는 지혜가 있다.

 

 

 

 

 

독자들에게 《한 명》은 민족 수난이라는 구태의연한 플롯을 반복하는 무거운 소설로 읽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을 뒤로 돌리고 먼저 우리 스스로 해야 할 질문이 있다. 왜 우리나라에 위안부 피해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작품이 많지 않은 것일까? 1982년에 발표된 윤정모의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역사적 진실성을 명징하게 다룬 소설이다. 윤정모 작가는 이 소설을 본격적으로 집필하기 전에 故 임종국 선생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임종국 선생이 작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금 급선무는 위안부 문제를 외면한 친일파들의 반성을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위안부의 역사를 국민에게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소설을 써주세요.”[주] 하지만 이 소설은 영화화되는 과정에서 선정적 작품으로 변질했다. 영화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역사적 평가만 외면한 채 일반인들의 호기심과 말초신경을 자극하려는 의도에서 성적인 장면만을 노출했다. 소설과 영화 모두 망각의 물결에 떠내려가면서 잊혀졌다.

 

할머니는 살아남기에 급급한 결과 자신이 역사의 피해자임을 자신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 이른다. 할머니는 비록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을지라도 불행의 상흔은 뚜렷하다. 그 흔적 중에서 가장 뼈아픈 것은 할머니에게 자아가 상실되어 있다는 점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그 다친 몸만큼 마음이 황폐해질 뿐 아니라 고립감과 죄의식을 갖게 되며, 자존감이 약해진다.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려 할 때마다 가장 먼저 치미는 감정은 수치심이다.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그녀에게 모욕적이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생각을 하지 않다 보니, 그리고 말을 하지 않다 보니, 그녀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잊어버렸다.

자기 자신이 누군지 모르겠어서 쩔쩔매던 그녀의 손가락들에 다시 힘이 들어간다.

 

나도 피해자요.

 

그리고 또 뭐라고 써야 하나? 막막해하던 그녀는, 자신이 아무것도 잊지 않았다는 걸 절실히 깨닫는다.

 

(149~150쪽)

 

 

 

할머니의 사연은 팔자가 기구한 여자의 일생처럼 보일지라도 거기에는 많은 생각을 유발하는 함축이 있다. 할머니의 과거는 단지 불행한 생애 일부가 아니라 할머니 자신의 이야기로 인식되지 못하는 혼란이다. 할머니는 살아온 과거가 치욕적으로 느끼는 까닭에 그것을 현재의 자신 속으로 돌이켜 끌어들이는 과정을 힘겨워한다. 위안부 문제의 실상이 오랫동안 은폐되고 방치되온 탓에 할머니들은 저주스런 과거를 감추면서 숨어 살아야 했다. 가족에게조차 말할 수 없었던 치욕스런 기억은 ‘봉인된 고통’과도 같다. 할머니의 자아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억은 응집성 있는 서사적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구성되어 역사라는 이름으로 표출된다. 할머니의 수치심은 야만의 세월이 힘없는 여성에게 초래한 비극이다. 할머니의 머리와 마음에서만 울리던 공허한 메아리를 김숨은 현실의 문제로 끄집어내어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그렇게 세상을 기피하며 살아온 할머니가 자신의 과거와 한 꺼풀씩 대면하는 과정이 종이 위에 아프게 펼쳐져 있다. 알려지지 않은 비극적 진실은 역사로 복원되어 생명을 얻게 되었다. 《한 명》이 할머니들의 슬픈 마음을 널리 전해주고, 아픔을 함께 느끼게 해주는 소설로 오래오래 기억되길 바란다.

 

 

 

[주] <위안부, 아직 끝나지 않은 지금 우리의 문제> 노컷뉴스, 2013년 1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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