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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상상 동물 이야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남진희 옮김 / 민음사 / 2016년 6월
평점 :
어느 날 갑자기 속초에 포켓몬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속초에서 ‘포켓몬 GO’를 플레이할 수 있다는 소식에 전국 각지의 게임 유저들이 속초로 몰려들었다. ‘포켓몬 GO’ 열풍에 속초시청 둥 지자체가 신바람이 났다. ‘포켓몬 GO’는 위치 정보를 기반으로 현실 세계를 탐험하면서 포켓몬을 잡는 게임이다. 인간의 상상력 덕분에 진짜로 포켓몬 트레이너가 현실에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포켓몬 트레이너가 등장하기 전에 이미 희귀한 동물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신비 동물학자(cryptozoologist)다. 신비 동물학의 최대 관심사는 네시, 예티, 빅풋 등 3대 괴물이다. 신비 동물학은 자연과학에 초자연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어 사실과 허구가 뒤엉킨 연구 분야다. 신비 동물학은 공식 과학으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그 세력이 만만찮다. 기이한 생명체가 지구상에 존재할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 적지 않은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보르헤스는 ‘칼과 쟁기가 팔의 확장이라면, 책은 기억과 상상력의 확장’이라고 했던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기록한 책은 오늘날의 독자들에게까지 기억과 상상력을 전염시켰다. 보르헤스의 《상상동물 이야기》는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책이다. 시인 말라르메의 말을 빌리자면, 상상력의 세계는 한 권의 아름다운 책에 이르기 위해 만들어졌다. 보르헤스는 동서양 신화, 전설, 문학 속에 감춰진 상상력을 포착했다. 그는 모든 이념이나 현상을 인간들이 상상력으로 최대한 짜 맞춘 환상이라고 생각했다. 보르헤스에게 세상은 현실과 가상으로 쉽게 나뉘지 않는다. 혼재되어 있을 뿐이다. 동서고금의 신화 속 동물들의 이야기를 펼쳐놓은 《상상동물 이야기》는 현실과 가상이 확연히 구분되지 않는 인간 삶의 불합리한 틈새를 들춰낸다. 독자는 그 틈새에 피어오르는 상상력의 마력에 도취한다. 상상력은 이성으로 딱딱하게 굳어진 독자들의 두뇌를 간질이다.
《상상동물 이야기》는 1994년에 나왔던 까치 출판사 번역본의 개정판이다. 까치 출판사 번역본은 1967년에 발표된 스페인어판과 1969년 영역판을 참고했다. 스페인어판에는 총 116편의 글이 수록되었고, 영역판에 네 편의 글[주1]이 새로 추가되었다. 모두 합하면 총 120편이다. 이번에 나온 민음사 번역본은 스페인어판만 참고했다. 그런데 역자 후기에 보면 스페인어판은 총 117편으로 구성되었다고 적혀 있다. 아마도 ‘1967년 판 서문’까지 합산한 것으로 보인다. 구판의 어색한 번역체 문장들이 매끄러운 문체로 다듬어졌다.
까치 번역본의 가장 큰 특징은 투박한 느낌이 나는 삽화다. 흑백으로 그려진 방식은 괴물의 그로테스크한 모습이 부각되는 효과를 주었다. 반면에 민음사 번역본의 그림은 단순한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중국 신화에서 비를 부르는 새로 알려진 상양(商羊)을 묘사한 두 번역본의 그림을 비교해보시라.
개정판에 사소한 오류가 보인다. 구판에서는 불사조(피닉스)의 수명이 1,461년이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개정판에는 1,446년으로 나왔다. [주2] 북유럽 신화에나오는 운명의 여신들은 세 자매다. 맏언니 우르드(Urd, 과거), 둘째 베르단디(Verdandi, 현재), 막내 스쿨드(Skuld, 미래)는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일을 담당한다. 그런데 우르드를 ‘우르스’, 베르단디를 ‘베르찬디’라고 잘못 썼다. [주3] 구판의 발음 표기를 고치지 않은 채 그대로 옮겨 썼다.
[주1] 카번클, 1964년에 제인 리드 부인이 런던에서 알았고 보았고 만났던 것에 대한 경험적 보고, 칠레의 동물들, 과거 숭배자들
[주2] '불사조' 편, 까치 132쪽, 민음사 52쪽
[주3] '노르넨' 편, 까치 179쪽, 민음사 2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