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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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에 꽂혀있는 책을 꺼내 펼친다. 몇 년 전에 읽은 책이다. 펴보니 군데군데 밑줄까지 그어져 있다. 어떤 쪽에는 연필로 끼적여 적은 나름대로 주석도 있다. 그런데 당혹스러운 것은 책의 내용이 생소하다. 책 속의 기록은 남아 있어도 머릿속 기록은 이미 지워지고 없다.

 

사람은 누구나 기억과 망각 사이의 균형을 잡으면서 살아간다. 잊지 못하는 것도 무서운 고통이지만 너무 잘 잊는 것 또한 끔찍한 일이다. 남들은 생생하게 떠올리는데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덜컥 겁이 난다. 인간이 어떤 일을 지각할 수 있는 건 단 2초에 불과하다. 그 이후는 기억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도 기억 덕분이다. 단기기억은 금방 사라진다. 반면 같은 정보가 반복되거나 개인적 감정과 얽히면 장기 기억으로 머릿속에 남는다. 또 시각과 감성, 공간이 한데 어우러진 경험이나 지식일수록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망각의 늪에 허우적거리는 불상사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알츠하이머병은 온전한 의식과 정신을 말살한다. 자그마한 회복의 가능성도 남겨두지 않는 완벽한 불치병이다.

 

사랑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만큼 애절한 게 있을까. 치매로 과거를 잃어가는 이와 어떻게든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의 사투는 관객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알츠하이머병은 백혈병과 더불어 멜로영화의 단골 소재다. 리베카 솔닛의 에세이 《멀고도 가까운》은 알츠하이머병이 소재다. 그러나 수많은 로맨스에서 반복된, 닳고 닳은 얘깃거리가 아니다. 하얗게 지워져 가는 기억과 그것을 붙들고 싶은 욕망, 그리고 이야기를 통해 생의 원초적 의문을 매만진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에세이는 답이 아니라, 질문을 그려낸다.

 

솔닛은 자신의 어머니 곁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알츠하이머란 놈을 만났다. 그렇게 어머니의 뇌는 잠들어버렸다. 마다가스카르 섬에 사는 나방은 잠든 새의 눈물을 마신다고 한다. 나방은 깨어 있는 상태에서 잠든 새의 눈물에 접근한다. 그 눈물엔 뭔가 달콤한 유혹이 있는 것 같다. 새와 나방은 솔닛과 어머니의 관계를 떠올리는 비유다. 꿈에서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불청객을 맞게 된 그녀는 버텨내야만 할 슬픔에 천천히 자신을 적신다. 슬픔을 먹으면서 지낸다. 그런데 그 슬픔은 결코 달콤할 수가 없다. ‘사랑하는 것’들이 점점 잊힌다는 것은 고통스럽다. 메마르면서 사라지는 눈물 한 방울을 훔치려면 늘 깨어 있어야 한다. 힘겨운 고통의 나날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솔닛은 어머니의 망각을 받아들이는 자신만의 방식을 터득했다. 망각의 미로 속에 강제로 유폐된 기억의 조각들을 찾기 위해 이야기의 실타래를 끊임없이 푼다. 그녀의 이야기는 살구 열매부터 시작해서 프랑켄슈타인, 체 게바라 등 어지러이 오가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럼에도 전혀 소란이 느껴지지 않는다. 매끄럽게 이어 붙이는 이야기의 마름질 솜씨가 뛰어나다. 그녀의 글에서 생의 무상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읽기, 쓰기, 듣기 행위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삶을 긍정한다.

 

 

우리는 우리가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만, 종종 이야기가 우리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사랑하라고, 미워하라고. 두 눈으로 보라고 혹은 눈을 감으라고. 종종, 아니 매우 자주, 이야기가 우리를 올라탄다. 그렇게 올라타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채찍질을 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알려 주면, 우리는 아무 의심 없이 그걸 따른다. 자유로운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이야기에 질문을 던지고, 잠시 멈추고, 침묵에 귀 기울이고, 이야기에 이름을 지어 주고, 그런 다음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 (15쪽)

 

 

이야기가 있는 삶은 생동감이 넘친다. 솔닛은 ‘이야기가 우리를 올라탄다’고 말한다. 이야기가 우리에게 말을 걸수록 깨어 있는 상태는 유지된다. 그렇게 우리는 이야기꾼이 된다. 망각의 그림자를 피해 새로 발견한 일상의 세계 속에 발을 딛게 되어 거기에 정착하려는 여행자다. 기억을 잃어버린 이야기꾼은 ‘짐 없는 여행자’다. 망각과 함께하는 여행은 생각보다 훨씬 험난하다. 기억들이 최근의 것부터 서서히 삭제되고, 남의 얘기를 듣는 행위조차 너무나 피곤하다. 말과 글이 엉키고, 소리와 이미지가 뒤섞이는가 하면, 환각과 환청이 찾아온다. 일기장과 약이 아니면 오늘이 며칠인지도 알 수 없다.

 

각자의 찬란한 기억들은 누구나 한번은 지나왔음직한 과거의 어떤 시간, 어떤 공간에 들어 있었다. 그 특별하지 않은 ‘과거의 것’들은 한 편의 이야기가 된다. 때로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고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 된다. 현재를 이룬 과거를 관조하고 촘촘히 기억해내는 과정은 현재와 미래만을 주시하는 일상에서 한 발짝 벗어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세상에는 잊어야 할 것과 잊어도 될 것,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많이 잊는다. 겪은 일을 모두 기억한다면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살 수 없기에 인간은 선택적 망각을 감행한다. 그러나 망각이 주는 부재의 고통은 극복되거나 잊힐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영원한 것은 없다. 그 어떤 것들도 왔다가 언젠가는 사라진다. 이야기라는 생의 한 조각 하나하나 잘 모아서 거대한 인생의 모자이크를 완성해갈 도리밖에 없다.

 

 

 

※ 딴죽걸기

 

* 파멸로 이어졌던 유럽 세계와의 접촉, 1972년 부활절에 시작된 그 접촉 이후에 이스터 섬의 원주민이던 라파누이는, 위험하고 예측할 수 없는 그 의식을 좀 더 삶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94쪽, 초판 1쇄)

 

⇒ 이스터 섬은 1722년 부활절에 처음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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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6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5-17 12:51   좋아요 1 | URL
사소한 것들의 기억이 너무 쉽게 잊히는 과정이 죽음보다 더 두렵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