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마그리트 『가짜 거울』 (1928년)
눈꺼풀 형체 안에 둥그런 안구가 있다. 그런데 다시 보면 그것은 하얀 구름이 떠 있는 하늘이다. 이 눈은 하늘을 보는 것인가, 아니면 하늘이 눈에 보이는 것일까. 눈이 ‘하늘’로 인식하는 순간 실제로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하늘이다. 이 그림의 제목은 『가짜 거울(Le faux miroir)』이다. 우리가 아무 의심 없이 보려 했던 의식을 벗어날 때 겪게 될 혼란스러움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 면을 부각하려고 마그리트가 ‘가짜 거울’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일 수도 있겠다. 마그리트는 그림으로 일상적으로 훈련된 인식의 틀을 바꾸려고 했다. 그는 자연 질서를 무시한 채 사물들을 엉뚱하게 배치한다. 낯설게 정지된 그의 그림은 관람자를 당혹스럽게 한다. 과연 시각이 느끼는 ‘실재’의 정체가 무엇이며, 회화를 통해 사람들이 과연 실재를 보고 있는지 질문하게 한다.
흔히 사람들은 보는 것이 전부이고 봤기에 옳다고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고, 아는 만큼 본다. 이미지는 그 자체로 인간에게 착각을 안겨줄 위험을 내포한다. 수용자의 의식에 의해 보이는 것이 실체가 다르게 망막에 맺힐 수도 있다. 여기서 수용자의 의식은 외부에서 주어진 문화적 산물을 의미한다. 발터 벤야민은 인간의 감각지각이 사회적 영향에 받아 변화하기 쉽다고 말했다. 우리가 보고 믿는 실재는 이데올로기나 관습, 문화 등 요소가 어우러진 프리즘에 굴절되면서 가공된다. 자유로울 것 같은 우리의 의식조차도 이미 외부조건들에 길들어 있다. 우리가 당연한 실재라고 봤던 것이 사실은 아주 유동적이며 가변적이다. 결국 눈은 외부조건들을 수동적으로 반사하는 거울과 같다.
오늘날 세계는 이미지 폭주 시대이다. 사진과 동영상으로 대표되는 이미지 세계는 급속도로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이미지는 즉각적·직관적으로 감정과 현상을 전달하는 장점이 있다. 현대의 소통 문화는 문자 텍스트에서 이미지 텍스트로의 권력 이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미디어가 만든 이미지 텍스트로 구축된 세계를 체험하고 있다. 진중권은 이 현상을 ‘미디어 아프리오리(a priori, 선험적 형상)’라고 규정한다. 우리 일상에 침투하는 미디어의 힘을 톺아보면 ‘미디어에 갇힌 눈’의 실체가 드러난다.
보드리야르는 허구의 이미지가 실재를 지배한다고 했다. 광고는 하나의 상품에 현실과 상상이라는 이중적 존재를 부여한다. 광고를 받아들인 소비자의 눈은 만족과 쾌락을 얻는 환상을 바라본다. 이미지와 실재의 관계가 역전되면 실재는 연기처럼 사라진다. 위성방송을 통해 전쟁 뉴스를 바라보는 시청자는 전쟁을 스포츠 경기처럼 관람한다. 뉴스 화면의 이미지는 전쟁을 컴퓨터 게임처럼 만든다. 사라지는 것은 전쟁터에 흥건한 피와 병사들의 아비규환이다. 전쟁을 관람하는 시청자는 병사의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보고 바로 느끼는 이미지가, 읽고 깨닫는 문자 텍스트보다 우월하다고 볼 수는 없다. 이미지의 범람은 현대인에게 ‘참을 수 없는 사유의 경박함’을 안겨줬다. 미디어의 힘이 점점 강해지고, 이미지가 난무할수록 현실의 본질은 흐려진다. 사유가 없는 이미지는 조작, 거짓, 착각의 위험이 있다.
※ 진중권의 《미디어 이론》 책 앞날개의 저자소개에 있는 책 제목 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