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기원 - 난쟁이 인류 호빗에서 네안데르탈인까지 22가지 재미있는 인류 이야기
이상희.윤신영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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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타임머신을 타고 한세대씩 조용히 거슬러 올라가 보자. 우리 눈앞엔 논밭 갈러 나가는 할아버지, 전쟁터에서 창과 칼을 들고 함성을 지르며 뛰어나가는 할아버지를 거쳐 한반도에 첫발을 내딛던 할아버지. 이러한 장면이 되감기를 한 영화 화면처럼 휙휙 지나간다. 찰스 다윈이 생각했던 인간과 유인원이 갈라지는 장면에까지 다다른다. 인류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은 연대기적 방식으로 재구성된다. 이미 널리 알려졌듯이 인간과 침팬지는 유전적 차이가 불과 2%에 불과하다. 우리가 흔히 유인원이라고 부르는 오랑우탄과 고릴라, 침팬지, 인간 가운데서 오랑우탄과 침팬지의 관계보다 침팬지와 인간의 관계가 더 가깝다.

 

그렇지만, 다윈 진화론을 폭넓게 받아들이고 있는 오늘날에도 고인류학자들은 수백 년을 이어온 이 질문에 뚜렷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유력한 두 가지 가설을 내놓고 있을 뿐이다. 인류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나타나 전 세계로 퍼졌다는 아프리카 기원설과 전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인류 조상이 나타나 이들 전체가 현대 인류의 유전자 풀을 이뤘다는 다지역 기원설이 그것이다. 지금까지 인류학계가 인정하고 있는 현생인류 직계 조상은 1974년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발굴된 ‘루시’이다. (루시의 학명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약 280만 년 전 지구에 출현한 유인원의 흔적을 근거로 학계는 인류가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 등의 진화 과정을 거쳐 약 10만 년 전 아프리카서 현생인류의 조건을 갖춘 뒤 4만 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전 세계로 대이동을 시작했다고 굳게 믿었다. 반면, 다지역 기원설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은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를 떠나온 것을 계기로 아시아와 유럽 등 여러 지역에서 인류가 독자적으로 진화해왔다고 본다.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인간이 침팬지에서 분리되어 인류라는 독특한 종으로 발전하게 된 연유를 묻는다면 대학을 나온 이라 해도 제대로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서점에는 인간의 진화과정을 다룬 책들이 유독 많이 나와 있다. 하지만 일부 책은 수십 년 전에 나온 학계의 정설 위주로 다루고 있어서 진화론의 폭넓은 범위를 제공하지 못한다. 고인류학 논쟁은 ‘해골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 조상의 화석이 잇달아 발견되면서 인류 진화설을 다시 써야 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아르디’라는 애칭이 붙여진 화석을 아시는가. 학명은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 440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인류의 조상이다. 이 화석의 전체 골격이 발견되었던 그해에 <사이언스>지는 ‘올해의 발견’으로 선정했다.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따끈따끈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생물 교과서에 실리지 않고 있다.

 

《인류의 기원》. 제목만 보면 흔한 진화 관련 서적처럼 보인다. 심심한 제목이 아쉽지만(인터넷에 검색하면 호모 에렉투스의 발견자 리처드 리키가 쓴 동일한 제목의 책이 같이 나온다. 그밖에도 ‘인류의 기원’이라는 제목이 들어간 책이 수십 권 더 있다), 책을 펼쳐보면 교과서에서 보지 못한 흥미진진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1990년대 이후 등장한 고인류학의 최신 성과들을 가득 담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인류학 개론서들과는 전혀 다르다. 어려운 용어와 복잡한 가설이 많은 고인류학 지식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저자의 문체에 놀라고, 우리가 당연하게 알고 있는 상식들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또 한 번 놀란다.

 

‘인간의 조상은 원숭이’ 다음으로 사람들이 잘못 믿는 상식이 ‘원시인 식인종’이다. 2000년에 처음으로 네안데르탈인이 식인종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그 이후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화석을 분석한 과학자들은 극심한 굶주림과 식인의 흔적을 발견했다. 2009년에는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잡아먹었음을 추정케 하는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전 세계 언론들은 이 충격적인 발표 사실을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고, 흥미 위주의 기사를 양산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우리 조상은 모두 식인종이었다?’라는 노골적인 제목이 붙여진 기사가 나왔다. 우리는 식인 풍습을 인간 이하의 야만적 행위로 본다. 식인 문화는 꽤 오래된 악습으로 남아 있었다. 물론 죄인을 벌주기 위한 목적이나 복수를 위해서 등 다양한 이유가 있었지만, 식인 풍습은 영원히 사라져야 할 악습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잔인한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잘못 알려진 것도 꽤 있다. 전쟁이나 재난, 기아와 같은 절체절명의 현장에서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인육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아프리카나 태평양 지역에서는 죽은 가족의 시체를 먹어 그 사람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일종의 장례 문화로 식인 풍습이 존재했다. 네안데르탈인 또한 장례를 위한 목적으로 인육을 먹었을 거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네안데르탈인이 남긴 칼자국이 사냥감을 잡아먹기 위한 도살 흔적과 거리가 멀다.

 

아프리카 기원설은 최근 유전학의 연구 결과에 의해 더욱 설득력 있는 자료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다지역 기원설도 고고학적 자료에 의해 아프리카 기원설의 모순을 하나하나 지적하고 있다. 어느 하나가 명백히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러한 학문적 차이는 앞으로 유전학과 고고학의 접목으로 그 격차가 점차 좁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인류의 기원을 명쾌하게 밝힐 수 있는 연구는 이제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동물의 진화 역사만 다시 쓰이는 것은 아니다. 현생 인류의 역사야말로 끊임없이 수정 가필되는 ‘가장 뜨거운 역사’다. 다음 세대는 현재와 다른 교과서를 보게 될 것이다. 오늘도 고인류학자들은 현생 인류의 화석을 관찰하면서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 혹은 ‘인간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와 같은 질문들의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수백만 년 인류 조상이 우리에게 남긴 삶의 흔적들은 우리 자신들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주고 있는 소중한 거울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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