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랑베르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송기정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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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uis Lambert (1830년, <인간 희극> 제2부 철학 연구)

 

 

 

또 다른 내가 있다. 나는 그를 거부하지만, 내겐 부재한 그의 품성에 어느새 동화된다. 서로는 서로를 알아본다. 그는 감춰진 나의 욕망을 발현하는 자아의 발현이고, 어쩌면 나일 수도 있다. 자기 안의 또 다른 자아, 의식세계 아래에 억눌린 무의식적 자아의 문제는 문학의 단골 소재다. 사회가 이성, 논리와 각종 관습을 무기로 감정과 본능을 부정하면 할수록 억압된 자아는 마치 금단의 열매처럼 위험하면서도 훨씬 더 매력적인 모습으로 등장해왔다.

 

발자크의 《루이 랑베르》는 이런 모티프에서 출발한 소설로 볼 수 있다. 주인공 루이 랑베르는 발자크의 닮은꼴이다. 두 사람 다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해 거의 쫓겨나다시피 감옥 같은 방돔 기숙학교에 입학한다. 또한, <의지론>이라는 거창한 제목의 철학 논문을 쓰게 된다. 똑같은 외모를 가진 사람이 서로 만나게 되면 둘 중 한 사람은 먼저 죽게 되는 비극의 운명을 가진다. 발자크는 소설 속 자신의 분신을 희생시킨다. 결혼식 전날 밤에 루이는 광기의 그림자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미쳐버린 루이에게 목숨은 붙어 있으나 예전처럼 돌아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의 눈에 생기가 잊은 지 오래다. 여기까지만 보면 도플갱어를 소재로 한 기존 작품들과 유사하다. 하지만 발자크의 《루이 랑베르》의 도플갱어는 조금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졌다.

 

《루이 랑베르》의 등장인물 설정은 매우 단순하다. 루이의 친구이자 그의 삶을 독자에게 들려주는 화자인 ‘나’와 그 이야기의 주인공 루이가 있다. 두 사람은 같은 기숙학교에서 다니면서 만나게 된다. 루이는 독서와 몽상을 좋아하는 조숙한 인물이며 친구는 시 쓰는 것을 좋아한다. 비록 외모는 서로 닮지 않았지만, 두 사람의 내면은 너무나도 닮았다. 이들에게 엄격한 규율이 지배하는 기숙학교는 거대한 감옥이다. 이러한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바로 정신이다. 특히 루이는 학교 수업보다는 혼자서 사유 세계를 여행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두 사람은 점점 기숙학교의 단체 생활에서 멀어지기 시작한다. 담임교사가 내주는 숙제를 하지 않아서 매를 맞는 일이 많아지고, 학우들은 다소 말이 없고 몽상가 기질이 있는 루이에게 ‘피타고라스’를, 늘 그와 함께 다니면서 서투른 시만 열심히 쓰는 친구에게 ‘시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시인’은 유물론자이면서도 유심론자인 ‘피타고라스’를 존경한다. 어느 날 루이가 비밀리에 쓰고 있는 철학 논문 <의지론>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학우들의 고발 때문에 교사의 귀까지 들리게 된다. 교사는 완성하지 못한 <의지론> 원고를 압수한다. 새로운 지식의 나무로 자랄 수 있는 사유의 씨앗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만다. 이 불행한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 친구는 기숙학교를 떠나게 되고, 루이 혼자만 남게 된다. 기숙학교를 졸업한 루이는 파리에 진출하여 직장을 가져보려고 노력해보지만, 평범한 생활마저 제대로 하지 못한다.

 

루이와 화자는 발자크의 양면성을 상징하는 도플갱어다. ‘정신’, ‘유심론’을 대변하는 루이와 ‘물질’, ‘유물론’을 추구하는 화자, 발자크는 이 두 사람에게 정신주의와 물질주의와의 결합을 시도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던 자신의 과거를 투영한다. 유년 시절 발자크는 데카르트의 이원론에 심취한 적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루이 역시 육체와 정신을 분리해 정신을 우위에 두고 육체를 하위에 두고 싶어 한다. 유물론자인 화자는 루이의 사유에 동조하지만, 이 두 사람의 지속적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는 자신과 똑같은 분신을 뜻하는 도플갱어는 주로 죽음과 관련돼 있다. 시인이 기숙학교를 먼저 떠나는 사건은 둘 중 한 사람이 죽어야만 하는 도플갱어의 운명과 같다. 도플갱어의 저주에 희생된 사람은 루이다. <의지론> 원고 상실, 믿음직한 단짝과의 이별은 루이에게는 혼자 감당하기 힘든 시련의 과정이다. 가까스로 기숙학교를 졸업해서도 루이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한다. 루이는 황홀한 무감각 상태를 느끼기 위해 육체에서 정신이 벗어나는 일을 감행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정신을 스스로 파멸시키는 일종의 자살 행위다. 평범한 삶을 영위해야 하는 현실에 정착하지 못한 채 미쳐버린 루이는 거의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도플갱어를 먼저 본 사람이 죽지 않는 딱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따라서 죽지 않으려면 도플갱어를 먼저 죽여야 한다. 하지만 《루이 랑베르》의 도플갱어는 독자가 예상하는 진부한 결과를 뒤엎는다. 루이가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단짝과 함께 있어야 한다. 루이의 삶은 자기 생각과 비슷하고, 그를 믿어준 단짝 같은 도플갱어를 잃기 시작하면서 ‘파멸’이라는 종착역으로 향한다. 단짝 ‘시인’은 루이의 정신을 유일하게 교감해주는 살아 있는 영혼이다. 독일의 시인 괴테는 21살에 도플갱어를 봤으면서도 장수를 누리는 데 성공했다. 도플갱어의 저주에서 벗어난 《루이 랑베르》의 시인은 끝까지 살아남아 파편으로 흩어진 루이의 사상을 재구성한다. 발자크는 자신을 ‘소설가’가 아닌 ‘시인’으로 불리는 것을 원했다고 한다. 발자크는 살아남은 분신이 루이의 의지론을 정리하게 함으로써 사라진 학문의 열정을 그리워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의지론> 같은 논문을 완성하지 못한 경험에 미련이 남아 있었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자신의 조숙한 천재성을 제대로 세상에 펼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소설에서나마 루이를 이해해주는 도플갱어를 만들었을 수 있다. 발자크는 《루이 랑베르》를 쓰기 전에 발표한 《나귀 가죽》에서도 <의지론>의 실체를 언급한다. 재미있게도 발자크의 도플갱어 격인 라파엘이 <의지론>을 집필한다. 어쩌면 <의지론>이 제대로 완성되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면 도덕 교과서에 데카르트를 계승한 철학자 발자크를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발자크는 철학자가 되지 못했지만, ‘철학을 연구하는’ 정체성만큼은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인간 희극> 제2부의 표제는 ‘철학 연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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