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 고독 속에 피워낸 노란 해바라기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 3
엔리카 크리스피노 지음, 정지윤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데생(소묘 혹은 드로잉)은 화가의 미적 표현이 구체화하여 나타난 최초의 조형표현이다. 이 때문에 거칠기는 하지만 생생하고 원초적인 작가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장르이다. 앵그르, 드가, 피카소 등 서양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대가들도 데생을 통해 작품의 아이디어를 수정해나갔던 것을 보아도 데생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데생은 유화의 그늘에 가려진 채 밑그림의 수단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고흐는 100점이 넘는 유화를 남겼다. 우리는 고흐를 멋진 유화를 남긴 화가로만 기억할 뿐, 그가 1000점 이상의 데생을 남겼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고흐의 그림이 컬렉션들에 주목받으면서 그의 데생 또한 값어치가 제법 상승했다. 만약에 고흐가 유명해지지 않았더라면 수많은 데생은 홀대를 받았을 것이다.

 

 

 

 

 

고흐  「삽질하는 사람」 (1882년)

 

 

극빈했던 고흐에게 데생은 최고의 화가가 되기 위한 최후의 보루였다. 목사의 꿈을 포기하고, 무작정 전업 화가의 길로 뛰어들었던 고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 목사였던 아버지와 갈등을 더욱 깊어져만 갔고, 고흐를 위한 경제적 지원도 줄어들었다. 미술도구를 살 돈이 없어서 마음껏 유화를 그릴 수 없었던 고흐는 데생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1881년에서 1885년 사이 네덜란드에 거주하는 동안 상당히 많은 데생을 남겼는데, 고흐의 작품 연보를 논할 때 이 기간을 네덜란드 시기라고 말한다.

 

 

 

 

 

고흐  「손수레 끄는 여인」 (1883년)

 

 

 

색채의 효과를 처음으로 알기 시작했던 파리로 이주하기 전이라서 네덜란드 시기의 고흐 작품들은 화려하지 않다. 1880년대 유럽은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활력 넘치는 도시사회로 빠르게 변화하던 반면, 시골은 마치 정지한 듯 거의 변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고흐는 가난한 농민과 광부, 직조공들의 생활상을 그렸다. 특히 인물화는 고흐가 특히 매력을 느꼈던 장르였다. 가끔 보이는 어설픈 인물처리나 묘사는 입문 초기 표현기법의 미숙함에 기인하는 것도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투박한 모습을 꾸밈없이 묘사하려는 정직함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고흐는 한때 종교에 심취했었던 시절에 성경과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을 탐독했으며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목회활동을 하는 것이 자신의 미래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비록 목사의 꿈은 접었어도 고흐의 가슴속에는 여전히 종교적 감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이 남아 있었다. 고흐는 도덕적 신념을 예술에 반영했다. 밀레를 흠모했던 고흐는 밀레의 그림을 십여 차례나 반복적으로 모사하며 그를 닮아가고 싶어 했다. 네덜란드의 고흐는 밀레처럼 소박한 그림을 그리는 농촌화가가 되고 싶었다.

 

 

 

 

 

고흐  「잡초를 태우는 농부」 (1883년)

 

 

 

반 고흐 : 고독 속에 피워낸 노란 해바라기는 고흐의 데생 작품을 비중 있게 소개한다. 사실 초창기 작품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고흐 책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부분 고흐의 예술적 황금기라고 일컫는 아를 시기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고흐의 데생은 그의 삶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고흐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데생을 고집하는 이유를 밝혔다.

 

 

내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데생을 한다는 점을 네가 알아주기 바란다. 첫 번째 이유는 보다 정확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싶어서고, 두 번째 이유는 유화와 수채화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야.” (18927, 44쪽 인용)

 

 

고흐는 모델의 존재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사진과 같은 정확한 묘사를 싫어했다. 하지만 타고난 성정(性情)에 의해 세상을 도덕주의자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고흐는 그림의 대상을 인생이라는 상징적인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취급했다. 아름다움과 거리가 먼 이름 없는 농촌 이웃들, 가난하게 사는 광부들의 모습을 담아놓았다. 그래서 고흐의 데생은 차분하게 감정을 드러낸 캐리커처에 가깝다.

 

반 고흐 : 고독 속에 피워낸 노란 해바라기에서 독자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내용으로 귀를 자른 고흐의 자해 사건과 자살 사건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다. 저자는 고흐가 잘린 귀를 창녀에게 주는 이유를 고흐가 소의 귀를 잘라 미녀에게 선사하는 투우사의 모습을 흉내 낸 것이 아닌지 의문을 제기한다. 또 고흐의 광기 이미지를 굳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칼 야스퍼스의 주장을 반박하는 저자의 주장도 흥미롭다. 야스퍼스는 고흐가 정신분열증에 앓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 저자는 자해 소동 이후에도 비판적 분별력이 남아있었던 고흐의 정신 상태를 고려한다면 야스퍼스의 주장이 모순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고흐가 보리밭에서 자신의 가슴에 총 겨누었던 사건의 당시 정황을 설명하면서 가셰 박사를 의심하기도 한다. 고흐와 친분이 있었던 가셰 박사가 총상을 입은 고흐에게 어떠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고흐와 가셰 박사의 우정은 우리가 아는 것과 달리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고흐는 박사의 능력을 의심했고, 그 이후부터 두 사람의 관계가 소원했다. 고흐의 죽음을 둘러싸고 완벽한 자살이라는 구체적인 증거는 학계에서도 밝히지 못한 상황이다.

 

 

 

 

※ 저자는 고흐의 그림을 ‘예술 작품과의 완전한 합일과 예술의 삶의 융화로 표현되는 독특한 상징주의’(110쪽)라고 말하면서도 그다음 문장에서 고흐가 상징주의 미술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했다. 전후 문장의 의미가 상반된다. 저자는 고흐를 독특한 상징주의자로 평가하고 싶은 것 같은데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실제로 고흐는 자신이 상징주의자로 소개한 평론을 읽고 나서 평론가에게 편지를 보내어 반박했다. 

 

※ 37쪽은 고흐에게 영향을 준 헤이그파를 소개한 글이 있다. 여기서 헤이그파 화가들을 소개하는 과정에 ‘야코프 형제(1837~1899), 마테이스 마리스(1839~1917), 빌렘 마리스(1844~1910)’이라고 적혀 있다. 마리스 삼 형제 중 장남인 야코프 마리스를 ‘야코프 형제’라고 잘못 적었다.

 

※ “태양이 내 방의 노란 커텐을 스쳐 지나갈 때 이 꽃들은 금빛으로 넘치고...” (76쪽) ⇒ ‘커텐’을 ‘커튼’으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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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5-07-11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급 하신것 처럼 고흐에게 초기 중기 데생은 실력 향상과 유화의 비쌈을 피해갈 수 있는 안식처 같더군요. :) 그리고 농민들과 광부들의 투박하고 정감가는 모습들이 배어 있어서 좋았습니다. :)

cyrus 2015-07-12 20:16   좋아요 0 | URL
고흐가 남긴 데생 작품들도 훌륭한데 유화 작품에 대한 대중의 관심 때문인지 책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아요.

페크pek0501 2015-07-12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 고흐에 대한 글 시리즈네요. 흥미롭게 잘 읽었어요.
한때 제가 고흐의 그림을 흉내 내고 싶어서 그의 스케치를 따라서 연필화를 그린 적이 있어요.
그림에 관심이 많았던 때이기도 했고 그림을 그릴 때의 화가의 정서를 알고 싶었던 이유도 있어요. 아직도 그 연필화를 가지고 있는데 우습답니다. 엉터리라서 말이죠.ㅋ

cyrus 2015-07-12 20:19   좋아요 0 | URL
고흐는 모델을 구하기 힘들어서 길을 지나가다 마음에 드는 장면을 발견하면 그 자리에 바로 스케치를 했다고 합니다. 페크님처럼 선배 화가들의 그림을 모사하기도 했고요. 페크님은 화가의 정서를 근접하게 이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

양철나무꾼 2015-07-12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님의 글들이 다 좋은데 말이죠. 특히 이렇게 그림 관련, 화가얘기... 깊이와 애정이 느껴져서 더 좋아요~^^

cyrus 2015-07-12 20:20   좋아요 1 | URL
예전에는 고흐 책 한 권만 봐도 고흐를 다 아는 느낌이었는데, 관련 책을 더 찾아보게 되니까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고, 화가의 삶에 대해서 더 애정이 느껴졌어요. 고흐의 편지를 읽을 때면 가슴이 뭉클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