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題詞)는 책의 첫 머리에 그 책에 관계되는 내용을 시문으로 적은 글이다. 외국 소설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시뿐만 아니라 속담, 격언, 노랫말, 소설 속 문장 등을 인용한다. 그런데 간혹 번역자는 외국 소설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제사를 누락할 때가 있다.
러브크래프트의 단편 「아웃사이더」는 러브크래프트 전집 4권(황금가지, 2012),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현대문학, 2014) 그리고 《세계 호러 단편 100선》(책세상, 2005)에 수록되어 있다. 러브크래프트 전집 4권을 통해서 「아웃사이더」를 처음 읽었기 때문에 《세계 호러 단편 100선》에 있는 「아웃사이더」를 읽지 않고 넘어가려고 했지만, 러브크래프트 전집 4권과 《세계 호러 단편 100선》의 번역자가 정진영 씨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아웃사이더」 번역이 같은지 확인했다. 《세계 호러 단편 100선》은 러브크래프트 전집보다 먼저 출간되었다. 나는 정진영 씨가《세계 호러 단편 100선》에 있는 「아웃사이더」 문장을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러브크래프트 전집 4권에 그대로 옮겼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확인해 본 결과, 번역된 문장에 차이가 있었다. 정진영 씨가 「아웃사이더」을 다시 번역했거나 러브크래프트 전집 4권의 공동 번역자로 참여한 류지선 씨가 「아웃사이더」을 번역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러브크래프트 전집 4권의 「아웃사이더」에 제사가 누락된 사실을 확인했다. 《세계 호러 단편 100선》 을 읽지 않았더라면, 「아웃사이더」의 제사를 몰랐을 것이다. 러브크래프트는 영국의 시인 존 키츠의 ‘성 아그네스의 전야’ 구절 일부를 「아웃사이더」의 제사로 삼았다.
그날 밤, 남작은 숱한 고뇌를 꿈꾸었다.
손님으로 온 용사들,
마녀와 악마와 커다란 송장벌레의 모습과 그림자를 띤 그들은
기나긴 악몽이 되었다.
제사를 누락한 번역은 완역이라고 말할 수 없다. 공교롭게도 제사가 없는 「아웃사이더」는 러브크래프트 전집 4권이 유일하다. 단편선집인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의 「아웃사이더」에도 존 키츠의 시구를 삼은 제사가 있다. 최근에 나온 외전까지 포함해서 러브크래트프 전집은 총 7권이 되었다. 그런데 기존에 나온 전집세트(1~4권) 중 1권에 있는 번역의 문제점을 바로 잡았는지 궁금하다. 1권의 「에리히 잔의 선율」에서 주인공 에리히 잔을 비올(Viol) 연주자가 아니라 바이올린 연주자로 잘못 번역했다. 황금가지의 러브크래프트 전집은《러브크래프트 코드》(동서문화사, 2005년)의 최악의 번역에 크게 실망한 독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원문을 무시한 사소한 번역의 오류는 옥에 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