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헌의 서양미술 특강 - 우리 시각으로 다시 보는 서양미술
이주헌 지음 / 아트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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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 예술 분야 가운데 으뜸으로 치는 것은 미술이다. 음악, 무용 같은 공연예술이 절대로 미술보다 못해서가 아니다. 미술품의 탁월한 보존성 때문이다. 수천 년 전에 제작된 고대 그리스의 조각, 중세의 벽화는 아직도 남아 있지만, 당시 음악이나 무용은 재현할 수 없다. 소리나 몸동작은 후대에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림 한 점에서 역사와 시대 문화를 해석하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분석과 해설은 딱딱하고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 특히 배경 지식 없이 그림을 보면 그것은 '페인팅'에 그칠 것이다. 예술이나 미술전시장이 어색한 사람들의 많은 고충은 도무지 미술품 앞에 서 있으면 무슨 생각부터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양손을 절레절레 흔든다. 서양미술사를 완파하지 못한 이는 자신의 지적 교양 수준을 반성하며 작품설명 기기를 목에 걸고 귀 기울여 듣기 바쁘다.

 

대부분 서양미술 관련 서적은 입문자에게 불친절하다. 진지하고 어려운 말만 골라서 하는 강의실의 교수님처럼 좀처럼 친해지기가 쉽지 않다. 한쪽을 읽고 넘기면 앞의 내용이 벌써 가물거린다. 몇십 쪽을 넘기고 나면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한다. 개념어와 역사적 배경 사이에서 널뛰기하다 보면 어느새 길을 잃어버릴 수 있다. 사실 서양미술작품은 화가 개인의 생각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그 시대 서양 사람들의 집단적인 사고방식을 표현하는 ‘창’ 역할을 하기도 한다. 서양미술을 만든 서양인들의 사고방식을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불친절한 서양미술의 세계에 들어가려면 이주헌이라는 친절한 안내자를 동원해야 한다. 『이주헌의 서양미술 특강』은 미술작품을 통해 지루함을 넘어 흥미 있는 미적 여행의 세계로 안내한다.

 

 

 

 

틴토레토  「은하수의 기원」 1570년대

 
 
저자는 서양미술의 본질에 좀 더 쉽게 다가서기 위한 세 가지 특징을 제시한다. 인간 중심적, 사실적, 감각적 특징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특징이 잘 살린 대표적인 그림이 바로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틴토레토의 「은하수의 기원」이다. 어린 헤라클레스가 잠자는 헤라에게 몰래 다가와 젖을 먹고 있는 장면이다. 헤라가 잠에서 깨는 바람에 화들짝 놀란 제우스는 얼른 어린 헤라클레스를 떼어놓지만, 헤라의 가슴에 나오는 젖방울은 하늘과 땅으로 향한다. 하늘로 간 젖은 은하수(Milky way)가 되었고, 땅에 흘린 젖은 순결한 꽃의 상징으로 알려진 백합이 되었다. 

 

틴토레토의 그림에 나오는 신은 인간의 모습과 같다. 이뿐만 아니라 종교화에 등장하는 예수나 천사 또한 인간의 형상을 띤다. 이러한 인간 중심적 특징은 역사화의 탄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서양미술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많은 인기를 얻은 장르가 역사화다. 화가는 역사화를 통해서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는 데만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역사 한가운데 있는 인간 그 자체를 그리고자 했다. 이것이 바로 인간에 관한 이야기며 그 속에서 역사적 상황에 마주친 인간의 희로애락을 표현했다.

 

서양미술에서는 시각적 재현 또는 모방을 중시했다. 그러므로 인간의 형체 그대로 묘사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연마저도 똑같이 그리려고 했다. 원근법의 등장으로 눈으로 보는 듯한 풍경이 그림으로 재현할 수 있어졌고, 여기에 더 나아가 빛과 그림자를 묘사함으로써 완벽한 환영적 재현에 도달하기에 이른다. 다시 틴토레토의 그림을 살펴보면 벌거벗은 헤라의 몸에 그림자에 의한 음영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그밖에도 화사한 색채를 통해 시각이 촉각으로 환기하는 공감각적 표현을 구사하여 관객은 사실적인 느낌을 받는다.

 

 

 

 

 

김홍도  「씨름도」  1745년

 

 

저자는 서양미술의 세 가지 특징을 입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동양미술과 직접 비교한다. 서양미술과 동양미술의 차이점은 우리가 서양미술을 이해하는 데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동서양의 다양한 시대와 작가의 미술작품에서 발견한 차이점을 통해 서양미술에 접근하는 길을 터주고 있다.

 

김홍도나 신윤복의 그림에서 그림자 한 점이라도 나타나지 않은 사실을 알고 나면 의아하게 느낄 것이다. 동양미술은 그림자를 묘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실적인 외양보다는 본질의 진실한 내면(정신)을 표현하는 것을 더 중시했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김홍도의 그림이나 정선의 풍경화를 처음 본다면 낯설게 느꼈을 것이다. 원근법이나 그림자 표현이 없어서 사실감이 떨어지는 어설픈 그림으로 오해하기 쉽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시각으로 다시 서양미술을 바라보는 접근방식을 제시한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은 참신한 내용이라고 볼 수 없다. 17년 전부터 시작된 미술 특강에서 가르친 내용을 토대로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대학교에서 교양 미술 강의를 수강한 적이 있는 독자라면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게다가 서양미술을 보는 이 세 가지 시각은 고전미술(현대미술로 규정하는 20세기 이전 미술사조, 즉 르네상스, 바로크, 고전주의, 인상주의까지)에서만 한정되어 있다. 서양미술을 독학하는 독자라면 유의해야 할 점이다. 이 책을 이해하고 난 뒤에 중상급 정도의 서양미술을 더 알고 싶으면 역시 동일 저자가 펴낸 『지식의 미술관』(아트북스, 2009년)과 『역사의 미술관』(문학동네, 2011년)을 읽어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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