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omnibus requiem quaesivi, et nusquam inveni nisi in angulo cum libro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독일의 신학자 토마스 아 켐피스는 19세에 아그니텐베르크 수도원에 들어가 70년간이나 작은 골방에서 성경필사에 전념했다. 아 켐피스가 남긴 말로 알려진 저 라틴어 구절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열린책들, 2009년) 1권 서문 마지막에 인용되기도 했다. 에코(이윤기 선생의 번역으로)는 아 켐피스를 모방의 도사라고 소개했지만, 그는 성경 필사의 모범이다. 아 켐피스는 일생동안 성경을 네 번 필사했는데 아름다운 필체로 평가받고 있다.

 

 

 

 

 

 

 

 

 

 

 

 

 

 

 

 

 

 

필사. 그것은 단순히 ‘손으로 쓰는 글자’가 아니라 ‘손으로 쓰는 기도’이자 ‘손으로 쓰는 명상’ 그 자체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눈으로 글자를 읽는 행위가 아니다. 눈으로 하는 명상이다. 책을 오랫동안 보면 눈이 피로하고 침침하지만, 마음은 편안해진다. 종이책 특유의 냄새가 감돌면서 눈에 활자가 보일 정도로 약간의 조명이 비치는 서재에서 책을 읽는다면 잠시나마 하루 동안 쌓인 고뇌를 잊을 수 있다. 아 켐피스는 성경을 필사하는 생활을 하면서 도서관에 보관된 수많은 장서도 읽어봤을 것이다.

 

내가 쉴 수 있는 '책이 있는 구석방'은 (헌)책방이다. 편히 앉을 수 있는 안락한 소파에, 겨울에 따뜻하게 누워서 책 읽을 때 편안한 전기장판까지 있는 서재도 책을 읽기에 좋은 공간이다. 하지만 컴퓨터와 TV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어서 독서를 몰입하는 데 방해된다. 온 사방에 수많은 책이 꽂혀 있거나 쌓여 있는 조용한 책방이 더 편할 수밖에 없다. 

 

내가 다니는 책방에 한 시간 이상 책을 꼼꼼하게 확인하면서 읽는 손님이 많이 없다. 그런 손님이 있더라도 나만큼 정말 오랫동안 책방 서가를 이리저리 왔다 갔다 둘러보고, 내 무릎 높이까지 쌓인 먼지 묻은 책들을 만지작거리는 손님은 없을 것이다. 책 한두 권을 살려면 무조건 두 시간 이상 책방에 머무른다. 내가 고른 책이 오래오래 읽을 가치가 있는 것인지 확인한다. 절대로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없다. 이렇게 마음 편하게 책 한 권 한 권을 만져보면서 훑어볼 수 있는 곳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한적한 분위기는 '책아일체'(冊我一體)가 되게 해준다. 

 

주말의 시작인 토요일에 책방에 방문하는 것이 제일 좋다. 특히 '무한도전' 방송이 시작되는 시간대 이전인 오후 2시부터가 적당하다. 점심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면, 이제 책방에서 마음의 양식으로 지식에 허기진 두뇌를 채운다. 아니면 재미있는 소설을 읽으면서 한 주 동안 스트레스로 뭉쳐져 딱딱해진 감성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준다. 내가 원하는 책을 찬찬히 고르면 된다.

 

책방은 한 달에 두 번 정도 간다. 먹고 살기 넉넉한 경제적 수준이라면 주말마다 책방에 가는 것이 소원이다. 많이 가는 편은 아니지만, 방문할 때마다 책방에 두 세 시간 오래 있는 일상이 익숙해지다 보니, 책방 서가에 어떤 분야의 책이 꽂혀 있는지 알고 있다. 이제 책방이 편해서 내 서재 같은 느낌이 난다.

 

오늘 책방에서 책을 읽고 있다가 내 나이와 비슷하거나 어린 젊은 커플이 방문했다. 책방에서 젊은 커플을 보게 되다니. 혼자 책 읽고, 혼자 밥 먹을 정도로 혼자 노는 생활이 편한 나도 약간 마음이 위축되었다. 책방에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통로가 비좁아서 커플이 책을 고를 수 있도록 내가 몇 발 뒤로 물러서서 딴 곳으로 이동했다. 내가 있든 없든 커플은 거들떠보지 않겠지만. 그래도 남자는 연세가 많은 손님이 주로 찾는 책방에 자신처럼 젊은 남자가 혼자 책 읽는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내가 그 남자의 눈과 딱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서로 못 본 척 시선을 회피했다. 커플은 생각보다 꽤 오래 있었다. 나는 그들이 얼른 떠나기를 내심 바랐다. 커플의 등장으로 조용한 독서를 할 수가 없었다. 커플은 어떤 책을 찾고 있었다. 둘이 딱 붙어서 책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부러우면서도 약간은 질투가 났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원래 책방에 처음 오는 손님은 책방 주인에게 자신이 찾으려는 책이 있는지 먼저 물어본다. 원하는 책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 그냥 돌아간다. 그런데 저 커플은 꽤 오랫동안 서가를 관찰했다.

 

커플이 서가를 둘러본 지 10분 정도 지났을까. 그들은 주인에게 자신이 찾는 책이 있는지 물어봤다. 도대체 커플이 찾으려는 책이 무엇일까. 나는 책방에 오는 손님들이 원하는 책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서 몰래 살짝 귀띔한다. 커플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찾고 있었다. 주인은 그 책이 있는지 잘 모르는 듯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일단 직접 서가에 찾아보기로 했다. 책방을 오래 운영한 주인도 셀 수 없이 많은 책무더기 사이에 손님이 원하는 책을 바로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나는 책방 전체를 오랫동안 관찰했던 터라 커플이 원하는 『인간 실격』이 어디에 꽂혀 있는지 알고 있었다. 책방에 있는 『인간 실격』은 1995년에 웅진출판사가 찍은 것이었다. 출판연도가 좀 오래됐어도, 책 상태는 거의 새 책에 가까웠다.

 

나는 서가 한구석 모퉁이에 꽂혀 있는 『인간 실격』을 빼서 주인에게 건네줬다. 그러자 커플과 주인은 1분도 채 안 돼서 『인간 실격』을 발견한 내 모습에 놀랐다. 커플은 연신 '대박!'이라고 말하면서 고마워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별말씀을요'라고 간단히 말하면서 계속 서가에 책을 고르는 척 했다. 사실 커플이 책을 사고 돌아가기를 원했기 때문에 책을 찾아줬다. 커플은 『인간 실격』을 찾게 돼서 너무나 기뻐했다. 남자는 기쁨에 떨면서 『인간 실격』을 감명 있게 읽었다면서 책방에 같이 온 여친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내가 읽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같이 읽고 공유하는 모습. 정말 보기 좋았고, 더 질투가 났다. 다시 마음 편히 책을 읽으려는 갑자기 안구는 촉촉해지는 것일까. 너무 오랫동안 활자를 봐서 눈이 침침한 것이겠지... 음, 기분 탓일 거야...

 

 

 

 

 

 

오늘 세 시간동안 고르면서 구입한 책은 총 세 권이다. 버트런드 러셀의 『철학이란 무엇인가』 구판(문예출판사, 1995년), 『세계 러브스토리 걸작선』(도솔, 1993년), 레미 드 구르몽의 소설 『색, 색, 색』(문지사, 1993년)이다.

 

 

 

 

 

 

 

 

 

 

 

 

 

 

 

 

 

 

 

 

 

 

 

 

 

 

 

 

 

 

 

 

러셀의 책은 올해 같은 출판사에서 새 표지로 복간되었다. 황문수 님이 번역했는데, 복간본도 구판처럼 같은 번역자의 손을 거쳤다. 복간본이 나오면서 황문수 님이 번역을 새롭게 손을 봤는지 잘 모르겠다. 일단 두 권을 같이 비교해서 읽어보려고 한다. 『세계 러브스토리 걸작선』은 알라딘 검색, 심지어 중고샵에서도 찾을 수 없는, 완전 유령이 되고 만 책이다. 영미 작가들이 쓴 사랑을 주제로 한 단편소설들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 국내에 널리 알려지거나 작품이 많이 소개된 작가의 작품도 있다. 『인간 희극』(문예출판사, 2006년) 또는 『휴먼 코미디』(2012년, 문학동네)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윌리엄 사로얀, 『수선공』(동인, 2009년-품절)의 버나드 맬러머드, 『나의 안토니아』(열린책들, 2011년)의 윌라 캐더, 존 업다이크 그리고 미국 단편소설의 대가 오 헨리까지 책에 수록된 작가 라인업이 괜찮다.

 

마지막 책으로 『색, 색, 색』은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라는 유명한 구절이 나오는 시 「낙엽」을 쓴 레미 드 구르몽의 소설이다. 우리나라에서 구르몽은 「낙엽」의 시인으로 많이 알려졌는데, 『색, 색, 색』은 국내에 유일하게 번역된 그의 소설이다. 프랑스어 원제는 『Couleurs, Contes Nouveaux Suivi de Choses Anciennes』. 1908년에 발표되었다.

 

구르몽은 젊은 나이에 결핵의 일종인 낭창에 걸려 얼굴이 추해지자 아파트 서재에 파묻히듯이 살았다. 심지어 말을 더듬는 습관도 있어서 구르몽은 집에 틀어박혀 지낼 정도로 극도로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외출하지 않고, 서재 속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지냈다. 서재에서 같이 지내는 유일한 그의 친척이라면 반려묘. 구르몽은 책이 가득한 서재를 '나의 헛간'이라고 불렀다.

 

책방에서 나의 동지를 우연히 만났다. 구르몽의 고독, 그리고 속세를 멀리하여 자신만의 유일한 안식처가 있는 이 고독한 시인에게 연민이 느껴지면서도 동질감이 느껴졌다. 세상을 완전히 단절하는 밀폐된 은둔이 아닌 가능한 한 내 존재의 이유를 확인하고 성찰할 수 있는 건강한 고독. 그런 고독을 즐길 수 있는 곳은 바로 내가 쉴 수 있는 책방이 아닐까 싶다. 이제부터 자주 가는 책방을 '나의 헛간'이라고 불러야겠다. 나의 지적 헛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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