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우리의 감정을 뒤흔들어 놓은 소식들이 많았다.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서 세상을 참 멋지게 살다 간 그를 떠나 보내야한다는 사실에 믿겨지지 않아 눈물을 흘렸고, 원칙과 정의가 무참히 짓밟히는 뉴스에 스트레스가 더 쌓여만 갔다. 생각해보니 우릴 기분 좋게 해준 좋은 행복한 뉴스는 없었던 것 같다. 아예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희락’(喜樂)보다 ‘노애’(怒哀)만 불러일으키는 세상에 익숙해진 탓일까. 마음이 어수선한 상황 속에 뜬금없이 ‘그’의 이름이 포털사이트 검색 순위에 올랐을 때 세상이 제대로 미쳐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내가 말한 ‘그’는 바로 악명 높은 연쇄 살인범 찰스 맨슨이다.

 

그는 1969년 ‘맨슨 패밀리’로 불리는 자신의 일당을 데리고 35명을 직접 살해하거나 지시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45년째 캘리포니아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올해 맨슨의 나이는 80세인데 자신보다 무려 54세 연하인 20대 여성과 옥중 결혼을 올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일레인 버턴이라는 이름의 20대 여성은 맨슨의 무죄를 주장하며 그의 방면 운동에 힘쓴 인물이다. 맨슨이 감옥에 갇혔어도 여전히 그를 추종하는 일부 세력이 남아 있다. 버턴도 맨슨 추종자의 한 사람이다.

 

희대의 살인마, 그것도 맨슨이 나이 차가 나는 여성과 옥중 결혼을 한다는 소식은 엄청난 충격이다. 한동안 잊고 있던 흉악범의 이름이 다시 주목받으면서 맨슨의 살인사건을 언급할 때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안타까운 인물도 같이 거론되었다. 1969년에 맨슨 패밀리의 침입으로 무참히 살해된 영화배우 샤론 테이트다.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아내였던 샤론은 살해 당시 임신 8개월 만삭이었다.
 
맨슨의 옥중 결혼 소식을 알리는 각종 언론 기사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샤론 테이트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이 충격적인 외신을 국내 어느 언론이 먼저 보도했는지 모르겠지만,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여러 언론들이 맨슨과 관련된 소식을 발 빠르게 전했다. 그런데 글자만 조금 다를 뿐이지, 대부분 맨슨 관련 기사들이 ‘복사하기+붙여넣기’(Crtl+C, Ctrl+V) 기능으로 후딱 만든 느낌이 났다. 무기징역으로 감옥에 갇힌 세기의 살인마의 옥중 결혼식 그리고 그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여배우 살인 사건까지 이 모든 내용들은 기사 조회수를 높이게 할 수 있는 적합한 소재들이다. 그리고 맨슨과의 결혼을 원하는 버턴을 '미모'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남성 독자들의 조회수를 높이도록 만들었다.  아마도 맨슨의 옥중 결혼 소식에 유독 호들갑을 떨었던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였을 것이다. 불과 일주일이 지났는데 맨슨을 언급하는 기사가 족히 400건 이상은 넘는다. 평소보다 과도한 취재 열기다. 불이 날 정도로 빠른 기자들의 타이핑과 센스가 넘치는 문장력 덕분에 ‘찰스 맨슨’의 이름은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당당히 1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정작 중요한 내용은 없고, 그저 맨슨 사건을 단편적으로 소개하는 기사가 많았다. 앵무새가 사람 말을 흉내 내는 것처럼 뻔히 아는 내용만 적었다. 이런 형편없는 기사를 읽는다는 것은 시간, 스마트폰 데이터 용량이 아깝다. 정확한 사건의 정보를 전달하기보다는 그저 조회수를 높이고 싶어한다. 도배에 가까울 정도로 별 쓸데없는 내용만 똑같이 옮겨 쓴 기사를 쓰는 사람들은 우리는 ‘기레기’(기자+쓰레기)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인간쓰레기를 소개하는 기레기라니.

 

 

 

 

 

기레기는 ‘기자’라는 명함이 아까운 존재이다. 그들이 쓰는 글은 정보의 정확성이 떨어진다. 오로지 특종을 위해서 사건의 실체가 사실(fact)인지 아닌지 검증하지 않은 채 보도한다. 샤론 테이트를 살해한 범인으로 맨슨이라고 소개하는 기사가 많은데, 이는 사실과 다른 내용이다. 맨슨과 샤론 테이트가 함께 언급되는 글을 읽게 되면, 독자는 맨슨이 샤론 테이트를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특히 간결한 핵심 메시지로 압축된 헤드라인만 보면 맨슨을 모르는 독자들이 오해할 소지가 있다. 예를 들면 “여배우 샤론 테이트 살해, 찰스 맨슨 옥중 결혼식”이라거나 “샤론 테이트 살인마 찰스 맨슨, 54세 연하 여성과 옥중 결혼” 같은 비슷비슷한 문구의 헤드라인이 눈에 띈다. 아무 기사 하나 골라서 베끼면 기자가 아닌 누구나 기사를 작성하는 ‘기레기 코스프레’가 가능하다.

 

 

 

 

 

 

 

 

 

 

 

 

 

 

 

 

찰스 맨슨이 어떻게 살인마가 되었는지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콜린 윌슨의 『현대살인백과』(종합출판 범우, 2011년)이 참고하는 것이 좋다. 샤론 테이트가 살해되는 장면도 나름 자세하게 언급되고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샤론 테이트는 맨슨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 절대로 아니다. 맨슨 패밀리 소속인 수잔 앳킨슨과 텍스 왓슨 그리고 나중에 페트리시아 클렌윙켈까지 가담하여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이들은 맨슨의 살해 명령 지시를 받고 우연하게 샤론 테이트의 집에 침입하여 자신들만의 광기의 무대를 펼쳤다.

 

『현대살인백과』는『아웃사이더』(1997년, 범우사)의 저자가 1962년에서 1982년 사이에 일어난 세계 각국의 살인 범죄 사건을 모아 소개하고, 분석한 책이다. 비록 21년 전에 나온 책이라서 오래된 정보라는 점 그리고 하나의 범죄 사건을 정확하게 알기에는 분량이 약간 적은 감이 있다. 그래도 잔인한 범죄를 과도하게 묘사하지 않고 사건을 냉철하게 분석하려는 필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보도의 전달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자라면 흉악범죄 사건을 윌슨처럼 최대한 중립적으로 소개해야 한다. 사건 담당 기자라면 살인자가 어떻게 피해자를 죽였는지 묘사하지 말고, 살인자가 왜 피해자를 죽이는 행동을 저질렀는지 심도 있게 분석하는 보도의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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