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니체 - 단 하나의 삶을 사랑하는 길 작은길 교양만화 메콤새콤 시리즈 12
막시밀리앙 르 루아 글.그림, 임명주 옮김, 이수영 해제, 미셸 옹프레 원작 / 작은길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니체만큼 많은 영감을 주는 철학자도 드물다. 방대한 저작과 그 난해함, 또 해석의 폭넓은 스펙트럼. 청년기엔 누구나 한 번쯤 그 철학의 바다에 몸을 담그게 된다. 그러나 수심이 깊은 ‘니체’라는 바다가 두려워서 대부분 바닷가에서 발목을 적시는 정도로 끝날 수 있다. 니체 자신의 저작도 분량이 만만치 않지만, 입문서와 해설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많다. 입구를 잘못 찾으면 평생 잘못 파악한 채 살아가게 된다. 니체에 관한 책은 이미 너무 많아 새 저작을 낸다는 것은 자칫 군더더기가 되기 쉽다. 이는 니체만큼 다양한 주석과 해석, 논쟁을 일으키는 철학자도 드물다는 역설적 반증이기도 하다.

 

한때 니체를 알기 위해 제법 많은 시간과 열정을 투자한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에서 배운, 그 ‘시험문제용’ 니체가 아니라 ‘삶’의 철학자 니체를 찾기 위해서. 그러나 투자한 시간과 열정에 비해 그 열매는 언제나 나의 지적 능력을 의심할 만큼 초라했다. 니체의 대표작『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몇 번 읽어봐도 늘 미로를 걷는 기분이었다.

 

막시밀리앙 르 루아가 그린 『프리드리히 니체』는 니체의 삶과 철학을 적절한 수준에서 간결하게 복원했다. ‘니체의 모든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니체에 입문하는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만화는 중간에 니체의 책에서 발췌한 문장을 인용하여 그의 핵심사상을 건드린다. 내 지난날의 수많은 시간과 열정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니체로 가는 길을 친절하고 쉽게 안내한다.

 

 

 

 

 

 

만화의 채색은 대체로 어두운 분위기다. 다 알듯이 니체는 항상 병마에 시달렸다. 쉼 없는 집필을 보상받아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되었을 때, 이미 니체는 거의 몸과 마음이 병들어 죽음을 앞둔 상태였다. 르 루아는 매독의 고통을 못 참아 몸부림치거나 환상과 망상에 시달려 울부짖는 니체의 모습도 그려냈다. 대사 한 줄 없는 무언의 컷 안에 너무 튈 정도로 과감한 선과 색채로 형상화된 니체는 철학자라기보다는 병자와 광인 이미지를 돋보이게 한다. 왜 르 루아는 병과 망상 앞에서 무너지는 연약한 니체의 모습을 강조하려고 했을까.

 

 

 

 

 

니체의 질병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상적 의미의 그것과 다르다. 그는 질병을 가장 건강한 사람만이 감행할 수 있는 모험이라고 표현했다. 심지어 자신이 심한 병을 앓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 스스로 병적이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니체는 질병으로 자신의 철학을 검증하려고 했다. 허무주의의 늪에 빠지려고 일보 직전 상태인 자신을 스스로 탈출해서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이다. 즉, 허무주의에 길들면서 생겨난 지배 정서를 의심하고, 공격하기 위해 니체는 위험한 싸움을 감행한다. 망치를 들고 철학을 하는 것이다. 망치로 허무주의적 본성을 파괴한다면, 삶에 대한 긍정을 느끼고, 삶이 건강해진다. 결국, 병들고 미쳐버린 니체의 모습은 그저 독특한 생의 이력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살아있을 때나 죽고 나서 이름이 알려지게 된 지금이나 니체를 미친 사람으로만 봤을 뿐, 왜 니체가 미쳐버렸는지 그 누구도 묻지 않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인식이 우리가 니체의 생각을 어렵게 느껴지게 만든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비록 그는 10년 동안 진행된 질병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했지만, 그는 무시무시한 고통을 직면하면서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죽을 때까지 평생 그를 힘들게 한 친구가 매독이라면 그를 외롭게 만든 친구는 고독이었다. 니체는 외롭게 살았다. 미모와 지성을 두루 갖춘 루 살로메에게 반해 단 한 번 만난 후 청혼까지 했지만 결국 사랑은 얻지 못했다. 루는 위대한 철학자의 가슴을 벼락처럼 후려칠 수 있는 여자였다. 그 과정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같은 위대한 책이 탄생했다. 니체는 운명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는 미래의 철학자를 만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바로 차라투스트라. 미래에서 온 철학자 차라투스트라는 니체에게 비극과 불행은 삶에 있어서 필연적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불행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Amor Fati. 니체는 운명을 사랑하지 않고, 이렇게 병마에 시달리다가 무기력하게 죽었다면, 우리가 아는 지금의 니체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니체는 당시까지의 모든 철학과 종교관, 인간관을 비판하고 새로운 인간상을 부르짖었다. 그가 평생 추구한 최대의 화두는 완전한 인간이었다.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한 것은 종교의 부정이 아니다. 피안의 존재에 의지하는 나약한 인간상에서 벗어나 인간 스스로 완성에 전념하라는 주문이었다. 그가 그토록 갈망한 인간다운 인간의 완성은 끊임없이 안정을 거부하고 새로운 혼돈을 지향해 전진하는 역동적인 모습이었다. 그런 인간을 니체는 Übermensch라고 이름 지었다. 니체의 삶은 전적으로 어떻게 하면 더 높은 삶의 가치를 지향하는 인간이 될 수 있는가를 탐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무주의가 지배된 세상에 짓눌려 생긴 환부를 도려내 버린다고 우리의 삶이 건강할 수 있을까. 아니, 그렇게 도려낼 수 있는 상처라면 차라리 좋겠다. 까짓 잠깐의 고통쯤이야 참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10년 동안 골골 앓아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니체라는 철학자도 있었는데. 맹목적으로 아픔을 참는 그런 서투름도 아니고, 그 아픔을 잊으려 하는 어리석음도 아닌, 병을 통해 건강해지는 니체의 지혜를 얻고 싶다. 고통을 즐거운 것으로 긍정할 수 있는 그 삶의 지혜를. 이제 니체의 삶과 생각을 이해했다면, 차라투스트라처럼 미래의 철학자가 된 니체를 만나러 가보자. 그런데 그가 있는 곳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니체 철학의 이정표들, 즉 니체를 알고 싶은 독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국내 문헌들이 언급되지 않은 점이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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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4 11: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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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5 00: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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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5 14: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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