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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타니파타 - 불교 최초의 경전
법정 옮김 / 이레 / 1999년 11월
평점 :
절판
세상살이를 하다보면 숨이 턱턱 막힐 때가 있다. 저마다 위로가 되는 것들이 따로 있겠지만 경전의 좋은 구절도 그 중의 하나이다. 법정 스님이 옮긴 『숫타니파타』는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읽다보면 주옥같은 문장들을 만날 수 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34쪽)
사자처럼 칭찬이나 비난 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바람처럼 인연 따라 오고 가는 사람이나 물질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는다. 순수한 마음으로 본래의 마음자리를 찾아, 무소처럼 오직 집중된 마음으로, 당당하게 나아가기. 이 게송은 삶의 거울로 삼을 만하다.
부처의 일대기 가운데 악마와의 한판 승부 장면을 읽을 때면 머릿속에 멋진 무대가 만들어진다. 악마 나무치가 수행중인 부처 앞에 등장한다. 그는 수행을 완성하려고 정진하는 자를 방해해서, 쾌락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무시무시한 존재이다. 악마는 부처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네는 척하면서 어른다.
"당신은 여위었고 안색이 나쁩니다. 당신은 죽음에 임박해 있습니다. 공덕을 쌓는다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힘써 정진하는 길은 가기 힘들고 행하기 힘들며 도달하기도 어렵습니다." (151~152쪽)
악마는 좋은 말로 해서는 먹혀들지 않으니 겁을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무리들을 부른다. 대도(大道)를 걷는 부처는 홀로이지만, 소인배 악마는 늘 무리를 거느리고 다닌다. 악마의 공격 속에서 부처는 차분하게 저들의 정체를 밝혀낸다.
"너의 첫째 군대는 욕망이고, 둘째 군대는 혐오이며, 셋째 군대는 굶주림, 넷째 군대는 집착이다. 다섯째 군대는 권태와 수면, 여섯째 군대는 공포, 일곱째 군대는 의혹, 여덟째 군대는 겉치레와 고집이다. 그릇된 방법으로 얻은 이득과 명성과 존경의 명예와, 또한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경멸하는 것. 나무치여, 이것들이 바로 너의 군대이다." (153~154쪽)
그런데 수행중인 부처를 공격한 악마의 군대치곤 그 이름이 흥미롭다. 이것은 바로 홀로 결가부좌한 부처가 내면의 마지막 청소를 하고 있는 중이다. 수행을 방해하는 온갖 번뇌들을 말끔히 털어내 보니 바로 저런 번뇌들이었음을 은유로 밝혀낸 것이다.
부처가 털어낸 이들 번뇌는 우리의 일상에서 자주 나타나 평온한 마음을 뒤흔드는 번뇌들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저 열 가지 몹쓸 녀석들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며 하루하루를 근심에 떨며 살아간다. 그리고 저들 때문에 어떤 일을 완성하려 해도 도중에 주저앉는다. 저들 때문에 괴로워하고, 괴로울 일을 반복하고, 다시 아등바등 살아가게 된다.
근심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근심을 없앤다면 삶이 더 풍성해질 것이다. 우리는 뭔가를 버릴 때 과연 그 물건이 쓸모가 없는지 따진다. 근심의 원인인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자녀가 있는 이는 자녀로 인해 근심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 때문에 걱정한다.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은 마침내는 근심이 된다. 집착할 것이 없는 사람은 근심할 것도 없다. (25쪽)
부처가 살던 시대가 오늘과 너무 다르다는 게 주저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집착을 끊어 근심을 없애려면 사랑과 우정의 행복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부처는 사랑과 같은 인간의 기쁨과 행복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 그가 우려하는 것은 '집착'이라는 불순물이 끼어 사랑의 본질이 훼손되는 것이다. 물론 부처는 출가한 수행자들이 세상이 주는 기쁨과 행복을 초월해 보다 큰 진리를 지향하기를 바랐다. 출가자의 길과 재가 신자의 길에는 차이가 있었다. 출가자들이 지향해야 하는 것은 해탈이다. 해탈을 위해서는 모든 인간적인 욕망을 포기해야 한다. 번뇌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듯 밀려들어와도 담담하게 물리친 부처처럼, 휘말리지 말고 어떤 번뇌인지 잘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번뇌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우리들을 생존에 얽어매는 것은 집착이다. 그 집착을 조금도 갖지 않은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버리듯이. (19쪽)
그러나 부처의 설법을 향해 마음을 열면 오늘의 문제에도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이 모든 애착과 잡념과 집착을 놓아버린다면 삶이 아름다워지고 행복해진다.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내 안의 아집과 탐욕, 기만과 이중성을 마주할 때 나는 『숫타니파타』를 다시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