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먼드 카버의 첫 번째 단편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에 ‘왜 그러는 거니, 얘야?’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다. 혹시 카버의 소설을 읽어 본 독자 분들께서는 이 글을 읽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는가. 무척 궁금하다. 만약에 내가 독서토론 모임에 참석하게 된다면, 독서토론을 위한 지정도서로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아무래도 카버의 소설을 즐겨 읽은 독자라면 소설에 대해서 할 말이 많지 싶다. 특히 내가 여기서 소개하려는 ‘왜 그러는 거니, 얘야?’ 같은 글은.

 

‘왜 그러는 거니, 얘야?’는 서간체 형식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외동아들을 둔 어머니가 미지의 인물로부터 의문의 편지를 받게 된다. 그 내용은 어머니의 아들에 대해서 묻는 건데 어머니가 답장을 쓰기 시작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답장에 아들에 관한 내용이 언급된다. 과거를 회상하듯이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되면서까지 아들이 자라면서 겪은 경험들을 어머니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카버의 소설 『제발 조용히 좀 해요』를 아직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독자는 다음 소개되는 줄거리를 읽지 마세요)

 

 

그런데 아들을 대하는 어머니의 태도가 특이하다. 어머니는 아들을 두려워한다. 아들은 평소 착한 성격이지만, 가끔 충동적으로 감정을 폭발하거나 거짓말을 서슴없이 일삼는 행동을 한다. 아들이 열다섯 살쯤 되었을 때, 자신의 집에 기르는 고양이를 끔찍한 방법으로 죽인 적이 있었다. 그 장면을 남편이 목격했지만 어머니는 믿지 않았다. 아들이 가족처럼 여기던 고양이를 끔찍하게 죽일 리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들은 미심쩍은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처음으로 일을 하게 되어, 월급을 받았는데 어머니에게 80달러를 받았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자신보다 돈을 많이 버는 아들의 모습을 기특하게 여겼으나, 이 말이 ‘뻥’이었음을 알게 된다. 빨래를 하다가 아들의 주머니 속에 28달러짜리 급료 수표를 발견했다.

 

아들은 학교 성적이 우수할 정도로 머리가 좋았다. 그러나 점점 밖으로 돌아다니는 시간이 많아졌고, 어머니가 밖에 나가서 무엇을 했냐고 물어봐도 아들은 사실대로 얘기하지 않았다. 그냥 아무 일도 아니라 듯이 대답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고, 한편으로는 걱정되었다. 심지어 아들은 자신이 구입한 엽총과 사냥칼을 자기 차의 트렁크에 넣기도 했다. 도대체 저런 위험한 물건을 구입해서 차에 보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의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 아들이 친구와 사냥을 하고 난 뒤에 다음 날 아침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아들의 방에 몰래 들어가서 살펴봤다. 그 곳에서 진흙이 잔뜩 묻은 아들의 신발을 발견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차 트렁크 속에 피가 묻힌 채 둘둘 말려진 셔츠도 발견했다. 지금까지 이 모습을 쭉 지켜본 아들은 어머니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코피가 심하게 나서 묻은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런 아들이 낯설게 느껴져만 갔다. 한 번은 어머니가 아들에게 따뜻한 차 한 잔 마실 건지 물어보려고 아들의 방에 들어갔다. 그런데 아들은 무엇을 숨기려다가 다른 사람에게 발각되어 크게 놀란 사람처럼 서랍 하나를 '꽝‘하고 닫으면서 어머니에게 느닷없이 소리를 질렀다. “여기서 나가요, 엄마가 엿보는 데 진절머리가 나요!”

 

갑작스러운 아들의 분노에 어머니는 무척 속상했다. 아들이 아닌 서로 남남처럼 지내는 하숙인처럼 취급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들은 어젯밤의 분노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다음 날 저녁, 한동안 밖에 나갔다가 들어온 아들이 식사를 준비했다. 어젯밤에 소리를 지르던 아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용기를 내어 아들에게 다가가 자신에게 솔직하게 말할 것을 요구했다. 그동안 밖에 나가면 무엇을 했으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왜 그러는 거니, 얘야?”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머니를 쳐다보다가 침묵했던 입을 열었다. “무릎을 꿇어요. 무릎을 꿇으라구요. 그게 첫째 이유예요.”

 

어머니는 아들의 대답에 두려운 나머지, 자신의 방으로 달려가 문을 잠갔다. 아들은 그 날 밤 집을 떠났다. 그 이후로 어머니와 아들은 다시 만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모자(母子)가 아니라 남남이 되고 말았다.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는 소원해졌지만, 아들은 엘리트 코스를 밟으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수한 성적과 최우수 졸업논문으로 학교를 졸업했고, 해병대를 제대하고 난 뒤에 정치에 도전했다. 아들은 텔레비전과 신문에 소개될 정도로 유명 인사가 되었다. 주지사에 출마해 당선도 했다. 텔레비전과 신문을 통해 아들이 사는 모습을 지켜본 어머니는 그의 주소를 알아내 몇 달에 한 번씩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럴수록 어머니의 걱정과 두려움은 더욱 쌓여만 갔다. 결국, 어머니는 이름과 전화번호부를 바꾸면서까지 은둔 생활을 하게 된다. 그 후로 어머니는 누군가로부터 감시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편지의 말미에 늙은 어머니는 자신이 이 나라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어머니이지만 두렵다고 밝혔다. 그리고 편지를 보내는 미지의 인물에게 어떻게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알아냈는지 궁금하다면서 물어보면서 소설은 끝난다.

 

“당신이 어떻게 제 이름과 주소를 알아냈는지 묻고 싶군요. 아무도 모르기를 기도해왔는데 말입니다. 왜 그러셨죠? 제발 좀 알려주세요.  -당신의 충실한 벗 드림” (292쪽)

 

카버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평범한 소시민이지만, 그들은 평온하고 행복하기보다는 항상 불안과 두려움을 달고 산다. 역시 ‘왜 그러는 거니, 얘야?’에 나오는 어머니의 삶은 불안하다. 아들 또한 평범하지 않다. 아들은 자신을 의심하고 꼬치꼬치 캐묻는 어머니가 불편하다. 평범했던 모자 관계는 사소한 의심과 갈등으로 점점 어긋나기 시작하다가 아들로부터 진실한 대답을 원했던 어머니의 요구로 인해 위태로웠던 그들의 관계가 무너져버린다.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원래대로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불신의 감정이 깊어졌다. 아들을 그리워하면서도 그의 이중적인 면을 두려워하는 어머니의 눈물겨운 하소연이 더욱 처량하게 느껴진다.

 

‘왜 그러는 거니, 얘야?’는 훌륭한 아들을 두고도 만나지 못하는 어머니의 안타까운 사연을 그린 소설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소설을 여러 번 읽어 보면 독자는 어머니처럼 아들의 행동을 의심하게 된다. 단일한 구성에, 시간적·공간적 배경을 최소화시키는 카버의 글쓰기는 등장인물이나 소설의 결말에 대한 의구심을 더욱 증폭시켜주고, 여기에 독자의 다양한 해석을 나오게 만든다. 

 

 

 

 

 

 

 

 

 

 

 

 

 

 

 


일단 눈치가 밝은 독자라면 이 소설에 나오는 아들이 ‘사이코패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이코패스의 특징은 겉으로 보기에 멀쩡하고 일상생활도 잘해 가족조차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사소한 충동으로 자제력을 잃게 되면 잔인하고 엽기적인 범죄를 저지른다. 또 다른 특징은 자기가 한 잔혹한 행위나 거짓말에 대해 아무런 죄의식이 없다. 충동적이고 무책임하며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한다.

 

아들이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를 죽이고 난 후에 드러나는 행동은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모습에 가깝다. 『진단명 사이코패스』의 저자 로버트 헤어는 사이코패스가 유년기부터 끊임없는 거짓말과 방화, 동물 학대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또 자기합리화에 능숙하다. 고양이가 죽은 사실을 어머니에게 듣게 된 아들은 아무렇지 않게 태연한 모습을 보인다. 오히려 고양이가 죽은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날 저녁 제가 트루디(죽은 고양이의 이름)에 대한 얘기를 하자 그애는 놀라고 충격을 받은 것처럼 굴었고, 우리가 현상금을 걸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애는 뭔가 타자기로 치고는 그걸 학교에 게시하겠다고 했어요. 그러나 그날 밤 자기 방으로 가면서 그애는 엄마, 그 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트루디는 늙었어요. 고양이 나이로는 예순다섯이나 일흔쯤이었으니까 오래 산 거예요. 라고 말하더군요.” (284~285쪽)

 

이 소설의 또 다른 의문점. 아들의 어머니를 감시하고, 어머니의 집 주소를 알고 편지를 보낸 사람은 누구일까? 나는 이 모든 일들이 아들이 주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들은 이름과 집 주소가 바뀐 어머니의 안부가 궁금해서 감시한 것은 아니다. 주지사가 되어서 성공의 길을 걷고 있는 아들은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을 누구보다 잘 아는 어머니의 존재가 껄끄러울 것이다. 어머니가 공개석상에서 주지사의 어머니라고 밝히는 순간, 아들의 차 트렁크 안에 발견한 피 묻은 셔츠의 비밀 또한 공개될 수도 있다. 아들은 과거에 연루된 살인 사건이 내막이 한 치라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의심을 막아야 한다. 아마도 아들은 어머니에게 익명으로 편지를 보냄으로써 그동안 자신에 대한 어머니의 의중을 떠보고 싶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과거에 있었던 자신의 행동을 의심하고 꺼림칙했던 두 사람의 관계를 잊지 않고 있다면, 감시자에게 청부살인을 시켰을지도 모른다. 즉, 어머니의 답장은 아들이 계획한 무시무시한 살인의 함정일 수도 있다.

 

소설의 해석이 너무 상상력이 지나친 것도 있지만, 이 정도 범행을 충분히 생각해볼 가능성이 있다. 범죄자라면 자신의 범죄 행위를 목격한 증인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어머니는 언젠가 자신도 아들에게 살해당할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만약에 아들이 무릎을 꿇으라고 말했을 때 방으로 도망가지 않았더라면, 어머니의 운명을 어떻게 되었을까? 살인자 또는 사기꾼이 된 아들을 잉태하고 키운 어머니로서는 살아도 산 것 같지 않다. 아들의 하수인일지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언제 살해될지 모르는 두려움에 떨면서 어머니는 고립되어 간다. 아들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어머니의 마음은 애가 탄다. “왜 그러는 거니, 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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