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25년 간 『사이언틱 아메리칸』지의 수학 칼럼 편집 및 퍼즐 제작자로 활동하고, 루이스 캐럴 연구가로 유명한 마틴 가드너는 앨리스 2부작(『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은 어린이들이 읽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책이라고 말했다. 일관성 없는 줄거리와 갑작스런 전환 때문에 독서 의욕을 잃게까지 할 수 있다. 더구나 작가의 해학과 역설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지식 또한 필요하다.

 

 

 

 

 

 

 

 

 

 

 

 

 

 

그래서 마틴 가드너는 1960년 ‘주석 달린 앨리스’를 처음 냈고, 1990년 ‘좀 더 주석 달린 앨리스’를 냈다가 2000년 결정판 ‘앨리스’를 출간했다. 이 결정판은 북폴리오에서 번역돼 나왔다. 꼼꼼한 주석뿐만 아니라 존 테니얼의 원본 삽화와 근래에 발견된 그의 연필 스케치 그리고 존 테니얼의 반대로 『거울 나라의 앨리스』 첫 번째 판본에 실렸다가 삭제된 ‘가발을 쓴 말벌’이 수록되어 있다. 마틴 가드너의 『앨리스』 결정판은 앨리스 마니아가 꼭 읽어야 하는 책이었으나 현재 절판되었다.

 

 

 

 

 

 

 

 

 

 

 

 

 

 

 

마틴 가드너는 20대가 돼서야 앨리스 2부작의 매력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그 후, 『사이언틱 아메리칸』에 수학 퍼즐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역시 수학 퍼즐이나 마술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루이스 캐럴에게 정신적인 친밀감을 느꼈다. ‘좀 더 주석 달린 앨리스’를 발간한 지 6년 뒤에 가드너는 ‘앨리스’의 작가 루이스 캐럴이 아닌 ‘수학 레크레이션 전문가’ 루이스 캐럴를 소개하는 책을 쓰게 된다. 책 제목은 『The Universe in a Handkerchief

: Lewis Carroll’s Mathematical Recreations, Games, Puzzles, and Word Plays 』. 우리말로 직역하면 ‘손수건 속의 우주’이다.

 

 

 

 

『실비와 브루노, 결말 짓다』에 실린 삽화, 마인 헤어가 뮤리엘 양에게 안과 밖이 없는 손수건을 만드는 방법을 보이고 있다. 어린이들에게 특이하고 재미난 놀이나 게임을 알려주는 캐럴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삽화는 마틴 가드너의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27쪽에 인용함) 

 

 

‘손수건 속의 우주’는 루이스 캐럴의 또 다른 작품 『실비와 브루노』의 속편 『실비와 브루노, 결말 짓다』에서 나오는 안과 밖을 구별할 수 없는 손수건을 의미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마인 헤어라는 교수가 뫼비우스의 띠를 설명하면서 이와 유사한 3차원 단면을 만들었는데 ‘포추나터스의 지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것으로 전 우주를 담을 수 있다고 한다.

 

 

 

 

 

루이스 캐럴은 앨리스 2부작뿐만 아니라 『실비와 브루노』『실비와 브루노, 결말 짓다』『스나크 사냥』 같은 소설을 남겼다. 이 세 작품은 앨리스 2부작의 명성에 비해 국내에 덜 알려져 있지만, 수수께끼 시, 언어유희, 수학 퍼즐 등을 풍부하게 담고 있는 걸작이다. 생전 캐럴은 『실비와 브루노』가 자신의 역작이라고 생각했으며 지금도 앨리스 2부작과 마찬가지로 캐럴 연구가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는 텍스트이다.

 

 

 

 

 

 

 

 

 

 

 

 

 

 

 

 

마틴 가드너의 『The Universe in a Handkerchief』는 캐럴이 쓴 소설, 편지, 각종 팸플릿에 찾아낸 각종 수학 퍼즐, 수수께끼, 마술 등 흥미로운 내용을 소개한다. 단순히 캐럴의 삶을 조명했다기보다는 그동안 앨리스에 가려진 캐럴의 수학적 재능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국내에 번역된 책의 제목이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푸른미디어, 2000년, 절판)이다. 국내에 출간 당시, 책 제목을 원제 그대로 옮겨 썼다면, 이 책이 루이스 캐럴에 관한 내용을 다룬 건지 독자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 때 『실비와 브루노』가 아직 번역되지 않았으니까. 『실비와 브루노』는 속편과 함께 2011년에 페이퍼하우스에서 최초로 출간되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캐럴의 소설이기에 출간 소수의 캐럴 마니아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으나 어느새 이 책도 품절되었다.

 

 

 

 

 

 

마틴 가드너의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그동안 캐럴의 전기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흥미롭운 내용이 가득하다. 수학 퍼즐뿐만 아니라 그가 어린이들을 위해 만든 단순한 오락에서 암호와 농담이 들어 있는 수수께끼 시와 편지 내용을 소개한다. 앨리스를 즐겨 읽은 독자라면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에필로그에 나오는 시에 캐럴이 암호를 숨겨 놓은 사실을 알 것이다. 각 행의 첫 번째 글자들을 모으면 캐럴이 좋아했고, 앨리스의 실제 모델인 소녀의 이름이 된다. 캐럴은 이와 유사한 형태의 시를 자주 쓰곤 했다. 그리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미친 모자쟁이가 내는 수수께끼는 답이 없는 걸로 유명하다. “까마귀와 책상이 같은 점이 무엇일까?”

 

 

 

 

 

캐럴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는데 내성적인 성격에다가 말더듬이였다. 그러나 그는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능력은 있었다. 손수건과 냅킨으로 다양한 물체를 접을 수 있는 방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그가 만든 종이 딱총 접는 법은 종이접기를 꽤 해본 사람들이라면 알만한 단순한 접기 방식이다. 나는 초등학생 때 캐럴이 만든 방법처럼 종이 딱총을 접어본 적이 있었다. 오래 전부터 이런 단순한 종이 접는 법을 캐럴이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랍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수학 퍼즐리스트의 양대 산맥인 샘 로이드(1841~1911)와 헨리 듀드니(1857~1930)를 꼽으며 그들의 계보를 이은 사람이 마틴 가드너이다. 그러나 세 사람 이전에 캐럴은 이미 자신만의 수학 퍼즐을 만들고 있었다. 퍼즐리스트로서의 업적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

 

 

 

 

 

 

 

 

 

 

 

 

 

 

 

 

그가 만든(혹은 오래전에 알려진 문제를 그가 문서로 언급한) 문제들 중에 최근에 TV나 영화를 통해 알려져서 유명해진 것이 있다. 정답은 글 제일 밑에 있다.

 

양치기가 양, 늑대, 양배추와 함께 강을 건너야 한다. 양과 늑대를 남겨두면 늑대가 양을 잡아먹고, 양과 양배추를 남겨두면 양이 양배추를 먹는다. 전부 다 무사히 가지고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캐럴의 문제는 양치기, 여우, 거위, 옥수수 자루가 등장한다. 무한도전 스피드 특집에서 엘리베이터 문제로 나왔으며 그 이전인 2007년에 개봉한 스페인 영화 ‘페르마의 밀실’에 먼저 나왔다.

 

 

 

 

 

캐럴은 20대 초반에 미로도 만들었다. 도대체 캐럴의 재능은 어디까지인가? 이 책에 수록된 캐럴의 미로는 상당히 복잡하다. 단 한 사람의 머리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결정판 『앨리스』에 비해 분량은 얇지만, 난이도 높은 캐럴의 수학 퍼즐과 문제들을 수학을 어려워하는 독자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역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캐럴에 대한 관심과 전문 연구가 부족한 시기에, 그것도 마틴 가드너의 결정판 『앨리스』보다 먼저 소개되었다는 점에서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국내 캐럴 마니아라면 읽을 가치가 높은 책이다. 만화, 영화, 축약본 등 숱한 앨리스 텍스트 때문에 제대로 읽지 않고도 다 안다고 착각하는 독자들에게 진짜 앨리스, 아니 앨리스의 작가 루이스 캐럴을 즐겁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앨리스와 캐럴을 다시 만나는 길을 이제 찾기 힘들어졌다. 마틴 가드너의 결정판 『앨리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그리고 『실비와 브루노』까지 서점에 구하기 힘든 책이 되었다.

 

 

 

 

 

 

 

 

 

 

 

 

 

 

 

 

 

그나마 캐럴 마니아에게 유일한 위안이 된다면 캐럴의 『스나크 사냥』(이북코리아, 2013년)은 전자북으로 읽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참에『스나크 사냥』도 단행본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  양치기, 양, 늑대, 양배추 문제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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