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 도정일 산문집 도정일 문학선 1
도정일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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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logue : 쓰잘데없이 고귀한 그들의 선물

 

가난한 부부에게도 크리스마스 이브는 축복하고 싶은 날이다. 그러나 고작 1달러 87센트를 가진 델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 짐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백금 시곗줄을 사주고 싶은데 돈이 턱없이 부족했다. 어떻게든 시곗줄을 마련할 수 있는 돈을 구하기 위해서 길고 탐스런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른다. 대신 짐에게 머리를 잘랐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렵사리 백금 시곗줄을 구입했지만 델러는 짧아진 자신의 머리 때문에 짐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게 될까봐 애를 태운다.

 

드디어 짐이 돌아오고 그는 델러의 짧아진 머리를 보면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이럴 수가! 짐은 델러가 무척 갖고 싶었던 머리빗 세트를 선물로 사온 것이다. 자신이 받는 주급으로도 살 수 없는 값비싼 머리빗이다. 그러나 머리빗을 꽂을 수 있는 머리카락이 없다니. 애써 미소를 짓는 델러는 머리는 금방 자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마련한 선물을 짐에게 보여줬다. 짐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팔고 시곗줄을 산 델러의 마음에 감동받았다.

 

"델. 우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한동안 어디에다 간직하도록 해요. 지금 당장 쓰기에는 너무 훌륭한 것 같소. 나는 당신의 빗을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시계를 팔아버렸다오."

 

아마도 두 사람은 그날 밤 세상에 어떤 부부보다 행복했을 것이다. 서로에게 선물하기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판 것을 알고는 깊은 사랑을 확인했으니까, 선물은 상대방을 향한 고마움의 징표이다. 받는 이에 대한 배려가 핵심이다. 따라서 가격보다는 물건에 담기는 의미가 중요하다. 짐과 델러가 서로에게 받은 선물은 당장 쓸 수가 없다. 그렇지만 부부 간의 진한 사랑과 희생과 희망을 확인할 수 있는 시곗줄과 머리빗은 쓰잘데없어 보이지만 고귀한 선물이다.

 

 


 무엇과도 비견될 수 있는 고귀한 것들

 

지금까지 살면서 쓰잘데없어 보이지만 고귀한 것을 하나라도 가진 적이 있던가?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아주 어린 시절 우리는 소중하게 여긴 보물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친구와 구슬치기에서 얻은 알록달록 색깔 구슬들 아니면 산타 할아버지가 새벽에 몰래 집에 들어와 양말에 선물을 놓고 간 것. 비록 그 선물이 산타 할아버지가 준 것은 아니었지만 순수했던 시절 산타 할아버지가 준 진짜 선물이라고 생각해 애지중지 여긴 적이 있었다. 어릴 적 나에겐 보물 상자가 있었다. 아끼던 상자를 가지고 이사를 할 때면, 작은 상자 안에 소중한 물건들을 더 많이 넣으려고 물건들을 넣었다 뺐다 하던 기억이 난다.

 

우리 마음속 상자 안에 재물과 욕심과 사랑이 함께 들어 있다면, 그 상자 안에 재물과 욕심을 채워갈수록 사랑이 들어갈 자리는 좁아질 것이고, 상자 안에서 재물과 욕심을 덜어내면 덜어낼수록 우리 마음속 상자는 따뜻한 사랑만으로 충만해져갈 것이다.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소중한 것 중의 하나이다.

 

오늘 나의 보물상자는 무엇으로 채워져 있나? 욕심과 사랑 중에 무엇으로 충만한 사람이 행복할까? 그리고 무엇으로 충만한 사람이 오늘 하루 외로움과 절망 속에서 살아갈까?

 

너무나 여유 없이 앞만 보며 메마른 길을 달려온 삶 속에서 이제는 행복을 찾아야 할 시간이다. 그래서 내 마음속 보물 상자에서 욕심과 재물은 조금 덜어내고 사랑과 행복을 좀 더 채워야 한다. 보물 상자에 채울 수 있는 사랑과 행복은 세상이 쓰잘데없다고 여기는 것일 수도 있고, 그 속에 숨어 있을 수 있다. 어린 시절 소풍에 가면 즐거웠던 보물찾기 게임을 떠올려 보라. 그러면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았던 소중한 보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찾기 힘들다면 도정일 교수의 산문집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을 읽어보면 좋다. 제목만 봐도 책 속에 우리가 찾아야 할 고귀한 것들이 목록처럼 나열되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책의 저자는 이 책 속에 목록 같은 것이 없다고 말한다. 남의 목록에 의존해서 찾는 것보다는 독자와 자신이 앞으로 계속 찾고 만드는 것이 더 좋다. 그것은 자발적인 삶을 위한 임무이다. 우리가 살면서 잊고 있던 삶의 소중함을 느껴보고, 스스로 찾아보고, 자신만의 목록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 한 번 뿐인 삶이 마감할 때까지 절대로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결국 소중한 것의 목록을 만든다는 것은 삶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놀이 방식이다. 이 책에서 발견한 나름 고귀한 것을 두 개만 소개해본다.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 #1 : ‘너는 누구인가’, 자기 인식의 질문

 

일단 내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지 스스로 자문해야 한다. 질문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질문해서 알아보는 것도 괜찮다. 그런데 우리는 나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 질문하는 방법을 잊었다. 그냥 간단하게 말 한 마디만 하면 되는 것을 우리는 왜 질문하기를 주저하는 것일까. 상대방이 갑작스럽게 ‘너는 누구냐?’라고 질문을 하면 적절한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너는 누구인가? 그러나 네가 누구인가는 마침내는 중요하지 않다. 너는 너보다 더 큰 것, 너를 연결할 더 큰 어떤 것을 찾았는가?” (‘누구시더라’ 중에서, 14쪽)

 

내가 나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 질문함으로써 내가 이 세상에서 어떤 존재인지 인식할 수 있다. 일찍이 아테네의 델포이 신전 대리석 벽에는 ‘네 자신을 알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이 말을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려지게 만든 철학의 명제로 삼았다. 지금도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배려하고 관심을 갖고 골몰하는 일에 대해, 폐쇄성의 혐의를 둔다. 혹은 관계에 무관심하다고 여기거나, 공동체로부터 도피하는 수단 정도로 이해할 때도 많았다. 그러나 본래 ‘자기 자신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이란 우선은 사회적인 원리이면서 동시에 개인적인 원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떠올릴 필요가 있다. 자기 안의 격률을 갖고 진정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이들은, 자기 안의 격률로 인해 타인과 그의 흔적들에 역시 골몰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너는 누구인가’라는 이 단순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또는 쓰잘데없는 질문 속에는 ‘자각(自覺)’하기 위한 기본적이면서도 고귀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나’를 알아야 ‘나’를 둘러싼 세상도 알 수 있다.

 

내가 누구인지, 좀 더 확대해서 말하자면 인간이란 무엇인지 묻는 이 질문은 기본적인 인문학적 질문이다. 인문학이라고 해서 굳이 대학교나 철학책에서만 찾을 필요가 없다. 인간으로서 한 번쯤은 생각해보는 이 질문도 인문학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도정일 교수는 평생을 바쳐 인문학적 질문을 위해 집요하게 몰두한 사례로 제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극적으로 살아남아 비참한 참상을 기록한 이탈리아 출신 작가 프리모 레비를 들고 있다. (‘프리모 레비의 기억 투쟁’) 레비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대학 시절 때 탐독했던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구절을 암송했다고 한다. “나는 짐승으로 살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레비는 이런 구절을 통해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 #2 : 문학

 

백범 김구 선생의 건국이상이 ‘문화국가’였다. 식민지에서 벗어나 아직 궁핍하던 시절, 백범은 ‘부강한 나라’를 가로질러‘문화국가’를 역설했다. 몇 단계 건너뛴 화술이 놀라운 것이 아니라, 항일투쟁과 대조되는 평화주의자의 안목이 경탄스럽다.

 

백범 선생이 말하는 ‘문화’에는 여러 가지 분야를 포괄적으로 가리키는 것이다. 그 속에는 당연히 ‘문학’이 빠질 수 없다. 평소에 책을 즐겨 읽는 사람이라면 문학의 가치를 알고 있지만, 책을 멀리하고 학창시절에 문학을 외우는 과목이라는 기억이 강하게 남은 사람은 문학이라는 말을 어렵게 느낄 것이다.

 

도정일 교수는 단순히 문학(소설, 시)을 읽고 즐기는 행위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의 사회적 효용에 대해서 생각해볼 것을 제안한다. (‘시 배달부의 인기’) 특히 문학 읽기는 사람으로 살 수 있게 하는 인간적이며 동시에 시민적인 힘의 원천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시는 사람과 사람들을 잇게 만드는 최선의 선린 외교정책이다. 그것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문학적 연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문학은 정신의 성장이 시작되는 아이들에게 필요하다. 문학을 수능시험을 위해서 가르친다면 절대로 문학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사회적 효용을 알 수 없다. 수능에 나올 문제를 기막히게 맞힌 족집게 강사도 문학 독서를 통한 ‘위대한 감각’을 가르치지 못한다. ‘위대한 감각’이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치를 깨닫는 능력이다. 소설이나 시를 읽는 독서가 쓰잘데없은 시간 낭비라고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이성과 감성을 겸비하는 윤리적 인간이 되려면 문학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Epilogue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을 읽고 나면 꼭 자신만의 고귀한 목록을 찾아보라. 쓰잘데없는 것도 좋다. 나는 ‘자기 인식의 질문’, ‘문학’ 이외에도 소중한 것을 발견했다.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관용, 도서관 등등. 최소 5개 정도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고, 목록으로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 주어진 소중한 것들을 누리지 못한다면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오늘에 감춰진 의미를 능동적으로 찾아내줄 아는 자는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에 쏟는다면 기분 좋아지는 나 자신을 덤으로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문학, 사랑, 관용, 선물, 희망. 아무나 좋다. 이 세상에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보물을 발견했을 때 그 느낌을 느끼고 싶으면 꼭꼭 숨겨져 있어도 좋지만, 그래도 찾기 쉽도록 눈에 띄면 좋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소중함과 고귀함의 의미를 되짚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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