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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 - 우리의 두뇌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 외 지음, 신상규 옮김 / 바다출판사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뇌는 바다보다 깊어라
깊이 담그면 아주 푸르게
그 속에 바다가 다
물통 속 스펀지처럼 담긴다
여류시인 디킨슨은 직감으로 뇌 자체를 미지의 세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뇌의 깊이는 디킨슨이 생각했던 그 이상으로 무한히 깊다. 바다처럼 깊은 것이 아니라 깊이를 전혀 알 수 없는 심해와 같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 머릿속에 있는 뇌를 본다면 생각만큼 특별하게 생기지 않았다. 무게로는 커봤자 2kg 안팎에 불과하며 한 움큼 크기의 회백질 고기처럼 보인다. 이곳에서 모든 생각과 감정이 태어나고 명멸한다.
뇌는 인간을 생각하고 움직이게 하는 사령탑이다. 뇌 없이는 생존은 물론, 관계를 맺고 창작하는 인간다움도 없다. 단순하게 보면 뇌는 정보를 들여온 뒤 그에 맞는 반응을 내보내는 일을 한다. 당연하고 간단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그동안 뇌에서는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 뇌의 신경세포는 무려 1000억 개나 된다. 뇌는 이 세포 간 연결 통로인 시냅스의 작동으로 기능한다. 시냅스는 사용빈도에 따라 생성, 강화, 소멸을 반복하며 뇌 구조를 변화시킨다. 알고 보면 디킨슨의 시구처럼 뇌의 구조는 수많은 시냅스가 구성되어 작동되는 광활한 세계인 것이다. 지금도 뇌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뇌 지도를 제작함으로써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있다.
두뇌가 특정 부위에 손상을 입게 되면 사람은 기이한 행동의 변화를 보인다. 사라진 신체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착각하고, 신을 보고, 상상임신을 한다. 그러나 이들은 정신에 이상이 생겨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두뇌가 사고하는 메커니즘에 변화가 생겼을 뿐이다. 이 책의 원제처럼 뇌 속에 살고 있는 '유령'이 지독한 장난쳤을 뿐이다.
저자가 든 임상사례들은 그야말로 기이하다. 사고로 팔을 절단하고도 환상손가락이 환상손바닥을 후벼파는 고통에 시달리는 '환상사지', 시각에 생긴 맹점 때문에 의사 선생님의 무릎에서 원숭이 환각을 보는 '찰스 보넷 증후군', 자신의 부모님이 가짜라고 주장하는 '카프그라 증후군' 환자 등이 나온다.
환상사지는 수술이나 사고로 갑작스럽게 손발이 절단됐을 경우, 없어진 손발이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환자들은 환상 팔 혹은 환상 다리에서 일어나는 극심한 고통을 호소한다. 뇌 속 유령이 일으키는 장난 중 가장 고통이 심한 증상이 아닐까 싶다. 존재하지 않는 부위에서 존재하는 통증을 어떻게 치유할까? 처음에 의사들은 절단 부위의 밑동을 계속 잘라나가거나, 감각 신경을 잘라버리는 치료를 행했다. 그러나 대부분 별 효과가 없었다. 대뇌피질의 표면에는 신체의 여러 부위가 매핑(mapping)되어 있는데 팔 다리를 잘라내면 이에 따른 신체상(body image)이 빠르게 재구성된 결과 환상사지가 나타난다.
저자는 환상사지 치료를 위해 가상현실 상자를 고안했다. 상자 가운데 거울을 넣은 가상현실 장치를 만들어 정상적인 팔의 움직임을 환상사지가 느껴지는 팔 방향에 비춘다. 기형이 되거나 마비된 환상사지의 통증을 없애고 나아가 환상사지를 사라지는 데 성공한다. 이는 일종의 트릭이다. 팔이 사라져도 신체감각을 느끼는 대뇌 두정엽은 활동을 계속한다. 절단되고 없는 팔의 감각을 인지하려니 환상사지로 나타났던 것이다. 뇌가 거울에 비친 팔을 진짜라고 믿으면서 고통도 사라졌다.
이처럼 대뇌 두정엽 표면은 신체감각을 느끼는 곳이다. 성기, 발, 몸통, 손, 엄지, 얼굴, 입술, 목구멍 순으로 표면마다 느끼는 신체부위가 다르다. 또 각 부위는 민감도가 다 다른데 얼굴과 손, 입술이 민감하고 몸통과 다리는 상대적으로 둔감하다. 손, 입술의 움직임과 감각이 예민한 이유다.
뇌 속의 유령은 뇌 신경조직 활동의 산물이다. 그것은 팔과 다리가 내 몸에 붙어있다는 신체상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낀다고 생각하는 지각으로 절대로 볼 수 없다. 뇌를 이해해야 한다. 인간의 모든 측면에서 뇌가 가지는 중요성에 대한 자각이나 변화가 아직은 미흡하다. 한 움큼밖에 안 되는 두뇌 세포질의 활동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종의 환상이라는 책의 결론은 때로 허무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를 위로하고 겸허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