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중2병'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중2병이란 사춘기 청소년이 흔히 겪는 심리적 상태를 말한다. 자신은 남과 다를 뿐 아니라 우월하다는 사고방식, 그리고 그에 바탕을 둔 행동을 한다. 청소년을 가리키는 '사춘기' 또는 '질풍노도'와 유사한 의미로도 볼 수 있으나 보통은 그들을 얕잡거나 비꼬아 이르는 말로 쓰인다. 북한의 김정은도 '중2'이 무서워 남침을 못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다. 심지어 중2는 그 누구도 다루기 힘들다는 '초딩'보다 무섭다고 한다.

 

건드리면 폭발할 듯 불안한 존재인 대한민국의 열다섯 살들. 우리 사회는 그들을 ‘중2병’이라는 사회병리적 현상의 굴레에 가두었다. 누구나 다 자신을 떠받들어 주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이러한 말이 그들만의 유행어가 아니라 일상적인 단어로 자리 잡았다.

 

 

 

 

 

카라바조  「나르키소스」 1598~1599년경

 

 

남보다 우월하다고 자뻑에 빠지는 모습은 흡사 자기애적 병리 현상인 나르시시즘과 유사하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미모의 소년 나르키소스에 어원을 두고 있다. 나르키소스는 자신을 따르고 연모하는 이들에게 늘 냉담했으며 아무에게도 사랑을 돌려주지 않았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만 바라보다가 결국 숨을 거두고 마는데, 지하 세계에서도 스틱스 강가에서 수면만 들여다보고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나르키소스를 화가의 기원으로 보기도 한다는 점이다. 실재하는 대상이 아니라 수면에 비친 환영을 현실보다도 더 생생하게 갈구하는 모습이나, 자신의 세계에 침잠한 나머지 타인이나 외부 세계에 무관심하기까지 한 이러한 태도는 후대에 와서 예술가의 초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예술가들에게는 누구나 이러한 기질이 잠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렘브란트가 노년에 이르러 자화상에 매진한 데 대해서 일부 미술사가는 그가 경제적으로 궁핍해졌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자화상이라는 장르 자체가 화가가 자신의 내면에 대한 성찰에 보다 초점을 맞추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예술가들의 작품은 그 자신의 초상화에 다름 아니다. 중2병처럼 자기애가 심각한 정신 장애로 악화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힘으로 작용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10대의 불안한 심리를 ‘중2병’이라 부르지만 그 시기는 감정 과잉을 거쳐 감정 조절과 배려심을 배우는 자연스런 뇌 발달 과정이다.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정서적인 변화를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아이를 강압적으로 통제하려고 하면 아이가 힘들어진다.

 

이미 많은 청소년의 사춘기가 어른들의 조급함으로 왜곡되고 있다. 시대와 어른을 닮아 청소년들도 점점 더 냉소적이고, 거칠어졌다. 아이들을 끝없는 경쟁사회로 내몰면서 아이들의 소리 없는 절규에 귀 기울여주지 않은 어른들에게 잘못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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