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이유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제인 구달 지음, 박순영 옮김 / 궁리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제인 구달은 아름답다. 그녀의 평온하면서도 기품 있는 표정을 보노라면 진정한 미모는 선명한 이목구비나 날씬한 목이 아니라 얼굴 뒤에 숨은 열정과 단단한 내면, 세상을 바라보는 애정과 연민에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자서전 『희망의 이유』에서 본 그녀의 어린 시절의 한 토막에서 이 여성의 ‘오늘’이 어떻게 있게 됐는지를 볼 수 있다. 그녀가 만 두 살도 채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이 어린 소녀는 가족들과 바닷가에 갔다가 달팽이들을 물통에 담아 가지고 왔다. 그러나 어머니가 달팽이는 바다를 떠나면 죽는다고 얘기했을 때 제인은 발작할 지경이 되었고 그 때문에 온 집안 사람들은 하던 일을 즉시 멈추고 제인을 도와 달팽이들을 바다로 바삐 돌려보내야 했던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동물과의 교감이 뛰어났던 구달은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아프리카로 건너갔다. 그는 인류학자인 루이스 리키를 따라 세렝게티 초원으로 가서 초기 인류의 화석 발굴에 참가했고 인간의 과거 모습을 추적하다가 침팬지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녀는 연구를 위해 탄자니아 곰베 지역에 자리 잡았다. 그는 침팬지를 관찰하면서 인간과의 유사성에 놀라워한다. 도구를 사용하여 흰개미를 잡아먹는 침팬지는 ‘도구적 존재’라는 인간 고유의 특성을 위협하는 보고였다. 또한 침팬지도 의사소통을 하고, 원한과 배려의 감정을 나누며 복잡한 사회 조직을 갖는다는 점은 기존의 상식을 뒤흔들었다.

 

구달의 보고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동종 집단의 갓 태어난 새끼를 잡아먹는 암컷 침팬지, 무리에서 떨어져 나간 배신자 집단과 잔인하게 전투를 벌이는 침팬지들의 모습은 인간의 유전자 안에 이기적 폭력성이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구달은 인간의 문명을 걱정한다. 개별적 경험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면 집합 문화를 이루고 우리와 남을 구분한다. 바로 ‘문화종분화’이다. 문화종분화가 극단화되면 민족, 종교, 이념, 성별 등에 따른 배타적 패거리주의가 발생한다. 타인의 고통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잔인하게 괴롭힌다는 점에서 구달은 인간만이 악마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이기성은 극복이 불가능한 것일까. 구달에 의하면 사랑도 동물적 본성이다. 그녀는 40년간의 영장류인 침팬지 연구와 보호활동을 통해 인간을 보다 풍부하게 알게 됐고 인간에 대한 희망을 발견하게 됐다. 네덜란드의 한 동물원에 살고 있는 암컷 침팬지는 두 마리의 수컷 침팬지가 싸운 뒤 등을 돌리고 앉아 있을 때마다, 둘 사이에 끼어들어 ‘털 고르기’라는 놀라운 솜씨로 화해를 주선한다. 침팬지는 부모 자식뿐 아니라 형제자매 간, 그리고 같은 처지의 고아들끼리 극진한 동정심을 보인다. 어려움을 무릅쓰고 남을 구조하는 이타적 행위도 마찬가지였다.

 

또 어른 수컷 침팬지가 물에 빠진 동료의 새끼를 구하려다 익사했다는 사례도 보고됐다. 인간이 침팬지보다 못할까. 침팬지는 동료 침팬지를 구하기 위해 죽을 수 있을지언정,친구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릴 것을 의식적으로 결정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인간이 자신의 목숨을 버려 정의를 지키고, 이웃을 구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구달은 인간이 ‘절반은 죄인이고 절반은 성자’라고 말한다. 침팬지도 친구를 돕다가 죽을 수 있지만 의식적으로 결심하는 것은 아니다. 반면 인간은 고문을 알면서도 저항운동을 하고, 죽을 줄 알면서도 낯선 타인을 위해 철도에 뛰어든다. 악과 사랑의 두 가지 방향을 의식적으로 조절할 줄 아는 능력, 이것이 인간만의 독특한 본성이라는 주장이다.

 

그녀는 과학자이면서도 ‘영혼의 힘’을 강조한다. 선한 영혼을 따라 과학의 이름으로 헤쳐 놓은 지구를 생명 가득한 공간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지적 능력, 자연의 회복력, 젊은이들의 열정, 그리고 불굴의 인간정신, 즉 ‘희망의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인간이 동물과 공존할 수 있고, 우리를 품은 환경을 되살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실 침팬지 연구가로서 동물보호와 환경보호에 나섰다는 그녀의 프로필만을 봤을 때, 소박한 자연보호 의식을 가진 서양의 여성과학자였다. 세상에 대해 ‘희망’을 갖자고 말하는 그녀의 이야기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그러나 제인 구달은 세상과 유리되어 연구실에서 연구만 했던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환경파괴로 인해 그녀의 친구들인 침팬지가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봤으며, 곰베 지역 주변의 분쟁으로 인해 연구생들이 납치되는 사건을 겪기도 했다. 그녀는 1977년 제인 구달 연구소(JGI)를 설립했다. 여기에서 아프리카 침팬지와 야생동물의 현장 연구 및 보호사업을 펼쳤다. 침팬지 등 포획된 동물의 보호에도 나섰다.

 

그녀에게서 ‘영혼을 담은 과학’은 곧 실천임을 배운다. 우리가 어머니 지구 안에서 어린아이의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 가능할까. 너와 나의 구체적 행동에 그 결과가 달려 있다.

 

과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제인 구달의 이야기는 세상에 대한 희망의 철학과 평화의 메시지를 간결하게 전하는 종교인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그녀는 침팬지를 제3자의 시선에서 관찰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직접 감정을 이입해서 이해하고 대화할 존재로 바라본다. 젊은 나이에 위험을 무릅쓰고 침팬지 연구에 뛰어들어 놀라운 발견을 해냈다는 주목할 만한 에피소드 이상으로 그녀에게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은 ‘희망’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그녀의 사상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침팬지 탐구는 결국 인간탐구였다. 침팬지도 우리 인간처럼 사랑하고 질투하고 분노를 느끼는데도 그저 이용과 도구의 대상으로만 생각한다. 침팬지는 지금도 여전히 인간식탁의 별미로 마구잡이로 사냥되고 인간 병의 백신을 위한 실험재료로 사용된다. 인류의 환경파괴와 전쟁, 이기와 탐욕을 우려한다.

 

“인간이 품성을 지닌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합리적 사고와 문제 해결을 할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기쁨과 슬픔과 절망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고통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덜 오만해질 수 있다.” (278쪽)

 

하지만 이러한 잘못을 극복해낼 힘 또한 인간에게 있음을 확신한다. 위기를 극복하려면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 조금씩이라도 노력하는 길 밖에 없으며, 인간은 분명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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