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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2010년 전면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Scene #1 과학으로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다
천도(天道), 즉 하늘의 이치가 옳은지 그른지 헷갈린다는 뜻으로 얄궂은 세상의 이치를 한탄하는 말이다. 삶의 정도를 지키고 살아가는 사람이 오히려 벌을 받고 그렇지 못한 자들이 별 탈 없이 살 수도 있다는 불공정한 세태를 비판한 것이다. 사마천은 이런 세상을 안타까워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하늘의 이치는 사사로움이 없어 항상 착한 사람과 함께한다.’ 백이와 숙제는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들은 어진 덕망을 쌓고 행실을 깨끗하게 하였건만 굶어 죽었다. 하는 일이 올바르지 않고 법령이 금지하는 일만을 일삼으면서도 한평생을 호강하고 즐겁게 살며 대대로 부귀가 이어지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실은 나를 매우 당혹스럽게 한다. 만약에 이러한 것이 하늘의 도라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사기열전 1』 ‘백이열전’에서 임의 발췌, 64~65쪽)
사마천의 푸념이 오늘의 이 나라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것처럼 들리는 것은 유독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악하고 부도덕한 사람이 착한 사람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보면 “세상 정말 ×같아”라는 욕이 나온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뱉는 이런 자조 섞인 한탄에는 인간 본성에 대한 부인할 수 없는 한 단면이 압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과연 인간은 선량한 존재인가?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학창시절에 분명히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을 배운 적이 있다. 이제 새삼 인간 본성이 선한지 악한지를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답할 것인가?
마키아벨리는 ‘인간은 사악하고 믿을 수 없는 존재’라고 하면서 인간을 다스리려면 군주는 사자의 용맹과 여우의 머리를 가져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반해 칸트는 인간에게는 선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이성적 존재라고 함으로써 합리적 도덕적 인간들이 모여 사는 완전히 개화한 문화의 왕국을 꿈꾸었다. 서양식 성악설과 성선설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러한 주장들은 아직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에 있었던 형이상학적 신념의 표현에 불과하다고 여겨진다.
게놈 프로젝트니 유전자 복제니 하는 것들은 모두 분자 생물학의 성과들이다. 분자 생물학을 태동시켜 인간을 물질적인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단서는 DNA 발견이었다. 바로 이 DNA가 생명 단위는 유전자라는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생물학의 한 분야인 진화론을 유전자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리고 덕분에 우리는 인간 본성에 대한 보다 과학적인 설명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진화의 단위가 종인지 종 내의 특정한 집단인지가 분명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전자의 발견은 이제 이러한 불투명한 논의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요구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현재 많은 진화론 학자들은 대체로 진화의 단위를 유전자라고 보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이를 종래 다윈식 용어를 빌려 말하면 아종 내의 특정한 집단이 선택의 단위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이러한 주장을 유전자 선택설, 혹은 집단 선택설이라고 부른다.
Scene #2 계산된 이기심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은 유전자를 보호하고 전승시키기 위해 유전자 자신이 만들어 낸 갑옷과 같은 보호 장구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전개한다.
이제 유전자 선택설에 따르면 심지어 인간 신체마저도 유전자를 보호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며, 인간의 각종 행위 역시도 같은 방식으로 이해된다. 그리하여 설사 이타적인 행위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과적으로 신체가 보유하고 있는 유전자의 보존에 득이 되기 때문에 그러한 행위가 가능하다고 주장된다. 타인을 위한 봉사와 희생이 이기적 유전자의 자기 보존이라는 메커니즘으로 설명됨으로써 우리는 인간성에 대한 신뢰의 한 축이 무너짐을 느낀다.
그런데 도킨스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 본성이 ‘계산된 이기심’임을 분명히 한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5개 정도 조건 전략자를 가정하여 진화 시뮬레이션을 전개한다. 5개 정도 조건 전략자에는 비둘기파, 매파, 보복파, 허풍파, 시험보복파이다. 비둘기파는 싸움을 피하는 조건 전략자다. 반면에 매파는 싸움을 걸고 완전히 패배하기 전까지는 물러설 줄 모른다. 보복파는 매파에 대해서는 매파처럼 비둘기파에 대해서는 비둘기파처럼 행동한다. 허풍파는 매파처럼 행동하지만 반격을 해오면 꼬리를 말고 도망친다. 시험 보복파는 매파처럼 싸움을 걸되 상대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계속 매파로 행동하고 상대가 강한 모습을 보이면 비둘기파로 변신한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지금까지 말한 다섯 개 전략자 모두를 서로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하면 보복파와 시험 보복파만이 진화적으로 안정됨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결론은 야생 동물 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인간 역시도 동물의 한 종이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을 꾀하는 종족이라는 측면에서 상기한 이론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설사 인간들이 일견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어떠한 종류의 사안에 대해 합의를 하거나 협정을 맺는 사례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개인이 전원 의식적으로 장래를 예견하고, 그 협정의 규약에 따르는 것이 자기의 장기적 이익에 좋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인간들을 보면서 그들은 하늘이 주신 저 능력, 즉 이성을 저렇게 간교하게 사용하는구나 하고 탄식하였겠지만, 도킨스에 따른다면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곧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반사회적인 적대감을 낳는 성급한 탐욕뿐 아니라 사회화를 가능하게 하는 계산된 이기심 또한 갖고 있는 존재임을 이 책은 과학의 성과에 근거하여 아주 솔직하고 담백하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Scene #3 인간은 유전자의 ‘생존기계’
인간의 의지를 철저히 무시하고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식의 주장에 당혹감을 느낄 독자들도 적지 않을 터이다. 특별한 그 누군가를 사랑하고, 인류에 봉사하는 의로운 행동을 하는 것조차 모두 ‘유전자의 명령’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생물 세계에서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동들은 모두 유전자 존속과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는 기계인 생물의 생존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행동은 '이기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해석 때문에 일부 생물학자들은 도킨스는 유전자 결정론을 선동하는 초(超)다윈주의자라고 몰아붙이며 자연선택 과정을 유전자 수준에서 설명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렇게 비판하는 사람들도 이기적 유전자론이 진화론을 좀 더 효율적으로, 그리고 그럴듯하게 설명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을 처음 접한 독자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도 이 같은 유전자 진화론 때문이다. 인간의 주인이 인간이 아닌 불멸의 복제자인 유전자라니, 인간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무시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인간의 자율성 논란은 뒤로 하더라도 실제로 유전자 불멸성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인간의 예상 수명은 기껏해야 100년 이내지만 유전자 생존 단위는 100만년 이상이기 때문이다.도킨스가 이 책을 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진화론의 효과적인 옹호를 위해서일 뿐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그는 진화를 설명하는 데 있어 개체와 유전자는 관점만 다른 것일 뿐 차이가 나는 주장이라고 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두 가지 견해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둘 다 옳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의 제목 그대로 사람의 이기적 특성을 결정짓는 유전자가 있다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 자체가 이기적이라는 뜻이다. 이기적인 것은 유전자이고, 인간 개개인은 유전자의 목적을 수행하는 ‘생존기계’일 뿐이다. 인간 개체가 생존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이런 저런 유전자를 진화시키고 이어받은 것뿐만 아니라 유전자가 자기 복제자를 대대로 유지하기 위해 개체를 이러저러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Scene #4 유전자의 지배를 받지만, 극복할 수 있다
사실 도킨스의 이론은 다분히 결정론적인 측면이 강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인간이란 존재는 다른 생명체와 비교해 특별할 것 없는,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생존기계’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결론에 이르면 사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도 크게 의미를 갖지 못한다.
하지만 이 책이 주는 교훈이 단순히 인간도 그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다른 생명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 인간 진화의 역사 역시 생존을 위한 이기적인 역사였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시점부터가 이 책이 주는 진정한 의미다.
여전히 인간이 유전자에 휘둘리는 생존기계라는 사실에 찝찝한 독자가 몇 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시라. 도킨스는 이타성을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개념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에 대한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밈(Meme) 이론이 그것이다. 유전자(Gene)에 대응시켜 도킨스가 만들어낸 용어인 밈은 ‘문화적 진화’의 단위다. 생명체가 유전자의 자기복제를 통해 형질을 후세에 전달하는 것처럼, 밈도 자기복제를 통해 사회와 인류의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원동력이 된다.
비록 생존을 위해서 이기적인 행동을 선택하더라도 우리는 유전자의 의지에 대항할 수 있다. 인간은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한 생존기계일 뿐이겠지만 그 기계를 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고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유전자 때문이 아닌 인간의 자율의지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그저 인간도 이기적인 유전자에 의해 지배받는 존재란 결론을 내린다면 오해다. 인간이 수많은 생명체와 별반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어떻게 하면 인간이 이성이라는 선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책에서 찾아야 할 교훈이라고 생각한다.